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202
루스 제국의 등장으로 사령관 기후 백작은 좌절했다.
스랑 제국만으로도 벅찬데, 루스 제국이라니.
정확한 명칭은 키예프 루스 제국으로 율 대륙 가장 동쪽에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다.
물론 율 대륙 국가들은 루스 제국을 변두리 촌놈들로 여기지만, 그들의 인구와 영토 크기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네요.”
“음?! 무슨 말입니까? 전하.”
“오토호스를 탈 줄 아는 자들을 따로 빼 두세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이 대열을 맞춰 전진했다.
걱정하던 루스 제국의 병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이동 끝에 도착해 피로를 푸느라 공성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흐흐흐.”
리안은 적들이 공격하지 않는 동문에서 기병들과 대기했다.
쾅쾅쾅!!!
적들이 소형 마포로 도시의 성벽을 두들겼다.
요란한 소리에 비해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둥둥둥!
마포 공격 이후 보병을 전진시켰다.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리안의 등장으로 용기를 얻었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돌을 옮겼다.
와아아아~!!
공성이 시작되었다.
타다다당!!!
마총 소리가 요란하다.
그럼에도 이쪽은 마음대로 마총을 발사하지 못했다.
보급이 모자랐기 때문.
으아아악!!
그래도 나름 선방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가세해 적들에게 짱돌을 던졌다.
마총에 비하면 원시적일지 몰라도 돌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 충분한 무기다. 특히나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던진다면 더더욱.
“문을 열어라!!”
리안이 외쳤다.
끼리리릭!
“가자! 우리의 목표는 적이 아니라 식량고다.”
“와아아아!!!”
리안이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렸다.
그 뒤로 루앙의 기병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허리에 호리병을 몇 개씩 차고 있었다.
투트트트트!
리안은 오토호스를 타고 빠르게 적들을 우회해 전진을 향해 달렸다.
이미 적들의 진지는 하늘에서 확인을 해 둔 상태였다.
“저··· 적이다!!”
진영을 지키고 있던 적들이 놀라서 외쳤다.
미처 성을 빠져나와 기습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지라 곧장 대처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당장 동원 가능한 병력들은 지휘부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쪽은 나도 관심 없어.’
어차피 가 봐야 별 성과를 못 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다.
적진에는 공성에 참여하지 않은 기사들이 꽤 있을 테니.
반면 이쪽은 기사의 숫자가 적었다.
“이쪽으로!!!”
투트트트!!!
리안은 적진에서 살짝 비켜 나가며 돌격했다.
“으어어어?!!”
그곳에 있던 스랑의 병사들이 놀라서 도망갔다.
진형을 갖추지 않고 기병에 대항하는 것은 미친 짓.
“응······?!!”
그런데, 기병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쌩하니 지나가 버렸다.
전투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운이 나쁜 병사들만이 오토호스에 치여 변을 당했다.
“투척!!”
리안은 식량 창고에 불이 붙은 호리병을 던졌다.
화르르르~!!
잘 탔다. 아주 잘 탔다.
요 며칠 날씨가 건조한 것도 한몫했다.
펑펑펑!!!
뒤따라오던 기병들도 호리병을 던졌다.
“철수한다!!”
리안은 그대로 오토호스를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이탈했을 때 적진에서 부랴부랴 적 기병대가 추격을 시작했다.
“늦었어.”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리안이 이끄는 기병은 성문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끼리릭! 쿵.
성문이 닫히고 적 기병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저··· 전하!!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사령관이 급히 달려와 리안을 맞이했다.
“상황은 어떻게 되었죠?”
“적들이 당황해서 물러났습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자신들의 본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들이 급히 공성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리안이 상륙작전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리안이 기병으로 치고 나오자 상륙했던 군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은 거다.
상식적으로 수비하기도 힘든데, 기병들이 치고 나올 일은 없을 테니.
“이제 시간만 끌면 되네요.”
