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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43화 (143/253)
  • < 143화 >

    ##143

    차가운 창살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의 끝자락은 감옥의 모서리에 닿아 있었다.

    “아아. 아버지······.”

    소녀는 그 빛에 의존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건 희.

    기사이자 희 남작가의 후계자였다.

    “도대체. 데스몬드 백작님은. 도대체 왜!!”

    그녀의 아버지는 데스몬드 백작가의 봉신이자 백작령의 군무관.

    이번 민중 봉기로 인해 체포당한 뒤 처형당했다.

    “드루이드라니. 언제 적 사라진 그들인데······!”

    어이없게도 민중 봉기를 이끄는 이는 오래전 이 땅에서 사라진 영적인 지도자인 드루이드.

    그것도 자신은 새로운 지고왕을 떠받들기 위해 부활했다는 말로 백성들을 선동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

    희 남작의 죽음은 너무도 황당한 죽음이었다.

    건희는 예상치도 못한 일에 충격이 너무 커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제발··· 쥬 님이시여······.”

    그녀가 할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간수의 말에 따르면 머지않아 자신도 아버지처럼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될 것이란다.

    그녀는 그저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두 형제의 말의 물음에 리안은 한마디를 던졌다.

    “드루이드.”

    “······?”

    “······!!!”

    리안의 말에 두 형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일리 섬의 귀족들에게 금기어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아일리 섬을 통치했던 지고왕과 그를 보좌한 드루이드들.

    그들은 사제이자 마법사이자 학자이자 선생이고 현자였다.

    물론 오늘날의 마법과는 크게 달랐다.

    수식과 법칙을 이용해 마나를 조작하는 마법과 달리 그들은 신비 그 자체를 다뤘다.

    어떻게 보면 신의 힘 그 자체를 다룬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사제처럼 신의 힘을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만물을 믿고 숭배함으로써 신의 힘을 빌렸다.

    “제가 얻은 첩보로는 그래요. 일단은 봉기가 일어난 지역인 데스몬드 백작은 확실히 그들의 편에 설 겁니다. 그리고 에나스 백작도 호응할 것이라는 것이 제 분석이고요.”

    아일리 섬의 각도를 조금만 비틀어 지도를 그리게 되면.

    ---아트로네-데르

    에나스-토몬드-오스라거-레인

    ---데스몬드-올몬드

    이런 식으로 나온다.

    에나스 백작은 가장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아트로네 백작과도 국경선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그럼··· 우리에게 땅을 준다는 게······.”

    “아. 그건 아니고요. 큰 형님은 오스라거 백작가를, 작은 형님은 토몬드 백작가를 가지세요.”

    리안의 말에 황당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그럴 법한 것이 두 형제의 상대편 외가였다.

    토몬드는 첫째의 외가였고. 오스라거는 둘째의 외가였다.

    만약 땅을 가진다 해도 수습하는 데 한참이 걸릴 것이다.

    두 형제에게 공적을 줄 수는 있었지만, 딴생각을 품지 못하게 속에 시한폭탄 하나쯤은 안겨 줘야겠지 않은가.

    “에휴. 명분 때문에 그래요.”

    “아니··· 명분이라면 더더욱!”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일단 두 백작가에 서신을 보낼 겁니다. 잉글슨 국왕께 받은 명예 후작이자 아일리 섬 총사령관의 이름으로요.”

    “설마······.”

    “사신으로는 두 형님이 갈 겁니다.”

    “아니. 작정하고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 그게 아니라도 포로로 잡힐지도 모른다.”

    리안이 손가락을 탁 튀기며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지금 토몬드 백작가와 오스라거 백작가는 한참 요새 하나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안에서는 형제가 밖에서는 외가끼리 싸운다고 해야 하나.

    전통적으로도 사이가 나빠도 매우 나빴다.

    “저··· 정말 우리를 사신으로 보낸다고?!”

    “죽이진 않을 겁니다. 저들도 외할아버지가 무서운 줄 아니까요.”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그런 도박을 저지를 리가 없다.

    사신으로 온 사람을 사로잡는 것도 명예롭지 못하니 웬만해선 풀어 줄 것이다.

    “그··· 렇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럼 운이 나쁜 것이겠죠. 두 분 백작 자리가 우스워 보이나요?”

    “그게 무슨 말이더냐.”

    “백작 작위는 아무렇게나 굴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자로서 조언을 해 드리는 거예요. 사신으로 갈 것이 아니라면 그만 돌아가세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리안이 갑자기 차갑게 말하자 두 형제는 얼어붙었다.

    이미 아트로네 백작가의 후계 자리를 전쟁 신의 이름으로 선언해 버렸다.

    인간의 법으로는 여전히 후계 권리가 있지만, 그들은 죽어도 그 자리를 받아선 안 되게 되어 버렸다.

    이제 리안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정말 국물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자! 그럼 얼른 다녀오세요.”

