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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210화 (210/253)

210화

##210

각기 다른 복색. 각기 다른 민족. 각기 다른 국가.

그들은 신센롬 제국이라는 이름하에 여기에 모인 것이다.

리안은 출정에 앞서 그들의 앞에 섰다.

“나는 그대들을 임시로 맡았지만, 그대들을 절대 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대들을 맡는 동안 시엘라로 여길 것이다.”

Siela. 시엘라. 원래는 북쪽 바이킹의 땅에서 전해지는 말.

여성을 뜻하기도 하고. 영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봄의 여신께 맹세한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내 시엘라이다.”

그때 신센롬 제국의 황녀가 리안의 옆으로 걸어왔다.

어리고 작은 소녀였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녀가 리안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 마다 물씬 봄의 향기가 풍겼다.

“우리의 어머니께서 그대의 청을 허락하겠노라 하셨어요.”

그녀는 봄의 여신에게 승락을 얻어 내었고.

사르르르.

하늘에서 빛으로 된 꽃잎이 흩날렸다.

리안과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맞을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한 늦가을임에도 봄을 보았다.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감당을 하려고?

-광인이 되어 돌아오는 것 아니야?

군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웅성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Siela. 시엘라.

이것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봄의 여신을 가장 많이 믿던 지역이 어디였을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율 대륙에서 가장 추운 지역의 북쪽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대로 전사였고. 거칠었으며. 때로는 바이킹이 되어 율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당연히 남자의 사망률이 높았고 미망인이 많이 발생했다.

-내가 죽거든 내 가족을 돌봐 주게.

-네가 먼저 내 가족의 시엘라가 된다면 들어주지.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이 바로 시엘라.

동료의 식솔들을 자신의 영혼에 강제로 엮어 버리는 방법이다.

시엘라로 여기는 자가 죽게 되면 자신의 가족이 죽은 만큼 정신적인 슬픔을 겪는다.

어쩔 수 없이 돌봐 줘야 하는 강제성이 생기는 것이다.

봄의 사제들이 사라졌지만, 워낙 유명한 신성 마법이라 율 대륙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

출생만큼이나 로망으로 뽑히는 봄의 신성 마법이다.

“가자! 나의 시엘라들이여.”

“와아아아아!!!!”

그렇게 세리팍 평원으로 신센롬 제국의 군대가 진격했다.

행군을 하던 중 군의 2인자인 러드 다운 백작이 다가와 물었다.

“전하.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장군은 부하들을 장기 말로 봐선 안 됩니다. 그 의지를 직접 보여 준 것이고요.”

이 말을 한 이유.

이번 전투에서 부하들을 장기 말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이 소모전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리안은 딱히 걱정 없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약해졌거든요.’

대규모 신성 마법.

봄의 사제 중 이렇게 대규모로 이 신성 마법을 행할 수 있는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현재 유일한 사제인 황녀 앙드네드만이 가능하고. 봄의 사제가 늘어나면 신의 힘이 분산되니 더는 불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대규모로 시전된 것이라 알려진 시엘라 주문보다 효과가 약합니다.”

다들 그 정도는 예상했다.

이걸 지켜본 다른 종교의 사제들도 그런 의견을 내었고.

기록에 따르면 한 명당 몇 명의 시엘라만 가지는 것이 보통이라 전해진다.

겨우 몇 명이지만 시엘라들을 많이 잃으면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도 신경 쇠약으로 앓다가 사망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바이킹의 왕들이 복지 정책을 만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왕들조차도 의식하게 만든. 생각보다 위험한 신성 마법.

“제가 고통을 받음으로 병사들이 뭉칠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겠죠.”

소모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신센롬 제국군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결집 능력.

동일한 훈련을 받고. 하나의 지휘 체계로 내려가는 로이센 왕국군에게 번번히 패배한 이유이기도 했다.

신센롬 제국은 연합체이니.

분열된 지휘권은 병사들에게 불신을 준다.

“분명. 전하께서 희생하신 덕분에 명령을 신뢰할 것입니다. 다만… 걱정입니다. 중간에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내가 쓰러지거든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그대가 지휘하세요.”

“제가 말입니까?!”

“그대는 신중하고 뚝심이 있으니 내가 쓰러진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까요.”

혹시라도 쓰러지게 된다면 전투 후반부일 텐데.

