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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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저기 보이는 깃발대가 심히 거슬리네.”
“도련님이 그러시다면 제가!!.”
샤로트는 개인 병기로 마포를 들고 왔다.
제법 먼 거리가 맞추기 힘들어 보였지만,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어깨에 초소형 마포를 얹혔다.
철컥!
마포를 장전하더니 잠시 심호흡을 했다.
평소 장난기가 심하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사뭇 진지한 표정.
펑!!
이내 마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을 뿜었고. 이미 사기가 꺾여 있는 적들은 마포 소리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
단 한 문의 마포일 뿐이지만, 살아남은 적들은 마포의 위력을 똑똑히 확인했었다.
얼마나 무서운지.
콰아아앙!!
잠시 후 마포가 목표물에 맞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삼 분의 일이나 되는 적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사기가 완전히 바닥난 군대다.
나머지 병사들도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으어어어!
잠시 후 적들 중 누군가 소리를 내었고. 다들 목표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쩌억!
그곳에는 커다란 깃대가 부러지며 깃발이 바닥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마포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여러 발을 쏴서 리안에게 운 좋게 맞은 적의 포병대와 비교되었다.
-다 죽을 거야! 저들의 포병대가 등장하면 다 죽을 거라고!
적들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사실 리안은 포병대를 데려와 적들을 압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포병대를 동원하면 포병대를 보호할 보병이 필요했고. 보병의 숫자는 여전히 이쪽이 적었다.
물론 적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여 버렸지만.
“이 정도면… 정면으로 붙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파트라슈도 적들의 반응을 보자 자신감을 보인다.
“아니요. 적들은 구석에 몰린 쥐랍니다.”
“그럼 우린 고양이인 건가요?”
“네. 그렇긴 한데,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죠.”
한국의 속담이긴 한데, 이것은 게임에도 적용되었다.
배수의 진 효과인데, 사기가 바닥난 적이 완전히 몰리게 되면 갑자기 전투력이 올라가기도 했다.
물론 확률적으로 말이다.
“사기가 떨어진 적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한쪽은 터 줘야 하죠.”
“아아…….”
파트라슈는 그제야 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돌격!! 돌격하라고 얼간이들아!! 적들은 소수로 나왔다. 저기 파트라슈가 보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파트라슈의 언니 줄리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오토호스에 올랐다.
그녀의 기사들도 오토호스를 타고 뒤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저것들만 잡으면 된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병사들을 독려하는 줄리아.
그 말이 먹혀들었을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진 각 부대들도 그녀를 뒤따랐다.
“위… 위험한 것 아닌가요?”
갑작스럽게 대군이 움직이자 잔뜩 몸을 움츠린 파트라슈.
“뭐. 여차하면 도망가면 그만이죠.”
그러나 리안은 여유만만이었다.
데려온 부하들은 모두 오토호스에 탄 사람들이다.
파트라슈도 오토마차를 가져왔기에 작정하고 도주하면 보병들이 쫓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가 경로에 마총병들도 매복시켜 놓았다.
만약 적의 기사단이 포기하지 않고 쫓는다면, 측면을 공격받을 것이다.
투다다다다!!!
적들이 어느새 마총의 사거리까지 도달했다.
“마세르. 새로 받은 총은 적응했나?”
리안이 이번에 새로 단원이 된 어린 소년을 불렀다.
물론 소년이라고 하지만, 리안보다는 성숙해 보인다.
“네. 사거리는 아쉽지만, 훨씬 안정적이에요.”
사춘기에 들었을 법한 나이임에도 이런 상황에 자신의 의견까지 말하며 침착하게 대답한다.
“저기. 중앙에 하얀 오토호스를 탄 여자.”
“네. 보입니다. 이 거리라면 머리도 맞출 수 있어요.”
“죽이면 곤란하니까 오른쪽 가슴을 맞춰.”
“알겠습니다. 각하!”
마세르는 방금 전 샤로트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포를 혼자 쏘는 샤로트가 괴물인 거지, 마세르가 들고 있는 마총도 충분히 무거운 물건이다.
지금 시기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케르부스와 달리 휘어지지 않고 곧게 뻗은 머스캣을 지급받았다.
사실 해적들은 백병전이 잦았기에 머스캣보단 아케부스를 선호했다.
그래서 잉글슨 왕국의 수도에 들렸을 때 어렵게 구해 준 것이다.
탕!!!
포크라 불리는 단각대를 개머리판 쪽에 거치한 뒤 경쾌하게 한 발 쐈다.
팅!!!
달려오던 줄리아가 그대로 마총에 맞아 상체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리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가 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처는 없어 보인다.
마총에 반응을 해서 정령 갑옷으로 대처한 것으로 보였다.
퍼드득!!
다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결국 오토호스에서 떨어져 땅에 처박혔다.
정령 갑옷도 일부가 터진 것인지 완벽하게 대응하진 못한 것으로 보였다.
오러가 먼저 반응한 것이 아니라, 정령 갑옷이 능동 방어를 한 모양이다.
