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200
라고 말했다.
공성보다 위험한 것이 상륙.
병력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스랑은 제국이다.
아일리 섬에 해적선들이 집결하는 순간부터 그에 대한 대책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17곳의 예상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수의 병력으로도 적들을 쉽게 막아 낼 수 있는 위치였다.
막지 못하더라도 적들이 진군하는 경로들이 자연 요새라 저지할 기회도 많았다.
이리저리 추려서 가장 유력한 상륙지에 대한 세 곳은 이미 해안선을 따라 간단한 방어 진지들도 만들어졌다.
이것은 절대 어렵지 않았다.
제국이 감당해야 할 것은 주민의 원망뿐.
무한으로 난발할 수는 없지만 주민들을 동원하면 전투력 손실 없이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주군!!!”
신컨의 재가 리안을 보고 급히 달려왔다.
“바쁜데 시간을 뺏었군.”
“오신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리안은 브루타뉴 공국의 항구에서 여기까지 이동해 왔다.
웃긴 것은 도시에 들러 그곳 귀족들에게 대접도 받았다.
그러니 리안이 이곳에 온다는 소문은 이미 한참 전에 도착했다.
“아니. 그냥 갈 거야.”
“그럼··· 왜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점검이나 할 겸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했지.”
리안이 왔음에도 구석에서 지도를 보며 뭔가 조물딱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어때?”
“제가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리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샤로트가 모든 관심을 끄고 열중하는 중이었다.
조금은 섭섭했지만, 여기서는 리안이 직접 지휘하더라도 샤로트만큼 성과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명령이라도 저 아이의 뜻에 따라 줬으면 좋겠군.”
“연대장들은 제 말보다는 샤로트 경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선장과 세바스 정도를 제외하고 고잉미샤호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이 샤로트였다.
눈앞에 죽을 확률이 99%라 할지라도 1%를 위해 달릴 것이다.
이미 리안에 의해 그렇게 단련이 되어 왔고.
샤로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리안의 뜻이라 믿고 따를 것이다.
“미안하군.”
“저는 총사령관이 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축구 선수가 뛰어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장 부선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피지컬과 감각으로 지휘관으로서 어느 정도 성능을 낼 수 있겠지만, 이황자와 같은 지휘에 특화된 인물과 병력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열 번 싸우면 열 번 다 패배할 것이다. 천 번은 싸워야 한 번 이길 수 있을지도.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교장.”
“네?!”
“자네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공국 최고의 교관이네.”
“아닙니다! 저를 이 자리에 발탁해 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군. 저는 주군이 아니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자네 실력이라면 누구라도 찾아 줬을 거야.”
스토리상으로는 실제로 찾는 사람이 있었다. 활약도 했고.
특히나 로이센 왕국이 사관 학교를 체계화해서 재미를 보자 각국에서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실력 있는 교관들의 몸값이 훌쩍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컨의 재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잃어버린 팔과 다리에 인공 신체가 달려 있었다.
아직은 매우 불안정했다.
“그럼 맡기고 가네. 샤로트가 미친 짓을 하면 병사들을 다독여 주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샤로트보다 신컨의 재가 훨씬 믿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훈련법과 교본 그리고 교리가 그에게서 나온 것이니.
그렇기에 샤로트가 돌발행동을 한다면 매우 불안해할 것이다.
***
잉글슨과 스랑 제국 사이의 좁은 해협.
해적 깃발을 단 배들이 모여 있었다.
쾅!!콰아아앙!!!
아주 작은 소리.
먼 곳에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영감. 진짜 이대로 괜찮은 거야? 이거 떼죽음 당하는 거 아니야?”
해적왕의 측근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럴 것이 많은 수의 해적들도 이번 상륙에 동원되었다.
그들은 배가 아닌 육지에서 총칼을 들고 싸울 것이다.
“내가 공작이 된단 소리에 좋아할 땐 언제고.”
“그래도······.”
“잉글슨은 해양 대국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감춰 줄 거다.”
해적왕의 표정은 평온했다.
지금 주변의 바다에서는 간헐적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를 벌이는 것은 잉글슨의 해군들.
최대한 해적선들의 행방을 감추기 위해 접근하는 모든 스랑 배들을 무리해서 교전 중이었다.
