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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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엘에 고용된 전투함 세 척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의문의 철갑선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함선이 순식간에 한 척이 격침되고. 다른 한 척이 교전 중이다.
퍼버버벙!
그 교전 중인 한 척도 어이없게 당하기 일보 직전.
“도… 도대체 저건 뭐야?!!”
세 척을 이끄는 용병 단장은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저 형태의 철갑선이라면… 스랑 해전에서 활약한 그…….”
“젠장! 레온 백작이란 말인가!? 아니. 저놈이 왜 데르가의 돼지 편을 들고 있지?”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잉글슨 왕국의 편에 서서 활약한 리안을 단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해전에 자신들도 용병으로 참여를 했었기에.
“일단 통신을 넣어 봐!”
“아… 알겠습니다.”
치이익~!
얼마 가지 않아 고잉미샤호에서 답신이 왔다.
[아니 싸우다 말고 왜 말을 걸어요?]
“싸움은 그쪽이 걸었지 않소?!!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갑자기 공격을 하는 거요.”
단장이 단단히 뿔이 났다.
[갑자기라니. 전쟁을 하러 와서 경계를 느슨하게 한 것은 그쪽 실책 아닌가요?]
“아니. 그렇다 칩시다. 그럼 우릴 공격하는 연유는 뭐요.”
[나. 파트라슈 데르 양의 후원자입니다만. 다시 말해 동맹이란 말이지요. 후훗!]
통신구 너머로 어린아이의 비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버버벙!!!
그와 동시에 아군의 배에서 하얀 깃발이 올라왔다.
도저히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침몰하기 전에 항복을 하려는 듯 보였다.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
이제 남은 배는 단장의 기함뿐.
항복을 한 아군의 배를 비난했지만, 본인도 기민하게 움직이는 철갑선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저 배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그냥… 조타수 차이가 아닐지…….”
기함의 조타수가 말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조타수의 눈에는 그게 보였다.
“넌! 이길 수 있냐?”
“그게 가능하겠소. 단장. 저런 실력이었으면 어디 제국에 가서 빌어먹고 살고 있겠지.”
“으휴… 도망은?”
“저 배 생각보다 빠르오. 얼마 가지 않아 따라 잡힐 것 같은데…….”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저기… 레온 백작 각하!”
[갑자기 존대하는 이유는 요?]
“그냥 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함께 싸웠던 전우인데…….”
[전우?]
“스랑 제국과의 해전에 저희도 참전했습니다.”
[아~]
리안의 감탄사.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보내 드릴게요.”
리안이 말했다.
고잉미샤호의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방금 전 싸움으로 데미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더 무리한다면, 또다시 수리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같이 싸운 정을 생각해서 이번 한 번은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각하!]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단장은 그대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생각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백작님. 왜 그냥 보내 주는 건가요? 배가 조금 데미지를 입긴 했지만, 충분히 싸울 수 있는데…….”
흐리아 민이 의문을 표했다.
평소 배를 거칠게 다루는 리안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있어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싸울 필요 없는 적과 소모전을 벌일 필요는 없지. 전리품은 저거 하나로 충분하고.”
근처에는 항복해서 하얀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몸값을 받고 풀어줘도 되고. 상황을 봐서 이쪽 편으로 편입시켜도 된다.
고잉미샤호에 근무하는 선원을 로테이션시키려면 인원 충원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리고 너무 인심이 박하면 못써요~”
아마도 도망간 적이 소문을 내어 줄 것이다.
그냥 봐준 것이 아니라 같은 편으로 참전한 적이 있는 전우니 보내 준 것이다.
앞으로 큰 전쟁이 있을 때, 용병들은 리안의 편에 서려 할 것이다.
물론 금전적 기회비용이 크지 않을 때에 한해서.
“포터 삼춘.”
“네.네. 서… 선장님!”
“신호를 보내서 항구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포로 관리는 파트라슈 시장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흐리아. 항구로 가서 배를 대.”
“넵! 백작님.”
리안은 선교로 나가 뱃머리로 향했다.
샤아아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와서 부딪혔다.
“캬~ 이것이 간지지.”
