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161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
만약 리건이 뛰쳐나가지 않았더라면 목 하나쯤은 날아갔을 거다.
철거덩. 철거덩.
쇠사슬로 연결된 사람들.
마치 죄수 같았다.
“데스몬드가··· 같은데······.”
항법사가 옆에서 속삭였다.
나름 리안을 보좌하기 위해서 귀족 간에 쓰는 족보 책을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그래, 보이네요.”
대충 알고 있던 리안도 그걸 멍하니 지켜봤다.
백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이의 목에는 쇠사슬로 된 목줄이 채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 기사들이 긴장이 가득한 맹견처럼 으르렁거렸다.
더 웃긴 것은 데스몬드 백작은 땅에 박힌 말뚝에 묶여 자유롭게 이동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주군······!”
리건은 리안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원래 기사였지만, 주인을 바꾼 지 얼마 되었다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음······.”
그런데, 리안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한 좀비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파다다닥! 펑! 퍼석!! 타다다당!!
리안이 그렇게 걸어가자 좀비들은 발작했고. 부하들이 고생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걸어가는 길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산책하는 느낌이랄까.
“당신의 가문은 내 가호 아래 있습니다. 당신이 큰 죄를 저지른다면 단 한 번은 그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리안은 시퍼런 핏줄을 툭 튀어나온 좀비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기사의 가문에 최고의 예.
사실 이런 말 따위를 믿는 이는 없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하는 주군도 없고.
크르르르!!!
좀비의 면상이 리안의 코앞에 크르릉거리며 다가왔다.
당연히 리안은.
‘시부레······.’
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느긋하게 밀어내려고 했다.
“리건. 너희 집안은 참으로 건치를······.”
퍽!!!
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건이 달려들어 좀비의 면상을······.
아니. 자신의 아버지일 텐데······.
동시에.
“도련님!!”
돌발적인 리건의 행동에 샤로트가 리안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훅 당겼다.
그 이후 당연히 항법사도 리안의 옆에 붙었다.
“살벌해라··· 다 목을 잘라서 소금에 절이면 되는 거냐? 애송이?”
“아니요. 저분은 제 어버이와 다름없는 분입니다. 생포~~하~~세~~~요오오~~~”
리안이 확실하게 정리해 주자 부하들이 제대로 나서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릉!!
여기저기에서 도착한 선원들이 거의 동시에 덮쳐 나갔다.
“귀족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면죄부를 이렇게 날려도 되는 거냐.”
“날려도 돼요.”
새로 부하로 들인 리건은 무려 성녀다.
그녀의 집안이 개망나니 집안이라 하더라도 봐줘야 한다.
“저분만 제외하고 모두 목을 베세요.”
“주군!! 죄송합니다.”
반항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크르르릉!!
여전히 이성을 잃은 좀비가 있었다.
“아버지!! 정친 차리세요. 이렇게 정신력이 나약한 분이셨던가요?”
쇠사슬에 묶여 있던 기사 차림의 좀비는 눈을 힐끗거렸다.
아주 잠깐 의식이 돌아온 듯 눈동자가 사방으로 왔다 갔다 했다.
스윽!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자신이 든 검의 칼날을 거꾸로 잡았다.
당연히 그걸 본 리안은,
탕!!
허리춤에서 마권총을 쐈다.
좀비 주제에 할복이라니.
크아아아악!!
당연히 방해받은 좀비는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퍽!!
리건은 다시 칼등으로 자신의 아버지 이마를 쳤다.
크륵!! 크르르륵!!!
신성력으로 두들겨 맞은 좀비는 휘청이며 뒤로 꼬꾸라졌다.
이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건은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전장은 아주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드루이드가 없는 좀비는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레저용 사냥감보다 박진감을 주지 못했다.
투타타타탕!!
아일리 섬의 어느 한 귀족은 오토호스 위에서 우아하게 마총을 쐈다.
“거참.”
애초에 오토호스를 타며 마총을 겨눌 기회는 사냥 때 말고는 없다.
전장터에서는 그럴 기회가 있을 리가.
나중에는 이런 병과를 용기병이라 불렀다.
