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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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물을 담을 수 있는 통이란 통은 다 징발해 놓은 상태다.
성수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배에 물을 담았다가 부으면 된다.
물론 그냥은 안 되고 성배를 들고 있는 자의 힘이 조금 소모된다.
마나든, 오러든, 다른 종교의 신성력이든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신관이 성수를 만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든다.
아마도 1% 미만이지 싶었다.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걸로 악령을 쫓을 수 있으니 물린 병사가 있다 해서 감금하거나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무기에 발라서 써도 되고요.”
당연히 백작을 따라나선 종군 사제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명예 성기사는 정식으로 신의 기적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다.
주교급 사제들도 성수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거늘.
“수습 사제도 만들 수 있는 저급입니다. 너무 기대는 하지들 말고요. 다만, 악령에 특화되어 있으니 그걸 인지하고 잘 활용하시길.”
성수는 사제의 성향에 따라 성능이 매우 달라졌다.
유통 기한도 그리 길지 않지만, 어떨 땐 포션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아무리 수습이라 해도 저 정도의 성수를 만들려면······.
성직자들은 엄청난 양의 성수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리안이 성기사가 된 것도 이상했다.
명예 성기사는 공이 없는 자에게 주지 않는다.
리안과 같은 꼬마가 교황청에 공을 세울 일이 뭐에 있겠는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설마··· 고대에 존재했다는 용사나 성녀와 같은???
고대에는 인간이 살기 팍팍했다고 한다.
신에 대항하는 각종 신비들이 많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
인간을 살아남기 위해 신께 기대었고. 신은 보답했다.
덕분에 인간은 번성했고 발전했다.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것이 바로 대 신센롬 제국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이 발달한······.
“아트로네 백작님.”
리안은 사제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아트로네 백작에게 지휘관 막대기를 넘겼다.
후작의 지휘봉이라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아무 막대기에 끈을 대충 묶어 만든 거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다른 귀족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다.
먹힌 것인지 다들 ‘잉글슨 국왕이 직접 하사한 건가? 매직 아이템인가? 뭐지?’라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
“제가 없는 동안 지휘를 부탁드릴게요.”
리안이 외손자이지만, 자신을 외조부가 아닌 한 명의 백작으로 대했다.
그러니 아트로네 백작도 외손자가 아닌 아일리 섬 총지휘관으로 대접할 수밖에.
“알겠습니다. 후작 합하가 돌아오실 때까지 아일리 섬을 노리는 백성들을 지켜 내겠나이다.”
아트로네 백작은 리안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성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무엇으로 전설의 워크맨을 물리친다는 것인지. 어떻게 후작이 되고 또 어떻게 아일리 섬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는지 등등을 말이다.
투우우웅~!
지휘봉을 받으며 힘을 개방했다.
이렇게 상급의 경지에 오르게 해 준 것도 리안이었기에.
“아니······!!”
“이 정도의 기운은······.”
“아트로네 백작이 상급이라고?”
주변에 있던 다른 백작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아일리 섬에 상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이 있긴 했는데, 무에 반쯤 미친 사람이다.
가문에서 어릴 때부터 등골이 휠 정도로 전폭적 지원을 했더니. 가주를 동생에게 넘겨 버리고 매일 수련만 했다.
결국 상급에 올라 아일리 섬의 왕실에서도 함부로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큰 전쟁이 나면 호출을 하기도 했고.
다만 가성비가 좋냐면 그렇진 않았다.
전쟁에 참여해 지원을 받는 만큼 또 본인이 그만큼 써 버리니.
그 가문 입장에선 완전 계륵 같달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트로네 백작처럼 열심히 영지를 운영하는 사람이 상급에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니면 머리가 살짝 맛이 가면 가능할지도.
이 세계는 정신병도 능력이 되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구요. 할아버지.”
리안은 살짝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럼··· 이만··· 이 아니구나.’