물론 그것도 정령 갑옷 수련을 잘 해야 가능하긴 했다.
두르르르릉!!!
기수가 떨어지자 오토호스도 홀로 앞으로 나아가다 땅바닥에 처박혔다.
“빌어먹을!!”
오토호스에서 떨어진 그녀는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곧장 바닥에서 일어났다.
“저 쳐 죽일 놈들을 당장 잡아 와!!!”
얼굴은 예쁘게 생겨서는 성격은 개 같았다.
이쪽을 노려보며 아주 발광을 하는 중이다.
“뭐 하냐고!! 왜 다들 멈추는 거야!!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거의 1/3이나 되는 병력이 그녀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럼 나머지 2/3는? 무기를 내린 채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뭐… 뭐냐고?!!!”
당황한 줄리아.
그나마 기사 일부만이 그녀의 주변을 지킬 뿐이었다.
“당신은 군대를 이끌 자격이 없습니다. 아니. 영주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줄리아.”
“너… 너!!!”
줄리아가 미비앙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서는 곧장 무기를 들고 미비앙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땅의 속성의 그녀가 공격은 마포처럼 묵직했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막혔다.
“너… 넌.”
그녀의 공격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샤로트였다.
적들이 이상 반응을 보이자 미비앙을 보호하기 위해 샤로트를 보낸 것이다.
일단 미비앙을 살려야 여기 있는 병력을 재활용할 수 있으니.
“구면인가요? 물론 기억은 안 나시겠지만.”
“레온 백작의 부하인가? 내 공격을 받아 낼 정도라면 단장급인가 보군.”
그 말에 샤로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파수꾼이자 마포병인데요?”
“뭐???”
생각해 보니 방금 전 마포를 쐈던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인 것을 기억했다.
그런 식으로 마포를 운영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애초에 그 무거운 마포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것은 오러 운영을 상당히 잘한단 소리다.
오러를 얇고 길게 써야 지속적으로 무거운 마포를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 테니.
“도대체 넌 기사가 근본도 없는 것이더냐?!”
저런 식으로 마포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희귀한 것은 기사로서의 품위 때문이다.
마포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볼썽사납다고 할까? 가끔 마총병이 각성을 해서 기사가 되었을 때 마총을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음… 제가 도련님의 호위기사이기도 한데, 시녀이기도 해서요.”
“무슨 개소리냐!!”
“기억 안 나시나 보네요. 이 년 전 아트로네 백작가에 방문했을 때도 시녀였거든요.”
“이… 이런 근본도 없는!!!”
그녀가 열이 단단히 받았는지 커다란 장검을 샤로트를 향해 휘둘렀다.
샤아아아~~!
장검임에도 땅의 속성 덕에 더욱 강화된 덕에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다.
쿵!!!
그럼에도 샤로트의 창과 부딪히자 광음으로 주변 공기를 진동시켰다.
“도대체…….”
줄리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땅 속성으로 강화된 자신의 무기는 날카로움과 동시에 단단함과 휘두르는 순간 일시적으로 무게까지 늘려 준다.
웬만한 무기는 단번에 두 동강이 나곤 했다.
그런데, 샤로트의 창은 첫 공격뿐만 아니라 두 번째 공격까지 가뿐히 막았다.
띠로오오옹~!
다만, 그녀의 무기가 미친 듯이 진동을 했다.
“이거 철갑상어 비늘로 만든 거라고요!”
단단함과 탄력을 동시에 지닌 재료였다.
거기다가 튀니스에서 피라미드 왕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보관한 상자의 재료를 일부 녹여 첨가까지 했다.
“아… 아무리 철갑상어의 비늘이라도…….”
“꼬리거든요. 도련님이 선물해 줬지요. 메렁~!”
샤로트가 혀를 삐쭉 내밀며 약을 올렸다.
가뜩이나 리안이 동생 편에 서 있는데, 샤로트가 저런 도발까지 하니.
“으아아아!!! 어린놈이 바람기가 다분하구나아아아!!”
아주 분통을 터뜨렸다.
분명 자신과 뭔가 교감이 있었다고 생각했거늘.
“속였어!! 나를 속인 망할 꼬마놈!!!”
줄리아는 샤로트의 등 뒤로 멀리 보이는 리안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리안은 모르겠다는 듯 두 팔과 어깨를 들썩였다.
“저는 모르는 일이네요.”
“네 놈이 내 손수건을 가져갔지 않더냐?!!!”
그 말에 다들 리안에게로 살짝 시선이 쏠렸다.
듣고 보니 리안이 비열하게 속인 것이 아닐까 하고.
물론 그렇다 해도 이런 상황이니 어찌하지 못한다.
“뭐야. 손수건에 그런 의미가 있다고?!! 그걸 내가 어찌 알아. 나는 브루타뉴의 귀족이거늘! 설마 나에게 구애라도 했던 거야? 줄리아 아줌마!”
