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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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미샤호가 토몬드의 수도에 도착하자 시체 태우는 냄새가 자욱했다.
좀비들이 죽었는 줄 알고 방치했다가 회복해선 다시 공격하곤 했다.
“꼬마. 늦었구나.”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라고요.”
고잉미샤호의 갑판으로 풀쩍 뛰어 오른 해적왕의 물음에 리안이 답했다.
“세상이 망하려나? 좀비 따위가 튀어나오고 지럴인지.”
“좀비가 아니에요.”
“음? 그럼 저건 뭐냐?”
“숲에서 죽은 동물들의 악령이 빙의한 것이죠.”
아마도 매개체는 타액으로 전염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로 추정된다.
물론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말했다간 개소리 취급을 받겠지만.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좀비 바이러스도 말이 안 되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동물의 영혼이 들어간다니.
“그딴 게 가능해? 인간의 악령도 쉬이 빙의하기 힘든데.”
“드루이드가 사라지며 실전한 기술인데, 어디 하나가 남았나 보죠.”
“거참. 좀비보다 더 못 믿을 이야기군. 드루이드라니.”
아일리 섬의 지고왕이 죽으며 마지막 드루이드도 자취를 감췄다.
“그래도 늦지 않았나 봐요. 재미 좀 보느라 아슬아슬할 줄 알았더니.”
리안이 군데군데 타오르는 시체 더미를 보며 말했다.
“흥. 역시 애송이 해적다운 질문이군. 진정한 베테랑 해적은 효율적으로 약탈하는 법. 쓸데없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긴. 해적왕 할어버지가 직접 이끄는 해적들이라면 안 봐도 알겠네요.”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 소식을 듣고 재산을 챙겨 도주하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
“리··· 리안아!!!”
둘째가 리안을 보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해적왕에 천 단위의 해적들을 보니 아찔했겠지.
열심히 수도를 털어 놨는데, 빼앗기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을 거다.
“오오~! 형님. 무사하셨군요.”
“네가 시킨 대로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으려고. 큰형님이라면 아마 안 시키는 짓을 했을 거다.”
“제가 그래서 작은 형님을 이쪽으로 보낸 거라니까요. 헤헤.”
리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대충 적응도 된 것 같으니까. 곳곳으로 사람을 보내 징병을 하세요.”
“음?! 그게 무슨 말이더냐.”
“형님. 지금까지 본 것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일부일 뿐이지.”
그 말에 얼굴이 허옇게 질리는 둘째였다.
“후방으로 흘리면 다른 영지들까지 피해를 볼 거예요. 드루이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 진짜 전염병처럼 퍼질 테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주술을 펼쳤을 거다.
일정 거리 안에 있는 악령들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악령은 독단적으로 행동할 거다.
‘아일리 섬의 인구 1/3이 죽어 나갔지.’
게임에서 드루이드 이벤트는 매우 낮은 확률인데, 일단 발동이 되면 걷잡기 힘들 정도로 퍼진다.
거의 남쪽 지역은 초토화된다고 보면 된다.
“난민들은 최대한 방어선 안쪽으로 몰아넣고. 요새마다 병력을 배치해야 해요.”
초반에 진압을 못 하면 진짜로 아일리 섬의 인구 1/3이 날아간다.
난민을 만든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말로 피난을 가라고 한다 해서 들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마을에 숨거나 야산에서 버티다 잠잠해지면 다시 마을로 돌아갈 자들이 천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몬드의 감염자를 줄이는 것이다.
탈 물질이 주변에 없으면 불이 번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 내가?!”
“그럼 이곳 방면의 사령관이 누구예요? 형님이지.”
“으··· 응?”
“백작위를 포기하고 물러나시겠어요?”
“아니야. 맡겨만 줘!! 내가 할 수 있어.”
둘째는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저런 행동은 좀 무식한 첫째가 어울리겠지만, 나름대로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 저런 행동일 거다.
첫째를 매우 싫어하는 둘째지만, 영향을 아주 안 받지는 않았다.
“오. 역시 둘째 형님!”
둘째는 수도로 빠르게 왔지만, 그 과정에서 현지 보급이란 이름으로 약탈을 자행했다.
그것도 모자라 해적들이 뒤따르며 남은 걸 싹싹 긁었다.