리안은 그만 떠나려고 하던 찰나, 논공행상을 하지 않은 걸 잊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다른 백작가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해야 했다.
고잉미샤호는 수도의 남문 앞에 있었고. 리안의 영향력에 있는 부대는 사열 중이었다.
떠나기 전에 대략적으로나마 점검을 해야 하니.
“다들 그럼 부탁드립니다.”
리안이 인사와 함께 축객령을 내리고 백작들이 고잉미샤호에서 내렸다.
그와 동시에 리안은 아트로네 백작가의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첫째와 첫째의 병력은 없었지만, 알베찰 요새에서의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둘째의 부대에 있었다.
“간디바는 앞으로 나오도록!”
참고로 이곳에 사열한 병력은 아트로네 백작군뿐만 아니라 오스라거의 투항병들도 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을 내리는 이유는 사기와 리안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물론 행군 중에 약탈을 용인해 줬기에 병사들의 주머니는 이미 두둑한 상태.
병사들 입장에선 매우 만족스러운 전쟁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저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르니 간디바는.
달그락!
“어이쿠!!”
화들짝 놀라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찌 보면 대형 사고나 다름이 없었다.
높으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다니.
“죄··· 죄송.”
“상관없으니 이리로 올라오도록!”
리안은 나름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며 간디바를 고잉미샤호의 위로 호출했다.
백작들도 각자의 진형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무슨 일인가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시선을 두었다.
“죄··· 죄송합니다. 후··· 후작 합하······.”
간디바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숨을 껄떡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방금 창을 땅에 떨군 것 말고도 뭔가 있으니 자신을 불렀지 않겠는가.
“그대는 알베찰 요새 전투에서 가장 먼저 언덕에 오른 공이 있다. 그리고 끝까지 용맹하게 싸워 아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제··· 제가요?”
아마도 언덕에 가장 먼저 오른 것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끝가지 잘 싸운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잠시라도 멈추면 뒈질 것 같아 열심히 땅을 구른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이것은 약속한 보상이다. 받아라.”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나무 상자.
“지금 먹어라.”
영약이 무조건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땐 몸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약은 동시에 독이기도 하니.
아주 낮은 확률로 발작, 호흡 곤란, 기도 폐쇄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건 조합한 것이니까. 혹시 모르지.’
순수한 만가 열매라면 부작용을 일으킬 확률은 없다고 보면 되지만, 이것은 마초 잎과 검은 물고기의 조합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부작용 확률은 아주 조금 올라간다.
세이나와 인어 아가씨 그리고 다른 백작들이 데려온 사제들이 있으니 여기서 먹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애써 논공행상을 했는데 죽기라도 해 버리면, 리안의 이미지에 타격이 오니.
“가··· 감사합니다······?”
간디바는 어벙벙하게 나무 상자를 받았다.
이런 걸 자신이 받아도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기사 나으리들이나 못해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 마총병들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그저 일개 창병에 불과했다.
꿀꺽.
일단 시키니 입에 털어 넣긴 했다.
“쿠아아악!! 컥럭루카크흠흑!!!어어어어엇트느허거!!”
먹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쓰고. 시큼하고. 톡 쏘고. 역했다.
차라리 썩은 고기를 먹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커헙! 헙! 헙!!”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는 간디바.
그걸 지켜보던 백작들과 병사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보니 논공행상 같은데, 공을 세운 병사를 죽여 버린다?
그리고 반응이 꼭 극독을 먹은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리안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뒤에 인어 아가씨와 세이나가 있었는데, 둘 모두 나서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그냥 맛이 더럽게 없어서 몸이 놀랐을 뿐이다.
오히려 상태를 보니 약발이 잘 받은 것 같다.
“헉!! 제가 살아 있는 겁니까???”
간디바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 약이 혀에 닿는 순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노력과 고통 없이 강해질 수는 없다. 그 정도 대가로 강해진 것을 고맙게 여겨라. 자, 받아라. 공포탄이 장전되어 있다.”
