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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69화 (169/253)

< 169화 >

##169

섬의 한쪽 구석에 선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모이라는 건지 영문을 모른 채 아무렇게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왜 모이라는 거지?”

“몰라. 다 뜻이 있겠지.”

그들은 배를 긁적이며 세월아 네월아 리안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럴 때 보면 참으로 태평한 자들이었다.

신대륙으로 가는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스랑 제국의 식민지 함대에 대항해야 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모양.

“오우~ 다들 모였네요.”

리안이 가벼운 걸음으로 나타났다.

작은 체구에 호리호리한 체형임에도 커다란 나무 상자를 짊어지고 왔다.

이럴 때 보면 평범한 꼬맹이가 아니라 확실히 각성한 티가 났다.

저 정도 크기의 상자라면 성인 남성도 들기 힘들 정도이니.

“선장. 그거 뭐요. 먹는 건가?”

“얼마나 맛난 걸 줄려고 이렇게 다 모이게 한 거요.”

“오오. 여기서 회식인가?”

선원들이 땅에 대충 앉아 한 마디씩 던져 댔다.

“다들 기대하세요!! 엄청 맛있을 거예요. 흐흐흐.”

해맑은 리안의 웃음.

그 웃음을 본 선원들이 불길한 느낌을 받았는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런 웃음을 지을 땐 분명 뭔가가 있다.

탈칵!

리안이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뚜껑을 땄다.

내용물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으악!!”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후각이 예민한 선원은 급히 코를 막았다.

헛구역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 하나씩 가져가요.”

“설마··· 그걸 우리에게 먹일 생각은······.”

“오!! 빙고. 맞춘 아저씨가 시범으로 먼저 먹어 봐요.”

해병대 소속의 한 선원이 급히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자신의 주둥아리를 탓하는 중.

괜히 입을 털었다가 총대를 메게 생겼다.

“아··· 아니. 굳이 내가 먼··· 으업!!”

그때 주변에 있던 동료 해병대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사지를 포박했다. 그리고는 코를 막고 입을 강제로 벌리게 했다.

딱히 리안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척하면 척이라고.

“이~롬~드라아아아~~~ 나주우웅에~~”

강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톡!!

리안이 손수 그 해병의 입에 넣어 줬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해병들이 강제로 입을 다물게 했다.

끅! 끄극!

고통스러운 인상을 쓰며 몸을 부르르 떨며 발작을 하는 해병대.

“빨리 삼켜요. 입안에 계속 머금고 있으면 고통만 가중될 뿐이에요.”

“흐끅끅끅!!”

결국 리안의 충고를 받아들였는지 억지로 삼키는 해병대.

“끄극?!”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동시에.

펑!!

사지를 포박하고 있던 동료들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힘이 갑자기 몇 배로 세진 것 같은 느낌.

그 말인즉슨.

“오~ 보급형인데도 한 방에 성공했네.”

아무리 부작용을 최대로 배제한 채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한 것이라지만, 만가는 만가였다.

마나 유저였던 해병대 대원이 순식간에 각성해 전사(기사급-오러 사용자)가 되어 버린 것.

“이··· 이게 정말이요? 선장?”

여전히 맛이 더러웠는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많이 놀란 모양.

그도 칼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그동안 전사가 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 봤다.

기사가 되기만 하면, 고잉미샤호에 보관 중인 계약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아쉽게도 대전사가 되기는 힘들 거예요. 한동안은.”

“아······.”

리안의 말을 대략적으로 이해했다.

그럴 것이 눈앞에서 동료가 각성하는 걸 본 선원들이 너도나도 상자로 달려와 약을 받아 갔다.

그 와중에도 줄을 서는 걸 보니 리안의 영향력이 대단하긴 했다.

“으!!”

“아아악!!”

“끍!!”

“큡뀨!!”

“륵를르륵!!크.”

저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땅에 뒹구는 사람도 있었고. 목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저 맛은 어떻게 안 되겠지?”

“제가 요리에는 별로··· 죄송해요. 도련님.”

베츠가 리안에게 사과를 했다.

“아니야. 요리장 아저씨가 나서도 어쩌지 못했어.”

약간의 개선이야 가능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노고를 들여야 했다.

요리장 정도 되는 인력을 갈아 넣는 것은 확실히 비효율이다.

어차피 저 약은 효율을 위한 약이지 않은가.

