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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45화 (145/253)

< 145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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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손을 살짝 들어 경의를 받아줬다.

사실 주가다 남작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리안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트로네 백작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충신 중 한 명.

두 형제는 도저히 아트로네를 이을 만한 후계자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저를 지지하시나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두 형제만 아니라면 리안도 유력한 계승 후보자이긴 했다.

문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트로네 백작은 둘째 치고 리안은 아예 아일리 섬 외부의 귀족이기 때문.

“난 이미 잉글슨 국왕에게 명예 후작 작위와 아일리 섬 총지휘관의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나를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반대할 수는 있다.

아일리 섬의 유일한 후작이 가장 중심부에 있는 땅을 가지는 것은 심히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기를 들 순 없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리안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외부인과 내부인 중간 즈음의 혈통을 가진 리안을 좋게 볼 리가 없다.

아예 잉글슨 고위 귀족이 아트로네 땅을 차지하는 것을 더 환영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은 더욱 애매하다.

외부에서 들어온 귀족들이 아닌 전통 아일리 섬의 귀족들은 과거 지고왕이 다스리던 알바 왕국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었다.

고대 룸 제국 시절.

율 대륙 대부분은 룸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런데, 알바 왕국은 섬이란 이점을 살려 거의 끝까지 룸에 대항했다.

물론 후반에 가서는 결국 복속되었지만, 자치권과 정체성은 인정받았기에 굴복은 아니었다.

“그래서 과거의 잔재들은 싹 밟아 버리려고요. 그 시작은 저기 있는 것들입니다.”

“요새의 병력까지 다 합쳐도 저 중 하나도 상대하기 힘듭니다. 도련님.”

온전한 백작가의 전력을 집중한 두 백작가였다.

저들은 이곳 알베찰 요새에 진심이다.

두 진형 모두 백작이 직접 나와 친정을 하고 있는 상태다.

알콩달콩 소소하게 치고받던 아트로네의 형제들의 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총력전에 가까운 상태다.

“잉글슨 국왕이 한낱 저 같은 꼬마에게 총지휘관의 자리를 왜 줬을까요?”

“그건······.”

그러고 보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처음에는 아트로네 백작가가 아일리 섬에서 영향력이 크다 보니 명목상 리안에게 지휘권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진짜 지휘권은 아트로네 백작이 가지는 것이고. 반란이 진압된 후에는 지휘권을 회수하기도 쉽다.

명목상 지휘권은 아트로네 백작이 아니라 리안이었으니.

남은 명예 후작 자리도 그냥 껍데기일 뿐.

귀족의 실질적인 힘은 작위가 아니라 영지에서 나온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먼저 샤로트만 봐도 그랬다.

그냥 평범한 시녀라 생각했던 샤로트에게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다리를 미세하게 후들거리는 미중년 남자도 그렇다.

‘세바스라 했던가?’

이런 높은 곳에 처음 올라와 적응이 안 되어 보이지만, 감히 상상하기 힘든 상당한 실력자다.

자신보다 윗줄. 최소 중견급 이상의 대기사다.

‘저 배도 아무리 봐도 수상해.’

저런 배는 본 적은커녕 들은 적도 없었다.

모양부터 특이했고 크기도 육지를 다니는 부유선보다 거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목재가 아닌 철재다.

무게가 더 나가니 출력은 훨씬 좋단 말.

아마도 전열함에 쓰는 최고급 마나 엔진을 달고 있을 것이다.

‘병사들은 또 어떻고······.’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리안이 데려온 일부 병사들도 상당이 정예로 보였다.

곧 전투가 있을지 모르는데 긴장은커녕 자신만만해 보인다.

물론 좀 덜떨어져 보이는 병력도 있어 보이는데, 들어보니 그건 데르 백작가의 진원군이란다.

‘마포도 5문이야.’

고잉미샤호에 탑제된 중형 마포를 때서 가지고 왔다.

겨우 5문이라 해도 이걸 육지에서 운용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고정포와 달리 마포를 이동시키는 것은 엄청나게 숙련된 포병만 가능하다.

그럴 것이 마나 간섭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되며, 관리도 힘들었다.

“나는 이미 전쟁으로 실력이 입증된 지휘관입니다.”

“네?!”

리안의 당찬 말에 이 꼬맹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일반적인 꼬맹이가 아님을 알고는 있다.

