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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206화 (206/253)
  • 206화

    ##206

    파리의 북쪽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강.

    강 너머로 아름다운 도시가 보이는 적당한 언덕.

    그곳으로 스랑 제국의 대신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자문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재상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병사의 안내를 받아 언덕의 끝에 닿으니.

    펄럭!

    그늘막과 의자들이 보인다.

    의자는 직각이 아니라 반쯤 비스듬히 눕혀져 있어 휴양지에서나 볼 법한 것.

    “어서들 오세요~”

    리안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대신들을 맞이했다.

    그 행태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일단 키는 리안이 쥐고 있으니 입 밖으로 표출하진 못했다.

    거기다가 리안의 옆에는 소드마스터인 해적왕이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는 우유를 마시고 있는 리안과 달리 위스키를 마셨다.

    “언덕까지 오르느라 힘드셨을 텐데. 앉아서 열부터 식히시죠.”

    대신은 땀을 삐질 흘리며.

    ‘그러게 왜 이딴 곳에서.’

    라고 생각했다.

    평소 운동 부족인지 갈증도 났다.

    “동맹끼리 서로 인상 찌푸리지 말죠. 헤헤.”

    “동맹이라니. 무슨 소리를…….”

    “빨리 여기서 협상을 마무리하고 동쪽을 신경 써야죠.”

    “아!”

    그제야 대신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리안이 신센롬 제국의 사위라는 것을.

    현재 동맹 상태는 이랬다.

    잉글슨 왕국, 로이센

    VS

    스랑 제국, 신센롬 제국, 루스 제국, 이벨 왕국

    참으로 웃기게도 리안은 잉글슨이 임명한 공왕인데, 개인적으로는 신센롬 제국의 사위이기도 했다.

    “설마… 저희 쪽으로…….”

    “그건 불가! 엄연히 잉글슨과 군사 동맹이 맺어져 있어서요.”

    잉글슨이 바보도 아니고 조약으로 묶여 있었다.

    물론 힘이 있다면 그 조약을 깨 버릴 수도 있겠지만, 새로 생긴 알바 공국의 신뢰도 깨져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제 개인은 조금 다르죠. 나는 알바 왕국의 공왕이지만, 신센롬 제국의 사위니까.”

    “아아아!!”

    대신은 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리안이 예전에 벌였던 짓이 있었다.

    동생을 결혼시키며 개인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적이.

    “우리 알바 왕국은 한동안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투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스랑 제국과 전쟁을 벌였으니 재정비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잉글슨에서도 참전을 강요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신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리안이 병력을 이끌고 로이센 왕국에 합세한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이 없었다.

    “네. 오랜 시간 전장에서 보냈으니 시간을 내어 약혼녀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지금 율 대륙 동부 전선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모두가 소국이라 생각했던 로이센 왕국은 선전하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그 위력에 경악을 했다.

    ‘조금 약했나.’

    리안이 슐 지역에서 날뛰고 관문까지 열어 줬는데, 신센롬 제국은 결국 대패하는 바람에 다시 물러나야만 했다.

    그것도 세 배의 병력을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해를 통해 보내온 이벨 왕국까지 격퇴했다.

    “예쁜 아기씨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보는 이들 모두 감탄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당연하다.

    그녀는 유일한 봄의 사제.

    봄의 신 이스터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다.

    그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으면 이 세상 모든 아이가 흉측하단 말이 될 것이다.

    “자. 그럼 느긋하게 어떻게 이 전쟁의 끝맺을지 이야기해 볼까요?”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재상은 리안의 옆자리에 앉아 차를 주문했다.

    동방에서 건너온 최상급 차였다.

    촤락!!

    그들의 앞에 커다란 지도가 걸렸다.

    스랑 제국의 북부 지도였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재상이었다.

    “이번 전쟁은 확실한 우리 스랑의 패배입니다. 노르망 공작령은 당연히 포기하겠습니다.”

    순순히 노르망 땅을 내어놓는 스랑측.

    “다만… 광산은 포기하기가 힘듭니다. 잉글슨과 오랫동안 싸운 터라 재정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스랑 제국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애초에 전쟁이 이렇게 크게 확전된 것도 다 리안의 동생 영지 근처의 마나 광산 때문이었다.

    이 근방에 마나 광산이 없었기에 개발만 한다면 엄청난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음…….”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 광산을 가지신다고 하시면 우리 제국은 수도가 위험에 빠져도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 이해합니다. 마나 광산을 개발하는 데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우리 알바 공국이 먹기에는 조금 버겁기도 하죠.”

