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79
다음 날 리안은 소수 정예를 이끌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고잉미샤호는 마나석 광산에 자리를 잡고 가공을 시작했다.
“흐리아 민. 배를 부탁한다.”
“네. 맡겨 주세요. 선교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을게요.”
사실 위험할 것은 없다.
이곳은 후방이고 고잉미샤호가 전투에 휘말릴 일은 없다.
다만, 아주 낮은 확률로 적의 별동대나 내부 친스랑파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누님. 광산의 외부인 통제를 철저히 하시고요.”
이번에는 기관장 헤르미에게 당부했다.
그녀가 이곳의 총책임자로 마나석을 가공해 보급할 것이다.
참고로 마나 광석은 캐기만 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1차 가공을 거쳐야 했기에 그 공정을 진행하는 설비로 인해 규모가 상당했다.
하루에도 광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사람 관리가 가장 힘든데······.”
사실 이것에 특화된 인물이 한 명 있기는 하다.
“전하. 일어나셨습니까?!!”
공왕이 좀비마냥 리안에게로 다가왔다.
다크서클이 발바닥까지 내려갔는지 발이 무거워 보인다.
“이··· 이보게. 레온 후작. 이··· 인어가 원래 그런가?”
“모르셨습니까? 인어는 사제입니다. 매우 중요하니 매일 잘 부탁드립니다.”
“사··· 살려 주게.”
“공왕님이 밤의 제왕이란 소문은 이미 브루타뉴 반도에 퍼지지 않았습니까? 믿고 있습니다. 어서 채비하시지요.”
“아니야. 아닐세. 난 두고 가면 안 되겠나? 제발 부탁이네.”
인어에게 제대로 정기가 빨린 것 같다.
남성 호르몬 감소로 목소리도 살짝 가늘어 진 것 같기도 하고.
대머리가 정력이 좋다는 말은 헛소문인 건가.
“후. 어쩔 수 없군요. 전하. 그러면 여기 기관장 헤르미를 도와 광산 운영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오오! 좋네. 행정 업무는 내 전문이네. 나라도 운영하는 마당에 이런 광산쯤이야.”
껌일 것이다.
게을러서 그렇지 그의 행정 능력만큼은 진짜다.
“광산의 노동자들의 명부를 작성해서 불순 인자들을 걸러 주시고. 1차 가공이 끝난 마석은 고잉미샤호에서 2차 가공을 할 것입니다. 2차 가공까지 끝나면 전군에 적절히 배분을 부탁드립니다.”
“별거 없군. 알겠네. 맡겨만 주게나.”
공왕은 살아남기 위해 일을 자처했다.
솔직히 헤르미만으로는 불안했는데, 잘되었다.
일국의 공왕을 부려먹을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
“자. 그럼 출발!!”
리안은 간부들과 해병대원들로 별동대를 차려서 떠났다.
***
북신대륙 잉글슨령 국경의 변두리 마을.
그들은 도움이 절실했다.
예비군은 이 작은 마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남작님!!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적들의 공세가······.”
요즘 들어 스랑 제국의 공세가 거세졌다.
아마도 보급 때문일 테지.
“마나석이 거의 동났습니다.”
“빌어먹을 도대체 본섬에선 무슨 생각인지!”
이런 외딴곳은 전투가 거의 없다.
오히려 아군과 적군이 마주치면 서로 담배도 주거니 받거니 할 정도로 겉으로만 싸우는 지역.
사실 국적만 다르지 이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차피 피차 먼 곳까지 와서 힘들게 개척을 하는 입장이었기에.
그런데, 최근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주민들까지 동원하게.”
“그들에게 줄 무기가······.”
“돌이라도 던지든지. 막대기라도 쥐여 줘. 서로 아는 얼굴이라고 봐줄 것 같아?”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이미 저들은 이웃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에 쌓여 있는 상태다.
머릿속은 혼돈 아니 오류로 가득하다.
오류로 가득차 맛탱이가 가 버린 뇌는 오히려 타락으로 빠진다.
끝없는 자기 합리화의 늪에.
“아··· 알겠습니다.”
겨우 1,500 남짓의 작은 마을.
그곳을 다스리는 남작.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신대륙은 기회의 땅.
망해 가는 가문의 가보까지 팔아 가며 이곳에 왔다.
개척한 만큼 돈이 되기에.
“남작님!!”
누군가 집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그 순간 남작은 모든걸 포기했다.
이미 아녀자들까지 동원한 마당에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가 들어온다는 것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다.
“음? 옆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인물이다.
“총독의 전령입니다.”
하얀색 바탕의 붉은 모자.
이런 외지의 개척마을에 저런 복장을 한 군인은 없다.
정규군의 군복이다.
남작은 반가움 반 기대 반으로 물었다.
“보급. 보급은 어떻게 되었나?”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이다.
