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60
“리하~!”
리안이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도대체 내게 무슨 억하 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방해를 하는 거냐!!”
리건을 빼앗긴 것도 미칠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장에서도 이놈이 나타나 훼방을 냈다.
“나? 데스몬드 반란을 진압하러 온 총사령관인데?”
“네가?!”
실력이야 둘째 치고 어려도 너무 어렸다.
그때 눈에 익은 얼굴이 또 들어온다.
빨간 머리 소녀의 오토호스 뒤에 타고 있는.
“리건?!”
그런데,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세상을 굽어살피어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절대적인 빛.
“도대체 어떻게······.”
사실 드루이드의 주술은 원래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태양 신의 쥬신과 구동 방식으로 대척하기에 상극이 된 것이다.
악령을 퇴마하는 것만으로 본다면.
드루이드 주술은 원혼을 시체에 불어넣어 못다 한 삶에 대한 애착을 달래 준 뒤 성불시키는 것.
태양신 쥬는 정상적이지 못한 모든 것들을 태워 없애 버리는 것.
극과 극.
“뭘 어떻게야. 태양 신이 아끼는 여자를 건드렸으니 넌 아주 조오옷 된 거야.”
리안의 말투가 살랑거렸다.
예전 세계의 케케묵은 밈으로 놀린 것이다.
“정녕 저 아이가 성녀라고? 아니다 저 아이는!!”
드루이드 입장에선 아닐지 몰라도 다른 모든 이들은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 계열을 사용하는 자가 봤을 때 리건의 몸에선 태양신의 향기가 풀풀 풍겼다.
고대에선 저런 이를 성녀라 불렀다.
물론 지금은 그 개념이 거의 사라졌지만.
참고로 남자면 용사, 여자면 성녀라 칭하지만 결국 같은 존재다.
어쩌면 지금의 교황도 용사라 불리면 딱일 것이다.
“그래서··· 내 대규모 술식이······.”
“그건 노. 이 몸이 잘나서고. 성수로 예방 접종을 한 결과물이고. 아··· 난 몇 수를 내다보는 거야?!! 하~”
원래라면 대규모 술식으로 인해 온 사방에서 신규 감염자가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었다.
너무도 멀쩡히 질서 정연하게 잘 싸우고 있었다.
거기다 리안이 드루이드를 찾아 코앞에 있으니 신경이 쓰여 좀비들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지는 중.
같은 좀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투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쿠우웅~
그 지긋지긋하던 워커맨들도 속절없이 쓰러졌다.
단지 총사령관이 등장했을 뿐인데, 전체 병력의 사기가 달라졌다.
“이미 승패가 기운 것 같은데, 그만 항복하는 건 어때?”
리안이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으으으······.”
“아. 그리고 내 부하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더라.”
성녀를 뒤에 태우고 있던 붉은 머리의 소녀.
그녀가 오토호스에서 내려 드루이드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넌··· 저놈과 리건을 납치해 간······.”
“정말로 제가 기억나지 않나 보네요. 아저씨.”
평소 샤로트 같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
“날 알고 있나?”
“그 책의 주인.”
드루이드의 허리춤에 달린 손바닥만 한 책.
“설마······.”
“이제 기억나시나요?”
“샤로트. 많이 컸구나!! 형님의 일은 유감이다.”
“아버지가 죽고 유모와 함께 사라지셨죠. 장례식 땐 나타날 줄 알았는데.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그리고 그 책! 왜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거죠?”
샤로트의 질문에 머뭇거리는 드루이드.
“나중에 다 설명하마. 혹시. 이만한 보석을 보지 못했느냐? 너희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을 반전시킬 수 있다. 이 땅에서 침략자놈들을······!!”
“혹시 이걸 말하는 건가요?”
샤로트가 목에 걸고 있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보석을 보여 준다.
“그래!! 그거다. 어서 내게 다오!! 그것만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저는 지금까지 그 작은 책이 동화책인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었네요. 바보같이······.”
샤로트는 슬픈 눈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늘 하시던 말씀이셨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구현한다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라고. 이 땅 밖에서 온 것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그것은 온전하고 완벽한 조화다. 그것이 자연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 말을 듣던 리안은 게임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래서 감자들이 썩어 나갔구나······.’
감자 흉년.
아주 가끔 아일리 섬의 주식인 감자 흉년이 들고 역병이 돌았다.