리안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마권총을 넘겼다.
“이걸··· 왜······.”
“주는 건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가진 전리품이니. 쏴 봐.”
“저··· 저는 마총병이 아닌데요······.”
오늘 참 황당한 일을 많이 겪는 간디바였다.
그것도 짧은 순간에.
“······.”
리안이 무표정으로 압박을 주자 얼떨결에 마권총을 받아들었다.
“혹시 모르니 저쪽으로.”
빈총을 맞으면 3년간 재수 없단 말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마냥 미신이라기보다, 장난으로라도 사람에게 겨누지 말란 뜻이다.
“아··· 알··· 어이쿠!!”
탕!!!
마총을 건네받다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버린 간디바.
“아씨!!! 삼 년간!!!”
리안이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물론 이 미신은 이세계에 떨어지기 전 세계의 미신이었다.
리안도 군필자였으니······.
“이··· 멍청한 놈이!!!”
놀란 둘째가 급히 달려와 간디바를 걷어찼다.
리안의 예전 세계에선 그저 미신이지만, 이 세계에선 목을 쳐도 할 말이 없는 행위.
특히나 리안은 고위 귀족이다.
“흐업!!”
간디바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굴렀고 리안의 둘째 외사촌은 헛발질을 했다.
‘으악!! 피하면 안 되었는데······.’
간디바는 자신도 모르게 피한 스스로가 원망이었다.
이제 고문까지 받다가 죽을지도 몰랐다.
짝!!
둘째는 간디바를 일으켜 세워 뺨을 때렸다.
그걸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스럽게 바라봤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공포탄이 든 마총이라 해도 일개 병사가 후작에게 발사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실수라도 말이다.
두 번째는 같은 이유로 가난해 보이는 창병이 마총을 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미 20대 근처의 가까운 나이의 늦깎이에.
그 말은 리안이 건넨 약으로 마나 유저가 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리안이 준 보상으로 리안을 쏘다니 말이다.
“형님. 좋은 날이지 않습니까. 벌로 3년간 제게 봉사를 하게 해야겠습니다.”
“아··· 그래서 3년이라 했구나··· 내가 괜히 나섰구나.”
“아니에요. 그럴 만했어요.”
솔직히 둘째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뜨는 기분이었다.
그럴 것이 저 병사는 자신의 직속이지 않은가.
자칫하다간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다른 병사들도 같았다.
같은 소속의 동료 병사가 대형 사고를 쳤으니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벌로 열심히 모은 전리품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진정한 고문관이었다.
“미안하게 되었다. 내가 병사 교육을······.”
“원래 이런 고문관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리안은 간디바를 유심히 바라봤다.
간디바는 당연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해 사고 친 강아지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변수는 필요한 법이니.’
리안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은 무모한 경우가 많았다.
현질을 조금만 했더라도 각종 아이템들로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했겠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약간의 도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무모함에도 절대로 가끔 진짜 운에 기대야 할 때가 있었다.
‘이런 캐릭터가 가끔은 도움이 되지.’
성격에 문제가 있는 캐릭터들은 가끔 돌발행동을 할 때가 있었고. 게임 AI조차 그걸 예측하지 못해 약간의 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거기다가 PvP에서는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현질을 안 하다 보니 돌발 변수에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라. 그냥 평생 노예로 부려 먹어라.”
“노예라니요. 방금은 저도 손이 살짝 미끄러졌는걸요. 마냥 이 병사의 잘못도 아닙니다.”
거짓이다.
마총을 자주 만지는 리안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긴장한 간디바의 실수.
‘감사합니다. 흐으으으.’
간디바는 속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총이 미끄러진 것은 자신의 손에 다 넘어와서란 걸.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후작님··· 흐으으으.’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간디바는 무릎을 꿇어라.”
“네!! 합하.”
그런데, 간디바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리안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