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136
받는 것이 좋을까? 아님 물리는 것이 좋을까?
리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단 받아?’
아마도 리안이 스랑 제국과 엮인 전쟁에 참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계략으로 보인다.
‘오히려 좋아.’
율 대륙의 향방은.
잉글슨 왕국+로이센 왕국.
vs
신센롬 제국+스랑 제국+이벨 왕국+슬라브 왕국.
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보기엔 신센롬 제국 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여기서 복병은 로이센 왕국이다.
로이센 왕국의 국왕이 프리들 국왕은 SR급 전략가.
육전 최강의 캐릭터다.
그가 훈련시킨 군대도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군.
‘내가 슐 지역을 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지금쯤 신센롬 제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겠지.’
원래라면 개판이 될 것이고 7년 이상 전쟁이 지속 될 예정.
그런데, 리안이 끼어들면서 비등비등한 싸움이 될 것이다.
‘내가 빠져 주는 게 좋지.’
전쟁이 길어지면 리안에게도 참전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벨 왕국의 국왕은 리안의 실력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더더욱.
‘괜찮은 명분이야.’
잉글슨의 작위를 받음으로써 조금 곤란하다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그래도 참전을 원한다면, 리안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어 줘야 할 것이다.
“그대의 공이 크지만, 아직 전쟁 중이라 포상을 하기는 힘들다네. 논공행상은 전쟁이 끝나야 하는 것이니.”
“이해합니다. 전하.”
“그래서 일단 그대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명예 백작을 내릴까 하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잉글슨의 귀족이 된 것을 명예롭게 여기겠습니다.”
리안은 ‘명예’란 단어를 강조했다.
아무리 작위를 받았다 하더라도 여기에 대한 의무는 거의 없다.
그럴 것이 봉신이 아니기 때문.
그때.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시종이 다급히 국왕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름 귀빈을 만나는 중인데, 저런 행위는 예의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저렇게 한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 터졌다는 것.
‘뭐지?’
국왕은 잠시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
‘스랑 제국과의 전쟁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네.’
만약 그랬다면 양해를 구하고 일단 자리부터 떴을 것이다.
지금 잉글슨 왕국에 가장 큰 이슈가 바로 스랑 제국과의 전쟁.
그것도 리안이 판을 깔아 놓은 마나석 광산이니.
‘설마…….’
아주 낮은 확률로 아일리 섬에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떤 트리거로 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기 발생하는 이벤트다.
리안은 그걸 대비하기 위해 부선장에게 신물을 찾아 놓으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좋아. 일이 잘 풀리네.’
리안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전하. 그리고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뭔가?”
“제가 아는 이중 옛 트라몰 남작가의 후손이 있습니다.”
“트라몰?”
“올몬드 백작령의 속령입니다.”
그 말에 국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올몬드 백작령은 예전 잉글슨 왕국에 끝까지 저항하던 영지.
“그런가?”
“네. 그는 올몬드 백작령의 인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부선장이 아니라 오스라거 백작가가 보관하고 있지만.
어쨌든 계약이 아직 유효하므로 부선장이 돈을 가지고 가면 돌려줄 것이다.
꽤 많은 돈을 주겠지만, 그걸 상쇄할 방법이 있긴 했다.
“그래서 다시 영지를 되찾겠다던가?”
“네. 여기 영지 선포에 대한 서신입니다.”
리안은 마법처리가 된 양피지를 시종에게 넘겼고. 시종은 불순한 마법이 걸려 있지는 않은지 조사한 뒤 국왕에게 넘겼다.
“반성한다라…….”
국왕은 대충 양피지를 훑어보더니 핵심 단어를 찾았다.
그 말은 영지를 찾게 되면 저항이 아니라 복속하겠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다.
“그자는 아트로네 백작인 저희 외조부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지전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겠군.”
만약 국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트로네 백작이 부선장을 봉신으로 삼아 버릴 수도 있다.
아트로네 백작은 잉글슨 국왕의 봉신이고.
자연스레 부선장도 잉글슨 국왕의 왕국의 봉신이 된다.
여기서 부선장이 올몬드 백작령을 차지하게 된다면? 같은 작위가 됨으로 자연스레 독립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상위령인 잉글슨에 속하게 되니.
