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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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간헐적인 포격이 있었다.
유효타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명중률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으니.
-내일 아침이 되면 성벽을 넘는다!
줄리아 데르가 하급 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내용이었다.
-피해가… 발생할지도…….
-전쟁에서 피해가 없을 수 있나? 저딴 낮은 성벽도 넘지 못한다면 모두 군인 따위는 그만둬야 할 것이야.
사실 그 피해도 싫어서 포병으로 포격을 시킨 것이다.
워낙 만만한 성벽이라 적당히 때리면 무너질 줄 알았더니 포병의 수준이 미달이었다.
참고로 마포는 조준만 한다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포병들의 마나 컨트롤도 중요했다.
샤아아아~!
동쪽 끝에서 여명이 퍼져 나갔다.
혹시나 해서 다들 기대했지만, 무너진 성벽은 없었다.
일부 무너져 내린 곳도 보인다.
아마도 그 부분에 집중적으로 병력을 쏟아 넣을 것이다.
“다… 단장님!!!”
인상을 찌푸린 채 군막에서 나오는 줄리아를 누군가 불렀다.
“무슨 일이지?”
“후… 후방에!! 무언가 떠 있습니다.”
“뭐가 떠 있단 말이지?”
“처… 천사 같기도 하고…….”
“꿈을 잘못 꿨나? 아침부터 헛소리를…….”
그녀는 시야가 트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진짜로 하얀 무언가가 떠 있었다.
“듣거라! 너희는 감히 탱글 님의 가호를 받는 곳을 침범했다. 이 땅에서 죽는 자들은 탱글 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이나였다.
“뭐… 뭐야!!”
“태… 탱글이면 전쟁의 신이 아니야?!”
“빌어먹을. 축복은 무슨 축복!!”
그렇다. 저 공중에 떠 있는 사제가 언급하는 축복은 죽어서 영혼이 전쟁 노예로 부려짐을 뜻하는 것이다.
싸우기 좋아하는 옛날 사람들이야 그게 축복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파아아아~!
공중에 떠 있던 세이나가 땅으로 서서히 내려오더니 빛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죽음의 음산함이 피부를 찔렀다.
“있다!! 더블린 남작이 저기에 있다!!!”
전쟁의 신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지?”
“다… 단장님!”
“됐고. 내 동생이 저기에 있단 것은 어떻게 알지?”
“전쟁의 신이 내리는 전쟁의 가호는 해당 땅에 대한 권한이 있는 자를 매개체로 써야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대한 권리가 있는 이는 파트라슈 그러니까 줄리아의 동생밖에 없었다.
“호오? 그 돼지 년이 용케도 여기까지 온 건가?”
공성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줄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차피 병력은 이쪽이 압도적이었다.
* * *
“레온 백작님… 정말 괜찮을까요?”
파트라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온을 바라봤다.
“이런 지형에서는 포병 전력이 가장 중요하죠. 저런 어중이떠중이 포병들과 제 부하들을 비교하지 마시길.”
자신만만해하는 리안.
머릿속에 주변 지형이 그려졌고. 배치에 따른 효과들이 수치로 떠올랐다.
솔직히 해전보단 육전이 전문인 리안이었다.
어쩌다 보니 해적 선장이 되어 버렸지만.
“토우기슈끼 럽!”
지켜보는 외부인들이 많았기에 이름을 불렀다.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다간 신뢰를 주지 못한다.
결국 마무리는 더블린 소속의 마총병들이 해야만 하니까.
“네. 각하!”
커다란 덩치에 전형적인 해적의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토우기슈끼 럽이었다.
“초탄이 중요해요.”
“걱정 마십쇼. 바닥이 흔들리지 않으니 하품이 나올 지경이니.”
바다에선 이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명중을 시키는 포병들이었다.
그 포병들을 좌우에 배치했다.
“백작님. 접근합니다!”
부선장이 없었기에 부관의 위치에 세바스가 섰다.
“에휴. 도대체 상대 지휘관은 무슨 생각인지.”
소속별로 뭉쳐서 마구잡이로 전진을 하는 적군이었다.
같은 소속의 용병들끼리, 마총병끼리, 징집병끼리, 기사들끼리. 아주 끼리끼리였다.
“평소 합을 맞추던 이들끼리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파트라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은 도망도 비슷하게 친다는 거죠. 부담 없이.”
“아…….”