흉년과 역병은 한 몸이라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지금 보니 모두 저 이상한 책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해적왕이 된 샤로트가 그 책의 뒤 페이지를 열어 실수를 했을지도.
“아버지는 늘 무고한 사람이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저도 흉년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건 싫고요.”
“너도 형님과 똑같구나! 외세의 침략자들은 적이다! 그들에게 베풀 온정은 없다!!”
그때 리안이 나섰다.
“감자가 모두 썩어 나가면 아일리 섬의 백성들도 죽어. 멍청한 놈아. 그리고 감자가 들어온 덕분에 아일리 섬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알고 있나 모르겠네.”
“흥! 덕분에 개돼지 가축이 되었지.”
“멍충이 아저씨도 아일리 섬의 백성을 개돼지로 보네.”
“자유를 잊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건 아일리 섬의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 인간이 남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아저씨는 누굴 위해 싸우는 거야?”
모순이다.
마치 대의를 위해. 잃어버린 권리와 이 땅의 민족들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은.
“아저씨도 그냥 권력만을 탐하는 위선자네. 애초에 멀쩡한 백성들을 좀비로 만든 것부터가 실격이지만.”
리안은 마총을 꺼내 그대로 쏴 버렸다.
탕!!
당연히 드루이드는 이런 마권총 따위에 당하지 않았다.
녀석은 커다란 사슴으로 변해 뿔로 마총을 막아 냈다.
신기하게도 뿔 근처에 막이 생기더니 총알이 튕겨 나갔다.
“리건!”
리안은 허리춤에서 성검을 뽑아 위로 던졌다.
“네! 주군.”
그녀는 그대로 달려 나가며 레이피어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횡으로 스윽! 그으니.
서거거걱!
사슴의 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드루이드와 태양 신은 정말이지 상극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 줬는데!!!”
사슴은 급히 뒤로 물러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콧김을 뿜어 댔다.
데스몬드 영주까지도 죽었다. 아니 그곳의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었다.
그러니 살려 준 것만 해도 나름 자비를 베푼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차라리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면, 더 명예로웠을 거다.”
그녀의 주변으로 분노 섞인 태양 신의 기운이 펄펄 풍겼다.
뜨겁다.
물리적으로 기온이 올라가진 않았지만, 피부가 따끔거리고 온몸에 열기가 느껴진다.
“젠장!!”
드루이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 여겼는지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동물로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변할 동물도 없어 보인다.
짹짹!
참새로 변한 녀석은 빠르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물론 비만 참새처럼 덩치가 컸지만, 지금까지 변해 온 동물들보다는 아담했다.
파다다닥!!
날쌔고. 잽싸게.
“마세르!”
리안이 외치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세르가 마총을 겨누었다.
성수를 얼마나 퍼부었던지 물이 뚝뚝 떨어졌다.
외조부에게 줄 성수는 없지만, 마총에 퍼부을 성수는 남은 모양.
탕!!!
마총이 발사되고.
파드드득!
날아가던 참새가 바닥으로 파드득 떨어졌다.
부르르르!
참새가 몸을 떨더니 이내 원래의 드루이드 모습을 토하듯 뱉어 냈다
분명 정통으로 맞았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비닐봉지 안에 물건을 넣은 뒤에 뒤집듯 드루이드의 변신은 물질을 다른 차원에 보관하는 것과 비슷했다.
“야~! 찍어. 찍어!!”
그때 옆에서 나타난 항법사.
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파수병들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지금 리안은 잉글슨에서 반란을 진압하는 총지휘관으로 임명된 상태.
보고는 해야 했기에 항법사가 그 일을 도맡고 있었다.
나름 귀족적인 시각을 볼 줄 알기에.
“안 찍어도 돼요.”
“응? 이놈이 원흉이잖아. 이놈을 잡아서 보내면 제대로 보상이!”
실제로는 그렇지만, 외부에서 봐선 그렇지 않았다.
“토사구팽.”
“그건 또 무슨······.”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잡아 먹힌다. 더 이상 제가 받을 보상은 없어요. 주모자를 생포해서 보낸다? 곤란해요.”
공을 높이는 것 이외에도.
“드루이드에 관한 정보는 넘기면 더더욱 안 되죠.”
책자가 잉글슨에 넘어가면, 드루이드가 다시 만들어진다.
