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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74화 (174/253)

< 174화 >

##174

당황하는 공왕.

그럴 것이 대양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이라 우락부락한 해적 부하 중 한 명을 남작으로 봉했을 줄 알았다.

리안이 해적왕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특히나 잉글슨과 스랑 제국의 대해전에서 용병, 그것도 해적왕의 소속으로 참전했다.

“실망스러우시겠지만, 어려도 뛰어난 인재입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네. 자네도 어린데 대단한 업적들을 세우고 있으니. 어리다고 누굴 무시할 순 없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던 배츠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아직 어리고. 빈민의 삶을 살았었다.

고위 귀족 그것도 왕이라 불리는 인물을 알현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닐 터.

더군다나 리안의 주군이지 않은가.

“이리 오게··· 만가 경!!!”

“이렇게··· 저··· 전하를 뵙게 되어 만수무강하소서.”

저건 무슨 말일까.

보통 왕이나 황제에게 신하들이 충성의 의미로 만수무강을 빌기는 하지만, 어휘가 조금 이상했다.

“하하. 만가 경이 조금 긴장을 한 모양이오.”

공왕이 머쓱하게 웃으며 리안을 바라봤다.

조금 불안한 것이겠지.

이 섬은 자신에게도 큰 이득을 가져다줄 섬. 그런데, 지키는 사람이 저래서야.

“전하의 후광이 대단해서 그런가 봅니다. 만가 경. 보여 주게.”

리안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배츠가 바다에 손을 뻗었다.

“음? 뭐 하는······.”

사실 이 것은 쇼다.

실제로 저 손을 뻗었다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다만.

휘이이이잉~!!

주변의 바다가 넘실거리며 요동친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성난 바다.

“어··· 어어엇!!”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공왕은 간이 의자에서 자빠졌다.

거친 파도가 근처까지 와서 때렸기 때문.

자칫 바다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만!”

리안이 손을 올리자 배츠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래의 바다로 돌아간다.

리안은 등 뒤로 따봉 표시를 보여 준다.

이것은 저 멀리서 리안의 신호에 맞춰 야누스의 심장을 작동시킨 것.

“대··· 대단하군.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인지.”

“바다에서 나고 자란 아이입니다. 이 정도 능력은 있어야 이 섬을 가질 수 있지요.”

“그렇군.”

공왕은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의자에 앉았다.

“만가 경. 보여 드리게.”

“아니. 아니 또 뭘 보여 주려고. 되었어. 되었다네.”

방금 전은 정말 위험하다 느껴졌다.

파도가 조금 더 세게 쳤다면 파도에 쓸려나갔을 것이다.

물론 리안과 부하들은 실험을 꽤 해 봤기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스윽.

배츠는 양피지 두 장을 내밀었다.

“크큼. 난 또 뭐라고. 보자······.”

머쓱해진 공왕은 양피지를 건네받았고.

“거기에 싸인을 하시면 영원히 이 섬은 브루타뉴의 우방입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브루타뉴 국적의 상선이라면 적대적 관계가 될지라도 무관세로 이 섬을 지날 수 있다.

단, 적대 국가의 군사적 지원을 위한 병력이나 물자 이동은 제외한다.」

이게 끝이다.

“저··· 정말인가?”

“전하께서 불안해 하실까 봐 문서로 남겼습니다.”

리안이 만약 공작이 되어 독립해 버린다면, 브루타뉴 공국 입장에선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특히 브루타뉴 내에 있는 영지를 가지고 독립한다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그걸 보상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허허. 경이 이렇게 배려심이 깊은 사람인 줄 몰랐구려.”

공왕에게 안도감을 주게 한 이유는 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리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라도 여전히 리안은 공국의 소속.

만약 공왕이 잉글슨 왕국에 선전 포고라도 해 버리면 골치 아파진다.

“자. 그럼 사인을.”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리안을 불렀다.

“어어!! 레온 겨어어엉!!!”

잉글슨의 공작인 해리 78,900세였다.

브루타뉴의 공왕이 왔다는 소식에 싸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정력 고갈로 힘들 법도 한데 저렇게 부랴부랴 온 것을 보니.

“큼··· 누구인가?”

머리는 약간 산발을 하고 있었고 옷섬도 대충 풀어 헤쳐져 있었다.

그걸 본 공왕의 비서가 귓속말을 했다.

“어머머멋!! 전하. 해리 78,900 경이옵니다.”

“그게 누구야?”

“율 대륙 최고의 아이돌이시지요.”

그러나 물음표만 가득한 공왕.

해리 78,900은 여자들에게 특히 인지도가 많았다.

전쟁에 나서지 않았기에 남자들은 다소 모르는 이들도 꽤 있다.

“어느 나라 공작이지?”

