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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71화 (171/253)
  • < 171화 >

    ##171

    스랑 제국의 이황자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아니. 왜 이렇게 파도가 심하게 치는 거지?”

    그가 탄 배는 1급 전열함으로 매우 컸다.

    당연히 배가 큰 만큼 파도의 영향을 덜 받아야 정상.

    배를 한두 번 타 본 것도 아닌데, 폭풍우가 치는 날처럼 심각했다.

    “항법사는 뭐 하는 자이지? 이렇게 화창하거늘. 이리로 불러오도록.”

    잠시 후 기함의 항법사는 이황자의 앞에 무릎 꿇었다.

    “황자 전하. 황송하옵니다.”

    “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니오라. 해류가 바뀌었사옵니다.”

    “응? 해류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것 아니었나?”

    “몇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사옵니다. 작년과 다릅니다.”

    이황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항해를 해야 한다고?”

    “평소의 항로대로 따라간다면 2주의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사옵니다.”

    부유선은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이동할 수 있다.

    물론 속도와 승차감은 포기해야 하지만.

    거기다 오랫동안 해류를 거슬러 이동한다면 자칫 배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허락해 주신다면 일단 해류를 따라 이동하다가 방향을 꺾는 것이······.”

    “자신 있는가? 자칫 잘못 이동하면 이벨 왕국의 영역에 들어갈 수도 있다.”

    참고로 남신대륙은 이벨 왕국의 영향력에 있었다.

    지금 이황자가 이끄는 함대에 전투함은 단 세 척뿐.

    나머지는 모두 보급품을 실은 상선이었다.

    이 세계의 군대는 보급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포와 마총은 가공된 마나석을 주기적으로 교환해 줘야 하고. 쏠 때는 규격에 맞는 탄을 장전해야 한다.

    거기다 창병조차도 대기사를 견제하기 위해 창끝에 마석을 달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대별로 같은 주파수를 가진 목걸이를 차야 하는데, 이 또한 마석이 사용된다.

    물론 신대륙에도 마나석 광산이 있지만, 가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마도 공학자와 설비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지키기 힘드니 차라리 본국에서 만들어 배에 실어 보내는 형태.

    특히 원주민들에게 기술이 유출되면 낭패이기도 했다.

    “위도와 경도는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해류를 거슬러 가는 것보다 어느 정도 해류에 배를 맡겼다가 가는 것이······.”

    “좋네. 그렇게 하게.”

    그렇게 이황자가 이끄는 보급선단은 해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수시로 위치를 보고받았는데, 해류가 이동하는 형태가 참으로 오묘하고 이질적이었다.

    곡선을 그리며 신대륙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이대로라면 해류만 타고 있어도 신대륙에 금방 도착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때.

    “이황자님. 섬입니다.”

    “뭐?!”

    “저 섬은 원래 접근이 불가능한 섬인데······.”

    “그럼. 저 부두와 깃발은 뭐지?”

    “그게 저도······.”

    스랑 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실력 있다는 항법사조차도 영문을 몰랐다.

    더군다나.

    “이··· 잉글슨. 잉글슨의 국기가 계양되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해류를 보아하니 저 섬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탈을 하려고 해도 해류는 섬 주변에서 더욱 거칠었다.

    되돌아가려고 하니 정말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합니까?!”

    그때.

    퍼버버벙!!

    섬에서 경고 사격을 해 왔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로 보인다.

    “낭패로군. 돌파가 가능하겠는가?”

    이황자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기함 함장에게 물었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우리 전투함이 세 척뿐이라 해도 모두 전열함이야.”

    “그렇긴 하오나. 저 섬은 요새화가 되어 있습니다. 웬만한 항구보다 공략이 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항구는 안쪽의 파도가 잔잔하기라도 하지.

    이곳의 파도는 엉망진창이었다.

    저들은 편히 발포를 하겠지만, 이쪽은 흔들리느라 명중률이 형편없을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가 동굴을 파서 그 안에 마포를 집어넣었기에 맞추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일단 배는 아무 곳에나 맞아도 유효타지만, 섬에 쏘는 것은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게 돌파할 경우. 적이 파 놓은 함정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함정이라니?”

    “해류의 흐름으로 볼 때 저 섬 사이를 지나가게 될 것인데, 만약 섬 사이에 쇠사슬을 걸어 놓았다면······.”

    사실 마포보다 무서운 것이 쇠사슬이었다.

