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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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츠와 이야기를 마친 리안은 곧장 항법사 제로스에게로 갔다.
고잉미샤호의 간부답게 이 섬에서만큼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중이다.
그는 전망이 좋은 호텔 스위트 룸의 발코니 욕조에서 여유를 즐겼다.
“팔자 좋네요.”
“이 맛에 배를 타는 거지. 크흐흐.”
“그동안 많이 쉬었잖아요.”
리안이 노르망 땅에서 전쟁을 벌이고 신센롬 제국으로 넘어간 동안 고잉미샤호는 적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 브루타뉴 왕국의 앞바다에서 어슬렁거렸다.
“그게 더 힘들어. 그 이후로 육지에 내려 본 게 오늘이 처음이라고. 육지 멀미가 다 일 지경이다.”
이해는 가긴 했다.
단거리로 움직이는 배라 할지라도 중간 기항지가 있는데, 고잉미샤호는 주구장창 바다 위에 있었으니.
“고생했네요. 이거나 드세요.”
리안이 욕조 안으로 조잡하고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뭐냐.”
“몸보신 좀 하라고요. 몇 개 안 나오는 상등품입니다.”
딸각.
“음?!”
상자를 열자 안으로 햇볕이 스며든다.
작은 연단의 표면은 거칠었고 오묘한 빛을 반사해 냈다.
“설마…….”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딴 걸 왜 나에게 주냐. 난 마나에 재능이 없다고.”
“꼭 재능이 있어야 먹나요. 만가 열매의 최고 장점이죠.”
재능이 낮은 이에게도 제법 효과가 있다는 점.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적다는 점.
“설마. 나보고도 싸우라는 거냐?”
“에이. 소드마스터가 되어도 일반 병사에게도 질 양반이.”
“그럼. 이걸 왜 내게 양보하는 거냐.”
“귀족이 마나 유저도 안 되면 안 되죠.”
그 말에 항법사는 상자의 뚜껑을 닫고는 도로 리안에게 던졌다.
“안 먹으련다. 내게 귀족 작위를 줘서 뭘 시키려고!!”
“안 먹는 것은 선택지에 없답니다.”
리안이 입꼬리를 올리며 상자에 든 영약을 집어 들었다.
“오… 오지 마!!”
알몸인 남자와 뒹구는 것은 리안도 싫었지만, 지금이 찬스다.
다른 이들 앞에서 이런 꼴을 보일 순 없지 않은가.
꿀꺽!
리안은 강제로 항법사의 입안에 영약을 집어넣었다.
“끅! 끅!!!”
항법사의 눈이 뒤집어졌다.
리안은 귓가에 속삭였다.
“좋은 여행 되세요.”
어찌 된 영문인지 만가 열매를 먹은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전쟁 신 탱글에게 불려갔다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짧지만 아주 굵은 경험을 하고 왔다.
“으아아아악!!! 씨바아아아아아알!”
얼마 지나지 않아 욕조의 물을 튀기며 벌떡 몸을 일으키는 항법사.
제대로 체험하고 온 모양이다.
“오오. 반응을 보니까 제법 진전이 있었나 보네요.”
“진전은 개뿔!!”
카이토는 젖은 손으로 리안의 목살을 잡았다.
키 차이가 있다 보니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럼에도 리안은 환하게 웃었다.
“오오오! 이 정도면 얼마 안 가서 각성도 가능할 것 같은데?”
“하나도 안 기쁘다. 난 꿈에서 탱글 님을 뵙고 왔다.”
리안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녀 온 것이 꿈인지 아니면 진짜로 저 세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꿈이라 해도 신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꿈이라 할지라도 신이 나타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니.
“그래서 뭐라던 가요?”
“나 같은 븅신 세끼는 만 년 만에 처음이란다.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자근자근 밟아 준다더라.”
“헤…….”
리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모습을 나타내다니. 어지간했나 보다.
“뭐. 그럼 마법사 하면 되겠네요. 오오. 잘되었다. 내가 또 마법사로 각성하는 데 딱 좋은 영약을 알고 있거든요. 만가 열매와 섞으면 희대의 역작이…….”
“안 먹는다. 안 먹는다고.”
“왜 그러실까. 김 백작님.”
“……??”
리안의 말에 어벙거리는 항법사.
“Kimg**???”
“킴그**가 아니라 김이요.”
“아니 발음이 왜 그따구야. Kimg**…….”
김이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나 보다.
“연습이나 해 둬요. 귀족이 자신의 가문 발음도 못 하네.”
“내가 무슨 귀족이냐!!”
“노르망에 좋은 땅 하나 빼놨어요. 뭐. 평생 몇 번이나 가실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내 땅이야아아아!!!”
“은퇴하면 가시든가요.”
