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5
항구에 등장한 소년.
복색이 조금 특이했으나 옷의 재질로 봤을 때 높은 신분인 것은 틀림없었다.
문제는······.
“새로 들어온 배가 없는데······.”
이곳 코파나 백작령이 리안에게로 넘어간 뒤 상선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럴 것이 이곳에 특산물이라고 할 것이 딱히 없었기 때문.
그나마 가끔 들르는 상선들도 옥수수나 목화와 같은 수확 시기에 맞춰 들어왔다.
“저기··· 그··· 누구시라구요?”
육지에서 항구로 들어가는 관문의 문지기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 높으신 분 자재가 길을 잃어버린 걸까?
왜 위험한 성벽 밖에서 들어오는 걸까?
“레온 백작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 여기 새로운 주인님 말씀이십니까요?”
“내가 이곳 코파나 영지의 주인인 레온 백작입니다.”
리안은 답답했지만, 병사의 사정도 이해를 해줬다.
갑자기 뜬금없이 숲에서 웬 딱 중2병이 들 나이의 소년이 와서는 내가 여기 주인이라고 말하면 믿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저··· 그러니까. 그······.”
“맞다니까요. 에휴~ 고참을 불러오세요.”
리안의 말에 병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브라보 상등병님!!!”
저 계급 체계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병사는 대충 신병, 상등병, 고참병 이 세 개로 나뉘는데, 지역이나 나라마다 제각각이었다.
“아흠~! 무슨 일이야. 어디 재규어라도 어슬렁거린다더냐.”
코를 후비며 밖으로 나오는 병사.
딱 브라보처럼 생겼다.
알파, 브라보, 찰리 할 때 그 브라보 말이다.
그게 어떻게 생긴 거냐고 하면, 그냥 브라보처럼 생겼다.
“이분이··· 그러니까. 여기··· 주인님이시라는 데요.”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상등병이 다가와 리안을 살폈다.
옷차림은 어디 지체 높으신 곳의 자제 같은데, 그는 이곳에서 근무한 지 꽤 되었다.
높으신 양반들의 자제들 얼굴 정도는 훤히 꿰뚫고 있단 말이다.
“저기··· 누구세요?”
상등병도 얼굴에 물을표를 띄우는 것은 당연했다.
“자. 여기. 임명장이니까. 여기 영주 대리에게 가져다주세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리안이 가방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보존 마법 처리가 된 물건이라 물에도 지워지지 않고 웬만한 물리적 충격에도 버틴다.
“헙!”
예사롭지 않은 물건임을 상등병은 알아차렸다.
장난으로라도 이런 귀한 양피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신이 상대할 짬이 아니라는 걸.
“아··· 알겠습니다.”
상등병은 신참에게 이곳을 맡기고 후다닥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
저 멀리서 뒤뚱거리며 무언가 뛰어오고 있었다.
“대설 남작?”
“저··· 저를 아십니까?!”
둥글둥글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땀을 닦으며 리안에게 답했다.
“아··· 하필이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벨 왕국이 코파나 영지를 리안에게 넘기며 관리인으로 누굴 남길지는 순전히 랜덤이다.
대설 남작.
식량에 관련해선 준수한 행정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군사적 능력은 완전 설사다. 아니 대설사다.
“아닙니다. 안내를 부탁드리죠.”
“아··· 알겠습니다. 각하!! 이쪽으로······.”
대설 남작은 리안의 앞서서 이동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항구에선 기별이 없었는데, 갑자기 성문에서 등장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참고로 이곳 코파나 백작령의 항구는 돌로 둘러싼 완전한 요새인 상태다.
“호··· 혹시··· 배는······.”
사실 조금은 의심이 가기도 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임명장은 틀림없는 진품.
혹시 자기가 모르는 트릭이 있지는 않을까?
혹시 스랑 제국의 농간은 아닐까?
예전부터 이곳을 살짝 탐을 내오던 스랑 제국이었다.
“수영해서 왔어요.”
“네?!”
“진짜인데··· 그래서 지금 의심하는 건가요?”
사실 리안 같아도 의심을 하겠다.
“그게··· 아니오라······.”
뭔가 확인을 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리안도 뭔가 확인을 시켜 주고 싶어도 확인시켜 줄 방법이 없고.
그럼 어쩌겠는가.
찝찝하지만 서로 대충 믿어야지.
“저··· 정말 수영을 해 오신 것 맞습니까?”
“제 부하 중에 인어가 있거든요. 못 미더우시면 나중에 확인시켜 드리고.”
“그게··· 아니오라······.”
역시 유능한 행정가답게 머리가 계속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의 일에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겠지.
“후··· 일단 부두 쪽으로 가죠.”
리안의 말에 대설 남작은 부두로 안내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남작의 셔츠가 땀에 절여졌다.