“겨우 식량 창고 하나만 불태웠을 뿐인데······.”
사령관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루스 놈들이 좀 많이 처먹거든요. 거지 근성들이 있어서.”
그렇다.
루스 제국은 계륵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냥 쪽수만 많았지, 군사 개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장교진부터가 썩어 빠졌다.
***
스랑 제국의 진형.
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적들이 우리 식량 창고를 불태울 동안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세 개 중 겨우 하나만 불탔습니다.”
아무리 리안이라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식량 창고를 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탁월했다.
“겨우 하나?!! 그게 말이라고 하나? 루스 제국군이 합류했다.”
“그들도 식량을 가져왔을 텐데······.”
“보급은 우리 제국에서 해 주기로 되어 있다. 병력도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보급품까지 가지고 올 여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루스 제국의 병력이 이곳까지 오는 데 중해의 바다를 거쳐 육로로 한참을 이동했어야 했다.
율 대륙 동쪽 끝에서 거의 서쪽인 이곳까지 오는 것은 여정이라 불러도 될 정도.
“그보다 적들이 루스 진형을 스쳐 지나갔는데, 저들은 멀뚱히 지켜만 봤습니다.”
사실 스랑 제국이 방심한 것도 그 이유였다.
본진에는 루스 제국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설마 적들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우리는 그대들이 알아서 할 줄 알았소. 괜히 우리가 나서 봐야 엉키기밖에 더 하겠소? 거기다 우린 이제 도착했다오.”
루스 제국의 사령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나무라지 말게. 총사.”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오시자마자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갠가?”
“보급선이 길어진 상태입니다. 곧 보급을 받을 날짜이긴 한데······.”
보급을 받을 때가 가까워진 상태라 창고들이 거의 빈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하나가 불타 버렸으니.
“뭐. 며칠만 버티면 된다는 소리군.”
황태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총사령관은 한숨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루스 제국의 군대가 있어 안심이었다.
“어차피. 그 레온인가 하는 놈이 오면 여기 루스 제국군이 나서 줄 걸세.”
꽤 많은 수가 상륙했다지만, 그래 봐야 루스 제국군의 절반 정도였다.
아무리 리안이 잘 싸운다고 소문이 났지만, 병력 차는 어찌 못할 것이다.
특히나 그들은 루스 제국군이 왔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을 테니 제대로 허를 찔릴 가능성이 높다.
“말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황태자 전하.”
“내가 고생을 좀 하긴 했지.”
황태자가 철없이 팔장을 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루스 제국군을 잘 먹이게. 그 이름만 무성한 레온 공왕이란 놈이 오면 상대를 해야 하니.”
“알겠사옵니다. 황태자 전하.”
일단 스랑 제국의 총사령관은 이가 갈렸지만,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니.
문제는······.
며칠 만에 일어났다.
“총사령관님!! 식량이 다 떨어져 갑니다.”
“아니. 왜? 보급이 올 때까진 충분할 텐데? 배급량을 조절했던 걸로 아는데······.”
“루스 제국군이 좀··· 많이 먹습니다.”
“많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우리 군에 비해 많게는 두 배를 먹습니다.”
“뭐?! 그놈들은 모두 돼지들인가?”
“그동안 강행군을 하느라 몸이 축이 났다며······.”
그것도 있지만, 루스 제국은 추운 지역이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는 버릇이 들어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여기 온 병사들 대부분은 강제로 징집된 병사들이 많았다. 거기다 가난한 자들이 많아 뼛속까지 거지 근성이 있었다.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먹는 것이라도 잘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빌어먹을. 일단 우리 병력의 배급이라도 줄인다.”
루스 제국의 배급을 줄였다간 또 무슨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분명 ‘보급은 그대들이 해 주기로 했잖소!!’라고 할 것이 뻔했다.
거기에 얄미온 황태자가 루스 제국의 편을 들겠지.
황자는 어지간히도 자신이 데려온 루스 제국을 데려온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
“공격 규모도 줄인다.”
