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155
‘엄마가 귀족은 믿지 말랬는데······.’
간디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용서해 준다는 말은 고통 없이 한 번에 목을 쳐 준다는 것일까?
차가운 금속이 목에 살짝 닿았다.
“그대가 믿는 신은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신인가?”
“네넵?”
갑자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간디바는 놀라 실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물음에 답해라.”
“마··· 맞습니다. 전 이··· 이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교회를 수호하고. 나아가 그대가 속한 국가를 위협하는 자에게 맞서 싸우겠는가?”
“네넵?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앞으로는?”
“기회(목숨)만 (살려)주신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부터 내 기사다. 나 리안 레온은 대 잉글슨 왕국의 후작이자 신센롬 제국의 백작이며 이벨 왕국의 코파나 백작 그리고 브루타뉴 레온 백작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기사 작위를 하사하노라.”
그 순간 모든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자··· 작위가 왜 저래?
-엮이지 않은 나라가 어디인 거야?
-스랑 제국의 작위 빼고 다 가지고 있잖아?
이건 일반 병사들의 생각이었고. 귀족들은 더 놀랐다.
저 작위에 빠진 것이 있으니 바로 교황청에 내린 명예 성기사의 작위였다.
-것보다 기사라니.
더 놀란 것은 일개 창병이 단번에 기사가 된 것이다.
-마총병이 기사가 될 수 있는 건가?
-그보다 저자가 먹은 영약이 뭐길래? 저렇게 순식간에 변태가 가능한 건가?
-그런 영약을 저런 일개 창병에게 먹였다고?
다들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다만, 저들과 다르게 리안은 바로 코앞에 있어서 마총이 터지는 걸 보았다.
참고로 마총은 마나를 다루냐 오러를 다루냐에 따라 불꽃 색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오러였어. 이놈 단번에 각성까지 해 버리다니.’
리안도 솔직히 놀랐다.
마나 유저도 아닌 일반인에서 영약을 먹였다고 마나 유저를 건너뛰어 버렸다.
감각이 매우 뛰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일개 창병이 가장 먼저 언덕을 올랐음에도 살아남은 것이겠지.
“세바스 남작.”
“네. 합하!”
“가서 칼 하나만 가져오세요. 기사가 들어도 빠지지 않는 걸로.”
고잉미샤호도 그동안 꽤 털고 다녀서 귀한 물건들이 많다.
안에 있는 품목들을 써 붙이고 다닌다면, 보물선 취급을 당할 것이다.
“자. 이건 덤이다. 여기서 계약해라.”
“헙!!!”
간디바는 리안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기사가 된 것만 해도 꿈을 꾸는 것 같은데, 큐브라니.
“저··· 정말··· 제게······.”
얼빵한 표정을 짓는 간디바.
리안은 답답해서 그의 귀에 속삭였다.
“닥치고 빨리 계약해.”
변성기가 아직 안 온 어린 목소리였지만, 리안은 간디바에게 있어 그 자체로 두려웠다.
웬만한 귀족은 리안의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많은 작위를 가졌기에.
“아··· 알겠습니다. 합하······.”
정신이 바짝 든 간디바는 얼른 일어나 큐브를 손에 쥐었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일개 창병이었던 그가 어떻게 대기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대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은 마나 유저에서 각성을 해야만 하는데······.
휘이이잉~!!
간디바의 주변으로 산들바람이 불었다.
-어··· 진짜?!!
-저게··· 가능해?
-그보다 정령 갑옷 계약치고 너무··· 약한데······?
사실 조금 애매모호한 상태인 것은 맞다.
한 계단을 건너뛴 상태라 아마도 기사 중에서도 최약체 기사일 것이다.
그래도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헙······!”
계약을 마친 간디바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움찔거렸다.
온몸에 반투명한 갑옷이 걸쳐져 있었다.
리안도 조금 신기한 듯 쳐다봤다.
‘미친. 스텔스라고?’
참고로 간디바가 계약한 것은 바람 속성.
그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특성인 반투명을 얻었다.
비행 능력은 바람 속성의 패시브. 거기에 빛을 굴절시키는 능력까지 얻는다면?
‘생존에 몰빵했네······.’
지금이야 반투명하지만, 숙련이 된다면 일시적으로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 저건 뭐야?