최소한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와우!!! 이럴 수가!!”

“아아··· 난 왜······.”

그때 선원들 사이에 희비가 갈리는 것이 보였다.

일반인은 마나 유저로. 마나 유저는 마법사나 전사로 각성이 된다.

그런데, 효과를 못 본 사람도 종종 등장했다.

“실망하지 마세요. 각성하지 못 했다 해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니. 경험이 쌓이면 조만간 넘어갈 거예요.”

게임으로 치면 경험치가 많이 쌓여 있던 사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 거고. 경험치가 적은 사람은 경험치만 늘어난 형태가 된 것이다.

항상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이라 머지않는 미래에 레벨업(?)을 할 것이다.

쪼옥!!

그때 누군가 리안에게 달려와 안기더니 이마에 키스를 갈겼다.

커다랗고 부드럽고 물컹한 촉감.

“어우!! 숨 막혀요!”

“예뻐 죽겠네. 우리 아기 상어!”

이런 촉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배에서 거의 벗고 다니다시피 하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기관장 헤르미였다.

“이왕이면 상어가 아니라 고래라 불리고 싶네요.”

그녀가 놓아주자 리안이 외쳤다.

“고래인지 상어인지는 벗겨 봐야 아는 거고.”

“그럼. 평생 모르시겠네요. 크흠!”

조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장래가 유망하다.’

빙의 전 몸에 비하면 튼실한 것을 본인만은 알고 있었다.

아직 2차 성징이 다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오오~ 자신 있나 봐.”

“당연하죠. 그보다 진전이 있나 봐요?”

“정말. 무슨 마법을 쓴 거야? 그동안 돈을 많이 모았나 봐? 영약을 수백 개나 풀다니.”

“제가 선원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증거죠. 훗!”

솔직히 돈이 많이 들진 않았다.

만가 열매+마초+검은 물고기+약간의 약초를 배합해서 만든 것이다.

거저 만든 것이나 효과를 생각하면 엄청난 돈을 들였다고 착각을 할 수밖에.

간부인 헤르미가 그리 생각할 정도면 평선원들은 오죽하랴.

“흐어어엉. 선장을 따라다니길 잘했어어엉!”

“그러니까. 내가 마나 유저라니······.”

특히나 기관실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감동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전투원이 아니었고. 기술자에 가까운 인물들.

마나 유저도 되지 못해 지식은 있지만, 제대로 취급을 받지 못해 해적선으로 흘러온 사람도 많았다.

마도 공학을 하기 위해선 마법사가 되어야 하는데, 헤르미조차도 마나 유저에 불과했으니.

헤르미조차도 마법사가 되지 못해 마도 공학 산업 현장에선 조수로만 취급받는다.

엄청난 지식이 있음에도 말이다.

“보자. 전사 숫자가 꽤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

리안은 대충 분류를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절반 이상이 전사가 되었다.

“애송이. 드디어 후작에 걸맞은 기사단을 보유하게 되었구만.”

“흐흐흐.”

리안은 항법사를 보며 웃었다.

“아니야. 난 아니라고!”

“오구오구~ 지켜보고 있었다고요!”

항법사는 각성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결국에는 각성을 하고야 말았다.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왔던지라 영약이 들어가자 몸이 순식간에 재구성을 해버렸다.

“으으으.”

항법사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전투에서 열외 되는 일은 없을 거다.

물론 중요한 직책이라 마법사 포트와 함께 후방으로 빠지겠지만.

“부선장 아저씨에게 말해 놓을 테니. 전투에 관한 감이라도 익혀 놓으세요. 때로는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알고 있어······.”

전투에 관한 트라우마가 깊나 보다.

“그보다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가 된 건 좀 의외네요.”

“영재 교육을 받을 때 검술 말고도 마법 이론도 배웠으니까.”

저 트라우마만 어찌하면 쓸만한 대기사를 얻게 된다.

영재교육뿐만 아니라 항상 전투에 노출되어 있던 항법사다.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눈으로 본 것만 해도 얼마나 많겠는가.

“좋아요. 응?”

그런데 한쪽에서 쪼그려 앉아 바닥에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었고.

“나인데빌?”

어쩌다 보니 그녀의 이름은 나인데빌이 되어 버렸다.

간부급인 흐리아 민이 나인데빌이라 부르니 다른 선원들도 나인데빌이라 부르게 된 것.

“뭐야?”

