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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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슨 북신대륙 총독부가 있는 항구.
날렵하게 생긴 배 한 척이 들어왔다.
깃발은 잉글슨 국왕을 상징하는 표식이 달려 있다.
진짜로 잉글슨의 국왕이 탄 것이 아니라 리본 마크가 달린 것이 국왕의 뜻을 전달하는 자가 탔다는 뜻이었다.
“우에에에엑!!!”
배가 멈추자 신분이 높아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가 뛰어내리듯 배에서 내리더니 속을 비워 냈다.
“공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배의 선장이 뒤따라 내린 다음 부축했다.
“아니. 바다가 왜 그 모양이오?!”
“해류가 바뀌었습니다. 정해진 항로가 아니면 매우 거칠게······.”
잉글슨 본토에 있는 많은 상인들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찾지 못했다.
오직 한 항로만이 편안하고 빠른 항해가 가능했다.
“아니. 그러면 그 항로로 갈 것이지.”
“스랑의 영역을 지나야 합니다.”
“아아······.”
지금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전투 능력이 거의 전무했다.
물론 웬만한 배들은 길고 날렵한 이 배를 따라잡지 못한다.
잉글슨에서 가장 빠른 배이니.
“하··· 정말이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이 암울하게 보이는 것 같다.
리안을 소환시키고 자신이 새로운 총사령관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가시죠.”
그들 뒤로 호위기사들이 따라붙었다.
펄럭!
그중 하나가 깃발을 높게 들었다.
왕가의 문장과 그 아래 빨간 리본이 수놓인.
“그래요. 그 미친 꼬마 놈 면상이나 봐야겠네. 식민지 함대가 돌아올 때까지만 어찌 버티기만 하라 했더니······.”
“고르작 공작님!!!”
그때 항구에서 어슬렁거리던.
“해리 78,900세 공작!”
두 사람은 성큼성큼 걸어와 만났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왜 왔겠소.”
“관광을 오신 건가?”
해리 공작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꺄르르르~!
그때 항구 한쪽으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이 보인다.
이상하다. 평화로워도 너무도 평화로웠다.
지나다니는 주민들의 표정에 불안감이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토의 절반 이상이 밀렸다는데··· 너무도 태평하지 않은가.
“총사령관인 레온 후작에게 데려다주겠나?”
“그건 좀······.”
해리 78,900세의 얼굴이 질려 버렸다.
***
리안은 양피지로 된 협정서 두루마리를 공중으로 휘리릭 돌리며 진형으로 돌아왔다.
아군의 철수 준비는 이미 거의 마친 상태.
그런데, 저 멀리서 왕실의 깃발을 펄럭이며 달려오는 기병들이 보였다.
“오. 타이밍.”
리안은 왜 저 서신이 온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스랑 제국으로 불려간 이황자의 활약으로 이곳 신대륙과 장거리 통신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총사령관이 출발한 뒤에 이곳의 승전보가 갔을 것이다.
“레온 후작!!!”
오토호스에서 내린 해리 78,900세 공작이 울상을 지은 채 손을 흔들었다.
아마 안내차 온 듯싶다.
“오오! 각하. 정말이지 애민 정신이 강하신 분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진정한 귀족이십니다.”
“무··· 무슨 말인가!!”
“중상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군종 사제들의 손이 모자라요.”
해리 공작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
뭔가 깨달은 해리 공작.
그는 주변에서 나타난 리안의 부하들에게 양팔이 붙잡혔다.
“아니야. 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봐주게······!!”
“인어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싱글생글 웃는 리안에게 고르작 공작이 다가왔다.
“레온··· 후작.”
그는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자신은 그 험한 바다를 건너 여기에 왜 온 것일까?
“전하께서 보내서 오신 거군요.”
“그렇다네. 그대를 북신대륙 총사령관 직위에서 해임하는 바이며 본섬으로 돌아오라는······.”
“캬. 역시 전하는 배려심이 깊군요. 솔직히 조금 지쳤는데.”
‘뒤처리를 해 줄 사람을 보내 주었군.’ 이란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이제 뒤처리할 것이 산더미다.