“그보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요.”
해적왕의 측근 중 다른 이가 다리를 경박스럽게 떨며 물었다.
“쵸지. 기다려. 그 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니까.”
“하··· 뭐가 대단한지 모르겠소다아아아아?!!! 어이쿠!!!”
다리를 떨던 측근이 갑자기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대단한 반사 신경이었지만.
휙~!
주먹에 맞은 것은 바닷물.
그 바닷물이 수증기로 증발했다.
“어어어?”
그 수증기 사이로 한 소년이 뿅하고 나타났다.
마치 마법 소녀 같다고 해야 할까?
“두두두두두등장!!”
리안이 해적왕의 기함인 전열함의 갑판에 떨어졌다.
전열함의 높이는 일반 함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설마. 네 녀석, 인어였나?”
“무슨 소리세요. 해적왕 할아부지.”
“다 봤다. 네 다리가 지느러미였던 걸.”
역시 소드마스터라는 것일까?
“원래. 인어였던 건 아니고. 그녀들과 약간의 인연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대기하고 있어라 했던 건가?”
해적왕은 리안이 고잉미샤호를 타고 올 줄 알았다.
참고로 고잉미샤호는 브루타뉴 왕국의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전투원은 겨우 3명뿐이었다.
“뭐. 브루타뉴에서 도버 해협까진 코앞이니까.”
여왕이 힘을 빌리지도 않았다.
마치 동해의 물개처럼 여기까지 헤엄을 쳐 온 것이다.
“다리가 좀 뻐근하긴 하네요.”
“그래서 어디로 상륙할 거야?”
해적왕의 말에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정면. 이대로 쭉 가요.”
“첩보로는 완벽하게 대비가 되어 있다고··· 그곳 장군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상륙하는 순간 벌집이 될 거다.”
“벌집이 되면 어때요. 배 20척만 추려 주세요. 좀 낡은 것들로만.”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은근히 기대하는 해적왕.
“무인선으로 해안에 꼬라박고 시작하면 돼요.”
그 말에 해적왕이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40년 전쯤 그런 걸 시도했다가 전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다. 그 이후 상륙전에서 그런 걸 하는 놈들은 미친놈이라 불린다지. 다 실패했고.”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행하는 자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상륙을 대비하고 대처한 곳에 함선들을 꼴아 밖은 장군들도 이미 있었다. 결과는?
최초에는 3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거의 전멸했다. 겨우 2천 명이 지키는 곳에서 말이다.
지금 리안이 상륙하고자 하는 병력은 겨우 1만 2천가량. 예상되는 수비병들은 6천 명.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한 전략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는 거죠. 훗!”
리안은 남의 배(해적 왕의 기함)의 난간에 발을 대충 올리고 멋있는 척을 했다.
물론 그 누구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몇 명 정도는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륙에 대한 부담으로 정신이 없었다.
촤락.
“여기. 여기. 여기이이이!”
리안은 가방에서 상륙할 곳의 세부 지도를 꺼내 손가락을 집었다.
거의 주전장에서 벗어나는 지점들.
“아니. 이런 곳에 배를 버리자고?”
리안은 희생할 스무 척이 필요하다 했다.
말이 스무 척이지 아무리 낡은 배라 없어서 못 구 할 정도로 귀했다.
돈이 있어도 부유선 한 척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란 말이 있을 정도.
“꼬라박아 보면 알 거예요.”
“그래. 네 녀석이 주군이니 이번만은 따라 주겠다.”
평소 리안에게 허허실실이던 해적왕도 표정을 조금 굳혔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해적왕을 믿고 상륙에 지원한 해적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
잔잔한 바다. 맑은 하늘.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
이런 날에 상륙을 할 미친 놈들은 없다.
그럼에도 상륙 지점을 맡은 지휘관은 방심하지 않았다.
“장군님. 오늘 같은 날 설마 상륙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레온 공왕의 병력이 라드 백작령에 집결 중이라던데.”
“군인은 생각보다 명령이 우선이다. 최선을 다해 이곳을 방어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미 레온 백작이 브루타뉴 공국에서 목격되었다고 하는데······.”
부관의 말에 장군이 고개를 저었다.
“연막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병력이 잉글슨에서 온 병력일까?”