애당초 방금 전까지 나누었던 대화는 저 나이대의 꼬마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증명된 지휘관이라니.

영재나 천재임은 인정하겠지만, 그럴 시간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던가.

최근까지도 아트로네 백작가에 얹혀 살았던 리안이었다.

‘설마...’

소문이 돌기는 했다.

해전에서 활약을 했다고. 그런데 그것은 해전이지 않은가.

그 말인즉슨.

“레온이란 성을 되찾으셨군요.”

“방금 임명장도 보셨잖아요. 리안 아트로네가 아니라 리안 레온이라 쓰여 있는 걸.”

“허······.”

결국 아트로네에 도망와 있던 꼬마는 자신의 땅을 되찾고 타국에까지 와서 인정을 받았다.

도대체 영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리안은 별 어려움 없이 레온 백작령을 되찾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주가다 남작 입장에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후작께선 신센롬 제국과 이벨 왕국의 부마이며, 이교도의 공포인 명예 성기사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레온 백작인 동시에 루데악 백작령의 주인이시고 하며. 신대륙 코파나 백작령 또한 소유하고 계십니다.”

옆에 있던 세바스가 설명을 해 줬다.

물론 여전히 다리를 미세하게 후들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 으··· 그러··· 어······.”

주가다 남작은 혀가 꼬였다.

병사들이야 리안이 자신이 어떤어떤 사람이다. 라고 하면 으레 귀족들이 그렇지 하며 받아들인다.

그저 전투에 도움이 되는 작위를 가지고 있다면 순수하게 환호할 뿐.

그런데, 진짜 귀족인 주가다 남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리안에게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크다.

한 번씩 성에 들르면 지나치다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안을 본 적이 한두 번인가.

‘요 근래에 뭔가를 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작위가 엮여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 모르는 세상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어린아이가 저렇게 많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믿기 힘들겠지만 당황하지 마시고. 주가다 남작님!”

“네. 말씀하십시오. 도련··· 후작 각하!”

정신을 차린 주가다 남작의 몸이 긴장하여 살짝 경직되었다.

만약 이사실이 모두 진실이라면 그는 지금 전설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갈아엎는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어쩌면 리안은 명예 후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고왕이 될 생각일지도 모를지도······.

“요새의 병력을 내보내서 저곳을 지키세요.”

“각하. 제가 주군께 받은 명령은 이곳 알베찰 요새를 지키는 것입니다.”

후작이고 지고왕이고 다 좋다. 좋긴 좋은데 그보다 자신의 임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가 바로 주가다 남작이었다.

아일리 섬의 지휘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여기. 외할아버지가 써 주신 겁니다.”

리안은 다른 양피지를 꺼내 주가다 남작에게 보여줬다.

별 내용은 없었고 리안이 아트로네 백작령에 있는 병력을 움직여도 된다는 심플한 내용.

척!

주가다 남작은 곧장 한쪽 무릎을 꿇으며 양피지를 돌려줬다.

리안에게 예를 표한 것인지. 양피지에게 예를 표한 것인지는 리안도 잘 모르겠지만.

“그럼. 저곳애 요새의 병력을 주둔하는 것을 동의하는 것이겠죠?”

“제가 죽기 전엔 적들도 살아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과하긴 과했다.

저 말이 예의상 하는 말도 아니고.

누가 봐도 후퇴가 답이며, 책임을 묻지 않을 전투에서도 절대 물러나는 법이 없다.

“혹시나 피해가 클 것 같으면 병력을 뒤로 물려도 좋습니다.”

“어떤 싸움도 피해가 없을 순 없으며, 그런 생각으로 싸우면 유리한 전투도 불리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골 때리는 자긴 하다.

마음가짐에 따라 전투의 양상이 달라 보이니 나약한 마음을 애초에 가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리얼 임전무퇴기세(臨戰無退之勢)네······.’

진짜배기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마음이 후덜덜거리는 느낌이랄까.

후퇴를 직접 명령하기 전엔 절대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었다.

‘누굴 붙여 줘야 하나······.’

그러다 문듯 콕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후작 각하.”

잠시후 탑을 내려와 요새의 방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미비앙 부기사단장.”