“어엇. 딴짓을 해서··· 죄··· 죄송해요. 선장님.”

그녀는 분류에서도 마나 유저 무리에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마나 유저가 아니다.

“신기해서 그런 거겠지. 이해해.”

“어어······.”

“이능이구나. 손재주가 뛰어나서 그런 건가.”

보통 이 세계에서 힘은 총 세 가지로 나눈다.

기초적인 자연의 힘을 깨닫는 단계 마나 유저.

몸을 도구로 하여 마나의 힘을 다루면 기사나 전사.

외부의 마나 흐름을 자신에게 당겨 사용하면 마법사.

이렇게 분류가 되는데, 가끔 외부의 힘을 끌어서 사용함과 동시 육체를 매개로 하는 자들이 있다.

마법사도 아닌 것이 기사도 아니다.

초능력이라 불러야 할까?

“제··· 제가요?”

“0.01%의 확률을 뚫었네. 축하해.”

“가··· 감사해요.”

소문으로 무성하지만, 이능력자들이 워낙 희귀하다 보니 직접 목격하는 경우는 적었다.

“가공하는 기술인가 보네.”

그녀의 능력은 근접한 물체를 깎는 능력인 듯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닥에 있는 돌을 조각으로 만든 것이 보인다.

“이능을 발현한 뒤 첫 작품인가 보네. 내가 가져도 될까?”

“이런 건··· 부끄러워요. 조각품을 원하시면 제가··· 더······.”

“아니야. 이능으로만 만든 첫 조각품이라 나름 느낌이 있네. 선장실 한쪽에 둘게.”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는 조각이었다.

“오오~ 보는 눈이 있네.”

그때 부선장이 감탄을 한다.

“에이~ 제가 부선장 아저씨보다 안목이 낮으려고.”

“거참. 이 몸은 약탈로 다져진 안목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주변에 있던 선원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조각을 바라봤다.

해적들의 안목은 의외로 뛰어났다.

빠른 시간 내에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파악하고 털어 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오케이. 확정.”

리안은 돌맹이로 만들어진 미완성 조각품을 손에 들었다.

‘손가락이 하나 없어서. 불편했나 보네.’

이능력자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하거나 태생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 많았다.

아쉬움은 갈망이 되고 갈망이 이능력으로 개화하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 이론.

“자자. 이번에 효과를 못 본 사람들은 너무 아쉬워 하지 말고 열심히 전진하세요. 일 년 뒤에 또 보급을 해 줄 테니까.”

“오오오!!!”

선원들이 놀라워했다.

한 번뿐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 주겠다니.

리안에게 충성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이 약은 두 개 먹는다고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고요.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 농땡이 부리지 말고 열심히들 하세요.”

상자에 남은 약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선원들은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강해지고. 가장 빨리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리안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머리에 박혔다.

그럴 것이······.

“각성한 사람들은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세요. 아. 기존에 각성했던 사람들도요.”

리안의 말에 다들 의아해하며 시키는 대로 했다.

“자! 다들 기사로 임명하는 바입니다~~”

“어··· 어··· 그러니까. 선장. 우리가 기사라굽쇼?”

“이 몸이 후작인데, 누가 뭐라 해요. 해적이 기사가 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요?”

능력만 있다면 어디 시골에선 과거를 묻지 않고 기사로 임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도 모자라요. 다들 노력해서 기사가 되세요.”

의도치 않게 출세를 해 버렸다.

해적 주제에 기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펑~!!

그때 부두 쪽에서 마포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리안은 적이라도 나타났나 생각했지만.

“빈 포다.”

토우기슈끼 럽이 말했다.

예포란 말.

아무래도 조만간 종을 타종하는 것으로 체계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뭐가 나타날 때마다 마포를 쏴 댈 수는 없지 않은가.

“가 봐요.”

리안은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몇몇 사람들이 낑낑거리고 있었다.

해적 섬에서 데려온 사람들 중 마나 유저들로 구성된 팀.

리안이 모든 선원을 다 모이게 한 덕분에 그들만 남았던 것.

“캡틴!!”

그들은 리안을 보자마자 경직된 채 도열했다.

“줘 봐요.”

리안이 손을 뻗자 망원경을 건넨다.

“아. 이쪽으로 올 때가 되었지. 참.”

배에는 짐승의 앞발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딱 고양이 모양인데, 맹수의 발이라나.

레온 백작 가문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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