“에이~ 백작가에서 병력을 모집해 봤자 몇백이 전부일 건데. 몇 개의 연대가 설마 백작가에서 모은 병력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군인을 죽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은 방심이다. 그리고 군인이 죽을 때 나라도 죽는다.”
장군이 목에 건 망원 마도구를 꺼내 바다를 계속 관찰했다.
부관은 그런 장군이 조금은 야속했다.
아무리 인근 도시의 시민들을 강제로 노역에 투입했다지만, 병사들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은 점령지였고. 그걸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점령한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병사들의 정신이 점점 갉아 먹히고 있었다.
“음?!”
장군의 눈에 들어오는 배들.
“어어어?!”
부관도 장군을 따라 바다를 봤는데, 스무 척에 가까운 배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육군이지만 배들에 관해서도 아주 기초 지식은 있었다.
“저 정도 규모라면 두 개 연대는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 한 말이 있어 조금은 낱 뜨거웠지만, 적이 발견된 이상 장군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열심히 보좌해도 모자랄 판에 장군님의 시야를 흐렸습니다.”
“아니야. 자네 나이 때는 그럴 만하지. 그래도 자네는 내가 어렸을 때보단 나아. 그때 나는 망둥이처럼 미쳐서 날뛰었으니. 그리고 어떤 부분에선 평생 전장에서 보낸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날 때도 있고.”
장군은 지도와 바다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기 보이는 스무 척이 싣고 있는 병력이 대략 두 개 연대라고? 간을 보는 것치고는 과하군. 그보다 방향이 조금 이상한데? 나는 내륙에서만 싸워 왔기에 저놈들이 왜 저리 행동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
마도구를 이용해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다. 아직 의논할 시간이 많았다.
당연히 손 놓고 의논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전 부대에 전투 명령이 내려진 뒤였다.
“여기와 여기 배의 아래 축을 보면 먼 거리지만, 저들은 전속으로 접근 중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해군 출신은 역시 다르군.”
“다시 말해 지금 오고 있는 배들은 방향을 전환하지 못합니다.”
“오··· 그래서 의도가 뭐로 보이나?”
부관은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 해안 마포의 십자 포격의 중심에 밀어 넣을 것으로 보입니다.”
십자 포화는 양 사이드에 마포를 놓아 그 포탄들이 ‘x’ 자로 교차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면에서 돌격해 온다면 적들에게 절망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다만.
“40년쯤에 이미 실패한 전술입니다.”
“음? 내가 적들이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은데?”
“해군 쪽에선 최악의 전술로 불립니다.”
이론은 그럴싸했다.
상륙에 가장 부담되는 것이 마포의 십자 포화이니 그것만 막으면 다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치명적인 두 가지의 맹점이 있었다.
“마포들의 일제 사격을 부유선이 버틸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엔 항구에서 쓰는 해안포들이 설치된 상태입니다.”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단 말이었다.
만약 이 해안포가 배에서 운용이 가능하다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참으로 평등한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렇게 역사가 흘러가고.
“하긴. 내 몸뚱이를 넣고 쏴도 될 정도의 큰 포탄을 쏟아 내긴 하지.”
그 말은 적들이 십자 포격의 중심지에 배를 아무리 꼬라박아도 포탄을 그리 오래 막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포대가 아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40년 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적 상륙을 막아 냈던 수비군의 장군은 당황하지 않고.
“포각을 조여서 십자 포화의 중심점을 뒤로 당겼습니다.”
다시 말해 십자 포화의 중심점에 대한 주도권은 공격 측이 아니라 방어 측에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비하는 측에선 부담이 크겠지만, 십자 포화점이 사라지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결과적으론 심리적으로 적들이 더 타격을 받았었고.
“그렇군. 설치하는 걸 직접 봐서 알고 있다네.”
장군은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챙기는 성격이었다.
어쩌면 부관이 없었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40년 전의 그 장군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장군님. 적들이 상륙을 시작합니다!!”
사실 방어하는 입장에서 지휘관은 그다지 할 것이 없다.
조금 진행된 이후에야 변수에 대한 대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 그가 배치된 이유는 그 꼼꼼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수에 대한 대처만큼이나 사전의 준비가 중요한 것이 수비이니.
누가 봐도 그의 대처는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