서류와의 씨름이랄까.
솔직히 리안에게 이 서류 작업은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이걸 하고 싶어 하는 귀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고르작 공작은 한숨을 쉬었다.
“대승을 축하하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리안이 인장과 함께 방금 맺은 따끈따끈한 협정서도 함께 건넨다.
“이게 뭔가?”
“스랑 제국과 북신대륙에서 1년간 불가침 조약을 맺었거든요. 그리고 영토 조정도 했고.”
그 말에 공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협정서를 열어 봤다.
“음? 아니··· 대승을 거뒀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자신이 협상 자리에 있었다면 이 두 배는 가져왔을 것이다.
“아. 그건······.”
***
스랑 제국은 빠르게 재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패배의 규모에 비해 영토를 적게 빼앗겨서 안심하려던 찰라.
“총독!!! 적들이 몰려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협정을 맺은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아즈 제국의 식인종 놈들이······.”
“뭐?!”
그 순간 총독은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아즈 제국의 국경 지역 영토도 잉글슨이 가져가길래 당연히 그곳은 아즈 제국이 동맹으로 참전한 보상으로 가져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협정을 맺은 것은 잉글슨이지 아즈 제국이 아니었다.
“미친놈들!!”
사실 잉글슨이 물러났기에 아즈 제국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즈 제국쪽 영역이 대군을 동원하기 좋지 않은 지역이라 진출하지 않았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나왔다면······.
“저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
이미 오래전 매운맛을 제대로 보고 물러났기에 지금의 국경선이 생긴 것이다.
“도대체 왜······.”
당연히 총독은 인어 여왕에 대해 전혀 몰랐다.
지금 아즈 제국은 벌집을 건드린 듯 들고일어났다.
희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
새로운 총사령관에게 모든 것을 인계한 리안.
부하들을 데리고 해안으로 나왔다.
츄아아아~!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고잉미샤호였다.
추으으~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우아하게 닿았다.
나무판자가 내려오고 리안은 천천히 위로 올랐다.
“약속 시간을 잘 지켰구나 흐리아.”
“네. 조마조마했어요.”
이곳은 스랑 제국의 영역.
고잉미샤호는 전투원이 모두 빠진 상태였기에 적과 마주쳐도 싸울 수가 없었다.
끼릭끼릭.
각종 장비와 인원들이 고잉미샤호로 올랐다.
그중 새로운 백 명가량의 인원들도 보인다.
척척척!
그들은 절도 있게 줄을 맞춰 배에 올랐다.
죽지 않아~ 죽지 않아~
다만,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간디바와 카이토 용병단이었다.
‘아주 죽이 맞네.’
카이토 용병단은 북신대륙 잉글슨 영역에서 활동하던 용병대로 저들도 역사대로 두면 특이한 이명이 붙었다.
불사의 용병대.
진짜로 죽지 않는 것은 아니고 극악의 전투에서도 생존률이 이상하게 높아서였다.
그렇다고 전투에서 무조건 도주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단원들 하나하나가 살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서일 것이다.
“부선장 아저씨.”
“어··· 그래.”
못생긴이란 단어가 붙지 않아서인지 부선장이 호의적으로 대답했다.
“저들을 브루타뉴에 내려 주세요.”
“음?! 알겠다. 그런데··· 왜 나에게······?”
“전 이 배가 아니라 따로 가려구요. 중간에 들를 데가 있어서. 이번에도 런던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라도 할까요?”
“아니. 아니야. 젠장.”
아직도 그때 내기 때 리안이 무슨 수로 먼저 도착했는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남자가 배포가 이리 작아서야. 에잉~”
그리 말하고는 고잉미샤호의 꽁무니 쪽으로 걸어가더니 눈을 감고 바다로 손을 뻗었다.
선장이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자 다들 이상하게 쳐다봤다.
워낙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선장이라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
첨벙첨벙.
그냥 뻘짓인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없자 관심이 뜸해질 때쯤 바다에서 무언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뭐··· 뭐야?!”
한 무리의 인어들.
그걸 본 해리 공작은 놀라서 갑판 아래로 도망가 버렸다.
