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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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샤로트의 어깨를 지긋이 붙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든다.
뭐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드루이드를 상대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드루이드가 저기에 있다.
‘샤로트와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어.’
드루이드가 부하들 없이 혼자 있다 해도 말이다.
오만해도 될 정도로 강한 녀석이다.
“뭘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냐.”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놈과 어찌 결혼을 한단 말이더냐.”
“네 아비는 대의를 따르지 않았다.”
“차라리 죽여라.”
“내 신부가 된다면 이 모든 고통에서 해결이 될 텐데. 참으로 멍청하군.”
고통이 끝난다고? 아니다.
수락하는 순간부터 진짜 고통의 시작이다.
이 세계 마지막 드루이드가 리건을 부인으로 맞이하려는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는 그녀의 먼 조상의 손에 수많은 드루이드가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죽어 가던 드루이드들은 희 가문에 저주를 퍼부었고 원한 형태의 저주는 핏줄을 타고 그녀에게 이어진 것이다.
여기까진 이해를 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두 번째 이유와 합쳐진다면 말이 달라진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몸이 강림하기 좋은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선조가 롬 제국에 선택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세계의 마지막 드루이드가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다.
희 가문의 선조에게 죽은 드루이드의 원혼들이 그녀를 가리키고 있다.
결혼이란 의식으로 리건을 몸을 매개로 그들을 강림시킬 생각인 것.
원혼들이 그녀의 몸에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몸의 지배력을 잃고 심상의 구석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렇다고 원혼들이 그녀의 영혼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그것도 아니다.
차라리 지옥이 났다고 생각할 만큼 괴롭힐 거다.
부들부들.
그 와중에 샤로트는 주먹을 쥐고 몸을 떨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왜 이러는 건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급발진해서 나가지 않은 것이다.
쾅!! 콰아아앙!!!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
해가 뜨자 고잉미샤호가 먼바다에서 해안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해안 포대 때문에 먼 곳에서 공포탄과 다름없는 것들을 쏘아 대고 있는 것이다.
투다다닥!!
누군가 감옥으로 뛰어왔다.
“드루이드이시여. 잉글슨 왕국의 군함입니다!!!”
참고로 고잉미샤호에는 잉글슨 왕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명색이 아일리 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한 리안인데, 국기 한 장 주지 않고 보냈겠는가.
“뭐?! 스랑 제국 때문에 해군은 동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놈들 제대로 하는 게 없군.”
“스랑 제국에서 잉글슨 해군의 발을 묶고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적선은 겨우 한 척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드루이드는 아마도 스랑 제국과 은밀한 교감이 있었나 보다.
“한 척이라······.”
“해안 포대를 의식해서인지 안까지는 들어오지······.”
쾅!!!
그때 거대한 광음이 터졌다.
이것은 바다에 떨어져서는 나올 수 없는 충돌음.
“항구 안까지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 않았더냐!”
“저··· 저도 잘······.”
“쯧. 도대체 이것들은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이러니 잉글슨의 식민지가 되었지.”
드루이드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그 틈에 리안은 다시 감옥 안으로 뛰어내렸다.
“누님. 가시죠.”
“여긴 입구가 하나밖에 없어. 저긴 절벽이야. 난 괜찮으니까 어서 도망가렴.”
“아참.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신센 롬···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으니. 잉글슨 왕국의 전하께서 보내셨어요.”
“뭐라고?”
리건 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뭐라고 이런 어린아이까지 동원해서 구하려 한단 말이던가.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샤로트!”
“앞으로 7초 뒤에 터져요!”
살짝 정신이 이상한 것 외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샤로트였다.
그녀는 포탄이 터지는 간격을 숫자로 세는 중이다.
이것은 미리 약속된 전략.
“지금이에요!!”
샤로트는 화염을 불러일으켜 그대로 벽을 향해 돌진했다.
쾅!!!
녀석의 몸이 감옥의 벽을 뚫는 동시에 밖으로 튕겨 나갔다.
샤라라락!!
그대로 추락하나 싶더니 창살에 미리 묶어 놓은 밧줄이 팽팽해졌다.
“아아······.”
리건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그저 어린 소녀인 줄 알았더니 무려 대기사였다.