“각하! 벌써 세 마리째시군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저 지긋지긋한 놈들이 이렇게······.”
“보통이 아닙니다. 그··· 아트로네 백작의 손자 말입니다.”
“그래. 그놈. 처음에는 아트로네 백작과 잉글슨 국왕의 뒷거래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아트로네 백작의 어린 외손자가 무슨 수로 후작 작위와 함께 총사령관의 자리에 앉겠는가.
솔직히 잉글슨의 입장에서도 식민지의 귀족들에게 구심점이 생기는 걸 원하겠는가.
“진짜입니다. 잘못 보이는 순간 끝입니다.”
“거참. 네가 그렇게 봤다고?”
아일리 섬의 어느 한 백작이 황당한 표정을 자신의 책사를 무심히 바라봤다.
이제 대세는 리안이란 말이 된다.
삐~~~~~!
화살 하나가 공중으로 쏘아 올라갔다.
효시.
평온하니 저런 걸 하늘로 쏘아 올렸다.
굳이 비싼 마법 폭죽으로 의사소통을 할 이유가 없었다.
“주군!”
“거참. 이제 한창 즐기려는데.”
병사들이 적들을 몰아치는 와중에 오토호스만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높은 곳에서 보면 장관이었다.
투트트트트
오토호스가 모인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 소꿉장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올라가 앉아 있는 소년, 소녀들.
거기에 옥에 티처럼 어린 몇 명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었다.
“아아. 다들 오셨네.”
리안은 고위 귀족들이 왔음에도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맞이했다.
너희는 아래. 난 위.
“다들 수고가 많으셨어요. 국왕~ 전하~ 께서도 여러분의 노고를 기억하실 거예요.”
누가 본다면 정말 철없는 아이처럼 보일 거다.
특히나 잉글슨의 국왕을 발음할 땐 동네 아저씨를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잉글슨 본토의 귀족이 이걸 들었다면, 국왕 모독죄로 의회에 신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스윽. 스윽.
리안의 건방진 태도에 귀족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씩 무릎을 꿇었다.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었다.
방금 언급한 잉글슨 본토의 귀족도 보인다.
그런데··· 그 와중에 두 다리를 굳게 지지한 채 서 있는 귀족이 있었다.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
탕!!
홀로 서 있는 모습에 리안이 장난감을 다루듯 마총으로 쏴 버렸다.
컥!!
설마하자니 진짜로 쏠 줄은 몰랐다.
맞은 귀족도 대기사라 즉사하진 않았고 그냥 뒤로 벌러덩 자빠졌을 뿐.
서걱!
그런데, 땅에 등이 닿이는 순간 몸과 목이 분리가 되어 버렸다.
“어이쿠··· 저런!”
그걸 본 귀족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잉글슨 국왕이 온다 해도 이딴 행동은 하지 못할 거다.
“얼스타 백작님은 최북단의 영주인데··· 어이가 없네요. 반란군과 손은 잡았었다니. 안 그런가요?”
리안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합하!!!”
누군가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오리엘과 아일레흐 백작님은 돌아가는 즉시 얼스타의 수도를 정리해 두세요. 제가 사람을 보낼게요.”
지금 여기서 리안이 말하는 것이 곧 진실이고 진리다.
만약 조금이라도 토를 단다면 목을 걸고 혀를 놀려야 한다.
특히나 소년의 모습이라 더욱 두려움을 줬다.
툭!!
리안은 커다란 돌 위에서 뭔가를 하나 던졌다.
데구르르르.
목이 굴러갔다.
그 목인 모두가 아는 얼굴.
이 모든 원흉인 데스몬드 백작이었다.
“이거 여러분이 예쁘게 포장해서 본섬으로 보내 주세요. 쯧. 백성들만 불쌍하게 되었네요.”
이미 소금이 가득한 상자에 있는 머리를 굳이 꺼낸 것.
이 의미는 여기 있는 백작들의 공동 서명을 하라는 의미.
스슥.
어느새 주변을 채운 험악한 표정의 해적들.
악귀보다 더한 얼굴들이다.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바위에 대충 기대고 있는 노인.
그 위력적이던 워커맨을 홀로 맡았던 검의 끝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 해적왕.