어쩌면 국가 시스템을 이용해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만들어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잉글슨이 강해지면 가장 곤란한 것은? 바로 리안이었다.
“샤로트!”
리안이 입을 떼자.
“감사해요. 도련님.”
샤로트가 앞으로 나섰다.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저놈에 의해 타살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야! 내가 죽인 것이······.”
서걱!
샤로트는 그대로 드루이드의 목을 쳤다.
그 와중에도 깔끔하게 베어 낸 걸 보아선 나름 마음이 여린 듯 보였다.
‘나라면, 톱질하듯 썰어 줬을 텐데.’
아니. 고문까지 하며 모든 자백에 사과까지 받아 냈을지도 모른다.
저벅저벅.
샤로트는 목을 가지고 리안에게 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쳤다.
이곳은 전장이고. 드루이드는 적장.
“어··· 그래.”
리안은 붉은 액채를 진득하니 흘리는 목을 받아.
“항법사 아저씨.”
“아니. 내가 왜 이런 뒤치다꺼리를!!”
“아저씨도 무기 들고 싸우실래요?”
“그건 좀······.”
나름 고잉미샤호에서 상급 간부에 속한 그였지만, 싸움은 지지리도 못한다.
“포장해 놔요.”
“으으······.”
항법사는 미리 준비한 함에 목을 보관했다.
와아아아아!!
그때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의 좀비들은 그나마 통제가 되는 편이었지만, 드루이드가 죽자 이제는 그저 짐승처럼 변했다.
더욱 거칠어졌지만, 오히려 위협은 적어졌다.
그저 본능대로 움직이는 동물과 같다고 해야 하나.
싸우던 병사들 입장에선 사냥을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전쟁에서 오락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대충 정리가 끝났고······.”
진짜는 잉글슨 국왕에게 보내야 할 것이 남았다.
“빨리 흩어져서 찾아봐요. 최소 5명씩 뭉쳐 다니고!”
리안이 말하자 즉시 부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남은 사람은 리안과 샤로트 그리고 마세르와 리건과 정도.
“샤로트 괜찮아?”
“네. 도련님!! 헤헷!”
웃음을 짓는 샤로트.
평소의 웃음과 같았지만, 뭔가 달라 보였다.
‘해적왕이 되기 전부터 정상이 아니었구나.’
게임스토리에서 샤로트는 광적인 정신병자라 할까.
리악이 겪은 어린 샤로트도 해적왕만큼은 아니지만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 때문이었나.’
샤로트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병사.
리안의 외할아버지인 아트로네 백작이 시녀로 거두어 주었다.
문제는 어린 샤로트지만,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었다는 거다.
“저놈은 무슨 사이었어?”
“길에서 죽어 가던 사람을 아버지가 거둬 준 거예요. 가족처럼 지냈었는데.”
그런 이가 장례식은커녕 아버지가 죽자 사라졌다.
거기다가.
“제 유모와 결혼을 한다 했었는데······.”
완전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알고 보니 유모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샤로트가 리안에게 집착한 이유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명의 은인보다도, 가족처럼 지내 온 유모도 샤로트를 돌보아 주지 않았으니.
“도련님!”
샤로트는 리안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서 주었다.
“어버님의 유품 아니야?”
“이런 물건인지 몰랐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도련님이 가져가시는 것이 아버지가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샤로트가 리안에게 넘긴 물건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패자의 증표··· 라니.”
이것도 간헐적인 이벤트로 해적왕 샤로트가 잉글슨의 국왕. 그러니까 훗날의 여왕에게 바친 물건.
패자의 증표.
소유자에게 권능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다.
재앙 그 자체이기도 하고.
활성화된 패자의 증표를 가진 인물은 율 대륙에 한 명뿐이었다.
신센롬 제국의 여제 테레지아.
“고마워. 샤롯.”
“고마우면 뭐다?!”
샤로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둥아리를 들이민다.
“하여튼!! 넌.”
리안이 샤로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쿵!!!
그사이 어디선가 충격음이 전해졌다.
이 정도 파장이라면 대기사 간 전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샤로트!”
“네. 도련님!”
샤로트가 창을 반 바퀴 돌리며 자세를 고쳤다.
예전과 달리 창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가자.”
리안 일행은 빠르게 충격음이 난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그걸 본 리건이 갑자기 소리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