“잉글슨이에요.”

인상을 찌푸리는 공왕.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을 이야기하려던 찰나였다.

“아니. 잉글슨의 공작이 왜 여기··· 어쨌거나 만나서 반갑네. 브루타뉴 공왕이네.”

“아아. 반갑습니다. 잉글슨의 공작입니다.”

덕지덕지 온갖 작위를 가져다 붙이며 인사를 하는 귀족들의 습성과는 달리 두 사람 모두 혀가 짧았다.

브루타뉴의 입장에선 잉글슨이 가상 적국이고. 해리 78,900세 입장에서도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공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잉글슨에 안 좋은 쪽으로.

그러니 공왕씩이나 되는 인물이 여기까지 왔지.

“아참! 전하.”

그때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리안.

“음?”

“왜 그러는가?”

두 사람 모두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뚱한 표정을 짓는다.

“아아. 공왕 전하를 부른 것입니다.”

“크흠. 그래 이야기해 보게나.”

“이곳은 만가 남작의 영지이오니 만가 경이 접대를 하게 해 주십시오.”

“아. 그렇지. 롬에 가면 롬 법을 따르란 말도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공왕.

리안이 슬쩍 배츠의 옆구리를 찔렀다.

“전하. 모시게 되어 대대손손 만수무강하소서.”

“그··· 그래. 고맙네.”

여전히 긴장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

“저희 고향에선 귀한 분이 오시면 그 지역 최고의 미녀가 옆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법도이옵니다.”

리안이 옆에서 부가 설명을 해 준다.

“거절하면 모욕을 안 됩니다. 전쟁까지도 불사할 때가 있지요. 참고로 아직 만가 경은 양피지에 사인을 하지 않았사옵니다.”

그 말에 부랴부랴 양피지를 확인하는 공왕.

“이··· 이런.”

옆에 잉글슨의 공작이 있든 말든 체통은 어디 가고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그··· 그래서. 이 섬의 최고의 미녀가 내 수발을 드는 건가? 후······.”

여성 편력이 매우 아주 많이 심한 공왕이었다.

그의 비서들이 모두 미녀로 구성된 것만 해도 그것을 증명하는 바.

이딴 섬의 인구가 많아 봐야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중 미녀라 해 봐야 얼마나 미녀이겠는가.

그런 미녀에게 수발을 받는 것도 고역이었다.

“저희 남작령 최고의 미녀를 소개합니다. 전하.”

그때 거친 바다에서 퐁 하고 뛰어오르는.

“저··· 전하. 위험······.”

갑자기 튀어나온 뭔가에 비서들이 무기를 빼 들고 공왕의 앞으로 나섰지만··· 그 정체는.

“이··· 인어?!!”

공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오오. 내 생애에 인어를 보게 될 줄이야.”

인어는 뭍으로 올라오자 아름다운 다리가 생겨났다.

젖은 머리에서부터 주르르 타고 내리는 물기가 사람을 홀리기엔 충분한 비주얼.

“전하. 모시겠습니다.”

인어 아가씨가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공왕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피부에서 광택이 날 정도.

신성력이 풀파워로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위··· 위험합니다. 전하. 인어는 생각보다······.”

비서가 말렸다.

부루타뉴 공국은 반도로 된 국가였고 인어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괜찮습니다. 공왕님. 특히나 순한 인어입니다.”

왠일로 해리 78,900세가 두 손을 벌리며 돕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요.”

“모든 인어들이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자유를 억압받는 인어만 위험하죠. 어떤 인어들은 신문사에 취업해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인 아이도 있지요.”

“공작 그대가 어찌 아는가?”

“제가 모델 일을 하다 보니 가끔 그런 인어를 마주치기도 합니다. 자, 보십시오. 저 인어를. 방금 바다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공작의 말에 비서들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는 사납고 위험하지만, 자유로운 인어는 인간에게 호의적인 경우도 많았다.

“그··· 그렇군. 바다에서 나왔다면 안전하겠어. 꿀꺽.”

공왕이 침을 삼켰다.

“네. 바다에서 본인 발로 나왔으니까요. 바다는 인어의 영역이니 억압된 인어라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말에 공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겠습니다. 전하.”

“아··· 아직 낮인데······.”

“해는 길고 밤은 짧사옵니다. 밤까지 어찌 기다릴는지요.”

평소 냉소적인 표정을 짓던 인어였는데, 오늘따라 교태를 많이 부렸다.

“큼. 롬에 왔으면 롬 법에 따라야지. 안내해 보거라.”

눈이 돌아간 공왕은 인어의 손에 이끌려 멀어졌다.

비서들도 급히 공왕을 따라 뛰어갔다.