    두 사람은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오토호스에 올랐다.

    달랑 기사 하나와 서신만을 들고서 떠났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네. 흐흐.”

    리안은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썬배드에 누워 우유를 홀짝였다.

    키가 커지길 기원하며.

    다만, 그런 귀여운 모습을 경악하며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설마··· 토몬드와 오스라거를 동시에 상대하려고?!!’

    줄리아는 급히 배 아래를 살폈다.

    아래에는 더블린 항구에서 합류한, 그러니까 자신이 이끌던 병력의 1/3이 있었다.

    거기에 두 바보 형제 부대가 저 멀리 각각 대치를 하고 있었고.

    ‘이 병력으로는 힘들 텐데······.’

    물론 얼마 안 되는 병력에 자신도 당했지만, 오몬드와 오스라거 백작가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태다.

    더블린시와 본진이 분리되었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

    “뭘 그리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요.”

    “미··· 미안하다.”

    리안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내리까는 줄리아.

    “됐고 가서 노예 인장이나 받아 와요. 이번 싸움에는 아줌마가 선봉이니까.”

    “내가???”

    “데르 백작가의 얼굴마담으로 아줌마만큼 적격인 사람이 어딨어요. 후훗!”

    리안의 말에 줄리아는 누가 아줌마라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죽기는 싫지만 차라리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겠다. 맡겨만 줘.”

    그녀는 리안의 부하들에게 갑판 아래로 질질 끌려갔다.

    저렇게 굴욕을 주는 이유도 최대한 노예 각인이 한 번에 잘 끝내게 하기 위해 돕는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리안의 작은어머니 케네이나 꼴이 날 수 있으니.

    웬만하면 줄리아 스스로 굴복하여 최대한 이성을 남기길 바랐다.

    이성을 잃은 꼭두각시 대전사는 발전하기 힘드니까.

    “선장님. 노예가 되면 전투력이 깎입니다. 그럼 지금보다 더 형편없어질 텐데······.”

    “아니요. 저 여자가 노예가 되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리안은 싱긋 웃었다.

    “그보다 전령은 왔나요?”

    “네. 방금 전 올몬드 백작령과 근거리 통신이 성공했습니다.”

    포트가 고잉미샤호의 통신체계를 고쳤기에 기존의 부유선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먼 통신이 가능해졌다.

    올몬드 백작가의 수도와 거리가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연결에 성공했다.

    “감도는요?”

    “겨우 짧은 정보만 조금 공유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뭐. 어쨌든 부선장 아저씨가 올몬드 백작령을 제대로 장악하긴 했나 보네요. 흐흐.”

    사실 줄리아의 경악과 달리 리안은 두 백작가를 동시에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참고로 올몬드의 옛 인장이 오스라거에 보관되어 있고. 올몬드가 오스라거 백작가를 공격하기위해 진군했을 때 부선장과 해적왕이 빈집털이를 한 것이다.

    그리고 곧 올몬드 백작가와 오스라거 백작가가 싸움을 벌일 것이고.

    부선장과 해적왕이 그들의 뒤를 칠 것이다.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다.

    “오스라거는 부선장 아저씨에게 맡기면 되고. 우리는 토몬드만 상대하면 되겠네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못 맞춰도 상관없어요. 일단 토몬드 먼저 쓸어 버리고 위아래로 협공을 하면 되니까.”

    지금 여기 있는 병력으로 자신이 있었다.

    “지형상으로나 병력상으로나 우리가 불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시간을 맞추려면 정면으로 상대를 해야 할 텐데······.”

    이번 전투도 고잉미샤호를 쓸 수 없는 데다가 저지대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저기 봐요.”

    리안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바보 형제의 병사들이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

    두 형제는 반나절도 되지 않아 고잉미샤호로 돌아왔다.

    그중 첫째는 눈탱이가 시퍼런 것이 두들겨 맞은 것으로 보였다.

    “아니. 큰형님. 얼굴은 왜 그리된 겁니까?!”

    “어디서 거짓말을 하냐며 능욕을 하기에······.”

    “녹음은 잘 시켰죠?!”

    “그래. 시키는 대로 했다.”

    두 형제는 작은 구슬을 각각 꺼냈다.

    다루기 위해선 각성을 해야만 가능했고 녹음을 시킬 수 있는 시간도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자. 그럼 두 사람이 제 말을 무시했으니. 드루이드와 한 편이라 봐도 되는 거겠죠?”

    “그래도 조금 억지가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 형제가 바꿔서 사신으로 갔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그럼 안 되죠. 우리 형님들께 땅을 줘야 하니까.”

    리안의 말에 질려 버린 두 사람이었다.

    ‘이놈에게 우리가 완전히 속은 게로구나.’

    그제야 싸움을 부추긴 원흉이 리안임을 알아차린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 없었다.

    이미 영혼이 전쟁 신에게 저당 잡혀 버렸다.