“음…….”
잉글슨 국왕은 잠시 고심하는 듯 보인다.
‘뭘 고민하는 거야? 허락하나 허락하지 않으나 같은데. 이왕이면 허락하는 쪽이 그림이 좋잖아.’
그때 리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국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좋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무엇입니까? 전하.”
리안이 볼이 씰룩였다.
“지금 데스몬트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더군. 영지전이 끝나면, 그걸 진압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네.”
데스몬드 백작령은 아일리 섬 남부 끝에 있는 땅이었다.
영지 크기로는 아일리 섬에서 가장 컸다.
“민란이 일어났는데 그렇게 시간을 줘도 되겠습니까?”
민란의 특성은 시간을 주면 점점 눈덩이처럼 규모가 커지는 성향이 있었다.
“상관없네. 데스몬트 백작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네.”
잉글슨 국왕의 생각이 뻔히 보였다.
어차피 데스몬트 백작은 아일리 섬의 전통 귀족이니 민란으로 힘이 빠지면 좋은 것이다.
“만약 그도 함께 동요하면 어떻게 합니까? 반군과 합류한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설마. 겁도 없이 그러려고.”
만약 그리되면 백작이 그들과 호응한다면, 백작가의 총동원령이나 다름없게 된다.
문제는 일반적인 총동원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기에 일반적인 백작령의 군사력의 몇 배나 될 것이다.
“괜한 우려겠지만 자칫 다른 백작가들도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대는 어린 나이에도 참으로 총명하군. 좋네. 그대에게 아일리 섬의 총사령관 지휘를 주겠네.”
리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권한은 어디까지입니까?”
“그대의 우려대로 민란이 데스몬드 이외의 영지로 번지면 아일리 섬의 모든 백작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리라네.”
리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속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아일리 섬의 귀족들은 고집이 센 자들입니다. 아무리 제가 외조부의 후광이 있다 하더라도 저를 따르겠습니까?”
내가 왜? 란 뜻으로 보상을 내어놓으란 말이었다.
“명예 후작위를 주겠네.”
국왕은 그럴 일이 없다며 공수표를 마구 날렸다.
애초에 민란은 데스몬드 백작선에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데스몬드 백작이 봉기에 가담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
‘과연 그럴까? 이걸로 나를 아일리 섬에 붙잡아 두려고?’
일단 총사령관에 임명이 되었고. 권한이 생기려면 일단 데스몬트 백작령 밖으로 민란이 번져야 한다.
다시 말해 리안은 민란이 끝날 때까지 아일리 섬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는 말.
“잉글슨 왕국의 후작으로서 잉글슨을 뒤흔들려는 불순한 무리들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전하!”
리안은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올렸다.
이런 식으로 후작위를 얻을 줄은 몰랐다.
‘명예’가 붙긴 했지만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훨씬 좋았다.
리안은 이미 백작령이 3개나 되었으니 후작이 될 만했다.
문제는 부루타뉴 공국에 2개. 신대륙에 1개이며.
브루타뉴 공국에 있는 영지 중 하나는 수도 인근이 물바다가 되어서 쓸모가 없어졌다.
“든든하군. 레온 후작. 어서 가서 채비를 하게나.”
“만수무강하소서. 전하!”
리안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 접견실을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후작위를 인증하는 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명예 후작이라 무시를 할지 모르겠지만, 리안은 일반적인 명예 후작과 다르다.
실질적으로 영지를 가지고 있으니.
“좋아. 좋앙~!”
리안은 증서를 빙글빙글 돌리며 고잉미샤호로 돌아왔다.
“아기 상어. 갔던 일이 잘 되었나 봐?”
갑판에는 눈이 쾡한 기관장 헤르미가 나와 있었다.
몰골만 봐도 리안이 내어 준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 게임의 신께서 저를 보우하시나 봐요.”
“그래? 잘되었네.”
“누님. 일은 어떻게 진척되고 있어요?”
리안은 마세르에게 받은 마총이 궁금했다.
“불안정하긴 하지만, 대단한 물건이긴 해.”
“문제라도 있나요?”
“사거리와 위력은 확실히 잘 나와. 문제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 이딴 총으로 어떻게 기사가 있는데도 병사를 저격했는지 모르겠어.”
