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178
리안의 답에 상대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평소와는 다른 문장.
참고로 장거리 통신은 목소리가 아니라 전보 형태의 문자였다.
리안의 말을 통신 마법사가 옮겨서 보냈던 것.
이후 대화는.
매우 단조로웠다.
단어 수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였다.
[혹시 레온 후작?]
-ㅇㅇ.
[왕을 불러옴.]
-기다림.
[나. 왕임. 무사히 도착. 다행.]
-나 개 쩜. 오면서 적 통신선 포함 6척 격파. 기함도 좀 망가졌다.
[오오. 진짜임? 해적왕에게 고맙다 전달.]
-일단 그렇고. 나 신대륙 전권을 원함.
[승인한다.]
-스랑 제국과 싸워서 추가로 영토 얻으면 그것도 내 거임.
[원하는 바임. 제발 그리 부탁함. 베터리 다 됨.]
-통신보안. 만수무강.
[고맙다. 너도 건강해라.]
이렇게 통신은 종료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총독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이게 무슨······.’
이 기록은 다듬어져서 보관하게 되어있다.
장거리 통신은 워낙 전송량이 적다 보니 이런 식의 대화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당연히 격식이나 예의가 빠져 있으니 보기에 좋지 않았다.
“후작 합하! 저··· 정말로 스랑 제국의 함대를 격파하신 겁니까?”
분명 한 척으로 왔다고 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함대랑 싸운 것은 아니고 기함을 포함한 편대와 싸웠죠.”
“그렇다 해도······.”
칠 대 일.
통신선을 뺀다 해도 육 대 일이다.
“후작 합하. 거짓 보고는 추후 크게 문책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리안의 옆에 있던 해리 78,900세가 무게를 깔며.
“이봐. 총독. 자네 말대로라면 나도 거짓에 동참한 것이 되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는가?”
“아··· 아닙니다. 전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해리 78,900세는 왕족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은 영향력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신대륙에서도.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전하.”
“뭐.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공작은 다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 총독.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총독도 리안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해 정신이 없었다.
“총독 아저씨. 얼 타지 말고 회의나 빨리 주최하세요.”
“아··· 아저씨··· 아니, 죄송합니다. 합하. 지금쯤 장군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신대륙에 있는 모든 잉글슨 장군들이 모이진 않았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역과 지역이 산이나 강으로 막혀 있어 한곳에 모이기 힘들었다.
거기다가 분쟁 지역은 장군이 자리를 비울 수도 없으니.
“네. 안내하세요.”
리안은 곧장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중앙군 성향의 예비대 장군들이 모여 있었다.
참고로 식민지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는 지역 방위군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예비대가 있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방위군을 모두 모아도 예비대보다 적었다.
웅성웅성.
예비대 장군은 모두 다섯. 그들을 보좌하는 영관급까지 모아 놓으니 숫자가 상당했다.
원래 이들도 같은 곳에 주둔하지 않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후작 합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드르르륵!!
리안이 회의장에 들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있었다.
다만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식민지의 함대가 빠진 것을 메우기 위해 온 사람이 어려도 너무 어렸기 때문.
거기다가 유서 깊은 가문도 아니고 어디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이었다.
‘저 아이가 정말 그런 업적을 세웠다고?’
아주 대충이나마 본섬에서 정보가 들어오긴 했다.
거기에 바다가 완전히 막히기 전에는 배도 왕래를 하다 보니 리안에 대한 소문도 조금 들었고.
그런데, 그게 영 신빙성이 없었다.
“나눠 주세요.”
리안의 말에 따라 총독은 비서들을 시켜서 마도구로 찍은 유인물을 나눠 줬다.
“국왕 전하와의 통신 내용입니다.”
그 말에 다들 궁금한지 급히 유인물을 급히 들었다.
조금 당혹스러운 것은 개판으로 주고받았던 내용이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미사여구도 상당히 덕지덕지 붙어서 유인물의 내용이 빽빽해 보였다.
어쨌든 핵심은 적과 해전을 해서 이겼다는 것.
리안이 총사령관이라는 것.