그때가 되면 전술보다 뚝심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필요한 조치는 모두 리안이 다 해 놓은 상태일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전장에 도착하고 배치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되니.

‘거의 사라졌네.’

앙드네드도 미리 귀띔을 해 주긴 주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5천 명까진 괜찮고. 만 명이 넘어가면 며칠을 앓아누울지도 몰라요. 절반이라면 일주일은 각오하라고 전하셨어요. 그래도 내 남편이 될 사람이니 죽지는 않을 거예요. 후유증도 없을 거고요. 헤헷.

퍽이나 위로되는 말이다.

그래도 전신이나 다름없는 프리들 대왕과 싸우는데, 도움이 되는 변수를 얻고 며칠 앓아눕는 것은 싸게 먹히는 것일지도.

“전하.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두. 푹 쉬라고 하세요.”

약속된 전투는 다음 날이었다.

원래라면 코앞에 적이 있는데, 푹 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지금은 국가 간의 신성한 결투 직전이다.

기습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이걸 어기는 순간 그 국가는 영원히 신뢰받지 못하는 악의 국가로 전락한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일인데, 다른 국가가 이 국가에 무슨 짓을 해도 되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꼴이다.

그게 아니라도 모든 국가가 똘똘 뭉쳐 그 국가를 악으로 취급해 뜯어먹을 것이다.

땅땅땅!

양측 군대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각국의 외교관들과 각국의 기자들이 먼 곳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외교관들은 전쟁을 기록하기 위해. 기자들은 이 자체가 특종이기에 힘을 합쳤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레온 공왕이 시엘라 신성 마법을 받아 들인 걸 보면…….

-그래도. 병력의 질이 너무 차이 납니다.

-하긴. 스랑 제국조차 간단하게 물리쳐 버린 프리들 국왕이니까요.

다들 이것은 공정한 결투가 아니라 여겼다.

애초에 같은 조건에서 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지만, 병사의 질이 너무 차이 났다.

-레온 공왕도 스랑 제국에 이겼습니다. 수도까지 진격했죠.

-공왕은 자신의 군대와 측근들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리들 국왕처럼 회전에서 정면 승부를 한 것도 아니지요.

둘 모두 스랑 제국을 격파했지만,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신대륙에서 회전으로 스랑 제국의 병력을 여러번 격파한 적이 있는 레온 공왕이오.

-신대륙의 군대는 정식 군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귀족들이 율 대륙 밖의 군대를 2군으로 본다.

당연히 용병 비율도 많고 물자도 부족하니 당연 그럴 수밖에.

그와 달리 율 대륙 내에선 보급과 장비만큼은 최상급이다.

멀리 떨어진 식민지의 전쟁과 달리 본토의 안위가 달린 긴박함이 다르기에 전술과 전략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뭐. 지켜보면 알겠지요. 그보다 레온 공왕 위험한 것 아닙니까?

-하긴. 이제 역사에 사라진 시엘라를 눈으로 볼 줄이야.

-대규모로 진행된 것이라 효과가 미미할 것입니다. 내가 친한 사제들에게 물어보니 그렇다 하더군요.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처럼 사상자가 나온다면…….

-하긴. 몇천 명만 죽어도 레온 공왕의 정신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죠.

다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으니 봄의 여신은 리안에게 빚을 졌다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적합한 자에게 아기 여신상을 건네준 이가 바로 리안이었으니.

유일한 봄 사제의 남편이기도 한 리안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을 것이다.

* * *

이 소식은 로이센 진형에도 알려졌다.

“시엘라? 거참. 애송이라 그런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건가? 북부의 가장 세력이 크던 바이킹 왕국이 왜 몰락했는데.”

프리들 국왕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와 싸우면서 그런 혹까지 단다고?”

“소모전을 벌이면 필승일 것 같습니다.”

“알아. 그렇지만 그건 우리 왕국에게도 부담되는 일이지.”

로이센 왕국은 정예병을 가지고 있지만, 소국이었다.

병력을 충원하는 속도가 신센롬 제국에 비해 현저히 느렸다.

“그렇다고 전쟁을 오래 끌 수도 없고…….”

전쟁을 오래 지속하고 싶지 않아 무리해서 수도로 진격한 것이 바로 이 이유다.

만약 여기서 소모전을 벌였음에도 승부를 내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로이센 왕국의 패배다.