“저는 더 이상 데르가의 기사가 아닙니다. 그러니 부기사단장으로 부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다. 기사 미비앙. 내가 그대를 부른 이유를 아는가?”

“후······.”

미비앙은 고개를 살짝 떨궜다.

아마도 지휘권을 완전히 이양하란 뜻이 아닐까?

지금 데르가의 패잔병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반란의 중심이었던 미비앙이었다.

“그대는 계속 데르가의 병력들을 단속하며 지휘를 해 줘.”

“네?!”

“중간에 지휘관이 바뀌면 동요하는 법이지. 그보다 사람을 하나 빌리고 싶군.”

“사람이라면······.”

“그대의 부하 중 콕이란 자가 있다고 들었어.”

리안이 어떻게 자신의 부하인 콕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인 시절부터 데리고 있던 몸종에 가까웠다.

싸움을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

그렇다고 행정 능력이 뛰어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겨우 읽고 쓸 뿐.

부기사단장 시절 데리고 다니기엔 뭔가 아쉽고. 버리기엔 아까운 대충 그런 인재였다.

“네. 뭐든지 조금씩 어설픈 놈이지요.”

“데리고 와 보게나. 쓸데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콕이 리안의 방으로 끌려오다시피 했다.

“기사 미비앙은 그만 나가 봐도 좋네.”

“아··· 알겠습니다.”

미비앙이 밖으로 나가고 리안은 콕과 독대를 했다.

콕은 매우 불안한지 안절부절하지못했다.

“콕 자네가 촉이 좋다 해서 데려왔어. 어떤가? 이 자리가 죽을 자리로 보이는가?”

“자··· 잘 모르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리안의 앞에 넙쭉 엎드리는 콕.

진짜 촉이 좋긴 좋나 보다.

지금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자리로 가는 것은 분명했다.

“누가 죽인다나? 자네는 주가다 남작의 보좌관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덜덜덜.

순간 몸을 흠칫 떠는 콕.

주가다 남작은 알베찰 요새의 담당자이고. 알베찰 요새는 아일리 섬에서도 견고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 곳의 보좌관이라면 위험할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진짜로 촉이 좋은 듯 보인다.

‘어렸을 때 이름 모를 신에게 가호라도 받은 건가?’

그런데, 그 철벽과도 같은 요새를 두고 주가다 남작이 병력과 함께 밖에 주둔할 예정.

문제는 주가다 남작 성격 그 자체다.

“후퇴할 타이밍을 그대가 정해 줬으면 좋겠어.”

“제··· 제가 어찌 감히!!”

콕이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동자가 사방팔방으로 떨리고 있었다.

저건 그냥 감이 좋은 것이 아니라 변수를 계산하다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의 마우스처럼 보였다.

‘큰 가호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소소한 축복 정도로 보였다.

리안이 살던 세계였다면, ‘가호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며 미신 취급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이 세계는 마법과 신비가 공존한다.

미래 예지를 하는 것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리스크를 느끼는 것 정도는 가능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상태창을 봤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콕의 상태창을 본적이 없다.

다만, 아무리 미비앙이 배신을 잘한다 해도 배신의 타이밍들이 기가 막혔다.

그 말은 측근 중 뭐가 있단 말일 거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그냥 내가 명령장 하나를 써 줄 테니. 후퇴할 때 주가다 남작을 보여 주면 된다.”

“그··· 그런······.”

리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게 퇴각하면 전멸당할 것이고. 당연히 넌 죽는다. 너무 일찍 퇴각하면 내 손에 죽는다. 그러니 죽지 않게 노력하도록. 그만 가 봐.”

리안이 축객령을 내렸다.

콕은 어깨가 축 처져 밖으로 나갔다.

“주가다 남작과 찰떡궁합이네. 대충 된 것 같네.”

아트로네 백작령은 이미 반쯤 리안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말은 주가다 남작도 자신의 부하가 된단 말.

쓸 만한 부하를 그냥 일회용으로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미비앙도 나중에 보급관으로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써먹을 수 있고.”

생각보다 쓸만한 보급관의 숫자는 항상 모자랐다.

보급에 문제가 생기면 사기와 전투력에 큰 문제가 생기니 대단하진 않아도 무난한 보급관을 여럿 데리고 있는 것이 대륙 통일을 위해 꼭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미비앙 같은 성격에 콕이 붙어 있는 것은 최악이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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