“뭣하면 제가 데려다줄 수도 있었는데.”
인어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지만.
“고잉미샤호와 함께 움직여 주세요. 군종 사제는 언제나 귀해서.”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인어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의 앞에서 왕이라 부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둘러서 아버지라 부른 것이다.
어떤 인어들은 인어 여왕에게 어머니라 부르니 리안이 아버지인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럼. 부선장 아저씨. 배를 부탁해요.”
“음? 어?”
리안은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저··· 저··· 녀석 수영을 못 할 텐데.”
기겁을 한 부선장이 급히 난간을 붙잡고 지켜봤다.
첨벙~
우아하게 인어들의 무리로 헤엄치는 리안.
마치 물개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 남자 인어였다.
“아니··· 뭔!!”
부선장은 물 속성이라 햇볕에 반사된 수면 아래도 적당히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선장은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 한 인물이었다.
“와아아아~!! 왕이시다~~”
인어들이 먹이를 본 금붕어처럼 리안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한 명만 올 줄 알았더니.”
“왕께서 이 근방이 있으신데 어찌 다른 일을 하고 있겠사와요~”
인어 하나가 교태를 부리며 리안의 어깨를 살짝 쳤다.
“이 녀언아! 어디서 꼬리를 쳐!! 정신 못 차리네.”
그 인어는 다른 인어에게 머리끄덩이가 잡혀 수면 아래로 보글보글 내려갔다.
“어휴. 아직 어린 녀석이라 개념이 없으니 용서해 주세요. 왕이시여.”
“아니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저를 누가 데려다줄 건가요?”
검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 검은 눈동자.
참고로 인어도 다양한 피부색이 있었다.
어떤 인어는 푸른색을 띠기도 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어들의 왕이시여.”
***
리안은 여왕을 찍고 아즈 제국의 남쪽에 위치한 코파나 영지에 들렀다.
제대로 된 특산물도 없는 지역임에도 배들로 북적였다.
“으쌰~!”
리안은 해안으로 올랐고.
“잘 가요~~!”
인어 하나가 리안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리안도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누구냐?!! ···가 아니라. 여··· 영주님?”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리안을 알아봤다.
이전에 혼자 갑자기 나타난 터라 병사들에게 몽타주가 배포된 것이다.
“오오. 일 잘 하네.”
리안이 웃으며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손이 닿지 않아 등을 두들겨 줬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병사는 군기가 바짝 들어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그럼 고생하세요.”
리안은 성큼성큼 걸어가 관저로 들어갔다.
“어어어??? 저··· 분은 영주님 아니야?”
“맞아. 딱 저렇게 생겼다고 하던데······.”
“영주 대리께 알려야······.”
“이미 집무실로 가시는데?”
관저의 직원들도 대부분 리안을 알아보고는 어정쩡하게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다만, 리안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물들도 꽤 많았다.
지금 관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태였기에.
끼이익.
리안이 안으로 들어가자 대설 남작이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
“커피는 여기 두고 가.”
그는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여전히 서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만요. 커피 타 올게요.”
비서의 목소리가 아니라 변성기의 소년의 목소리에 놀란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어어···!! 영주님!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리안이 물어보자 남작은 급히 일어나 작대기 하나를 들고 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다.
“서쪽은 여기까지. 동쪽은 여기까지 진출한 상황입니다. 생각보다 적의 저항이 너무 없어서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걱정 마세요. 아즈 제국은 우릴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그보다 생각보다 더디네요.”
예상보다 북쪽으로 더 올라가지 못했다.
“그게··· 남신대륙 쪽에 최근까지 일이 조금 있어서 용병이 잘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무리가 되었는지 지금은 용병들의 충원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것도 자신이 뿌린 나비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벨 왕국의 므요 공주의 시녀가 선방을 한 모양.
“좋아요. 지금 전장으로 투입되지 않고 이곳 항구에 모여 있는 용병이 얼마나 되죠?”
“대략 2천 정도가 됩니다. 도시가 좁아 그들을 수용하지 못해 도시 밖에 임시 막사에서······.”
“오. 꽤 되네요. 그들에게 출진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