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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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처음 언덕에 오른 병사가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대도 스위치가 완료되었고 창병이 전열로 나오며 격렬했던 전투는 정적으로 변해 갔다.
“예비대를 우익 오른쪽으로 보내세요.”
“저긴 이미 우리가 이득을······.”
소수의 병력이 다수의 병력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확실한 이득이다.
“상대도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의미가 없죠. 일단 밀어 넣어요.”
살짝 아쉽긴 하지만, 위기의식은 느끼지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리안의 명령에 따라 예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측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예비대를?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사기가 올랐으니 그 사기 덕을 보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기는 전염이 된다.
잘 싸우고 있는 전투에 훈련이 덜 된 부대가 합류한다면 그 사기에 취해 잘 싸운다.
그리고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기에 흐름이란 것도 존재했다.
물리적인 유리함과 상관없이 정신적 영향으로 인해 승패가 갈리기도 한다.
이런 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흥! 눈에는 안 보이는데, 아트로네 백작이 저기에 있는지도 모르겠군. 저런 구닥다리 정신론을 숭배하는 노인네이니까.”
아트로네 백작가는 용맹과 정신을 중요시하는 집단이긴 했다.
물론 그 덕에 신대륙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계자들 대부분이 전사했다.
지금 남은 두 후계자들이 뭔가 조금씩 모자란 이유이기도 하고.
“어떻게 합니까?”
“우리 예비대는?”
“그게 아직 정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한쪽은 여전히 오스라거 백작군의 뒤를 치고 있는 중.
그곳에서 병력을 빼내서 상대 진형에 맞춰 좌익, 중, 우익을 배치하는 것도 꽤 빡짝했다.
거기에 예비대까지 편성하려니 토몬드 백작가의 뒷부분은 아직도 엉망이었다.
“상관없어 중군 절반을 잘라서 좌익으로 붙이고 예비대를 중앙 후방으로 채운다.”
“괜찮겠습니까?”
“처음엔 엉성해 보였지만, 지금 싸우는 걸 보니 아마도 적의 주력은 중앙이 아니라 저놈들의 우익이었을 거다.”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는 아트로네군.
당연히 정예로 볼 수밖에 없을 거다.
“거기다. 예비대 숫자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군.”
우아아아아!!!
토몬드 백작의 명령에 따라 병력이 좌익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리안은.
“바보들. 마포는 장식인 줄 아나. 화포장 아저씨.”
“오오!! 드디어 내 차례인가?”
토우기슈끼 럽이 어깨를 확 펴며 가슴을 두들긴다.
“대각선으로 알죠?”
“금방 옮긴다고!”
다수의 포병대였다면 이동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겨우 다섯 문이라 금방 이동이 가능했다.
훕아~ 훕아~!
건장한 마포병만 뽑아서 데려왔기에 그들은 빠르게 마포를 짊어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초미가 느껴지는 것이 마치 가스통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았다.
“쏴아!”
대충 측량을 마친 토우기슈끼 럽이 외쳤고.
아군에게 피해가 없게 대각선으로 맞춰 발사되었다.
퍼버법벙~!!
겨우 다섯 문의 숫자였지만, 언덕들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 지형이라서 소리가 메아리처럼 타고 퍼졌다.
퍽! 퍽!!!
끄아아악!!
포탄이 합류하는 적의 중앙군과 좌익을 향해 내려꽂혔다.
바글거리는 개미 떼의 중앙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것처럼 적들이 짓눌렸다.
만약 평지나 이쪽이 고지였다면, 볼링공처럼 적들을 여럿 치고 달렸겠지만, 조금 아쉬웠다.
다만, 공포심은 지금이 더 높아 보인다.
“으어어억!!”
포탄이 땅에 박혔는데, 땅과 포탄 사이에 뭉개진 병사.
시간적으로 적에게 공포를 전염시켰다.
“저··· 적에게 붙··· 어!!!”
토몬드 군은 포탄이 무서워서 아트로네군 쪽으로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공간은 한정되었기에 자신들의 아군과도 엉망으로 뒤섞인다.
퍼버버벙!!
마포가 간혈적으로 발사되는 소리에 마음은 더욱 급해 보였다.
“생각보다 이지하네.”
그걸 본 리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자~!!!”
예비대의 정체 때문이다.