리안은 선미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나름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
그걸 본 일부 선원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 멋있게 보이기도 했다.
‘백작님. 너무 멋있으시다… 조타 실력뿐만 아니라 지휘 능력까지……!’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라보는 흐리아 민.
‘오오~ 역시. 도련님! 나도!!!’
리안의 근처에 가서 포즈를 따라 하는 샤로트.
‘나를. 정말. 나를 구해 주러 오셨어!!’
가마를 타고 항구에 마중을 나온 파트라슈 데르 남작.
그녀는 흥분을 했는지 볼이 푸드드 떨리고 있었다.
철커덩!
고잉미샤호가 항구에 닿았다.
원래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써 자신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는 파트라슈였지만.
“레온 백작님!!!”
그녀는 가마 밖으로 나와 리안을 맞이했다.
“안 본 사이에 더 이뻐지셨습니다. 파트라슈 남작.”
“놀리지 말아 주세요. 백작님.”
달덩이 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파트라슈.
“다른 건 모르겠고.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데...”
“주로 먹는 케이크를 바꿨거든요…….”
예의상 한 말임을 알지만, 수줍게 답하는 파트라슈였다.
덩치가 매우 컸지만,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항구의 감옥을 좀 쓸 수 있을까요?”
“저기 항복한 배 때문인가요?”
“네. 몸값을 지불하든가. 아니면 우리 쪽으로 전향하는 이들을 분리해 주세요.”
“간수들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더블린 항구는 규모가 큰 편이다.
당연히 감옥도 충분했고. 관리하는 간수도 따로 있었다.
“햇볕은 피부에 좋지 않으니. 어서 들어가죠.”
“네… 백작님.”
밖으로 나다니지 않아서인지 파트라슈 남작의 피부는 확실히 좋아 보이긴 했다.
“시… 식사는 하셨는지요.”
시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식사보단 상황 파악을 먼저 하고 싶네요.”
“네! 이쪽으로…….”
그녀가 안내한 방에는 작전판이 놓여 있었다.
아군과 적의 대략적인 병력 배치도 파악이 가능했다.
“보자… 차이가 네 배네요. 저쪽에서 작정을 했나 본데…….”
“오리엘 백작가에 지원을 받았어요…….”
우울해하는 파트라슈.
용병에 의존을 해야 하는 그녀였지만, 일이 꼬여 병력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천이백 명 이라…….”
상대는 징집병까지 동원했다.
그나마 더블린 항구가 큰 축이라 거주하는 시민의 숫자가 꽤 되었다.
그들을 민병대로 징집을 해 놓은 상태라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펑! 퍼버벙!!
가끔 간헐적으로 성벽 방향에서 포격 소리가 들렸다.
상대 쪽에서 마포를 동원한 모양.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이쪽은 왜 대응하지 않죠? 해안포들을 성벽으로 옮기면 될 텐데.”
“대형 포밖에 없어서 성벽에는 마땅히 거치할 장소가 없어요.”
성벽도 형식상 존재할 뿐 그다지 견고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 더블린 항구는 데르 백작 소속이니 내륙 쪽에서 공격당할 일이 없다.
만약 성벽을 보완한다면, 더블린 항구가 딴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걱정 마세요. 내가 왔으니.”
“아무리 백작님이라 해도 병력 차는 극복을…….”
고잉미샤호의 선원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병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나마 수성에 성공할 가능성은 조금 높아졌다.
성벽을 공략하려면 세 배~다섯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
거기다 고잉미샤호에 설치된 마포중에는 소형 마포도 있으리다.
“병력의 숫자만 보면 우리가 불리할진 몰라도 지형을 보면 우리가 유리해요.”
“네? 오히려 우리가 불리한 것이 아니라요?”
파트라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방어 기능을 겨우 하는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낮은 성벽.
성문을 열고 나가려 해도 상대가 진을 친 곳은 고지대였다.
방어만 하다 끝날 전쟁처럼 보인다.
“여길 보세요.”
리안이 지도를 짚었다.
“설마…….”
“네. 여기에 포대를 설치할 겁니다.”
리안이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리는 파트라슈였다.
* * *
장녀 줄리아 데르 진형.
