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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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리안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오스 대제국이 원하는 신물을 넘겨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또다시 대성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
“신센롬 제국에 간 사암레고리 추기경에게 그리하라 하거라.”
“알겠사옵니다. 성하.”
교황청과는 장거리 통신으로 바로 전달되었는데, 리안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추기경 자리가 두 석이 남는 걸로 알고 있어요.
-혹여 그 자리에 앉길 원하는 주교라도.
-전쟁의 신 주교와 봄의 신 주교.
참고로 교황은 태양신을 모시는 사제만이 앉을 수 있지만,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추기경은 다른 신을 모셔도 상관이 없다.
-하… 하지만. 그 두 종교의 성세가…….
-교황청이 오직 태양신만을 위한 곳인가요? 성세가 작아 추기경 자리를 받지 못한다니요. 지금 쥬교 외에 규모가 되는 종교가 있던가요?
-그건 아니오라…….
결국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고. 교황은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만들었는데……!”
태양신을 믿는 쥬교의 사제들은 교황청에서 다른 신을 모시는 사제들의 입김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봄의 신 이스터와 전쟁의 신 탱글 외에도 꽤 많은 종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율 대륙에서 사라졌다.
“레온 리안!!!”
교황은 리안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교황청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암레고리 추기경은 리안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물었다.
싸우지 않고 그들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말이다.
“간단해요. 인디양을 포기하면 돼요.”
“그게 무슨……!”
“그 말은 동방의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단 말이지 않습니까!”
이벨 왕국의 대사가 다급히 물었다.
잉글슨의 대사는 적국이었기에 전쟁이 시작한 직후 쫓겨나 이 자리에 없지만, 그가 있었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들 우리가 사는 땅이 평평하다고 믿는 것은 아니죠?”
“그럴 리가요.”
지구의 종교와 달리 이 세계의 사제들은 그들이 사는 이 행성이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높이 날 수 있는 바람의 대전사 때문.
그는 외기권까지 날아가 마도구로 사진을 찍어 왔다.
-아래에선 평평해 보이던 것이 하늘로 올라가니 둥글었습니다.
수학자들도 가세해 땅이 둥글다는 것에 동의했다.
다행히 어떤 종교의 성경에도 땅이 둥글다는 말이 없었기에 이단으로 몰아가지 않았다.
“신대륙을 넘어 큰 바다를 건너면 동방입니다.”
“그 신대륙을 넘어간 자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이벨 왕국은 오랫동안 검은 땅의 희망봉처럼 남신대륙을 돌아 동방으로 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남신대륙의 끝단의 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불렸다.
“남신대륙 끝단을 지나가려니 그렇죠. 아직 우리가 가진 항해 기술로 그곳을 넘지 못합니다.”
리안도 인정했다.
그곳을 넘으려 시도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찾아갈 것임을.
“그렇다고 얼어붙은 북단으로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추기경이 거들었다.
식탐이 강하기는 하나 그의 학식은 결코 낮지 않았다.
“얼음 바다를 뚫고 갈 바다는 없지요.”
리안이 웃으며 수긍했다.
“지금 레온 공왕께서는 저희를 놀리시는 겁니까?”
“놀리다니요. 가로지르면 되지 않습니까.”
“신대륙의 산지는 율 대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합니다. 이곳과 달리 육로로 부유선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들도 시도를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신대륙은 비옥하고 넓은 땅이었으나 그들의 문명이 편향되게 발전한 이유. 그것은 지역 간에 거대한 산맥들로 인해서 교류를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맨몸으로도 넘나들기 힘든 산맥을 부유선은 결코 넘지 못한다.
“내가 그대들을 태평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바다를 넘으면 진짜 동방의 땅에 도착할 것이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내 영지 코파나 백작령에 신대륙을 가로지르는 수로가 있습니다.”
리안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곳은 원래 우리 이벨 왕국의 땅. 개발을 위해 철저히 조사했었습니다.”
“네. 이전에 없던 수로를 제가 뚫었지요.”
“허…….”
저리 말하는데 믿지 않기도 그렇고. 믿자는 너무 허무맹랑했다.
“그러니 내가 율 대륙의 모든 상인들을 동방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세요. 동방의 드림을 꿈꾸는 자 모두 이벨 왕국으로 모이라고.”