이제는 강제 징병에 강제 이주까지 시키려 한다.
이 모든 악명은 리안이 아니라 둘째가 짊어질 것이다.
“화! 이! 팅!”
리안이 두 주먹을 귀엽게 들어 올리며 응원해 줬다.
***
시간이 지나는 만큼 악령이 등장하는 빈도와 숫자도 늘어났다.
그래도 딱히 걱정이 없는 것이.
퍼버버벙! 펑!!! 펑!!!
고잉미샤호의 포격과.
-이런 고약한 놈들!! 왜 이렇게 질척이는 거야?
1인 군단까지는 아니라도 1인 연대의 위력을 자랑하는 해적왕과.
-젠장!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난전에 능한 해적들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막았다.
아마 이것들을 조종하는 드루이드도 멈칫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상하다. 올 때가 되었는데.”
그 증거로 어느 순간부터는 잠잠해졌다.
어설프게 보내는 것보다 최대한 끌어모아서 침공해 올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흘리는 녀석도 많을 거다.
그런 놈들은 인간을 찾아서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솔직히 무서운 것은 이놈들이다.
인간을 섭식할수록 점점 더 강해지기에 더욱 골치 아프다.
“선장님!! 귀빈들이 도착했습니다.”
때마침 각지의 백작들이 도착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느꼈는지 군사와 떨어져 먼저 도착한 백작들도 있었다.
아일리 섬의 백작령은.
얼스타, 일레흐, 오리엘, 브레이프, 데르, 메이요, 이와우네, 아트로네, 에나스, 토몬드, 오스라거, 레인스타, 올몬드, 데스몬드로 총 14개가 있다.
고잉미샤호에 언급한 대부분의 백작들이 모였다.
“토몬드 백작이 안 보이는군.”
“올몬드 백작은 어디 갔지?”
“오스라거 백작도 보이지 않아.”
당연할 것이 위 세 백작들은 리안이 슥삭한 상태다.
“그들은 반란에 연루되었습니다.”
“음?!!”
리안의 말에 다들 놀란 눈치였다.
잉글슨에서 해적왕까지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망타진 된 모양.
“그럼. 데스몬드만 남은 건가?”
“잠깐. 에나스 백작은 왜 안 보이는 거지? 설마 에니스 백작도?”
“아닙니다. 그곳도 지금 공격받는 중입니다.”
에나스는 토몬드의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데스몬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국경 간 거리가 짧았다.
“심각하군. 듣기로는 민중 봉기라던데······.”
“허··· 무지렁한 백성들이 어떻게······.”
“기근이라도 든 것인가?”
“감자에 병충해가······.”
리안에게 직접 묻는 백작은 없었다.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걸 리안이 끼어든 것이지.
다들 불편한 것이다.
리안이 총사령관임을 알지만, 해적왕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누가 봐도 진짜는 해적왕이 틀림······.
“거참. 뭐가 이리 시끄러운지.”
“······.”
해적왕의 비아냥에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사실 해적왕은 그저 별명이지 진짜로 왕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와 서해의 해적들 위에 군림하는 자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가.
“후작 합하. 어떻게 할 겁니까.”
리안에게 물었다.
모두 입이 쩍 하니 벌어졌다.
그럴 것이 누구도 리안에게 합하라 존대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기들끼리 소근거리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 알아서들 막고 있어요. 저는 다녀올 데가 있으니.”
“음?”
해적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데스몬드의 거의 모든 백성들이 악령에 침식당했어도 여기 모인 백작들이 힘을 합한다면 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군사가 다 도착하지 않았지만, 3만이 넘어가는 대군이다.
더군다나 꽤 많은 상비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차라리 적이 집결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는 것이······.”
“좀비처럼 보이는 악령만 적이 아닙니다. 제가 얻은 첩보로는 워커맨이 있습니다.”
“······!!”
리안의 말에 백작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물론 워커맨이 뭔지 모르는 자들도 있었지만, 아일리 섬 전통 귀족들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드루이드의 최종 병기.
“이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겁니다.”
워커맨은 푸르게 불타는 거대한 허수아비다.
다만, 나무가 아니라 인간을 연료로 쓴다.
“악령이 모두 죽기 전에는 꺼지는 법이 없을 테니.”