생각보다 도시의 저항이 거센 것도 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 간헐적인 공격으로 긴장감만 유지시키며 말려 죽일 생각이다.
반면 도시 쪽에서는 다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이 이전보다 더 약해지다니······.”
특히 총사령관은 고민이 더 많아졌다.
대공세를 위해 쉬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총사.”
“정말 식량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며칠만 더 지나면 볼만해질 겁니다.”
리안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지금 저들이 기다리는 보급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보급 경로와 상륙에 성공한 군대의 이동하는 경로가 겹친다.
아마도 지금쯤 상륙군과 보급 부대가 맞닥뜨렸을 거다.
운 좋게 피해 간다 해도 제시간에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네. 저들의 사기가 빠르게 무너질 겁니다. 특히 루스 제국의 병사들은 먹지 못하면 전투도 안 합니다.”
실제로 며칠이 더 지나자 루스 제국의 병력은 식량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스랑 제국의 지휘부는 혼란에 휩싸였다.
“총사령관님. 보급은 도대체 언제······.”
“난들 아나.”
총사령관의 얼굴이 완전히 죽상이 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의 군대에 제대로 돌아가는 게 뭐야?!’
잉글슨과의 전쟁에서 여기까지 밀어붙인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보급은 항상 늦었다.
문제는 지금처럼만큼 늦은 적이 없다는 것인데······.
“총사령관님!! 전령입니다.”
그때 군막을 걷고 몰골이 말이 아닌 병사가 들어왔다.
“그래. 보급 부대에서 보낸 것인가?”
“그렇습니다. 저희는 습격을 당했습니다. 아무래도 현지 조달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대규모 군대가 나타나서···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부대장님의 명령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총사령관의 인상은 완전히 구겨졌다.
“깃발은?! 레온 후작의 깃발은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해적왕으로 추측되는 자들과 아일리 섬 가문들의 깃발을 보았습니다.”
총사령관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상륙에 성공한 레온 공왕의 군대가 이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향했다.
‘도대체 왜???’
잠시 고민을 하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는가? 총사.”
황태자가 그의 행동에 궁금증을 느꼈다.
“황도. 우리 제국의 황도를 노리는 것입니다.”
“뭐?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지금 우리의 황도가 비어 있지 않습니까!!”
스랑 제국의 수도 파리에는 근위병 일부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은 훌륭한 전투력을 가진 자들이지만, 만 단위의 병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나 파리는 사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수비에 매우 취약한 곳이다.
“거참··· 레온 공작. 생각보다 더 맹랑한 놈이군.”
황태자가 웃으며 말했다.
총사령관은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상대는 다음 황제가 될 황태자다.
“루스 제국 총사령관님.”
“네. 황태자 전하.”
“아무래도 우리가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자의 군대는 우리가 상대하기로 되어 있으니.”
루스 제국의 총사령관은 무거운 엉덩이를 자리에서 땠다.
그는 즉시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웃긴 것은.
“식량을 싹 긁어 갔다고?!!”
“그렇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선 현지 조달을 하라고 하시며······.”
스랑 제국의 총사령관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간단 말인가.
와아아아!!!
반대로 도시에선 루스 제국이 물러나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거의 축제 분위기다.
“공왕 전하. 정말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반격할 시간이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격이라니. 분명 상륙 군대는 스랑 제국의 수도인 파리로 간다고 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야간 기습을 할 겁니다. 준비해 주세요.”
“네?! 기습이라니······.”
“저들은 식량을 구한다고 지쳤을 겁니다. 병력들을 쪼개서 인근 도시나 마을을 턴다고 정신이 없을 거고요.”
다시 말해 남은 병력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굶고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상륙군은 괜찮은 겁니까? 루스 제국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떠난 것 같은 데······.”
“푸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리안.
어리둥절한 총사령관.
“아아. 미안합니다. 너무 웃겨서.”
눈물을 닦으며 리안이 사과했다.
< 20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