    마나 광산은 다른 광산들과 달리 인프라 투자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리안의 알바 왕국은 이걸 개발할 기술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이구. 이 아저씨야. 그거 깡통이야.’

    리안은 웃음을 꾹꾹 참으며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 말은 배상금도 힘들다는 거겠죠?”

    “송구하오나 공왕 전하께서 신대륙 쪽도 엉망으로 만드시는 바람에 제국의 금화가 말랐습니다.”

    스랑 제국 측에선 리안이 철천지원수와도 같았다.

    북신대륙의 식민지도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본토의 전쟁에서까지 재를 뿌렸으니.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도 노르망 공작령은 스랑 제국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그럼 역시 땅으로 받아야겠네요.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어떻습니까?”

    “후… 알겠습니다. 대신 그곳 영주들의 지위는 인정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플랑도르 백국은 자취권이 보장된 변경백이라…….”

    “당연하죠. 그리고 플랑도르 백국은 당연히 자치권이 유지될 것입니다.”

    리안은 노르망 공작령의 남쪽 국경을 따라 옆으로 직선을 그은 것이다.

    해당 영토는 아미앵 공작령 절반과 플랑도르 백국(백작령) 전체.

    다시 말해 노르망 공작령만큼의 넓이였다.

    제국 입장에선 공작령 하나를 찾으려다가 공작령 하나를 더 잃은 샘이다.

    대신은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공왕 전하.’

    영주들은 그대로 영주를 유지하는 상태.

    거기다 플랑도르 백국은 자치권까지 그대로 유지하며, 소속만 알바 공국으로 바뀌는 것이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나면 스랑 제국은 되찾아 올 생각이다.

    ‘소속이 바뀐다 해서 충성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전하.’

    같은 제국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반란이 일어나곤 했다.

    반란을 진압해도 해당 가문을 축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귀족들은 서로 친인척으로 묶여 있기 때문.

    아마 리안도 골머리를 썩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정체성은 스랑제국이며, 다시 돌아오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역시 공왕전하께서는 시원시원하시군요.”

    “조금 더 먹겠다고 시간을 끌어 봐야 서로 피곤하기만 하죠.”

    리안은 웃으며 그대로 조약을 맺었다.

    둘 모두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즐거운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재상은 전쟁 이후의 협상이 기대되었다.

    그때는 스랑 제국의 모든 국력을 쏟아부어 영토를 수복할 테니.

    식민지의 땅이야 얼마든 넘겨줄 수 있지만, 율 대륙 본토의 땅은 가치가 달랐다.

    안보의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네. 그때까지 건강을 잘 챙기세요. 재상님.”

    그렇게 재상은 대신들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갔다.

    리안은 느긋하게 두 다리를 뻗었다.

    “정말 이렇게 협상을 해도 괜찮은 거야?!”

    “네. 아주 좋아요.”

    “소속이 알바 공국으로 넘어왔다 해도 그놈들이 쉽게 충성을 할 리가 없잖아.”

    “반란을 일으키면 더 좋죠. 뚝배기를 깨 버리면 되니.”

    해적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스랑 제국이 가만히 있겠느냐. 어떻게 해서든 개입할 거야. 특히나 동부의 전쟁이 끝나면 온전히 우리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인데…….”

    잉글슨도 소극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높았다.

    리안이 커도 너무 컸기에.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하겠지.

    어쩌면 적당히 소모전을 시키다가 나중에는 버릴지도 모른다.

    “스랑 제국이 안정될 일이 생길까요?”

    리안은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세상만사 걱정 없어 보이는 해맑은.

    그때.

    “공왕 전하!! 북쪽에서 정체불명의 군사들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아. 대충 올 때가 되었긴 하죠.”

    정체불명의 군대가 아니다.

    아마 스랑 제국은 그 군대를 돌려보내는 데도 애를 먹을 것이다.

    * * *

    잉글슨의 왕궁은 발칵 뒤집혔다.

    리안이 승리하는 것도 모자라 스랑 제국으로부터 땅까지 추가로 얻어 냈다는 소식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상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다만, 그걸로는 병력이 부족했을 텐데? 루스 제국에서도 스랑 측에 군대를 보냈다고 들었는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신대륙으로 떠나기 전부터 레온 백작령에서 꾸준히 병력을 모았다고 합니다.”

    “뭐?!”

    “그 병력으로 스랑 제국 절반의 병력을… 상대…….”

    “아니. 훈련도 안 된 병력으로? 그럼 루스 제국의 군대는?”

    “기병으로 식량 창고를… 그리고 앞질러 그 신규 군대와 함께 협공을… 이후 수도를 압박…….”