“그리고 우리의 병력과 배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구색을 갖춰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지금 이 시기만큼 병과의 다양성이 중요할 때는 없었다.
나중에야 마총이 대세가 되면, ‘ㅁ’ 진형으로 운영을 하면 되지만, 지금은 전방에 근접병을 세워야 한다.
공격을 할 때도 마총병들이 일제 사격을 해 주고 근접병들이 돌격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선… 아니. 각하. 저놈들 들어올 만큼 들어왔습니다.”
“신호를 보내세요.”
그사이 적들은 완만한 언덕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매복하고 있던 양쪽의 마포들이 모습을 보였다.
퍼버법벙!!!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양측 포대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아마 이 시기에 포병의 질이 가장 좋은 것은 군함에 근무를 하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으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실 진형은 리안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멍청하게도 상대는 제대로 된 정찰 없이 병력을 접근시켰고 양측 포대의 십자 포화에 갇혀 버린 것이다.
퍼버버버벅!!!
커다란 쇳덩이가 적들을 가르며 지나갔다.
총알과 달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이 쓸어 버렸다.
팔과 다리 심지어는 머리까지 허공으로 비산했다.
“아아아…….”
파트라슈가 고개를 슬쩍 돌린다.
단 한 번. 겨우 한 번의 일제 사격에 적진은 완전히 지옥도가 그려졌다.
퍼버버벙!!!
두 번째 사격에 적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타다다당! 탕!!!
적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길목에는 더블린의 마총병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오히려 적들의 용병들이 숙련도가 더 높을지 모르겠지만, 지형적으로 완전히 유리한 위치다.
“만약 병력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면, 어디 한 군데는 뚫렸겠죠.”
밤새 병력을 몰래 이동시켜야 했기에 많은 숫자의 병력을 데려오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포병을 지키기 위해서 근접병을 빼야 했으니. 매복한 마총병들에겐 근접병이 붙지 않았다.
“아마도 저기와 저기는 뚫릴 거라 생각했는데…….”
리안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를 한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매복보단 중앙에 병력을 집중해 단번에 전투를 끝내 버렸을 것이다.
도주하는 적들은 굳이 쫓아갈 필요 없다.
전투에서 알아서 열외되는 자들이니.
“후… 후퇴!! 후퇴한다!!!”
적진에 하얀색 오토호스를 탄 여인이 소리쳤다.
어디 한 곳 뚫린 곳이 없으니 병력을 물리는 것이 답이다.
“이… 이겼어요!!”
파트라슈가 눈을 덩그러니 뜨며 외쳤다.
살 때문에 눈꺼풀이 묻혔는데도 제법 눈이 컸다.
아마 살이 빠지면 두 배는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보다 빨리 물리네요.”
그녀의 성격이라면 중앙 돌파나 포대를 향해 기사들을 돌격시킬 줄 알았는데, 곧장 후퇴를 했다.
매복 때문에 명령없이 도망가던 이들도 도망갈 곳은 한 곳뿐이었다.
퍼법버벙!!
도망가는 적들의 뒤통수에 열심히 마포를 갈겨줬다.
“레온 백작님… 여전히 우리보다 적의 숫자가 더 많아요.”
파트라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들이 있던 자리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적들이 널려 있었지만, 워낙 병력 차가 살아남은 적들도 많았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파트라슈 남작.”
리안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들은 싸울 의지를 모두 잃어버렸으니까.”
금방 끝나버린 방금의 전투로 적들은 질겁을 한 상태다.
평소 정신 무장이 잘 된 용병들이나 기사들이야 모르겠다만, 징집병과 어중이떠중이 용병들은 지금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아마 평생 트라우마가 남을지도.
“우리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저… 정말이요?”
적들은 양쪽으로 갇힌 상태다.
물론 소수로 움직일 수 있는 샛길 정도는 있겠지만, 다수의 병력이 이동하는 길목은 막혀 있다.
“굶어 죽든가. 항복하든가.”
거기다 매일 밤 탈영하는 병사들을 단속하는 것만으로도 지칠 것이다.
한두 명 정도는 도망갈 길이 있으니 커다란 유혹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 * *
병력을 물린 줄리아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퍽!!!
그녀는 부기사단장 미비앙의 복부를 걷어찼다.
“으억!!”
“소리를 내?! 넌 소리도 낼 자격이 없는 놈이다!”