“레이디. 모시겠습니다.”
리안이 방실 웃으며 절벽을 향해 에스코트했다.
“미··· 미안. 난 지금 이 가시 월계관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어. 걷는 것조차 힘들어.”
“미인을 그냥 걷게 할 수는 없죠.”
“뭐??? 아앗!!”
자신의 키보다 큰 그녀를 그대로 들쳐 매고는 절벽으로 뛰어내린 리안이었다.
휘리리리릭!!
리건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충격이 없지 실눈을 떴다.
놀랍게도 하품이 나올 정도의 느린 속도로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아직 누굴 안고 날진 못해도. 뛰어내릴 순 있어요. 헤헤.”
“너··· 너도··· 아니. 경도 대기사였군요.”
그녀의 말투는 하대에서 급히 존칭으로 바뀌었다.
그럴 것이 그녀는 남작가의 후계자이자 일개 기사에 불과했지만, 눈앞의 소년은 무려 대기사이다.
최소 자신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란 말이 된다.
어리다고 무시할 순 없었다.
“겨우겨우 대기사가 될 수 있었죠.”
그녀가 듣기에는 조금 황당한 말일 수도 있다.
리안은 이제 사춘기에 들어서기 직전의 아이.
그런 아이가 대기사가 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힘들었다니······.
물론 리안은 나름 힘들었다.
애초에 리안의 잠재력으로는 절대로 각성을 하지 못한다.
순전히 템빨이었다.
타닷!
아주 잠시 대화를 나누자 이미 땅 위였다.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도망가요.”
“어디로··· 어엇?!”
그때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온 샤로트가 그녀를 그대로 들쳐 업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육체 피지컬은 여자인 샤로트가 훨씬 좋았기에.
덜컹덜컹!!
샤로트의 어깨에 올려진 리건은 사정없이 몸이 흔들리는 것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뒤에서 달리던 리안은 그걸 보고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토 쏠리겠네.’
그럴 것이 고잉미샤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못한다.
“속도를 더 내 샤로트!”
“그러다 이 언니 기절할지도 몰라요.”
“죽는 것보단 나아.”
타이밍을 영 잘못 잡았다.
하필이면 드루이드가 한창 포섭 중일 때 도착했다.
녀석은 아일리 섬 침공을 위해 바빴을 텐데······.
‘게임 이벤트였으면 피똥 쌌겠네.’
구출 이벤트는 실패했을 것이고. 결국에는 전공법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아마도 막대한 물량의 상륙시켜야 했을 거다.
리건 희가 없이는 정면으로는 드루이드를 절대로 막지 못한다.
후방으로 병력을 드랍하는 꼼수밖에 답이 없다.
“아저씨!! 항법사 아저씨!!!”
달리는 와중 리안이 소리를 치자.
샤샤샤삭.
저 멀리 수풀에서 온몸에 나뭇가지를 꼽고 있는 항법사가 보였다.
“어서 준비해요!!”
“오냐~”
즉시 오리배가 준비되었고.
“꺄악!!”
리건을 오리배 위에 집어 던지고는 오리배의 줄을 잡고 바다로 달렸다.
통통통!!
고무와 재질이 비슷한 오리배는 바닥에 튕기며 미끄러져 나갔다.
얼핏 보면 재밌어 보이지만, 안에 탄 리건은 오리배와 함께 힘없이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다.
여파로 이마에선 피가 줄줄 흘러 얼굴에 칠갑을 했다.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이번에도 리안은 못 본 척하고 오리배 뒤꽁무니를 따랐다.
끼이이이~~익!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존재감을 뿜는 것이 저 멀리서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리안의 경지가 아무리 저 밑 끝자락의 하급 대기사지만, 대기사는 대기사였다.
샤로트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힐끔 뒤를 바라봤다.
풍덩!!
이내 바다에 도착한 일행은 즉시 오리배에 올라탔고. 키는 항법사가 잡았다.
“샤로트!!”
파도에 출렁이는 오리배지만, 샤로트는 일어나 중심을 잡으며 불을 길게 뽑아 들었다.
실제 창은 아니었고. 불을 창 형태로 만든 것이다.
“간다아아아~!”
샤로트는 완벽 투창 자세로 준비 동작을 한 뒤 그대로 던졌다.