마총의 성능과 별개로 마세르의 능력이 좋단 말이었다.
“한번 쏴 봐도 되나요?”
“응. 가져올게.”
잠시후 헤르미가 커다란 마총을 리안에게 쥐여 줬다.
리안도 허리춤에 핸드 캐논을 차고 다녔기에 마총이 익숙할 것이다.
“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리안은 즉시 마총을 바다로 겨누었다.
때마침 바위섬이 보였기에 표적으로도 딱 좋았다.
딸깍! 탕~!!
한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생각보다 훨씬 큰 소리다.
“어어?!!”
리안이 놀란 듯 헤르미를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어렵네요.”
“대량으로 양산해도 이걸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다운그레이드해도요?”
리안의 말에 헤르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사거리와 위력이 많이 약해질 거야. 보강을 위해서 총의 무게도 더 붙을 거고.”
“시중에 나와 있는 머스캣과 비교하면은요?”
“사거리는 1.2배, 길이는 90%, 무게는 80% 정도의 성능은 나오겠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더블린에 도착하면 총을 포장해서 설계도와 함께 영지로 보내 줘요. 오토호스보다 마총 설비부터 만들어야겠어요.”
“스승님이라면 생산 설비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을 거야.”
세기바라 우르르 남작이 레온 백작령에 도착할 때가 다되었다.
그와 제자들이라면 충분히 설비를 만들 것이고. 사람을 채용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부탁해요.”
* * *
더블린 항구는 마포 소리로 요란했다.
원인은 데르 백작가의 자매의 계승 전쟁으로 인한 것이다.
‘아아… 레온님!!’
자신만만하던 차녀 파트라슈는 생각보다 훨씬 고전했다.
용병들을 고용하려 했지만, 율 대륙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용병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덕분에 질 낮은 용병들을 대거 고용했고. 그 결과 기사단의 지지를 받는 장녀 줄리아에게 속절없이 밀려 버렸다.
“시장님!! 그만 항복하심이… 가문의 가주 자리를 포기한다면,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저주받은 몸뚱이는 케이크를 원했다.
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가주의 인장이 필요하다.
“죽어도. 죽어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녀는 리안과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 꿈을 포기하는 순간 살고자 하는 욕구조차 꺼져 버릴 것이다.
쾅!! 콰아아앙!!
요란한 마포 소리가 또 들렸다.
다만, 이번은 성벽이 아니라 바다 쪽이었다.
“아아…….”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구에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 마포들이 설치되어 있다.
웬만한 전력으로 항구로 진입할 생각을 못 할 터.
그런데, 바다에서 마포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언니가 상륙할 만큼 충분히 배를 모았다는 소리일 터.
그녀의 외가가 나섰을지도 모른다.
“시… 시장님!!! 레온 백작께서 오셨습니다!! 저길 보십시오!!”
바다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앞서 말했듯 장녀의 배들이 호시탐탐 항구를 노렸지만, 감히 진입은 못 하는 상태.
그런데, 그 배들을 향해 신형 철갑선이 싸움을 걸었다.
* * *
“우현으로~~”
리안은 선장석에 앉아 느긋하게 명령을 내렸다.
조타를 잡은 것은 흐리아 민.
“좌현! 거기서 속도 두 칸 낮추고. 좋아. 좌우 좌우.”
마치 래퍼처럼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이걸 알아듣고 조타를 하는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다.
“오오오옷!!!”
흐리아 민도 리안의 명령에 따라 조타를 잡은 뒤 흥이 저절로 오르고 있었다.
“배… 백작님. 노래를 틀어도 될까요?”
흥을 이기지 못한 흐리아 민이 물었다.
“좋아~! 음악! 큐우우우~”
리안의 허락이 떨어지자 통신 마법사 포트가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미리 녹음 된 음악이 바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어다아아~~! 그분께로 향하리~! 오~나의 죽음은 그분의 것.]
귀청을 찢어 버릴 것 같은 요란한 음악.
-뭐… 뭐야!!
-드… 듣기 거북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져.
그걸 들은 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적들은 고잉미샤호로 마포를 발사하는 걸 잠시 잊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찬스!! 우현 일제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