로이센 왕국도 사정이 딱히 좋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 애송이 공왕만 없어진다면, 앞으로 우릴 막을 사람도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이제 슬슬 다른 국가들도 우리의 전술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거야.”

“이해해도 막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처럼 훈련하지 못하니까요.”

이 또한 사실이다.

로이센 왕국은 육군 사관 학교가 매우 선진화 되어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가난한 대신 큰 귀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고만고만하다 보니 알력이 없었고. 이들의 자식들을 교육시켜 국가 자체를 하나의 군대 집단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군부가 곧 국가 행정 기관이 되었다.

이런 건 다른 국가가 따라 할 수도 없고. 비슷하게 하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뭐. 소모전이 아니더라도 많이 죽이면 되겠지.”

프리들 국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저들은 아군의 기병이 대규모로 충원된 사실을 모를 것이다.

* * *

리안은 몇몇 인원만 대동한 채 오토호스로 전장을 둘러보았다.

비행을 하면 한눈에 볼 수 있겠지만, 이것은 상호 간 허용되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바람 속성의 대전사로 정찰하는 것을 금지했다.

제대로 지략 대결을 하자는 이유였다.

“혹시. 기병이 합류했다는 첩보는 없나요?”

리안은 적의 배치를 보며 물었다.

미묘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전달된 사항이 없습니다.”

이 땅은 신센롬 제국의 땅이다.

대규모로 이동하는 적들이 목격되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황도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상하네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기만술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죠.”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기병이 충원되어도 상관없다.

* * *

다음 날이 되자 양측의 병력이 열심히 움직였다.

츠르~ 츠츠츠츠.

로이센 군은 제식 훈련을 중요시하는 만큼 군악대의 드럼 소리가 이곳저곳에 퍼졌다.

그들은 연대들이 칼같이 재정렬했다.

연대 안에서도 대대들 간의 간격이 혀를 두를 만큼 정밀하다.

“역시.”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리안은 확신했다.

기병이 대규모로 충원되었음을.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지.”

전장의 우측에는 강이 흐른다.

그곳에는 사람의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무성했다.

로이센 왕국은 그곳에 대규모로 기병을 숨겼을 것이다.

당연 리안도 그곳에 새로 편성된 레인저 부대를 숨겼다.

“우측으로 병력을 이동시키세요.”

로이센 군이 우측을 옅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기병이 들어올 자리를 만듦과 동시에 유인하는 역할도 했다.

뿌우우. 뿌뿌~

나팔 소리와 함께 지휘부에 깃발이 올라갔다.

지휘부의 통신 마법사들도 분주해졌다.

모든 부대에 통신 마법사가 있다면 좋겠지만, 통신 마법사의 공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통신 마법사의 숫자도 적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세 가지 방법으로 각 연대에 명령을 내리는 중이다.

“이렇게 쉽게? 내가 애송이 녀석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인가?”

리안이 오른쪽으로 보병을 몰자 프리들 국왕은 눈을 얇게 떴다.

“저놈도 저곳에 병력을 숨긴 것이로군.”

“적들 기병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병의 숫자야.”

신센롬 제국이 유일하게 로이센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기병이다.

헝그 왕국의 여왕이기도 한 테레지아 여제.

참고로 율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기병을 가진 것이 바로 헝그 왕국이다.

“그 말씀은…….”

“맞아. 보병도 숨겼단 말이지. 저놈들의 보병 숫자가 우리와 비슷해.”

신센롬 제국의 보병 숫자가 1.2배에서 1.5배가 많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충원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그럼에도 숫자가 비슷하다는 것은 보병을 숨겼다는 말이 된다.

“상관없다. 결국 승패는 보병으로 결정나게 되어 있으니.”

프리들 국왕도 적들이 갈대숲에 병력을 숨길 거란 것을 예상했다.

어차피 주력은 보병이다.

저들이 병력을 숨겨 주면 보병간의 전투는 더욱 수월해진다.

그동안 새로 충원된 기병이 갈대숲에 있는 적들을 붙잡아 주기만 하면 된다.

“레온 공왕. 뭘 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 이런 평원에 온 것 자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에 빠진 것이니.”

그동안 불리한 지형에서도 매번 승리해 온 로이센 왕국.

언덕이 없는 곳에서라면 순식간에 적들을 밀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이것은 지략 대결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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