서걱서걱!
백작들은 생각 따위도 하지 않고 열심히 백지에 무언가를 적어 나갔다.
잉글슨 국왕에게 바치는 보고서였다.
이미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서기를 시켜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다.
그걸 종합해서 국왕에게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백지가 될 예정.
“이거 쓰신 어르신. 이거 너무 오그라드네요. 본인이 잘한 것도 적으셔야죠!! 그리고 이분. 없던 걸 적으면 어떻게 해요!”
리안은 마치 숙제를 검사 맡는 교사처럼 일일이 하나씩 보고는 종이를 던졌다.
백작들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했다.
만약 여기서 조금만 수가 틀린다면··· 자신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칫 멸문할 수도 있었다.
선생님보다 반에서 동급생이 더 무서운 것과 같은 원리랄까.
-이제 아일리 섬은 저 아이 손에 좌지우지되겠구나.
모두 이런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돌아가면 복수해야지! 라는 생각 따윈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었다.
리안의 실력을 다들 몸으로 직접 체감했다.
거기다 리안을 지지하는 소드마스터도 있다.
이건 그냥 일국의 왕이다.
아니 더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고위 귀족을 고기 썰듯이 죽여 버리진 않는다.
물론 돌아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 저 어린 후작이 잉글슨 국왕에게 반기를 든다면?
잉슬슨 국왕이 병력을 보내기 전에 그 백작령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 왕이다. 저건. 지고왕이다. 아일리 섬의 진짜 왕.
“오오. 역시 우리 아일리 섬의 어르신들은 문장력이 좋다니까!! 오구오구 믿고 있었다고욧!”
리안은 몸을 빌빌 꼬며 애교를 부린다.
당연히 그걸 그냥 애교로 보는 이는 없었다.
어떤 백작은 온몸에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친놈인가?’
상상을 해 봐라.
권력을 잡은 어린 꼬마 놈이라면 양계장에서 가장 강한 수탁처럼 아주 오만하게 꼬꼬~~댁을 외치겠지만, 저 소년은 마치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잔치라도 하는 듯 행동한다.
저런 것 어린아이가 아니다.
느낌은 거대한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아래를 깔아보는 압박감.
“아참. 국왕~ 전하~가 사람을 보내 줄 때까지 여기 세바스 남작님이 데스몬드를 돌봐 주실 거예요.”
리안이 세바스의 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이건 그냥 세바스를 공석이 된 데스몬드 백작으로 임명하겠단 말이다.
“토몬드와 오스라거는 제 사촌 형님들이 수습할 거구요.”
이것 또한 마찬가지.
벌써 아일리 섬의 세 백작령이 저 꼬마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 얼스타 백작이 죽어 버렸으니 그 땅도 저 꼬마가 누군가를 앞장세우겠지.
여기서 반대를 한다? 누가?
이제 모두 한 목소리로 잉글슨 국왕을 압박해야 한다.
남은 땅의 공백은 리안이 말한 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거참······.’
황당한 사람은 외조부인 아트로네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자신의 후계를 물려줄까. 밤잠을 제대로 잔 적이 언제였던가?
‘그럴 걱정도 없어졌네.’
두 형제는 아트로네 백작의 후계자를 비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여기 있는 다른 백작들은 모르지만.
어리석고 모자란 놈들.
중견급을 뚫고 상급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도 그 때문이었다.
‘딸아. 네게 내 자리를 물려 주게 되었구나.’
이제 영지로 돌아가면 교회의 차가운 석관에 들어 있는 딸에게 작위를 물려줄 생각이다.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아트로네 백작의 다음 후계는 리안이 되게 된다.
“다들 고생이 많으셨어요! 이왕 고생한 김에 다들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난민들은 데스몬드로 밀어 넣어 주시고요.”
재산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증발해 버렸다. 데스몬드는.
난민들에게 새로 시작하기 딱 좋았다.
“아참. 여기에 없는 백작님들에게 안부도 전해 주시고요.”
이제 이 차는 아니 땅은 제 것입니다.
리안의 표정이 딱 그랬다.
‘잉글슨 국왕 아저씨. 어떻게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