날씨도 날씨겠지만, 상황이 퍽이나 힘겨웠다.
일단 이곳의 진짜 주인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벨 왕국의 사위기도 한 리안이었다.
“보자. 이쯤이면 되려나.”
리안은 바닷가에 서서 눈을 감았다.
새로 얻은 능력이라 조금은 불편하달까.
‘뭐야?! 7마리나 되네.’
생각보다 인근에 있는 인어들이 제법 많았다.
정신이 그들에게 닿았고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지금··· 뭐 하시는······.”
“기다려 봐요.”
째깍. 째깍.
시간이 잠시 흐르고 슬슬 하품이 나오려던 찰나.
파닥파닥!
바닷가에 인어가 한 마리, 두 마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든 인어가 무려 일곱 마리.
그중에는 리안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육감적인 인어도 끼어 있었다.
‘멀리 안 갔나 보네.’
생기가 조금 있는 걸 봐선 그사이에 어디 어부라도 한 명 접촉했나 보다.
“여기예요~ 여기~~!”
그 육감적인 인어는 아는 얼굴이라고 손을 마구마구 흔들어 줬다.
다른 인어들은 안면이 있는 것에 부러워하는 눈치.
“허어어······.”
“진짜로 수영해 왔다니까요.”
대설 남작은 침까지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인근 바다에 인어가 저렇게나 많지만, 바다에서 일생을 보내도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있었는데, 마나를 깨우치지 못한 일반인의 경우 인어가 관계 후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
가끔 부작용으로 흐릿한 기억이 남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괴의한 소문들이 퍼져 나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나 유저 이상급은?
애초에 그런 이들에게 인어들은 접근을 잘 하지 않았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귀족인 대설 남작이 인어를 보는 것이 처음일 수밖에.
“침 좀 닦으세요.”
“소··· 소개 좀······.”
리안은 실소를 지으며.
“제가 맡기는 일을 잘 처리하면 소개시켜 드릴게요. 후회하지 마세요.”
“저런 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제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각하!!”
이쪽에선 리안이 후작으로 승급했다는 소식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모양.
“일이나 똑바로 하세요. 일단 관청으로 가지요.”
백작령이라 불렸지만, 사실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크고 도시라 부르기엔 작은. 그 어중간한 영역.
거기다 땅은 넓지만 개척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원주민의 마을들을 통치하고 있지만, 완전하게 복속한 상태도 아니다.
“좀 빨리 가요. 제가 내기 때문에 얼른 돌아가 봐야 한다고요.”
“내··· 내기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해도 안 믿을 거면서.”
대충 저 멀리 조금 큰 석조 건물이 보였다.
“에효.”
결국 리안은 남작을 추월해 빠른 걸음으로 앞서갔다.
그러다 실수로 무언가에 걸려 깽깽이 발이 되었다.
“으엇?! 여기 웬 시체가······.”
이 세계에 와서 하도 죽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시체를 봐도 약간은 무덤덤했다.
“사··· 살아 있습니다. 각하.”
“음?!”
그러고 보니 살짝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이 거리에서 구걸로 먹고사는 청년입니다.”
“사지는 멀쩡해 보이건만······.”
“눈이 멀었습니다. 딱하긴 한데, 이 청년만 따로 구제해 줄 수도 없고······.”
남작이 눈치를 봤다.
만약 도시 차원에서 구제를 해 줬다면, 직권 남용일 되었을 것이고. 구해 주지 않으면 파렴치한 인간이 될 것이다.
지금은 후자로 보지 않을까 쩔쩔매고 있었다.
“하긴. 대리인으로서 한계는 있겠네요.”
작은 도시이지만, 인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사건 사고는 매일 일어난다.
복지 개념이 없는 시대니 일일이 그런 일들에 대응을 못 한다.
영주 대리인이라 해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한 명, 두 명 구해 주다 보면, 자신의 사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것이다.
“이해합니다.”
리안은 그리 말하고는 청년을 살폈다.
못 보고 밟고 지나간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빠··· 빵을··· 먹을 것을······.”
사실 구걸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이나 마도 공학보단 신학이 더 힘을 쓰는 세계.
멀쩡하던 청년이 눈이 먼 것을 저주라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저주가 퍼질까 다들 피하기 바쁠 것이다.
“가··· 각하. 부정을······.”
당장 엘리트 계층인 대설 남작만 해도 저런 반응이지 않은가.
“빵. 아니 스튜를 끓여 오세요. 그리고 이 남자에게 이 도시에서 안 쓰는 집이 있으면 주고요.”
본의 아니게 이곳에 오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복지 정책이었다.
이 청년뿐만 아니라 고아나 살아가기 힘든 자들을 한데 모아 살아가게 해야 할 것 같다.
“아··· 알겠습니다. 각하!”