* * *
전쟁에서 활약한 리안의 소식이 식기도 전에 그가 한 말이 율 대륙을 강타했다.
모든 상인들의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비단! 비단이 그곳에 있다.
-도자기는 어떻고. 동방에서만 만들 수 있는 도자기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
동방의 도자기가 대기에 흐르는 마나를 움직인다.
수련에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미미한 효과라지만, 귀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사치품이다.
-영약차는 잊었나 보군.
-맞아. 영약차가 있었군.
영약의 흡수를 돕는 차.
1.2배에서 많게는 1.8배로 영약의 효과가 뻥튀기 된다.
가장 큰 장점은 10이란 효과를 가진 영약이 있고.
복용자의 체질상 7의 흡수율을 보인다 해도.
결과적으로 8.4~12.6을 흡수하게 된다.
그야말로 꿈의 음료인 것이다.
-가즈아아아!!! 동방으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개소리로 치부되었겠지만, 지금 율 대륙에서 가장 핫한 인물인 리안의 말이다.
베팅을 하지 않는 자가 바보인 것이다.
“서방님. 흐이이잉. 가지마아앙.”
리안이 떠나려하자 앙드네드가 울음을 터뜨렸다.
겨우 3살에 불과하지만 봄 여신의 가호를 받아 7살에 가까운 덩치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졌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가는 거야.”
리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 줬다.
“흐잉. 나도 갈래.”
“네가 갑자기 움직이면 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야.”
그녀의 존재만으로 신센롬 제국의 황궁을 기점으로 영아 사망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자리를 떠난다면 모든 것이 리셋될 것이다.
“흐이이잉. 모라아아앙!! 올 때 선물 사와!!!”
앙드네드는 토라진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뛰쳐 갔다.
“아직 애라. 미안하네. 사위.”
“저 나이에 저 정도면 의젓하죠.”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건가?”
리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필요해서 사위가 되긴 했지만, 자신도 애고 저 아이는 더더욱 애였다.
‘얼추 2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차마 말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로이센 왕국부터 치워 버리고 결정하죠.”
“그것도 걱정이네. 봄이 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될 텐데. 그대가 가 버리면…….”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물량으로 찍어 버리면 될 겁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적의 군대가 아닙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해 버렸으니까요.”
잉글슨과 스랑 제국의 본토 전쟁이 끝났다.
신대륙에서의 전쟁도 일단은 휴전 상태.
스랑 제국이 서쪽에서 밀어붙이고.
키예프 루스 제국이 동쪽에서.
신센롬 제국이 남쪽에서 치고 올라간다면.
어찌어찌 될 것이다.
물론 괴물 같은 프리들 국왕은 내선 기동을 하며 하나씩 각개격파하겠지만,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몇 년이 걸릴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버틴다면 그때 가서 리안이 결정타를 날려 버리면 된다.
‘전쟁이 벌써 끝나 버리면 섭섭하지.’
리안은 율 대륙의 대황제가 될 생각이다.
일단 게임에서의 최소 클리어 조건이다.
뭔가 모르게 찝찝하니 말이다.
가장 작은 희생과 노력으로 대황제에 오르기 위해선 이 전쟁이 더 지속되어야 한다.
스랑 제국이 흔들리지 않으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내가 대황제가 되는 편이 더 많은 목숨을 세이브할 거고.’
율 대륙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 나간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차라리 누군가 한 명이 통합시키는 것이 더 나았다.
“어서 돌아와서 함께 싸워 주게나. 사위.”
“사실. 저도 이 이상은 개입이 힘듭니다. 장모님.”
“하긴. 잉글슨의 눈치를 봐야겠지.”
리안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도 하지 못했다.
거의 선전 포고에 가까울 정도의 행동이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건강히 다녀오게나.”
리안은 그녀를 뒤로하고.
“출항한다!”
고잉미샤호에 올랐다.
얼마 전 고잉미샤호가 도착했다.
리안이 인어 여왕의 도움으로 홀로 온 뒤 열심히 뒤쫓아온 것이다.
“승선을 환영합니다. 선장님.”
흐리아 민이 리안을 맞이했다.