리안의 말에 줄리아는 숨이 막히며 뒤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 누가… 아줌마…….”
“아니. 나이 차이는 날 수 있어. 귀족이니까. 그런데, 지금 나를 봐. 그때는 더 어려 보였을 텐데… 설마 소아성애자야? 줄리아 아줌마?”
“누… 누가! 난 그저… 네가 크면… 으아아아악!!!”
졸지에 이상성애자가 되어 버린 그녀는 눈깔이 완전히 뒤집혔다.
샤로트가 아닌 리안을 향해 뛰었지만, 두 걸음도 가지 못해 막혀 버렸다.
쿵!!!
다시 무기가 교차되었다.
“내가 있는 한 아줌마는 도련님께 접근 금지예요.”
“으아아악!! 이 개 같은 녀언노옴드으을!!!”
그녀는 가진 오러를 모두 방출해 정령 갑옷에 때려 넣었다.
아까 마총에 맞아 파손되었던 것이 순식간에 복구가 되며 패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퍼어어엉!!!
그녀가 몸을 앞으로 튕기며 샤로트에게 접근했다.
정면으로 부딪히면 이번엔 확실히 위험해 보였…….
쿠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먼지와 함께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샤로트는 정면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휘이이잉~!
흙먼지가 걷히자 샤로트는 멀쩡하게 무기를 맞댄 채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수준이 영 안 맞네요. 제 놀이 상대가 아줌마보다 많이 거칠거든요. 생긴 게 좀 못생겨서 그렇지.”
부선장이 들었다면 발작을 했을 것이다.
“크아아아!”
그런데, 발작을 한 것은 이 자리에 없는 부선장이 아니라 공격을 한 줄리아였다.
그녀는 요상한 신음을 내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정령 갑옷이 해제되었는데, 그게 아마도 힘을 너무 과도하게 써서 탈진한 것으로 보였다.
“뭐야!! 아줌마! 난 한 대도 못 때렸다고요!!!”
샤로트가 울쌍을 지으며 절규했다.
재미를 1도 보지 못한 것.
단 세 번의 공격을 막고 승리한 것이다.
“브이~~!”
그와 달리 뒤에선 리안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두 손가락을 내밀었다.
‘무… 무서운 자다!’
그걸 지켜보던 미비앙은 공포로 소름이 돋았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 멀리 해맑게 v자를 그리고 있는 소악마일 것이다.
솔직히 줄리아뿐만 아니라 미비앙도 리안에게 함께 농락을 당한 것.
“무… 뭣들 해!! 어서 무기를 버려라!! 여기서 모두 죽을 셈이더냐!!”
미비앙이 큰소리로 외쳤다.
솔직히 줄리아가 성급하긴 했다.
승기를 잡은 적의 지휘관이 미쳤다고 몇몇 부하들만 대동하고 적진 앞까지 접근했겠는가.
여기서 자신이 배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이 배신할 것이란 걸 알고 저리 왔을지도 모른다.
‘저 소악마는 신중하다.’
만약 완전히 믿었다면 저렇게 단독으로 오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왔을 것이다.
배신이 가장 확실하게 먹힐 때는 바로 전투 도중이니.
‘그럼에도 저렇게 오다니…….’
줄리아의 무모함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달카랑. 덜컹. 타캉.
줄리아의 군대가 모두 무기를 버리고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런 뒤 자연스럽게 리안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이미 표정에서부터 저항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저벅저벅. 철컥!
마지막으로 미비앙은 곧장 리안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검을 바쳤다.
주군을 배신한 기사는 더 이상 기사가 아니었기에.
“그대의 모든 명예인가?”
어린 나이임에도 이러한 의식을 알고 있는 리안이었다.
“아무리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제 명예는 이미 모두 버려졌습니다. 그 검은 제 마지막 생명입니다. 목을 치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배신한 기사임에도 미비앙의 혀는 기름이라도 발렸는지 잘 굴러갔다.
샤로트까지 보내 자신을 보호했으니 자신을 죽일 리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괜찮겠어? 내 뒤에 있는 사제가 탱글 님을 모신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군. 참으로 기사다워. 죽어서도 신들을 위해 싸우겠다니.”
그 말을 들은 미비앙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리안이 손을 방정맞게 흔들더니 검을 돌려줬다.
“오히려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명예로운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대는 계속 기사라 불릴 것이다.”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미비앙은 숨을 크게 내쉬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겉으로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정신은 지옥보다 더한 곳에 다녀왔다.
“선장님. 저 여자는 어떻게 합니까?”
대충 분위기가 환기되자 세바스가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리안이 파트라슈를 보며 말했다.
“도와준 대가로 저건 제가 가져도 될까요?”
“배… 백작님. 그러시다면…….”
파트라슈는 눈썹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잔뜩 실망한 눈치.
‘어리지만… 백작님도 똑같은 남자구나.’
이제 데르 백작가의 가주는 파트라슈다.
구성원을 넘기는 것 따위는 그녀가 감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