그녀는 쓰러진 미비앙을 잘근잘근 밟아 댔다. 그것도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중요한 정보를!!”
퍽! 퍽!!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퍽!!! 퍽!!
“네놈은 실격이다!!”
퍽!! 퍼버벅!!
계속 얻어터지던 미비앙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제서야 폭력을 멈추는 줄리아.
“끌고 가!”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부하들이 조심스럽게 미비앙을 부축해갔다.
“젠장! 젠장! 젠장!!!”
그녀는 여전히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지 혼자 땅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눈을 돌렸다.
“부기사단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어… 콕! 내가 살아 있느냐?”
“흑흑. 네. 부기사단장님… 제가 그렇게 저 여자의 밑으로 가지 말자고 말렸건만…….”
주름의 개수로 보아하니 미비앙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
그는 옛날 상인 시절부터 미비앙을 따라다니던 부하였다.
“그래. 그때 네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도망가셔야 합니다. 저 여자는 오늘이고 당장 부기사단장님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멍청하긴 해도 네 촉이 나쁘진 않지. 그런데 말이야. 여기서 도망간다면 난 모든 걸 잃게 돼.”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
도망가면 몸만 빠져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는 자신을 누가 받아 줄까.
주인을 버리고 도망친 기사를 말이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요. 옛날 상인 시절이 더 즐거웠습니다. 훨씬이요.”
콕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미비앙이었다.
생각해 보니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비굴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돈을 만지는 일은 즐거웠다. 보람도 찼고.
“그래. 네 녀석이 내 마음을 콕 집어 말해 주는구나.”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도망갈 길을 알아 뒀습니다.”
“그런 걸 언제 봤대?”
“여기 진지를 꾸릴 때 둘러봤습죠. 예전에 상인은 항상 리스크를 준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하하하. 이제 네놈이 나보다 났구나.”
“아닙니다. 제가 어찌 상단주 아니 부기사단장님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업히십시오.”
“아니야. 아니다. 나도 대책이 없는 게 아니야.”
미비앙은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내 몇몇 마음에 맞는 자들을 포섭해 놓긴 했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해. 내가 말해 주는 놈들에게 가서 이걸 보여 줘.”
“이게… 뭡니까?”
“레온 백작의 친필 서신.”
서신을 건네받은 콕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상단주이십니다!!”
“갑자기 왜 또 상단주래?”
“이번 일이 잘 풀리면 기사 따위는 개나 줘 버리십시오!”
“그래도 아깝잖아. 레온 백작이 날 받아 주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심을 품는 미비앙이었다.
“최근 이런 말을 자주 하셨지 않습니까? 주인을 문 사냥개 따위의 마지막은 가마솥이라고.”
“하긴. 이용만 해 먹고 버리겠지.”
그래도 이대로 몸만 빼기엔 억울하고 원통해서 안 되겠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자신의 돈이 들어간 병사들은 모두 데리고 나갈 것이다.
돈을 잃었지만 그들만 잘 간수하면, 곧 힘이 될 것이다.
* * *
리안은 샤로트와 몇몇 부하만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적진에 다가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소형 마포를 짊어진 샤로트를 본 적진은 난리가 났다.
그르렁. 그르렁.
급히 적들도 마포 다섯 문을 전진 배치했다.
그것도 모자라 성미가 급한 줄리아가 발포 명령을 했고. 제대로 조준도 안 하고 쏴 버렸다.
퍼버버벙!!
다섯 문의 대포가 동시에 터졌고.
“위험합니다.”
옆에 있던 세바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며 팔을 뻗었다.
푸아아아악!!!!
놀랍게도 땅에서 솟아난 줄기들이 날아오는 포탄을 옭아맸다.
워낙 위력이 강하다 보니 줄기가 고무줄처럼 늘어났고
스스스스~!
세바스의 코앞에서 회전하다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대충 쏘니까 더 잘 쏘네?”
리안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들의 실력에 이 거리에서 맞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텐데 말이다.
가끔 크리티컬이 터지는 원리와 비슷한 건가?
“전쟁터는 언제나 위험합니다. 선장님.”
리안의 부하들만 있었기에 세바스는 리안을 편히 불렀다.
“고마워요. 세바스 아저씨.”
다만, 샤로트는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도련님! 제가 저것들을……!!”
“아니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내버려 둬. 그냥 적당히 무력시위만 하자고.”
리안의 시선이 포병들 뒤로 보이는 깃발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