항법사에게 일단 땅을 주긴 줬으니 영지를 가진 귀족이다.
그것도 율 대륙에 있는.
“젠장!”
“고잉미샤호를 잘 부탁해요.”
“너…!! 또 어딜 가려고.”
“먼저 출발해서 코파나 영지를 좀 둘러보려구요.”
“젠장!”
지금 고잉미샤호의 간부들은 거의 빠진 상태다.
거기다 해병대들도 기사가 되어 대부분 점령지를 안정화시키는 데 동원되었다.
함장 대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은 항법사가 유일했다.
“그럼. 갑니다. 김 백작님. 며칠 쉬다가 싸그리 데리고 코파나 백작령으로 오세요.”
“이놈아!! 이왕이면 발음이 쉬운 성으로 줄 것이지!!! Kimg**… 가 뭐냐.”
리안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
“발음이 너무 어려웠나. 그래도 박씨가 아닌 게 어디야.”
리안은 노리고 저런 성씨를 준 것이다.
조선국이란 곳의 성씨와 비슷하게.
시끌벅적.
만가 섬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율 대륙의 거의 모든 배들이 신대륙으로 갈 때 이 섬을 이용한다.
통행세도 통행세지만, 이들이 정박할 때 쓰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인어 쉼터>
리안이 고착한 곳은 섬 구석에 있는 수영장 딸린 건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말 인어를 볼 수 있다고?”
“그냥 가버리는 거야!!!”
“아아. 뱃사람인 것이 행운이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군.”
리안은 그들을 그대로 지나쳤다.
“귀족인가? 줄을 안 서고 바로 들어가네.”
“저분 몰라? 저분이 바로 이 선단을 이끌고 있는 그분이야.”
“레… 레온 대공왕?!!”
대공왕이란 작위는 없다.
존경의 뜻을 담은 대왕은 있을지언정 말이다.
그럼에도 율 대륙의 사람들 중 리안을 대공왕이라 칭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파닥파닥!!!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부지 전체가 수영장이었다.
건물도 수영장 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핡핡핡!!!!! 끄아아아아!!!! 우오오옥! 옥!! 옥!! 옥!!! 경이~~~
건물 안은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 찼다.
소리만 듣는다면 어느 지옥에 온 것이라 착각이 들 정도.
“어서 오세요. 우리들의 왕이시여.”
리안을 맞이한 것은 세련된 귀부인이었다.
말 한마디. 손끝의 움직임에도 기품이 들어 있었다.
이곳의 지배인이다.
“매출은 어때요?”
“역대급입니다. 전하.”
한번에 이렇게 배가 몰린 적은 없을 테니.
어쨌든 이 섬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이곳 인어 쉼터였다.
“돈도 돈이지만, 인간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더이상 마음졸이지 않아도 되어서 인어들이 기뻐하고 있어요.”
인어들을 목격했다는 인간들이 많지 않은 이유다.
사고도 쳐서는 안 된다.
실종되는 자들이 많아지면, 인간들은 조사에 나설 테니.
인어들의 물에서 전투력이 전사에 가깝다 해도 돈과 욕정에 눈이 먼 인간들에게는 안된다.
물에선 중견급이었던 부선장을 이길 정도로 대단했던 인어 아가씨조차도 인간들에게 잡혀 노리개로 있던걸 리안이 구해 주지 않았던가.
“다들 이곳에 오고 싶어 난리예요.”
그야말로 인어들에게는 파라다이스.
다만 수용할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분점을 계속 낼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해.”
“저희들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들의 어버이시여.”
솔직히 말하자면 인어 여왕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간간이 해저 터널을 이용해 이동을 하려면 이것도 힘이 많이 소모된다.
힘들게 모은 인어들의 에너지를 뺏기만 하면 곤란하다.
“그건 그렇고. 인어 아가씨는 어디에 있어요?”
“아! 필리온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지금 VIP를 모시고 있습니다.”
인어 아가씨는 필리온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리안에게는 여전히 인어 아가씨로 불리고 있었다.
인어들에게도 소문이 나서는 이제 아가씨라 부르는 동료 인어들도 많았다.
“내보내 줘어어어어~~~”
“어멋. 공작님. 저를 보러 온 게 아니었나요?”
“나도 제대로 서비스를 받고오오오 싶다고오오오!!!”
어디선가 낯이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규하는 남자. 그걸 즐기는 듯한 여자.
똑똑!
“인어 아가씨. 그만 괴롭히고 놔주세요.”
“히잉~ 이제 시작인데.”
“고맙습니다. 공왕 전하! 나를 구해 준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아디오스~!”
리안은 웃으며 공왕에게 손 인사를 하고는 인어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다.
“그래서 뭐래요?”