“왜 아직도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한 거지?”
신경질으로 부하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그녀.
“그것이 조만간 무너질 겁니다…….”
“도대체 포병들이 평소 훈련을 어떻게 하기에 저렇게 중구난방으로 쏘는 거야?!!”
죽일 듯이 미비앙을 노려보는 그녀.
“죄송합니다. 주군…….”
미비앙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아니. 내 돈이 아니었으면 포병은커녕 마포의 화약 냄새도 못 맡았을 거면서!!’
포병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훈련도가 좋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전통이 없는 부대라 훈련이 막막했다.
이제 막 육전에서 포병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라 어디서 교관을 구해 오기도 힘들다.
“내일도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본보기로 네 목을 치겠다.”
“그… 그런…….”
“밤을 새워서라도 포격을 하란 말이다!”
그녀는 으름장을 놓고선 지휘소를 나가버렸다.
“하… 저 성격! 눈빛을 보니 진짜로 내 목을 칠 것 같은데… 그냥 도망칠까…….”
미비앙은 목이 서늘함을 느꼈다.
답답한 마음에 그도 밖으로 나와 배회를 했다.
그런데.
샤샥!
어디선가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
놀란 미비앙이 고개를 돌렸다.
“전쟁의 신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옅은 달빛에 비친 사제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아아…….”
은은하게 풍겨 오는 신성력.
상대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개방해 준 것이다.
‘잠깐? 전쟁의 신?!’
외모에 잠시 홀렸다가 그녀의 정체를 곱씹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 사제께선 제게 무슨 볼일이…….”
“부기사단장께 이걸 전해 드리라 하더군요.”
“네? 누가…….”
“보시면 안 됩니다.”
세이나는 양피지 한 장을 바닥에 내려 놓고선 어둠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앞에서 시선을 놓쳐 버린 그는 눈을 끔뻑였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젠장!”
눈앞에 놓인 양피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들키면 진짜로 죽는다.”
무슨 내용이 들어 있든 상관없다.
포악한 줄리아의 성격으로 봐선 무조건 의심부터 할 것이다.
샤샥!
일단 급히 품 안으로 양피지를 넣은 미비앙.
그는 자신의 막사로 이동했다.
‘도대체 아무런 힘도 없는 내게 이런걸 왜…….’
간이 작은 그는 모포까지 뒤집어쓴 다음 양피지를 펼쳐 보았다.
일단 읽어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레온… 백작?!’
예전에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불리한 상황이 오면, 자신에게 호응을 하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줄리아에게 불만을 가진 기사들과 고참병들이 의외로 많았다.
거기다 일부 병력은 자신의 돈으로 고용된 상비군.
‘문제는 우리가 너무 유리하단 말이야…….’
호응할 이유가 생길 리가 없다.
더블린의 병력과 수준은 이미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보다 레온 백작은 어떻게 더블린으로 들어간 거지?’
양피지의 내용으로 봐선 레온 백작 본인이 이 서신을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항구가 오리엘 백작이 고용한 세 척의 군함에 의해 봉쇄 당했다.
‘부유선 한 척이 전부일 텐데… 설마!’
생각은 아주 단순히 흘러갔다.
세 척보다 더 많은 배를 끌고 왔다면 봉쇄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어쩌면 해적들을 고용했을지도…….’
해적들은 부업으로 용병 일도 한다.
전문 용병들과 달리 통제가 매우 힘들어서 그렇지 전투력은 보장된다.
‘그렇다면…….’
배 한 척에 300~500명으로 잡는다면, 비슷해지거나 많아진다.
서신의 내용으로 봐선 자신이 있어 하는 눈치니.
‘더 많다는 거겠지?’
동급의 병력으로는 여길 뚫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것이 더블린의 성벽에는 하자가 많았다.
오히려 공격하는 쪽이 더 고지대다.
‘이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분명하다!’
미비앙은 등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리안과 친분을 다지지 않았더라면, 이 사실을 모른 채 적을 맞이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신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더군다나 방금 전 만났던 사제는 전쟁의 신 사제이지 않은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
‘준비를 해야겠어. 줄리아 그년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