겨우 몇백 명이 싸우는 곳이다.
치열하지도 않으며 근거리에서 싸우지도 않는다.
사거리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겨우 마총이나 쏘며 간을 보는 정도.
최근 조금 사정이 바뀌긴 했다.
보급이 모자란 이쪽에선 탄을 아끼기 위해 사격을 줄였고. 저들은 야금야금 전진해 결국에는 목책을 두고 공성도 일어났었다.
“보급만 있다면 유지는 할 수 있어. 빨리 보급을 달라 전하게.”
몇백 명 간의 공성전.
겨우 열 몇 명만 죽는다면 적들도 포기하고 물러간다.
애초에 이쪽에서 마총을 아낌없이 쐈다면 접근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철수하시지요.”
“무어?!! 그··· 그게 말이라고 하는··· 마나석 조금만 주면 된다네!”
“총사령관님의 명령입니다.”
“총사라니··· 총독을 말하는가?”
잉글슨의 섬과 이곳은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을 극도로 걱정했다.
총사령관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
정규군 격인 예비군을 다섯 개로 나눠 총독에게 조율을 맡겼다.
여기서 조율이란 명령권이 아니다.
오히려 장군들이 총독을 견제하는 형태.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한참을 고민에 빠진 남작.
전령은 그 앞에 미동 없이 기다려 줬다.
다른 마을에서도 개척지의 책임자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에.
‘내 의지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총독. 그래 총독의 명이니 보상해 주겠지.’
명령에 따른 것이다.
재산을 때려 넣어 이곳을 개척할 권리를 얻었다.
철수하면 패널티가 따른다.
그런데, 총독의 인장으로 전달된 총사의 명령은 단지 철수.
그동안 힘들게 개척한 것을 두고 가려니 아까웠지만 방법이 없다.
“알겠네.”
공성은 치열하지만, 치열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공격하지 않는다.
“모두 중요한 것만 챙겨.”
총사령관으로 누가 왔을지 궁금했다.
보급이 모자라서 철수를 시키는 걸까? 아니면 반격을 위해 병력을 모으는 걸까?
***
그 총사령관은 마른 먼지를 들이마시며 걷고 있었다.
“시바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입이 텁텁하게 말랐다.
물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으나 텍스트로 읽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물! 무우울!!!”
“무슨 십 분에 한 번씩 외쳐······?!”
물 속성인 부선장이 손을 리안의 입으로 가져다준 뒤 쥐어짰다.
한 방울. 두 방울.
워낙 건조한 땅이라 수분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뚝뚝뚝!!
입을 적신 리안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이렇게 짠할 정도로 물이 모자라지는 않다.
각자의 커다란 가죽 주머니엔 물이 꽉 차 있으며, 이 무리의 우두머리인 리안 정도는 벌컥벌컥 마실 정도는 된다.
‘눈치가 보여서··· 제기랄.’
문제는 아껴먹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시바. 게임에선 가끔 비라도 내리더만.’
분명 식수의 양을 충분히 챙겼다.
게임에서도 이 정도면 충분한 정도.
다만, 고통이란 변수를 주의 깊게 본 것이 아니었다.
게임 캐릭터들은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견딜지 몰라도 사람은 아니었다.
‘하······.’
어디선가 생선 비린내가 풍겨 왔다.
흐물흐물해진 인어 아가씨가 간이 들것에 질질 끌려 왔다.
이제 코가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끔 방심하면 풍긴다.
흐물흐물한 생선.
“공자님. 거의 한계입니다.”
전쟁의 신 사제 세이나가 다가와 말했다.
지금 인어 아가씨의 곁에 붙어서 항시 간호하는 중.
이런 건조한 사막에선 인어는 쥐약이었다.
“공작님은?”
“저기······.”
옆의 들것에 나란히 실려 오고 있었다.
나름 그쪽으론 참 도움이 되던 인물인데, 기력이 다한 듯 보인다.
다른 선원들을 인어에게 붙이려 해도 곤란하다.
그들도 입이 쩍쩍 갈라지는 고통을 참으며 열심히 행군 중이니.
자칫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할지도 모른다.
“미치겠네. 저기!! 언덕만 넘으면 매실밭이 있다!!!”
“어어어?!! 진짜?”
“우오오오!!!”
부하들이 눈이 충혈된 채 포효를 질렀다.
다들 마른침을 삼킨다.
‘미안··· 구라야.’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의 물은 인어 아가씨에게 뿌리는 용도였다.
“서··· 서··· 선장. 매실밭은······.”
선원들은 리안에게 좀비처럼 다가와 물었다.
“아··· 미안. 저기 저 언덕인데··· 착각했어.”
리안이 말한 언덕을 넘었지만, 여전히 사막.
“설마··· 저 산을······.”
리안이 가리킨 곳은 높게 솟아오른 산맥이었다.