다만 지켜보던 이들은 조금 실망했다.
정령 갑옷은 진화의 가지와 비슷하다.
일종의 기회 비용이랄까.
하나를 얻으면 다른 기회를 잃게 된다.
간디바의 능력은 분명 신기해 보이긴 하지만, 그게 끝이다.
기사란 무엇인가? 싸우는 존재.
그 말인즉슨 전투에 도움이 전혀 안 되어 보였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우오오오오오!!!
다만,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은 함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살짝 부러운 것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저런 능력은.
도둑!
들에게 환영받는 기술이 아닌가.
완전히 투명한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만 해도 침투, 교란, 혼란에 아주 도움이 된다.
바다의 도둑인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에게는 반길 만한 동료인 것이다.
“합하! 이 정도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때 세바스가 기다란 작대기 하나를 들고 왔다.
창은 아니고 봉이었다.
휘이잉~!
아주 잘 휘고 길며 탄력적인 것이 여자들이 아주 환장을······.
“블루급 마도구입니다. 이렇게 길이를 네 배까지 늘릴 수 있고. 오러를 많이 주입하면 원하는 형태로 휘게······.”
세바스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거의 10미터 가까이 늘어난 봉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아··· 아름답다······.”
리안은 절로 모르게 감탄했다. 동시에 불쾌감 한 스푼.
“무기가 뭐가 이렇게 부드러워.”
촉감 때문에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진달까.
“그건 제가 컨트롤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세바스가 땅 속성에 식물계라 그런지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숙했다.
이 정도로 숙련도를 높이라면, 간디바는 꽤 고생을 할 거다.
“이··· 이런 걸 제가.”
간디바는 어안이 벙벙했다.
기사 아니 대기사가 되었고 블루급의 무기를 받게 되다니 말이다.
“닥치고 그냥 받아. 너 말고 보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또 있으니.”
“죄송합니다.”
리안이 다시 속삭이자 간디바는 그대로 봉을 받아들고는 뒤로 빠졌다.
“다음은······.”
***
아트로네 백작가의 작은 논공행상이 끝나고 병사들은 술렁였다.
-어쩌면 나도?
기대감이 증폭할 수밖에.
특히나 마총병이 가장 흥분했다.
두 번째로 영약을 받은 행운의 주인공은 마총병이었기에.
더 놀라운 것은 이후 퍼진 소문이었다.
-글쎄 후작이 모는 오토호스 뒤에 타서 토몬드 백작을 오토호스에서 떨어뜨렸다나. 뭐라나.
기사들은 자존심이 강해 그런 짓을 절대 안 한다.
애초에 마총병 자체를 싫어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기사단의 위용이 훨씬 더 대단했을 테니.
기병이 누리던 영광의 시대는 마총병의 등장으로 저물고 있었다.
“애송이 나으리. 기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항법사가 리안에 물었다.
“나으리? 갑자기 웬 호칭이에요.”
“후작까지 되었으니 그냥 애송이는 아니지.”
“음··· 그건 그렇네요. 그리고 기사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지들은 마총을 안 들 줄 아나.”
이미 귀족들이 개인 무구로 마총에 관심을 두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일부 마니아들이지만, 점점 그 관심사는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오토호스를 타며 마총을 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안도 마권총이 있지만, 웬만해선 오토호스 위에서 쏘지 않는다.
오토호스 자체가 매우 정교한 오러 컨트롤이 필요한 마도구인데, 마총 또한 마도구다.
두 가지 모두를 다룰 수 있을 정도라면, 중견급 대기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럴 거면 정령 갑옷으로 설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랄까.
“귀족 놈들이 과연 그럴까?”
“비싸지면 사치품이 되고. 사치품이 되면 과시하기 좋죠. 이참에 우리가 먼저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곧 있으면 기사들도 마권총을 들고 설치는 시대가 온다.
휠락 마총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리 장전을 마치고 마석을 충돌시키는 기계식으로 발사하는 방식.
대마도구 시대에 아이러니하게 기계가 발전하게 된다.
“일단 시계 장인들부터 알아봐야겠네요.”
이 세계에서도 시계는 더럽게 비싼 물건이었다.
이유는 기계와 마도구의 콜라보로 이루어졌기 때문.
기계공은 기계공대로 마법사들은 마법사들대로 자존심이 강해서 콜라보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훌륭한 마도 공학자를 확보하고 있으니······.”