총사령관으로 있는 동안 영토를 늘리겠다는 것.
당장 위기에 빠진 신대륙인데, 저런 일은 꿈과도 같아 보였다.
그보다 듣기로는 달랑 혼자 왔다는데, 어떻게 적 함대와 싸워 이겼다는지 미스테리였다.
“큼. 자자. 다들 보셨죠??”
리안이 거만하게 탁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그걸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장군도 있었지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리안 보다 작위가 높은 사람이 없었기에.
“이제 지시 사항을 전달할 겁니다. 지도~”
리안의 말에 총독의 비서들이 회의실에 커다란 지도를 걸었다.
“이곳을 담당하는 장군님이 누구죠?”
리안이 지휘봉으로 지도 한 곳을 찍었다.
“저입니다. 후작 합하.”
“총사라 부르세요.”
“네. 총사.”
“제3 예비 연대는 이쪽으로 이동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총사.”
장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누구죠?”
“저입니다. 총사.”
“제2 예비 연대는 이쪽으로. 그다음······.”
리안은 일일이 다섯 장군들에게 병력 이동을 명령했다.
참고로 식민지 예비대는 1만 명씩 구성된 연대로 다섯 장군의 지휘하에 있었다.
“세부적인 것은 따로 지시를 내릴 테니 따르세요. 그리고.”
웃던 리안의 미소가 천천히 무표정으로 변했다.
“지금부터 스랑 제국과 전쟁입니다. 전쟁 중 항명하는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참형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 말에 다들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다 누군가.
“지당하십니다. 총사!”
라고 대답하자 다들 따라서.
“네. 총사!”
로 답했다.
다만. 표정들이 딱히 좋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답한 장군은 평소 식민지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장군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땅은 넓고 군대의 숫자는 적으니 효율적인 방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넓은 땅 중 쓸만한 땅은 얼마 되지 않으니 포기하는 쪽이 났다는 것이다.
“이만. 해산. 빠르게 병력 이동을 명합니다.”
리안은 그리 말하고선 회의실을 나왔다. 그러자 남아 있던 장군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력 배치를 저렇게······.”
“보급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러면 효율적으로 전방에 지원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설마··· 땅을 포기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합리적인 의심이다.
리안이 배치한 것을 보면 한 점을 중심으로 다섯 부대를 모아 놓았다.
회전이나 한 곳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너무 후방이었다.
“다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능력으로 후작이 되신 분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배치였다.
“다들 명령 못 들었습니까? 여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부대로 복귀나 합시다.”
방금 전 가장 먼저 리안의 말에 동의를 한 장군이었다.
그는 문을 활짝 열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저런 자가 무슨 장군이라고.”
“그렇지요. 피를 흘려 얻은 땅을 도로 내어놓자니. 거참.”
“맞습니다. 근본없는 가문 출신이라 그런 거지요.”
“땅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입니다.”
네 명의 장군은 모두 정통 귀족이었다. 봉건주의에 찌든.
당연하게 귀족의 힘은 땅에서부터 나온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것이 국가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뭐. 일단 명령이니 갑시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총독이 리안에게 말했다.
그는 꽤 잘나가는 신흥 가문의 백작이었다.
원래 신대륙의 총독이 되려면 후작은 되어야 하지만, 신대륙에 영향력이 컸기에 최근에 교체가 되었다.
하필이면 그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사달이 나 버렸지만.
“집무실로 가죠.”
“네? 아직 하실 일이······.”
“많지요.”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안내를 강요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지금 한가하게 쉴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총독은 걱정도 되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오라.”
결국 리안에게 못 이겨 집부실로 안내한 리안.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손님이 있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문을 연 총독은 깜짝 놀랐다.
그럴 것이 리안의 부하들이 총독의 집무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
그 중심에는 브루타뉴 공국의 공왕이 있었다.
“어서 오게. 레온 후작.”
공왕은 서류 한 뭉치를 리안에게 건넸다.
“와··· 많이도 해 드셨네. 그 짧은 시간에.”
리안은 대충대충 넘겨보며 아는 척을 했다.
사실 봐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지만.
“하··· 합하!! 살려 주십시오.”