그들은 고잉미샤호에서도 가장 잘 싸우는 해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리안은 이들을 활용하기 매우 까다로웠는데, 그 이유는 정규군과 정식적인 전쟁에 동원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난장판이 된 상태에서 백병전을 하거나, 혼란한 도시나 마을에서 약탈에 익숙한 이들이다.
챙챙!! 타다다다당!!
그러니 지금 같이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 된 곳으로 들이닥치니 물 만난 고기와 같이 잘 싸웠다.
“뭐··· 뭐야!! 왜 적이 여기까지··· 컥!!”
해병대는 마구마구 적을 썰며 적의 내부까지 파고 들어 깽판을 쳤다.
이들은 대부분 마나 유저이거나 또는 예비자였다.
마나 유저라는 것은 매우 불확실 구별법이다.
마나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그렇다.
어떤 이는 마총을 쓸 수 있다면 마나 유저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작은 마도구만 사용할 수 있어도 마나 유저라 부르기도 한다.
정말이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구분법이긴 하다.
다만. 해병대원들은 일반적으로 마나 유저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전투에 관련된 신경 부문에선 마나 유저라 불리는 이들보다 더 발달 된 경우도 많았다.
이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리안이 해적단을 접수했을 땐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라 그런 자들의 비율이 높았다.
“뭐··· 뭐야?! 저것들은?”
그걸 목격한 토몬드 백작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을 병사로 위장한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근접 싸움에 능통했다. 다만.
“싸움이 너무 천박······.”
땅에 구르고. 물어뜯고. 흙도 뿌리고. 불리하면 도망쳤다가 반전해서 때리고.
고상한 기사들의 정석적인 싸움 방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그건 것 따위는 이 순간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
명예도 생존을 해야 입에 담을 수 있다.
“빨리 예비대를!!”
해병대의 싸움이 너무도 의외라서 전열이 무너질 조짐이 보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예비대를 두는 것인데.
“예비대 편성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부관이 다급히 말했다.
토몬드 백작도 후방을 보니 아직도 정렬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중.
제식 훈련이 기본이 되지 않은 세계이다 보니 편제를 재편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앙을 움직인다.”
“적의 중앙이 덮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다. 거리는 우리가 가깝다. 우익은 중앙으로 움직인다. 최대한 두텁게 밀집한다.”
“뭉치면 마포가······.”
“흥! 소리와 위력만 강할 뿐이다.”
토몬드 백작도 마포의 공격을 눈앞에서 봤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쪽은 고지대였고. 그 덕분에 마포는 단일 타격밖에 못 했다.
단일 살상력은 높을지 몰라도 굴러가지 않다보니 다수에 대한 범위공격력은 낮았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주춤하면 오스라거 백작가를 놓칠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장님. 적의 중앙군 전체가 우익으로 붙습니다.”
“우리의 우익과 예비대로 보낸 해병대를 주력이라 생각하나 봐요.”
저런 식의 병력 운용은 초보자도 잘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언덕이다 보니 밀집하는 시간보다 이쪽 중앙군이 밀고 올라가는 시간이 더 느릴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주력이 맞긴 맞습니다.”
세바스가 조금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트로네, 데르, 리안 해적단 이 셋 중 가장 강한 것은 당연히 리안의 해병대였다.
“주력은 맞지만 주력은 아니죠. 주력은 내가 있는 곳이 주력입니다.”
리안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더니 칼을 뽑아 들고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이제 양군의 간 보기는 끝나고 전면전을 벌일 차례다.
전군이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숙명.
여기서 리안도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보내놓은 우군과 해병대는 고립되어 쓸려 나갈 것이다.
“용맹한 중아군이여!!! 줄리아를 따르라!!!”
“······??”
리안의 외침에 모두의 눈에 물음표가 떴다.
보통 ‘나를 따르라.’가 정석이지 않은가.
“총사령관이 진짜로 선봉에 서라고?”
“아··· 아닙니다.”
결국 줄리아가 가장 선두에 섰다.
그녀는 거인족의 후예라는 데르가의 사람답게 무력이 아주 나쁘지 않았다.
용맹한 건지 무모한 건지 그런 약간의 무식한 유전자도 가지고 있었고.
“여자인 나보다 뒤처지는 얼간이는 없겠지?!! 나를 따르라!!!”