화르르르~!!
화염창은 날아오는 독수리를 향해 날아갔다.
다만, 마법과 달리 형태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샤로트의 화염 특성은 근거리에 특화되어 있기에 화력도 그다지 강하지 않을 터.
화륵!
중간쯤 날아가니 길게 뻗은 화염은 주먹만 한 구 형태로 쪼그라 들었다.
휘이익!!
독수리는 아슬아슬하게 화염구를 피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기민하게 움직이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젠장!! 저게 뭐야?!!”
항법사가 힐끔 뒤를 돌아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럴 것이 독수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크기가 점점 더 커 보였기 때문.
그 크기가 거의 성인 남성만 했다.
날개가 아닌 몸통 그 자체가 말이다.
화르르르!!
샤로트는 다시 화염을 소환해 던졌다.
독수리는 예상했다는 듯이 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화염을 피했다.
이제는 거의 지척까지 다가온 독수리.
“힛.”
그때 샤로트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水’ 이런 식으로 한 손의 손가락 사이로 동시에 3개의 창을 소환했다.
화르르르!!
동시에 세 개를 던져 버리는 샤로트.
저게 가능한 것인지 리안도 어벙벙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샤로트는 근접에 특화된 특성을 가졌지만, 그걸 극복하는 것은 천재의 영역인 걸까.
휙!! 휙!!! 퍼어어억!!
두 개까지는 잘 피해 냈지만, 결국 한 발을 피하지 못하고 바다로 꼬꾸라지는 독수리.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첨벙. 첨벙!!
독수리는 돌고래로 변하더니 오리배를 다시 따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리안은 허리춤에서 마권총을 뽑아 들고는.
탕!!
발사했다.
놀란 돌고래가 주춤하며 속도를 줄인다.
‘먹혔네.’
솔직히 리안의 마권총은 장식이나 다름이 없는 물건이다.
유효 사거리가 30미터 안팎.
그것도 리안의 경우는 워낙 재능이 없었기에 20미터가 한계다.
샤아아아~!!
잠시 속도를 늦췄던 돌고래가 다시 돌진을 해 온다.
마권총의 재장전 시간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샤로트! 접근을 허용하면 안 돼.”
리안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자. 빌려줄게.”
참고로 드루이드와 태양신은 성질은 상극이다.
리안의 레이피어는 주교급 성직자들이 한 땀 한 땀 오랜 시간 신성력을 이용해 정성을 들여 닦은 성검.
“검은 많이 안 써 봤는데······.”
“화이팅!”
샤로트의 주 무기가 창이지만, 침투를 하느라 거추장스러워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어쨌든 리안이 드는 것보다 샤로트가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 판단.
“이렇게 하는 거였더나.”
샤로트는 천재답게 파지부터 자세까지 완벽하게 잡았다.
돌고래가 다가오면 찌를 기세.
샤아아아~!
돌고래는 정면이 아닌 좌우로 점프를 하듯 접근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샤로트를 의식한 탓인 듯 보였다.
지금껏 곰, 독수리와 달리 돌고래의 전투 능력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드루이드가 강하다 해도 변신한 동물의 기본 능력에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을 거다.
청벙!!
그때 낮은 언덕을 타고 바다로 내려온 고잉미샤호.
아까 전 고잉미샤호가 항구 안까지 포격을 넣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수륙양용이기 때문.
적당히 언덕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항구 근처를 때린 것이다.
퍼버버버벙!!
동시에 오리배의 뒤쪽으로 포격을 가했다.
돌고래는 다시 거리를 벌리며 이번엔 갈매기로 변했다.
“빨리 가요!!”
리안의 재촉으로 오리배는 암초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고잉미샤호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흐아아아!!”
긴장 때문에 그대로 갑판 위에 대자로 누워 버린 리안.
어쩌면 빙의한 이후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철퍼덕!
리안의 뒤로 피 칠갑을 한 여자가 갑판 위로 끌려 올라왔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피 때문에 완전히 떡이 져서 거지도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이번에도 시선이 마주치는 걸 살짝 고개를 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끼이이익!
그런데 파수대에 앉아 있는 갈매기 한 마리.
“거참. 집요하다. 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