    등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잉글슨의 귀족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자신들과 싸울 때는 악마와도 같던 스랑 제국의 군대가 삼류 군대로 여겨질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물론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리안이 강해도 너무 강했던 것이다.

    “호외요~ 호외~~!! 레온 공왕께서 스랑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다만, 잉글슨의 백성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거… 참말인가??”

    “사진까지 찍혀 있잖여. 여기 이 사람은 스랑 제국의 재상이라는디.”

    “그보다 대단하긴 하네. 레온 대공 말이야.”

    “우리에게는 이런 왕이 필요한데…….”

    “누가 듣겠어!!”

    “내가 틀린 말 했나. 우리 국왕은 허구한 날 전쟁만 벌여 놓고. 수습은 안 되고.”

    전쟁의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이 짊어져야 했다.

    수도에 거주하는 자들은 부유한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의 입에서도 요즘 등골이 휜다는 말이 자주 들려왔다.

    “그래도 우리 잉글슨의 연방국이라 참말로 다행이긴 혀.”

    “그건 그렇지. 레온 공왕이 스랑 제국의 공왕이었으면 아찔해.”

    아일리 섬의 백성들과 달리 잉글슨의 백성들은 아일리 섬도 여전히 잉글슨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동안 사고를 친 국왕의 똥을 치워 준 리안의 승전 소식에 안도와 환호를 보냈다.

    * * *

    리안은 노르망 공작령의 수도 루앙에 입성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많이 봤지만, 승전 소식에 다들 활기찼다.

    와아아아아!!!

    리안이 왔단 소식에 백성들이 몰려나와 리안을 맞이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다.

    팔랑팔랑~!

    리안은 열심히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가끔 손 키스도 간간이 섞었다.

    2차 성징이 일어나서일까? 리안에게 환호하는 처녀들도 꽤 늘었다.

    귀여운 아이에서 이제 이성으로 보기 시작한 것.

    ‘인기는 곧 병력이다!’

    이제 몸이 좀 커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인기를 위해서 참았다.

    지도자의 이미지는 위기 시 백성들을 뭉치게 만든다.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이미지를 쌓아 놔야 한다.

    “거참. 인기가 대단하군.”

    “뭐해요!! 해적왕 할아부지도 손 좀 흔들어 줘요. 여기 영주가 될 사람인데.”

    “큼큼… 거참.”

    리안의 강요에 해적왕도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아이들은 험악한 표정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해적왕을 지지했다.

    영주는 백성을 보호해야 하고. 이들의 영주가 소드마스터가 될 것이니 반가울 수밖에.

    와아아아!!!

    환호는 리안과 해적왕이 궁전으로 들어갈 때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이거 비명 소리만 듣다가 환호를 듣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해적왕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모양.

    “난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환대를 받아도 되나 모르겠다.”

    “에이~ 해적왕 할아버지가 없었으면 수도까지 진군할 생각을 못 했죠.”

    “뭐… 그 영감, 좀 무섭긴 하더라.”

    의 이상한 깃발을 들고 다니는 대륙제일검.

    같은 소드 마스터인 해적왕조차도 버거워했다.

    “그러니까 오래 사세요. 우리 공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인데.”

    “거참.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해적왕 할아버지라 할 거냐.”

    “해적왕이고. 할아버지니까. 해적왕 할아버지죠.”

    “그럴 거면 차라리 해적 공왕 할아버지라 하든가. 왕은 네 녀석인데 왜 나에게 왕이라 하는 거냐. 더군다나 이제 주군이지 않느냐.”

    “뭐. 그렇긴 하죠.”

    “오글거리니까. 빨리하거라.”

    해적왕은 한쪽 무릎을 꿇었고 리안은 검을 뽑아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나중에 제대로 해 드릴게요.”

    “됐다. 이 나이 먹고 무슨. 부끄러우니 이걸로 퉁치자.”

    찰칵!

    샤로트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해적왕이 쑥스럽다고 이걸 사진으로 찍어서 서약식을 대체시키자고 했다.

    “그럼. 이제 일하셔야죠.”

    “아니. 무슨… 방금 서임을 받았는데.”

    “일하라!! 핫산!!”

    “핫산? 거프 핫산이라. 뭔가 어감이 달라붙긴 하는데… 그게 내게 하사하는 성이더냐?”

    졸지에 해적왕의 가문 이름이 핫산이 되어 버렸다.

    “네. 뭐… 그게 마음에 드신다면야…….”

    “그래. 왠지 모르게 무척 일이 하고 싶구나. 내가 뭘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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