모두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맥을 보자 힘이 솟았다.
꼭대기엔 하얗게 서린 눈덩이들이 보였기에.
“이제부터 배식량을 두 배로 늘린다.”
“아니···! 물이 있어야 먹지.”
식량은 모두 건조했다.
가뜩이나 목이 마른데, 식욕이 있겠는가.
“남기는 사람은 인어 아가씨의 간호를 맡기겠다.”
리안이 말하자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식욕도 없는데 다른 욕이 있을 리가.
다들 한 방울의 수분도 아까웠다.
쯔와압! 쫘아압!
급히 육포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리안도 쪼그려 앉아 억지로 씹어 댔다.
***
리안이 떠나고 총독 관저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총독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벌써 몇 주째 배가 묶여 있습니다.”
“나는 총사의 명령에 따라 후퇴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나게 해 주세요!!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합니까?!!”
총독은 감히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자칫하다간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물론 그럴 일 따위는 없을 거란 리안의 말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었다.
-폭동은 민중이 일으키는 겁니다.
지금 불만이 가득한 자들은 대부분 상인이나 개척 마을의 책임자들이었다.
-귀족의 입김을 무시해선······.
-퍽이나요. 어차피 본섬은 건재합니다. 그들의 기반은 본섬에 있으니 경거망동 못 합니다. 적당히 달래세요.
몇 날 며칠 총독 관저에 몰려드는 사람으로 인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총독.
“전하의 전권 위임을 받은 총사령관님의 지시라고 전해!!!”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총사령관이란 것은 아주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으나 전권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왕도 정치인이다.
그러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에 혈안이 된 사람.
전권. 이란 것은 쉽게 쓰일 수 없는 단어다.
“오오오오!!! 전하 만수무강하소서!!!”
“잉글슨이여!! 영원하라!”
“위하여. 위하여! 내 조국 잉글슨이여······!”
총독은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아예 마음을 놓고 술병째로 벌컥벌컥 마셔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리안과 국왕의 통신 내용은 어찌어찌 ‘전권’이란 말로 우겨도 되지 않을까?
***
스랑 제국 측은 스랑 제국 나름대로 혼란스러웠다.
단단한 벽을 부수려고 달려가 쿵! 부딪혔는데 그냥 숙! 하고 밀린 느낌이랄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스랑 제국의 총독 카인 G 크리티카는 탁자를 두들겼다.
“너무 고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총독!! 저들의 보급이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처럼 보급도 그러하다.
잉글슨의 함대가 빠진 지 시간이 되었으니 슬슬 작은 규모의 개척 마을에도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스랑 총독은 찝찝했다.
개척 마을은 어찌 보면 가산을 끌어모은 몰락 귀족들의 도박판.
그들이 쉽게 물러서겠는가.
아녀자에게 짱돌을 쥐여 줘서라도 사수하려 들 것이다.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도를 훑고 또 훑는 총독 크리티카.
“기만술이면 어떻게 하는가?”
“설마 아즈 제국과 동맹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과한 생각이십니다. 총독. 아즈 제국의 국경선은 방비가 충분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잉글슨과 스랑 제국의 식민지 쟁투의 우위가 나온다.
잉글슨은 스랑 제국만 방비하면 되지만, 스랑 제국은 남쪽의 원주민 아즈 제국과 북쪽의 잉글슨 왕국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한다.
거기에 해군은 당연히 잉글슨 쪽이 조금 더 강하다.
어찌 보면 잉글슨의 함대가 빠진 지금이 일생일대의 기회.
“저들의 그렇게나 나약했던가?”
그동안 미세하게 밀려왔던 스랑 제국.
그런데, 겨우 저들의 함대가 잠시 빠졌을 뿐인데 저렇게나 흔들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하다. 아즈 제국 쪽으로 병력을 충원하도록.”
“총독.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란 말이 있습니다. 저들의 해군이 빠졌을 때······.”
“이미 충분한 이득을 보고 있다.”
단호하게 말하는 스랑 제국의 총독.
“아··· 알겠습니다.”
해당 도시의 시장은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목화 대농장으로 대단한 수익을 내고 있는 귀족이었다.
“롬에 왔으면 롬 법을 따라야지. 저딴 놈이 총독이라니.”
신대륙은 매우 풍요로운 땅.
그래서 그런지 경쟁을 모르는 원주민들은 매우 순박했다.
장사꾼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
“잉글슨 놈들만 없으면.”
총독부가 있는 이곳의 시장은 목화로 만든 면직물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두고 보자.”
그에게는 풍요로운 이 땅의 목화 사업을 독점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 왔음에도 협조하지 않는 총독이 아니꼬웠다.
“군바리 놈 주제에 싸움이나 피하고.”
특히나 북신대륙의 총독은 군인 출신이었다.
코드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안 되겠어. 돈을 들여서라도 장군들을 포섭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