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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90화 (190/253)
  • < 190화 >

    ##190

    3여단장은 매우 흥분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대승은 일생일대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예술.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합하!”

    그의 눈가는 촉촉했으며 존경심이 뚝뚝 흘러넘쳤다.

    처음 총독부에서 리안을 봤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마음.

    더 이상 리안은 그저 어린놈이 아니었다.

    “영광이랄 것까지야. 그보다 피해가 생각보다 크네요.”

    리안이 전장을 쭈욱 살피며 말했다.

    아무리 리안이라 해도 피해 없이 전쟁을 치를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군이 죽었다.

    특히나 기병의 피해가 매우 컸다.

    “피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교환비로 따지면 터무니없이 적기는 했지만.

    “장군은 병사를 장기 말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아아··· 그런 뜻이 아니라.”

    “이기는 것만큼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죽은 병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조언 감사합니다. 합하.”

    리안은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전쟁을 복기했다.

    역시나 게임으로 할 때와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게임보다 편한 부분도 나름 있었다.

    기병 한 명, 한 명이 유닛이 아니라 생각을 가진 인간이기에 나름 유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컨트롤이 안 되어서 말도 안 되는 뻘짓을 하는 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광기에 잡아먹혀 돌발 행동을 녀석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게임에 비해서는 적었다.

    “합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잔당을 소탕하실 생각은······.”

    생각에 빠진 리안에게 여단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전공을 확대하고 싶은 거겠지.

    가장 활약한 것은 리안이지만, 부대 자체는 여단장이니까 말이다.

    “비효율적인 짓이에요. 남자라면 크게 먹어야죠.”

    도주한 적들을 하나하나 쫓으면 이쪽도 부대가 난장판이 된다.

    그걸 다시 불러 모아 재정비하는 것도 일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도를 가져오세요.”

    리안의 말에 행정병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들은 커다란 탁자와 지도를 낑낑거리며 가져와 리안의 앞에 대령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리안은 계속해서 손으로 짚어 나갔다.

    “음······?”

    “도주한 적들이 모일 만한 장소예요. 각개격파하면서 이동하세요.”

    “죄··· 죄송하지만. 다··· 다시.”

    수십 곳을 짚어 버리니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외우지 못할 것이다.

    리안도 그걸 알기에 행정병에게 좌표를 불러 줬다.

    탁탁탁!

    그 좌표를 따라 다른 행정병이 작은 깃발들을 올려놓았다.

    그걸 지켜보던 여단장은 입이 점점 벌어졌다.

    “여··· 여긴.”

    “네. 대충 적을 소탕하면서 이동하다 보면.”

    “스랑 제국의 해··· 해안 요새······.”

    스랑 제국은 잉글슨의 몇 배나 되는 땅을 먹었기에 바다가 아닌 내륙에 식민지 수도를 건설했다.

    그런데, 가장 핵심인 곳은 수도가 아니라 해안 요새라 볼 수 있었다.

    “이 지점에 도착해서 진지를 구축하게 지시를 기다리세요.”

    “하지만 이곳은 스랑 제국 깊은 곳이라··· 수도도 지나가야 하고······.”

    “저항은 없을 겁니다. 그저 패잔병들이 모이지 않게 계속 견제를 하세요.”

    믿기진 않지만 리안이 그렇다고 하니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아까 전 보여 줬던 기병 돌격은 기병의 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동안 기병을 홀대했던 그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기병이야말로 전쟁의 꽃이다.’

    기병의 광신자로.

    “그럼. 잘하시리라 믿고 가겠습니다.”

    “어··· 어딜··· 말씀이십니까?”

    “아직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지요.”

    “식사라도······.”

    “만찬은 지옥에서.”

    그리 말하고는 오토호스에 올라가 육포를 씹는 리안.

    밥 먹을 시간도 아끼려는 것이다.

    슈욱!

    리안이 오토호스에 오르자 세이나와 인어 아가씨도 오토호스에 올랐다.

    투트트트트!!!

    리안이 전장을 떠나자 기병들이 리안을 향해 존경을 담아 소리쳤다.

    끼요오오오~~!!

    ***

    잉글슨의 5여단장은 마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글러 먹었어. 다 내 잘못이야.”