솔직히 휠락 마총을 만드는 데 마법사까지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마도 공학자들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하긴. 비싼 거에 환장을 하는 놈들이 귀족들이니. 우리 애송이 나으리가 제대로 돈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일단 아래쪽 누님을 찾아가야겠네요.”
리안은 즉시 갑판 아래로 내려가 기관장 헤르미를 만났다.
언제나 부유선의 아래쪽에는 열기로 가득찼다.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웃통을 까고 있었다.
“우리 아기 상어. 여긴 어쩐 일이야? 이 누님의 몸매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리안이 후작이 되고 아일리 섬의 총사령관이 되었어도 해적들의 반응은 엇비슷했다.
본인이 그게 편해서였고. 그걸 해적들도 느끼고 있었다.
이 좁은 배에서 서로 격식을 차리는 것도 피차 피곤한 일.
“누님. 제발 옷 좀 갈아입으세요. 어제도 그 비키니 입은 것 같은데.”
“어멋. 내가 뭘 입었는지 기억해 주는 거야? 참고로 이건 어제 비키니가 아니라 같은 디자인인 거야. 일할 때는 최대한 짧은 게 거추장스럽지 않거든.”
아랫배 부분이 훤히 보일 정도로 특이한 수영복이었다.
진짜 중요한 부분만 딱 가린 느낌이랄까.
“그보다 시계에 대해서 좀 아세요?”
“갑자기 시계?”
“무기사업을 좀 해 볼까 해서요.”
“시계와 무기 사업이 뭐가 관련이 있다고?”
헤르미의 말에 리안은 자신의 마권총을 꺼내 옆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어······?!”
그 순간 헤르미의 눈이 반짝인다.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시늉을 했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리안은 조금 특수한 경우.
‘오토호스+마권총=불편함’이라는 공식이다.
거기다 최근 오토호스에서 마총을 쏘면 얼마나 위력적인지 직접 보여 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너. 너··· 혹시.”
“네. 가능하겠어요?”
“시계의 원리는 대충 알고 있어.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시계가 어떻게 마석과 결합이 되어 움직이는지. 다만, 정교하게 톱니바퀴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
그때 헤르미의 머리에 번뜩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나인 데빌!”
“잉? 그건 흐리아 민이 만든 노래 아닌가요?”
“아니. 악기를 만들어 준 아이가 ‘나인’이라 부르는 아이야.”
“이름이 나인인가요?”
“그건 아니고. 보면 알 거야.”
리안은 헤르미가 알려 준 대로 갔다.
어디선가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흐리아 민이 만지던 전자 기타 소리와 비슷했다.
아마도 손을 보고 있는 것이겠지.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기타를 내밀다가 화들짝 놀란다.
아마도 흐리아 민일 줄 알았는데, 배의 선장인 리안이 들어왔으니.
“서··· 선장님께선 여··· 여긴 어쩐 일로······.”
그녀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숙녀의 방에 기별도 없이 온 것은 미안해. 다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고잉미샤호는 2교대로 움직이는 중이다.
지금 이동하는 곳은 부선장이 장악하고 있는 올몬드 백작령.
거의 항상 피곤한 상태였기에 이곳 기관실까지 내려올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시계 톱니도 만들 줄 알아?”
“시··· 시계요?!”
소녀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순간 사라진 손가락을 가렸다.
“혹시······.”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맡겨만 주세요.”
참고로 리안의 예전 세계와 이 세계의 시계 금속은 다르다.
마나가 흘러야 하기 때문.
이것이 시계가 비싼 것에 한몫했다.
다시 말해 금속을 가공하는 법도 다르다.
액체 상태에서 유도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럼 부탁한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준다면 너도 간부로 승진시켜 주지.”
“저··· 정말이요?! 전 싸움은 할 줄 모르는데······.”
“우리 해적단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나 보네.”
고잉미샤호는 일개 해적단이 아니다.
리안은 세 개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고 그 영지의 상위에 고잉미샤호가 있는 것이다.
일종의 움직이는 수도.
다시 말해.
“우린 기업형 해적이다. 그러니 싸움 말고도 다른 걸 잘하는 간부가 필요하지.”
그때 방송이 들려왔다.
[선장. 부선장이 마중을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