총독은 급히 무릎을 꿇으며 리안의 바짓가랑이를.
퍽!!
옆을 지키고 있던 샤로트가 급히 총독을 발로 까 버렸다.
어린 소녀에 불과해 보였지만, 그녀는 중견급 대전사.
“끄억!!”
뒤로 그대로 꼬꾸라지는 총독.
그래도 힘 조절을 했기에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고생하셨어요. 전하. 덕분에 수월하게 찾았네요.”
“뭐··· 이런 건 내 전문이긴 하지.”
비서들을 섬에 두고 왔음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였다.
그냥 게으른 것이지 행정적으로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 땅에서 마나 광산이라도 발견했나 봐.”
“그··· 그것이······.”
장군 중 하나가 식민지 영토의 방어선을 축소해야 한다고 여론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총독과 입을 맞췄기 때문으로 보였다.
게임 스토리에선 총독과 관련된 자가 자비를 들여 군대를 만들어 지키는 대신 그 땅을 받는다.
당연히 마나석 광산은 나오지 않지만, 그곳을 점령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이들은 잠채를 한 다음 밀무역을 하며 큰돈을 벌어들였다.
참고로 그 밀무역 대상으로는 스랑 제국뿐만 아니라 원지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협조하는 것에 따라 입을 다물어 줄 수가 있어. 봐서 도와줄 수도 있고.”
“저··· 정말이십니까?”
“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전하께 한마디 흘려 주지. 쓸모없는 땅들 때문에 군비 지출이 너무 심하다고.”
리안의 말에 총독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 합하께 최대한 협조를······.”
그때.
“음. 후작. 여기 있었는가?”
공작이 집무실에 기웃거리며 들어왔다.
참고로 그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리안이 총사령관인데, 그보다 작위가 높은 사람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그런데··· 총독은 왜 저러고 있는가?”
집무실 상태가 이상한 것도 그렇지만, 총독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게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제가 자료를 좀 많이 요구해서요.”
“거참. 조심을 하지 그랬나.”
공작은 별 의심 없이 넘겼다.
정신적인 피로도 너무 높아 어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참. 공작님의 숙소로 인어 아가씨를 보냈어요.”
“아··· 아니. 왜!!! 이제 자네 배를 타지도 않아도 되지 않은가!”
“공작님은 잉글슨의 귀족 아닌가요?”
“맞지. 그것과 인어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울상을 짓는 공작.
“아니. 지금 타국의 왕이신 제 주군께서도 저리 일을 하고 계신 것이 안 보이십니까?”
리안의 말에 머쓱한지 책상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는 공왕.
솔직히 말하자면 리안이 공왕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중이었다.
공왕은 무서워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식민지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니 사제는 항상 대비할 필요가 있지요.”
북신대륙에는 알려지지 않은 풍토병과 독물들이 많았다.
약이 제대로 없으니 의지할 곳은 사제밖에 없다.
“숙소까지 정중히 모셔다드리세요.”
“아··· 아니! 아니야. 내 이곳에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리안의 말에 부하들이 발악하는 공작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참고로 인어가 가장 좋아하는 질 좋은 양기를 제공하는 것이 공작이었다.
-푸른 피가 흘러서 그런지 순도가 높아.
경지는 상관없이 같은 시간에 가장 좋은 효율을 뽑을 수 있다나.
역시 즐기면서 하는 일이 최고인 것은 인어에게도 포함되는 듯싶다.
-그럼 공왕님은?
-나도 얼굴은 보거든!
역시 인어도 눈이 있나 보다.
“나··· 나도 가면 안 되겠는가??”
“정 원하신다면.”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공왕도 보내 줬다.
참고로 인어 아가씨는 이전과 같이 상냥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공작과 공왕은 세트로 살려 달라 빌 것이다.
“같이 가세나. 공작!!”
허락이 떨어지자 공왕은 공작을 따라 달려갔다.
“거참. 후회하실 텐데.”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뒤 총독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걸 위해서 총독의 약점을 잡은 것이다.
“지금부터 명령을 할 테니 각 도시에 제대로 전달하세요.”
“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