    고민을 하는 사이.

    치익!

    “전하. 적 섬에서 통신이 들어옵니다.”

    “일단 연결해 봐.”

    “알겠습니다.”

    치지지직!

    [소속을 밝혀 주시죠.]

    “나는 대 스랑 제국의 이황자다. 그대는 누구인가?”

    [아아. 여기서 또 뵙는군요. 레온 후작이옵니다. 전하.]

    빠득!

    ‘레온’이란 성을 들으니 이빨이 절로 갈리는 이황자.

    자신이 지금 이런 처지가 된 것이 누구 탓이겠는가.

    “너··· 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이황자에게 리안이란 존재 자체가 안 좋은 일이었다.

    “아니다. 그대는 신대륙으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잠깐 휴양차 쉬고 있사옵니다.]

    그 말에 이황자는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은 리안을 견제하기 위해 이 고생을 하며 신대륙으로 가고 있거늘 그 당사자는 섬에서 편하게 휴양을 보내고 있다니 말이다.

    “후··· 그렇군. 길을 허락해 주겠는가?”

    일단 리안은 본인 때문에 이황자가 신대륙으로 간다는 것을 모르니 그냥 보내 줄지도 모른다.

    아무리 리안이 잉글슨의 편에 섰다 해도 치사하게 기습을 하진 않을 거다.

    더군다나 만약을 위해 배 한 척은 왔던 길을 돌려서 제국에 소식을 전하게 할 것이다.

    [음··· 보내 드릴 수는 있사온데, 통행료는 내셔야 합니다.]

    “뭐?!”

    [다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항구 이용료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얼마인가?”

    황자는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분노를 열심히 삼키고 물었다.

    [일반적인 항구 수수료와 비슷하지만, 제가 평화주의자다 보니 전쟁 억지력을 위해 추가 요금을 조금 더 붙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신구에서 나온 가격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슨!!! 조금이라더니······.”

    [생명은 소중한 것이옵니다. 전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세 배라니.”

    [어음은 안 되고 현금으로만 받습니다. 없다면 섬을 지나지 말고 둘러 가시면 되옵니다. 꼭 이 섬이 아니더라도 신대륙에 못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그렇다.

    해류를 거슬러 갈 수는 있다.

    문제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는 것이지만.

    “알겠네. 지불하겠네.”

    군자금으로 쓰려고 가져가는 돈의 절반 이상을 통행료로 내게 생겼다.

    더군다나 지금 여기서 되돌아간다면, 시간은 몇 배로 더 늘어날 것이다.

    섬 근처는 해류가 너무도 거셌기에.

    철커덩!

    작은 배 한 척이 이황자가 탄 배로 접근했다.

    리안이 직접 올 줄 알았더니 배의 선장은 귀족도 뭐도 아니었다.

    그냥 돈만 받고 쌩하니 가 버렸다.

    “저런. 고얀.”

    이황자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그래도 레온 후작보단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거기다 북신대륙은 잉글슨의 해군이 없으니 보급을 받을 방법도······.”

    그렇다.

    스랑 제국의 황제도 그걸 알기에 이황자에게 사고를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보급이 원활한 쪽이 훨씬 더 유리하게 흘러갈 테니.

    “그래. 내 여기서··· 참······.”

    그때 섬의 꼭대기에서 리안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는 것이 얼핏 들리는 것 같기도······.

    -호··· 갱··· 님······.

    빠득. 쾅!!!

    결국 이황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배의 난간을 걷어찼다.

    “으아아아아!!!”

    발이 아팠지만 고통을 참으며 고함을 쳤다.

    -저도··· 반··· 가웠어··· 요······.

    결국 이황자는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다.

    “저··· 전하!!”

    “전하······!”

    이황자가 데려온 미녀들이 이황자를 급히 부축해 안으로 옮겼다.

    ***

    “참으로 친절한 분이라니까.”

    리안은 헤실헤실 웃으며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줬다.

    “화가 많이 나 보이던데······.”

    “아니에요. 흥이 많으신 분이라 그런 걸 거예요.”

    어쨌거나 뜻밖의 수익이 또 생겼다.

    설마 하자니 돈까지 지불하며 이 섬을 지나칠 줄은 몰랐다.

    이황자의 성격이라면 시간이 더 걸리고 고생을 하더라도 배를 돌릴 줄 알았다.