부선장과 일부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각지에서 영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빠진 상태였다.
츠츠츠츠!!!
고잉미샤호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전과 달리 거칠 것이 없었기에 곧장 바다로 향했다.
-와아아아!!! 레온 공왕을 따르자!
바다에는 수많은 상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리안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가자! 신대륙으로.”
리안은 그들의 호응에 답했다.
고잉미샤호의 뒤로 상선들이 따라붙는다.
중해를 빠져나와 대서양에 도착했을 땐 수백 척까지 불어났다.
“레온 공왕!”
그때 화려한 배가 고잉미샤호로 접근했다.
그 정체는.
“해리 78,900세 공작 전하.”
“하하. 전하라니. 난 공작에 불과한데, 레온 전하는 공왕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격식을 차리는 잉글슨의 공작.
잘생긴 얼굴 덕분인지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넘쳐흘렀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하하하… 그래… 보입니까?”
공왕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인어 아가씨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기품이 넘치던 얼굴에서 5년은 더 폭삭 늙어 버린 느낌이었다.
“차나 한잔하시죠.”
“알겠습니다.”
배들은 계속 이동 중이었기에 공작은 자신의 배에서 고잉미샤호로 넘어온 상태였다.
펄럭!
리안은 갑판에 파라솔을 펼쳤다.
인어 아가씨가 다가와 잔에 차를 채워 준다.
달달달.
찻잔을 잡는 공왕의 손이 떨렸다.
“그보다 여긴 어인 일입니까?”
“잉글슨의 상단을 제가 이끌게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레온 전하와 제가 친분이… 있으니까.”
“그렇군요.”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국에선 뭔 말이 없던가요?”
“다들 걱정을 하다가 신대륙을 지나 동방으로 향하는 뱃길을 뚫어 주신다는 선포에 다들 안심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위 된 입장으로 체면이 있어서…….”
“국왕 전하께서도 이해를 하신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잉글슨에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긴 했다.
계속 전쟁에 관여를 했다면 모를까 한 번 도와주는 것은 귀족인 이상 아주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아니었다.
“다행이네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왕이면…….”
“네. 교역을 할 만한 적당한 곳이 있긴 합니다. 잉글슨은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이왕이면 북신대륙의 식민지에 일러서 서부로 개척을 하라고 하세요.”
“북신대륙 서쪽은 별로 쓸만한 땅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중간에 사막도 있고…….”
“서부 해안에 금광이 많답니다. 마나석 광산도 있을 것이고. 그 정도만 언질해 줘도 될 겁니다.”
“허…….”
잉글슨이 커져서 나쁠 것이 없는 리안이었다.
스랑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받을 테니.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잉글슨 연방에 속한 공왕이니까요.”
“그거참 다행입니다. 공왕 전하가 우리 잉글슨과 한 배를 탔다는 것이. 저는 이만 제 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해리 78,900세의 배 옆에는 쾌속선이 나란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방금 전 대화 내용을 본섬으로 보낼 것이다.
“선장님. 곧 만가 섬에 도착합니다.”
“이번에 한해서 통행료는 무료로 받으라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율 대륙의 서쪽에서 이곳 만가 섬까지는 금방이었다.
만가 섬으로 지나는 해류 때문.
이제는 신대륙으로 가는 모든 배들이 이곳을 경유한다.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펑! 퍼버버벙!!!
고잉미샤호를 발견한 섬에서 축포를 터뜨렸다.
주군의 귀환을 반기는 것이다.
저 섬의 주인이 독왕 삼 남매이니.
“와아아아!!!”
주민들도 집에서 뛰쳐나와 환호했다.
리안 때문인지 다수의 배를 상대로 장사를 할 요량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발전했네.”
마중을 나온 베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아무리 돈을 써도 계속 쌓여요. 주군.”
“개발에는 돈을 아끼지 마.”
“그러는 중인데…….”
이 좁은 섬에 돈을 쓰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이미 건물들이 3층 높이로 지어져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 만가 영약은?”
“순조롭게 제작 중이에요. 다만, 보관할 용기가 마땅치 않아요.”
싸고 안전한 영약이지만, 너무 오래 보관하면 약효가 조금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싼값에 도자기를 구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