“왕께서 지정하신 땅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대륙 함대에서 5척의 군함도 뺄 수 있답니다.”
공작은 오늘도 쥐어짜였다.
일반 인들이라면 인어에게 쥐어 짜일수가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천국행 티켓인 살살 짜이는 것도 가능한 곳.
공작은 그 말에 홀깃해서는 인어 아가씨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이곳을 찾았다.
당연히 인어 아가씨가 자신의 방에 들어올 줄은 몰랐겠지.
“어쨌든 수고했어요. 필리온.”
“그럼. 보상은?”
“에너지 넘치잖아요. 간만에 푸른 피를 맛봐서.”
“그건 그렇죠. 헷.”
“코파나 영지로 데려다줘요.”
“맡겨 주세요.”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인어 아가씨는 리안에게 입맞춤을 했다.
심히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인어들은 체력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라 당장 해저터널을 열 수 있는 것은 필리온밖에 없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역시나 해저 터널은 아무리 타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첨벙!!! 푸슈슈슈!
코파나 백작령의 앞바다에 물기둥을 뿜어 대며 리안과 인어 아가씨가 뚫고 나왔다.
“으아아아악!!!!”
“죄~송~해요오오오~!!”
인어 아기씨는 힘이 너무 넘쳤다.
참고로 인어 여왕을 경유해야 하는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이 모양이었다.
-저도 합류를 해야해서...
어차피 필리온도 고잉미샤호에 합류를 해야 해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해저터널을 열어야 했다.
연속으로 해저터널을 열었음에도 거의 폭주 기관차 같았다.
역시 푸른피는 다른 것인가?
“분명 여왕님께 신성력을 많이 넘겼는데…….”
“다음에는 더 넘기도록 해요.”
리안과 인어 아가씨는 어지러움 때문에 모래사장으로 기어가서 대자로 누웠다.
어질어질한 것이 가시질 않았다.
“네에에…….”
그때 하늘에 거대한 땅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용의 형상.
“거기~ 용 할아버지!!!”
리안이 소리쳤다.
그러자 하늘을 날던 용의 눈이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펄럭!!
용은 리안의 옆에 착륙했다.
“뭐 하세요?”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애새끼가 어찌나 입맛이 까다로운지.”
치이이이~~
용의 발에는 암석이 쥐어져 있었는데, 열기가 후끈거렸다.
“용암지대까지 다녀왔다.”
“아아. 화염의 용 알에 먹일 건가 보네요.”
“알을 깨고 나올 때가 되더니 바라는 게 너무 많아.”
“미래에 신부가 될 용인데 정성을 들여야죠.”
“신부는 무슨. 우리 용은 성별이 없다. 부부라는 개념도 없고.”
짝짓기조차도 없이 기운을 교류하는 것으로 알을 수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드워프들에게 이상한 것을 시킨 것은 드레곤과 다른 생명체 사이에 격이 너무 많이 차이가 나다 보니 주술적 행위를 더한 것이다.
“뭐. 어쨌든 축하드려요.”
“그래. 다 네 덕분이지. 용의 멸절하지 않은 것이.”
용의 원한을 100배로 갚는 종족이지만, 은혜 또한 잊지 않는다.
“앞으로 태어나는 용들은 앞으로 네 일족에게 친절할 것이다.”
물론 리안의 후손이 많아지면 그 친절이 여러 개로 쪼개져 옅어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혜택이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면 웬만한 것들은 들어 줄 것이니.
“그런데, 레드 드레곤과 브라운 드레곤이 만나면 어떤 드레곤이 태어나죠?”
“아마. 실버가 유력하겠지. 그다음으로는 그린 드레곤일 거고.”
참고로 드레곤은 같은 속성끼리 수정되지 않는다.
태어나는 것도 부모의 속성을 따르지 않았다.
참으로 복잡한 종족이다.
“운하는 어떻게 되었어요?”
“보다시피.”
용은 리안과 인어 아가씨를 태우고 하늘로 높이 솟았다.
리안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참으로 볼만한 광경이다.
바다에서 시작한 물길이 신기하게도 산을 거슬러 반대 바다로 흘렀다.
“삼 일에 한 번씩 물길이 바뀐다.”
“신기하네요.”
“옛날 인간 놈들이 별나긴 했지. 그래서 멸종할 뻔하긴 했지만.”
그러다 리안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저건…….”
“네놈이 발굴한 정령사의 집이지.”
외딴 숲에서 오색 빛깔이 뿜어져 사방으로 튀는 중이었다.
리안이 발굴한 정령사라면 작은 히어로 호텔 몽키를 말하는 것이다.
“나중에 집을 등대로 옮겨 줘야겠네요.”
나름 명소가 될 것 같다.
운하로 떼돈을 벌겠지만, 관광 수익도 꽤 많이 발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