    이제 꼼짝없이 리안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보다 어떻게 두 백작가를 상대해야 할지 의문인 두 사람이었다.

    “먼저 큰 형님.”

    “어··· 그래.”

    “형님은 기사 하나만 대동한 채 곧장 남쪽으로 향하세요.”

    “아니··· 거긴 왜??? 그리고 기사 하나만 데리고?”

    “은밀하게 가셔야 합니다. 큰길은 이용하지 마시고요.”

    리안의 말에 물음표를 띄우던 첫째.

    “거기 제 부하가 있을 겁니다. 저번에 봤죠?”

    “설마······.”

    “방금 올몬드 백작가의 수도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형님은 그대로 오토호스를 몰아 합류하세요. 합류하는 순간 우리의 명분이 완성됩니다.”

    “그 말은!!!”

    이리되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올몬드를 멸망시킨 군대가 아군으로 붙는다는 말일 테니.

    “아쉽게도 올몬드 백작의 군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점령한 겁니다.”

    “그럼 소용이 없지······.”

    “올몬드 백작가가 기습적으로 오스라거 백작가의 뒤를 칠 겁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올몬드 백작가의 주인이 바뀐 건 알고 있죠?”

    “그렇지. 옛 올몬드 백작가는 끝까지 잉글슨 왕국에 저항했으니··· 흔적도 없이 지워졌지.”

    “그런데 그 옛 인장을 오스라거 백작가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오스라거 백작가가······.”

    “그걸로 돈을 꾼 모양이에요. 제 부하의 옛 주군이 말이죠.”

    “설마······.”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부하의 옛 주군이 바로 옛 올몬드 백작가의 마지막 후예였어요.”

    그렇다면 이런 정보를 리안이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자가 병력을 얼마나 이끌고 있기에··· 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어부지리를 노린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금방 마음이 꺾였다.

    리안이 명예 후작에 올랐다 해도 근본은 백작이다.

    레온 백작령의 병력을 모두 올몬드에 쏟아붓는다 해도 어려울지도 몰랐다.

    브루타뉴 공국의 군사들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전 대륙에 소문이 쫙 퍼진 상태이니.

    “뭘 걱정하는 거예요? 제가 승산 없는 싸움을 할 거라 생각하나요?”

    “그··· 그건 아니다.”

    첫째가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다만, 리안이 저리 말해도 믿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자신들에게 순진한 가면을 쓴 모습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물론 이제는 벗어 던졌지만 말이다.

    “걱정은 합류하고나 하세요.”

    리안이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물론 속으로는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율 대륙에 몇 안 되는 소드마스터와 전투광들이 있을 테니.

    ‘가서 놀라 기절만 하지 마십쇼. 큰 형님.’

    리안의 반응에 첫째는 이를 악물며 고잉미샤호에서 내렸다.

    “그럼 토몬드 백작가는 어찌하냐?”

    둘째는 자신의 외가인 오스라거 백작가가 당할지도 모른다는데, 태연하게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외가이지 이들은 그저 정략적으로 얽혀 있을 뿐 정이라고는 없었다.

    다른 지역보다 아일리 섬은 특히나 이웃 영지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마지막 지고왕이 죽은 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뒤 잉글슨에게 정복당하는 절차를 겪었다.

    그 잘못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어쩌긴 뭘 어째요. 우리가 맡아야죠.”

    “음?!”

    “일이 꼬여서 어부지리가 안 되면, 제 부하가 두 백작가를 상대해야 한다고요.”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그리된다.

    올몬드와 오스라거가 싸우지 않고 손을 잡는 최악의 그림이 펼쳐질 수도 있다.

    아무리 해적왕이 있다지만, 강행한다면 이쪽도 제법 피해를 볼 것이다.

    이 전투에서 병력을 많이 잃으면, 드루이드와 봉기한 민중을 상대하는 데 퍽이나 부담스러워진다.

    “우리가 빨리 토몬드를 꺾어 버리고 도와야죠.”

    “그···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백작가의 싸움이 어른 싸움이라면, 여기 두 형제가 싸웠던 전투는 어린아이 싸움이었다.

    첫째가 병력을 남기고 갔지만, 리안의 병력과 모두 합친다 해도 하나의 백작가를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지형도 우리가 불리하다. 우리 병력이 진출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다.”

    세 개의 백작령 중심에 있는 요새.

    그걸 미끼로 싸움을 붙였다.

    문제는 그 요새는 어디서 오든 적을 막기엔 좋으나 어디로 진출하기도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저기 훈련이 잘 된 병사들이 있잖아요.”

    “그래. 리안 네 말대로 나와 형님이 싸우면서 병사들이 단련되긴 했다. 그런데, 그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야.”

    “아니요. 달라요. 완전 다르죠.”

    리안은 배의 난간으로 가서 한쪽 다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대치하고 있는 바보 형제의 병력들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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