남작은 즉시 비서진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주변이 분주해졌다.
“귀··· 귀인은. 누··· 누구십니까.”
“나? 여기 영주인 레온 후작입니다만. 그러는 넌 누굽니까.”
누군가의 호구 조사를 할 땐 자신의 소개부터 해야지.
“저··· 저는. 작은 히어로 호텔 몽키입니다.”
“잉??!”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둥글둥글 대설 남작이 호통을 쳤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딴!!”
“아마도 맞을 거예요. 원주민과 혼혈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피부 톤이나 생김새가 미묘하게 이국적이랄까.
“아··· 그렇군요. 크흠.”
여기 사람들은 이 청년을 아마도 몽키라 불렀을 것이다.
솔직히 이름이 ‘작은 히어로 호텔 몽키’는 좀······.
‘잘하면 정령술사를 얻을 수 있으려나.’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꼴이라더니.
참고로 작은 히어로 호텔 몽키는 네임드다.
갑옷에 정령을 불어 넣는 세계.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정령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사람들은 누구나 정령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게 돈이 되거든.
그 정령 갑옷에 정령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바로 정령술사들이다.
정령 갑옷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갈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높으신 분이··· 저··· 를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혹시 동정이십니까?”
하여튼 정령사 놈들은 반골 기질이 심했다.
그래서 정령사가 잘 없는 걸까?
굶어 죽기 직전인데, 동정이면 어떤가. 아니. 애초에 동정이 아니면 도와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도움을 줘도 이리 기를 바짝 세우니 이 자리에서 굶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누가 도와주겠는가.
‘에효. 어디 쓸만한 말 없나······.’
리안은 대충 머릿속을 열심히 뒤적거리다 적당한 말을 찾았다.
정령사는 성격이 거지 같아도 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네가 잘되면 나는 너에게 후원을 한 것이고. 네가 잣같이 살다 죽으면 불쌍해 보였던 거겠지. 어차피 우리가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불쌍한 놈이 될지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은 놈이 될지는 네가 하기 나름이다.”
리안은 그리 말하고는 일어나서 쌩하니 관청으로 향했다.
그 뒤로 남작이 따라붙었다.
“가··· 각하. 대단한 연설이셨습니다.”
“뭘. 이런 걸 다.”
리안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사실 리안은 방금 그 청년이 탐이 나서 한 소리였다.
아주 간헐적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정령사로서 다른 정령사들에 비해 세 배 이상 효율적인 생산성을 보였다.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플레이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비 효과로 죽고 사나 보네.’
이곳 코파나 영지는 애매한 위치였고. 특산물도 딱히 없다.
그런데, 플레이어로 인해 이곳 항구에 배가 들어오게 되고. 누군가 방금 그 청년에게 선행을 베푼다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게임에 간헐적으로 등장한 것이고.
“그보다 주요 인물들을 모두 모아 주세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 바쁜 몸이랍니다.”
“알겠습니다. 각하!”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에 자문 위원들이 모였다.
나름 백작령이니 있을 직책은 다 있었다.
주교, 재상, 집사장, 무관장, 정보장.
“무관장이 누군가요?”
국가로 치면 국방부 장관격이다.
그래 봐야 코파나 영지의 규모로 봤을 때 몰락 귀족이거나 평민이다.
이벨 왕국에서 리안에게 영지를 넘길 때 이벨 왕국의 귀족은 영주 대리인 빼고는 전부 넘어갔을 것이다.
“저··· 접니다요!! 가··· 각캅!”
어찌나 긴장했는지 혀까지 깨무는 것이 보였다.
이거 살짝 총체적 난국이다.
스윽.
리안은 남작을 슬쩍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도 눈을 슬쩍 피했다.
‘전쟁은 저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되는데······.’
안타깝게도 무관장은 귀족이 아니었기에 리안이 모르는 인물이었다.
네임드는커녕 엑스트라로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이. 모르겠다.’
리안은 탁자를 손바닥으로 살짝 내리쳤다.
세게도 아니고 살짝.
그런데, 무관장은 화들짝 놀란다.
‘아니. 제대로 된 인물에게 인수인계를 한 것은 맞겠지?’
그래도 리안은 이벨 국왕의 사위다.
설마 일 처리를 개판으로 해 놓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평민이라도 나름 능력이 있을 거다.
주변에 아무런 위협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도 아니고.
“무관장. 싸움은 좀 하나?”
“제··· 제가 이 도시에서 제··· 제일 셉니다요!”
기운을 살짝 흘린다.
“호오~”
리안은 감탄했다.
설마 하자니 이벨 왕국에서 대기사를 선물로 줄 줄이야.
아무리 평민이라 할지라도 대기사는 매우 몸값이 높다.
“좋네. 그대에게 전권을 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