결국 그녀가 오토호스를 몰고 가장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더블린 항구에서 살아남은 기사들을 차출해 데르가의 깃발을 들게 했다.
투트트트트!!!
그녀가 갑자기 튀어나가자 병사들도 급히 뒤따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사실 먼저 보낸 우익이 워낙 잘 싸우다 보니 우물쭈물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만만해 보인 달까?
거기다가 여기서 어물쩍거리면 전투에서 패배한다.
그 말은 곧 죽음을 뜻한다.
여기는 딱히 도망갈 곳이 마땅치 않기에.
차라리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생존율이 높았다.
“백작님!! 데르가의 장녀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백작은 충격을 먹었다.
데르의 장녀가 누구이던가.
곧 있으면 차기 후계가 될 사람이다.
“그럼···!! 주력은···?!! 저놈들이란 말인가?”
아트로네의 얼간이들과 줄리아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녀는 기사단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녀의 뒤로는 숫자가 적지만 기사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투트트트!
참고로 소수의 오토호스는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뒤쪽은 당연히 리안이 느긋하게 뒤따랐다.
“마세르!!”
“네넵!! 백작님!”
리안의 뒤에는 어촌 마을에서 사냥꾼으로 길러진 녀석이 타고 있었다.
“넌 아무나 쏘지 말고 잘 차려입었다고 생각하는 놈을 쏴.”
“알겠습니다!!”
마세르는 이미 마총 장전을 끝내 놓은 뒤였다.
퍼버버벙!!
그때 선두에는 이미 줄리아의 기사단이 충돌했다.
채채채챙!
이후 중앙의 보병들과 좌익의 보병들도 적들과 추돌했고.
천천히 적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샤로트! 세바스 아저씨.”
“넷! 도련님.”
“네. 선장님.”
“가서 저기 기사단끼리 붙었는데 합류하세요. 좀 쌔 보인다 싶은 놈을 덜어내 줘요.”
중앙군 한쪽에는 기사단끼리 맞붙었다.
줄리아가 잘 싸워서 적당히 비비고는 있었지만, 숫자에서 열세였다.
거기다가 줄리아의 기사단은 충성이 흐려진 사라진 상태다.
줄리아는 더 이상 데르가의 후계자가 아니니.
그들이 여전히 줄리아의 뒤를 따르는 이유는 이 싸움에서 공을 세워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데르가의 주인이 된 파트라슈가 약속했으니 그들이 기사단에 복귀할 방법은 리안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선장님의 호위는······!”
“나도 대전사인데, 이런 규모의 전쟁에서 쉽게 죽을 리가. 그보다 빨리 개입해서 상대 기사단부터 털어 버려야 해. 보병끼리의 싸움이 길어지면 사상자가 속출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결국 세바스와 샤로트가 기사단의 싸움에 투입되었다.
화르르르르!!!
오토호스에 탄 샤로트의 몸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녀의 오토호스는 내열 기능이 잘되어 있었다.
특성을 위해 다른 것들을 조금 포기해서라도 내열을 빼먹을 순 없었다.
다만, 그렇게 해도 아쉽지 않은 것이.
펑!!!
그녀가 단신으로 폭발을 일으키며 적의 기사단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화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적들을 집중력을 깨트렸다.
기사들이 아니었다면 화상으로 전투 불능에 이르렀겠지만, 마총의 시대에도 여전히 전쟁 병기로 취급받는 기사들이었다.
“칫! 겨우 둘이네.”
샤로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목이 없는 기사 둘이 뒤늦게 오토호스에서 떨어졌다.
목이 떨어진 자리에선 피가 흐르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치이이이~!
샤로트의 창이 붉게 달아 올라 수증기를 뿜고 있었다.
“주··· 중견급이다!!! 뭉쳐라!! 뭉쳐서 대항한다.”
적 기사들은 당황했지만, 전문 싸움꾼 집단인 기사들 답게 빠르게 대처했다.
그런데, 샤로트의 반대쪽 그러니까 샤로트가 왔던 방향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그리 무시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
휑하니 홀로 남은 세바스.
그의 손에는 무기는커녕 정령 갑옷을 소환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하얀 천 쪼가리처럼 보이는 장갑만 끼고 있는 상태다.
드르르륵~!
빈정이 살짝 상한 세바스가 장갑을 낀 손을 양쪽으로 뻗자 주변으로 땅이 잔잔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