    “많이 온순해지셨네.”

    아마도 황제에게 욕을 엄청나게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보급품을 저렇게 보내 줘도 괜찮은 겁니까?”

    “네에? 저는 싸울 생각이 없는걸요.”

    “적들은 해상 지원의 공백을 틈타 주요 항구와 요새들을 점령하려고 할 텐데··· 그런 곳은 한 번 빼앗기면 나중에 잉글슨의 함대가 복귀한다 해도 되찾기가······.”

    이 섬으로 인해 적들도 보급을 받지 못하게 해서 동일한 조건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해적왕도 그렇게 알고 갔고. 이 섬의 존재를 알고 나서 충격을 심하게 먹은 모양이지만.

    “이렇게 좋은 사업을 그냥 접을순 없죠. 앞으로 스랑 제국 보급선들을 그냥 보내 줘요. 수수료는 조금씩 올려도 되겠네.”

    “정말 괜찮으십니까?!”

    “네. 아주 좋아요.”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잉글슨의 보급은 어떻게 합니까?”

    스랑 제국의 황자는 자신이 움직이는 김에 겸사겸사 보급선들도 함께 데려갔다.

    다만, 리안은 달랑 고잉미샤호 한 척만 가진 상황.

    “신대륙에 잉글슨이 보유한 마나석 광산이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죠.”

    “설마······.”

    레온 백작령에서 온 것은 신컨의 재뿐만이 아니었다.

    “각하··· 아니··· 합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오! 어서 오세요. 홍가55 님. 아직 레온 백작령에 자리 잡느라 한창 바쁠 텐데 불러서 죄송하네요.”

    다름 아닌 홍가55와 소수의 마도공학자들이었다.

    피프티 홍은 세기바라 우르르의 첫 번째 제자였다.

    “아닙니다. 스승님께선 합하의 땅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공장을 세우게 되어 기뻐하고 계십니다. 제가 오랜 시간 모셔 왔지만, 지금처럼 기뻐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거기다 그는 공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뛰어난 마도 공학자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보다 가능하겠어요? 대략 2만 명의 보급품이 필요한데.”

    “고잉미샤호의 설비가 최신이니 공작기계에 동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거고. 제가 데려온 공학자와 고잉미샤호의 기관병들이 돕는다면 몇 회분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당장 신대륙의 병사들이 보급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도 어느 정도 비축은 해 두고 있을 테니.

    거기다 상대와 소모전을 할 생각이 없는 리안이었다.

    “그거면 충분해요. 그보다 그거.”

    “아! 시제품입니다. 각하를 위해 특별히 가져왔습니다. 바람 속성으로 각성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축하드리옵니다.”

    “운이 좋았죠.”

    리안의 시선은 유치원생이 들 만한 작은 배낭에 눈이 가 있었다.

    초기 버전이라 그런지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스승님께 운도 실력이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천재이군요.”

    리안이 허리춤에 손을 올린다.

    “아마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율 대륙에 없을 것이옵니다.”

    허리에 올린 손이 삐긋했다.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니 김이 새 버렸다고 해야 하나.

    “혹시. 지금 바로 타 볼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비행 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그는 리안에게 작은 배낭을 건넸다.

    딸깍.

    그냥 가방 메듯 메면 되는 간단한 형태는 아니었다.

    벗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 팔과 어깨는 물론 허벅지에도 끈으로 고정을 시켜야 했다.

    “오오!”

    마도구이니 자연스럽게 원리가 파악이 되었다.

    파삭!!

    오러를 밀어 넣으니 양쪽으로 날개가 확 펴졌다.

    다만······.

    “나비라니··· 혹시 다른 디자인은······.”

    “연구하는 도중 가장 효율적인 형태라 나비의 날개를 참조했습니다.”

    리안이 게임을 할 땐 거의 후반이 다 되어서야 등장하는 물건.

    그때는 박쥐부터 새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다.

    오히려 나비 날개를 본 적이 가물가물할 정도.

    “계··· 계속··· 이 모양을······.”

    “송구합니다. 합하. 아직까지 그 모양을 따라잡을 만한 디자인은 구현하지 못했사옵니다.”

    훗날엔 개선의 여지가 있을 거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리고.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고 했지?’

    조금 주변 눈들이 부끄러웠지만.

    “아싸~ 호랑나비~ 한 마리가.”

    리안은 그대로 발을 굴러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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