    엄밀히 말하자면 총사령관과 총독부의 명령을 충실히 실행했을 뿐이었다.

    후퇴만 거듭하다 결국에는 야금야금 병력을 잃어갔다.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상황에서 응수를 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철컥!

    이내 결심이 섰는지 5여단장은 총구를 관자놀이에 가져갔다.

    “아아. 쥬 신이시여···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

    참고로 태양신 쥬는 자살을 허용하지 않았다.

    성경에 따르면 자살한 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다 고통 속에서 소멸한다고 한다.

    지옥보다 더한 고독 속에서 후회로 사라져갈 것이라 경고했다.

    “그걸로 죽어 간 병사들에게 사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군막으로 들어온 소년.

    “너··· 너는?!!”

    리안을 알아본 5여단장.

    그는 자신의 머리에 겨눈 마권총을 리안을 향해 겨눴다.

    이렇게 일을 만든 장본인.

    “쥬 신의 마지막 안배인가?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까? 5여단장.”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너와 총독부를 믿은 잘못밖에 없다!”

    리안은 한숨을 쉬고는 지도 앞에 섰다.

    “여기서는 퇴각할 때 왜 매복을 세우지 않은 거죠?”

    “그··· 그것은 설마 적들이 추격을 할 거라고······.”

    처음 퇴각을 시작할 때 적들이 아군의 영토 깊숙이 따라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 누구라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강을 건널 때 포병은요?”

    “당연히 먼저 건너서 자리를 잡고 지원을······.”

    “이곳보단 이곳이 더 효율적이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애초에 도하하는 장소가 문제네요.”

    “그건··· 강폭이 좁은 곳으로······.”

    “덕분에 포병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죠. 거기다가 유속과 수심은 확인을 제대로 한 거죠?”

    겉으로 보기엔 강폭이 좁은 곳을 건너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복합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최악이었다.

    “도대체 이곳에선 왜 싸움을 받아 준 거죠?”

    “퇴각할 장소가 마땅치······.”

    “여기로 이동하면 되잖아요.”

    “거긴 막힌 곳으로··· 거기다 우린 보급품이······.”

    지도상으로는 말굽 형태로 뒤에 산이 있었다.

    “어차피 급한 건 적들이에요. 거기다 이곳에서 방어를 하며 주변을 살펴보면 길이 있었을 텐데. 에휴······.”

    “길이라니··· 그게 무슨.”

    “굳이 아군의 요새로 퇴각할 필요는 없잖아요. 동맹들도 있는데.”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가면 동맹 부족의 영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여단장. 당신은 결국 자기합리화를 한 채로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안 그런가요?”

    솔직히 리안도 상황이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확률적으로 최악을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그 때문에 인어 아가씨를 데려온 것이기도 하고.

    와아아아!!!

    패배감에 절어 있던 군영에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인어 아가씨가 공개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양.

    다만 5여단장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제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그의 책상 위에 있는 항복 문서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거참. 눈물은 지옥에서나 흘리세요. 장군의 무능력은 죄악이지만, 탈영병이 많지 않다는 것은 평소 병사들에게 잘했단 뜻이겠죠.”

    5여단장의 지휘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덕장의 기질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나 되었음에도 병사들은 원망하기보다 계속 장군을 따라 퇴각했다.

    “그래서 제가 더 죄인입니다.”

    “아니요. 그래서 마지막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

    5여단과 대치하는 스랑 제국에서도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제 거의 끝이 났다.

    치열한 마지막 발악을 한 적들은 이제 곧 항복밖에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는 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장군.”

    “어차피 내일도 못 싸워. 날씨도 그렇고. 적이나 아군이나 지칠 대로 지쳤으니까.”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간헐적인 전투의 끝에 다시 회전.

    적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강렬하게 저항했다.

    덕분에 이쪽도 많은 피로도가 축적되었다.

    “이틀 뒤까지 적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끝장을 내야지. 그러니 지금 사기를 위해서 술을 지급하는 것이 맞아.”

    어차피 적들도 지쳐 곧장 도주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도주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다.