“휴~”

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된 일인가. 저자가 왜··· 아. 미안하네. 그대의 주군이지 참.”

“아마도 스랑 제국의 등에 밀려서 온 것 같습니다.”

공작은 리안의 말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공주라도 줄 모양이군. 거기에 노르망 공작령도 얹혀서.”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후··· 곤란해.”

공왕과 리안의 이해관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여기서 리안이 공왕을 따라 스랑 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다음 수순은 브루타뉴 공국이 잉글슨에게 선전 포고를 할 것이다.

레온 백작령이 쑥 때 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리안이 없다면 레온 백작령은 절대 공국 전체를 상대로 방어해 내지 못한다.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어.”

“협조를 좀 부탁드립니다. 공작님.”

“음?!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저는 잉글슨의 첩보력을 믿습니다.”

“그게··· 무슨······.”

그때.

땡~ 땡~ 땡~

타종 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공왕 전하.”

“크흠. 알겠네.”

인어에게서 해방된 공왕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그 양반 힘도 못 쓸 것 같던데 괜찮겠나?”

“인어 아가씨에게 순한 맛으로 부탁해 놨습니다.”

“아··· 아니. 그럼. 왜 나에게는.”

“공작 전하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공작은 어찌 보면 무임승차 중이니 일 대신 인어를 붙여 준 것이다.

신성력 베터리 충전기 개념으로.

“그··· 그래도. 나도 순한 맛으로······.”

리안은 못 들은 척 앞장을 섰다.

공작 덕분에 기사가 된 선원들을 빡세게 훈련시킬 수 있었다.

신성력이 충만한 인어 아가씨가 열심히 그들을 케어해 줬으니.

철커덩!

부두로 가니 쾌속선이 보였다.

“어엇!! 저 국기는······.”

황당하게도 잉글슨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첩보부?”

잉글슨의 고위 귀족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도 함께.

“제가 잉글슨을 믿으라 했지요.”

“아니. 저들이 올 줄 알고 있었는가?”

“저는 지금 특급으로 관리 대상일 거고. 공왕이 스랑 제국의 황제를 만나는 순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을 겁니다.”

“그 말은······.”

리안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일단 내가 이야기를 잘 해 보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안이 부두로 접근하자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공왕에게 예를 갖췄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매우 짧았다.

자신의 정체 따위는 밝히지 않았다.

공작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자신이 첩보부 소속이란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그래. 반갑네. 생각보다 일찍 왔군.”

“저희 첩보부는 밤낮없이 일한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전하.”

“그래서 잉글슨에선 뭘 가지고 왔지?”

공작은 리안의 편에 서 주었다.

“바로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첩보부답게 덕지덕지 미사여구 따위 없이 깔끔하게 답했다.

“레온 후작을 알바 왕국의 공왕으로 임명한다 하였습니다.”

알바 왕국은 아일리 섬을 부르는 말이었다.

이 작위는 잉글슨 국왕이 가지고 있는 작위이기도 했다.

“단, 작위를 받은 뒤 곧장 브루타뉴 공국에서 독립을 선언해야 하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 말은 간단했다.

아일리 섬을 줄 테니 대신 레온 백작령은 포기하란 말이다.

“그건 곤란한 처사네. 요원.”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온 후작의 식솔이 브루타뉴 공국에 있다네.”

“저희 첩보부가 탈출을 도울 것입니다.”

공작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레온 후작의 명예는 생각해 봤는가?”

“저는 전령이옵니다. 전하.”

“알고 있어. 그대에게 생각이란 기능 따위는 없다는 걸. 이걸 본국에 전하게.”

공작이 서신을 전달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읽어 봐도 좋네.”

첩보부 요원은 양피지를 펼쳐봤다.

거기에는 이곳 만가 섬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이··· 이게 전령 사실입니까?”

“그대들도 바다가 이상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그 말에 첩보부 요원이 움찔거렸다.

“가서 전하게. 레온 후작의 명예를 위해서 브루타뉴 측에서 먼저 선전 포고를 하지 않는 한 레온 백작령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본국의 대답은 신대륙에 가서 듣도록 하지요.”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도 전달하겠습니다. 후작 합하.”

전령은 급히 배에 올랐다.

“아참. 돌아가는 방향은 부두 관리인이 알려 줄 것입니다.”

왔던 길로 그대로 간다면 해류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샤아아아~!

첩보부의 쾌속선은 섬 사이를 지나서 크게 돌았다.

공왕이 적어 준 내용을 요약하자면.

「북대서양의 모든 물길은 이곳 만가 섬으로 통한다.」

이것에 대한 증인이 되어 준 것이다.

“어서 서둘러야겠네요.”

“드디어 신대륙으로 가는 건가?”

“네. 아무래도 우리 공왕 전하도 데려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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