악령과 함께 운용한다면, 최종까지 살아남아 싸울 것이다.
거기다 악령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죽은 아군의 시체까지도 제물이 된다.
“교··· 교황청에 도움을!!”
백작 중 하나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아일리 섬 전통 귀족이었는데, 그는 가문에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워커맨은 정말이지 최악의 주술이었다.
스릉!
리안은 그대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안목이 있는 자들은 리안이 뽑은 검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봤다.
은은하게 풍기는 태양 신 쥬의 기운이 갑판 주변으로 퍼진다.
타닥타닥!
뜨겁지 않은 열기가 주변 공기를 곳곳을 태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악령이 타고 있어······!”
“서··· 성기사!”
“총사령관이 성기사라고?!!”
참고로 좀비에게 물리기만 해서 악령에 빙의하지 않는다.
매개체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주변의 악령이 깃들면 좀비처럼 변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주술이지만, 어디에나 죽은 동물의 악령은 존재했다.
동물이 아닌 인간도 악령이라면 깃들 수 있다.
다만, 그럴 경우 주술사의 통제에 쉽게 벗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참고로 이 주변에 악령이 넘쳐 흐르는 이유는 빙의했던 인간이 죽으며 몸에서 빠져나온 것들이다.
같이 소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힘을 조금 잃고 새로운 숙주를 찾아다닌다.
“저는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임명된 성기사입니다. 그러니 다들 안심하고 저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다들 교황청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 알지만, 과연 이 먼 곳까지 지원을 해 주겠냐는 것은 회의적이었다.
잉글슨의 국왕과 교황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거기다 도와준다 해도 거리가 있다 보니 언제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아아. 왜 리안 레온 후작 합하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는지 알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곧장 수긍했다.
오해가 있긴 했지만, 잉글슨 국왕이 성기사인 리안을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잉글슨 국왕은 그저 단순히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리라 알고 있지만.
“그러니 다들 저를 믿고 버텨 주십시오. 공격보단 수비 위주로 부탁드립니다.”
리안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부탁했다.
그나마 워크맨은 속도가 매우 느렸기에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릴 것이다.
물론 작정하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연료가 많이 든다.
그 연료는 바로 인간의 육체이고.
전투 이외에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전진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에코 모드랄까.
“해적왕 할아버지.”
리안이 해적왕을 편하게 부르자.
“오냐.”
해적왕도 다른 귀족 앞임에도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그걸 본 백작들은 상당히 놀란 눈치.
“제가 오기 전에 워크맨이 나타나면 부탁해요.”
“드디어 쓸 만한 놈과 붙어 보는구나. 요즘 영 정체가 되어 답답했는데 잘되었어.”
해적왕이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흥. 드루이드가 그렇게 강했다면, 자취를 감췄을 리가 없다.”
여기에는 조금 오류가 있다.
그들이 멸망한 것은 드루이드들의 작전이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흉.
악령 주술의 단점은 악령이 있어야 하는데, 악령은 소모된다.
숙주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멀쩡하지도 않다.
그런데, 드루이드들은 무한하다 여겨서인지 아주 밑 끝까지 악령들을 뽑아 썼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악령에 의한 사고가 잘 없을 정도.
‘그래도 공백기 동안 많이 쌓이긴 했을 거야.’
리안은 주변을 훑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성기사의 검을 뽑는 순간부터 바글바글한 악령들이 느껴졌다.
그저 존재만으로는 인간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지 못한 약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지만, 숙주가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방심하진 말아 주세요. 드루이드가 바보가 아니라면, 건조한 날에 쳐들어올 테니.”
“아일리 섬에 건조한 날이라니.”
“그러니까 조심하셔야죠.”
참고로 아일리 섬은 습하고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당연한 소리랄까.
워크맨의 약점은 물이지만, 동시에 물 속성을 사용하는 대전사도 워크맨이 약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날씨냐에 따라 기복이 상당히 심하다.
“오냐. 무리하지 않으마.”
“웬만하면 전장이 될 만한 곳에 수로를 파 놓으세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소드마스터는 그 자체로 강하지만, 속성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저건 성수입니다.”
리안이 고잉미샤호의 옆에 있는 놓인 물통들을 보며 말했다.
종갓집 독도 아니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무슨··· 성수를··· 걸레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