    이쪽은 회복한 뒤 추격한다면 금세 따라잡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장군님. 다만, 일 인당 배급하는 술의 양은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면 족하네. 보급관. 승리의 축배를 위해서 지금은 아쉬울 정도로 목만 축이면 되니.”

    장군은 그리 말하고는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켰다.

    ***

    콰아아앙!!!

    이른 새벽.

    스랑 제국의 진영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있었다.

    “이게 무슨!!!”

    장군의 막사로 병사가 다급하게 들어와 보고했다.

    “마석고가 폭발했습니다! 여단장님.”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멀쩡한 마석고가 왜?!!”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도대체 마석을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보급관은 매우 깐깐한 인물.

    애초에 마석은 웬만한 충격에도 폭발을 하지 않는 물건이다.

    인위적인 마나 간섭만 없다면 말이다.

    “보급관을 불러··· 아니. 내가 가 보겠다.”

    여단장은 대충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마석을 보관한 임시 장소에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저것은 물을 부어도 끌 수 없다.

    “마법사! 마법사는?!”

    냉속성을 잘 쓰는 마법사가 여단 규모라면 한두 명은 있기 마련.

    마석이 잘못되었을 때 진압하기 위해서다.

    “저 정도 규모는 불가능합니다!!”

    그때 보급병이 달려와 보고를 했다.

    이미 마법사 두 명이 달라붙어 노력했지만, 모든 마석들을 모아 놓은 상태라 불길이 너무 거대했다.

    “조금 뒤로 물러나심이!!”

    콰아아아아!!

    그때 2파로 충격이 터졌다.

    마석은 생각보다 안정적인 물건이라 핵은 쉽게 파괴되지 않았다.

    그런데, 화재가 진압되지 않자 결국 핵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여··· 여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충격으로 쓰러진 여단장을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부축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빌어먹을!! 무슨 이딴 일이··· 보급품은? 여분은 있는가?”

    급히 주변에 대고 외쳤다.

    “2번 창고는 다행히 무사합니다.”

    여단장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적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한 번. 그래 한 번의 전투만······.”

    그때.

    콰아아앙!!!

    무언가 군영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 정체는.

    “여단장님!! 적들이 마포 공격을!”

    ***

    리안은 적진이 내려다보이는 나직한 산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활활 잘 타네.”

    그 옆에 서 있는 5여단장은 지금 상황이 믿기질 않는 듯 보였다.

    “도대체······.”

    적의 마석 창고를 불태운 것은 다름 아닌 리안과 세이나였다.

    둘은 경계가 해이해진 하늘을 통해 침입했다.

    나름 땅은 잘 감시했지만 하늘 위까지 보는 경계병은 없었다.

    “그 무거운 걸······.”

    리안이 여단장에게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다름 아닌 마나 간섭 폭탄.

    딱히 전장에서 주로 쓰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마석도 많이 들고 별로 효율도 좋지 않았다.

    해전에서나 쓰이는 물건.

    마도구를 무력화시키며 마석이 모인 곳에 터지면 자칫 폭발할 수도 있다.

    다만, 물건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마나 간섭보다 폭발에 더 집중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이걸 만들 장비가 없다 보니 당연히 해전에서 쓰이는 폭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덩치가 커졌다.

    “덕분에 꽤 지쳤지요.”

    리안은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지만,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는 무거운 걸 밧줄로 묶어 세이나와 함께 운반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바람 속성의 대전사에 날개까지 있다 해도 꽤 무리를 한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총사령관님.”

    여단장은 진심으로 리안을 대단하게 봤다.

    어린 나이에 저런 무거운 것을 들고 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개인의 무력이 대단하다 해서 천 단위가 맞붙는 전쟁은 또 다른 일.

    “이제부터 시작이죠.”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마석 창고가 불타올랐다 해도··· 적들의 숫자가.”

    5여단은 거듭된 퇴각과 마지막의 회전에서 많은 병력을 잃었다.

    거기다가 적들의 모든 마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미 병사들이 개인으로 소지한 것들도 있고. 여분으로 다른 곳에 저장된 마석들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리안은.

    “질 수가 없죠. 아니 지는 게 이상하죠.”

    여단장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해 보였다.

    “무능력한 지휘관이 내 옆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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