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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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고잉미샤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마스쥬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어쩌자고…….’
자신의 딸 아이의 목에 걸린 고양이앞발 모양의 인장.
영지의 실무는 재상과 집사장이 하겠지만, 명목상 대리인을 여동생 나탈리아로 지목했다.
“백작 부인. 안으로 드시지요.”
거기다 졸지에 마스쥬는 레온 백작령의 백작 부인이 되어 버렸다.
케네이나는 자신의 아들이 마맨 백작이 되는 바람에 그곳의 백작 부인이 되었기 때문.
백작 부인은 공석이 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마스쥬가 레온 백작령의 안주인이 되어 버렸다.
“영주님. 만세!!!”
시민들은 고잉미샤호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송별을 했다.
리안은 이제 이곳에서 거의 신격화가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쿠르르르르~~
고잉미샤호는 공국의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도 열심히 바닥을 긁으며 길을 만들었다.
기관장 헤르미는 리안에게 바가지를 긁어댔다.
“수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이고. 누님. 이번만 좀 봐주세요. 한 번 지나간다고 그게 길이 되나. 열심히 다져 줘야죠.”
집사장에게 시켜 고잉미샤호가 지나간 곳을 다져 부유선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란 명령을 내렸다.
임시가 아닌 온전한 길이 되려면,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일.
공사의 기간과 비용을 덜기 위해선 미리 커다란 나무나 바위를 치워 놓을 필요가 있었다.
“와아아아아!!”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구 케리시안 남작령, 현 농업 자유 지구를 지나쳤다.
고잉미샤호가 지나갈 때마다 작은 마을들은 밖으로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대부분 농노였던 자들.
리안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땅까지 받았기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기 좋군.”
그렇게 자유 농업 지역을 지나 레온 백작령의 입구.
원래는 입구가 아니었지만, 리안이 새롭게 길을 낸 것이다.
“와아아아아!”
그곳에 있던 화전 마을에서도 고잉미샤호가 보이자 주민들이 튀어나와 환호했다.
예전에 비해 혈색이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세바스 아저씨! 확인하고 와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세바스는 오토호스를 타고 화전민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다.
“횡령한 흔적은 없습니다. 성실하게 마을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좋아요. 그럼. 출발~!”
다시 고잉미샤호는 출발해 빠르게 공국의 수도로 향했다.
선장석에 앉아 그걸 지켜보던 아트로네 백작은 계속해서 놀랐다.
‘이 녀석… 정말 내가 알던 외손자가 맞단 말인가…….’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오가는 대화만 들어도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계승 전쟁 중이던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속전속결로 장악하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발전시킬지까지 빠르게 판단해 조치했다.
듣도 보도 못한 자유 농업 지역까지.
그것도 모자라 계승 전쟁에 개입한 옆 영지까지 정리해 버렸다.
‘정녕 지고왕의 화신인 걸까?’
아트로네 백작은 아일리 섬의 귀족이다.
지금은 잉글슨 왕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섬이지만, 이곳에도 과거 왕이 존재했다.
‘만약 그렇다면…….’
아일리 섬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지고왕이 탄생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아일리 섬 전통 귀족들은 다들 지고왕의 핏줄이 조금씩 흐르고 있으니 자신의 가문에서 지고왕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 인장을 넘기겠다.’
만약 믿을 만한 자가 나온다면, 과거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똘똘 뭉칠 것이다.
이미 자신의 두 손주들은 가망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조종구를 흐리아 민에게 넘긴 리안이 물었다.
“누굴 닮아 이렇게 잘생겼는지 생각했다. 크흠.”
“누굴 닮긴요. 어머니 닮아서지요.”
“그렇지. 우리 가문의 피가 좀 잘… 생겼지. 껄껄껄.”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리안도 자신의 얼굴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선장님! 곧 공국의 수도입니다.”
열심히 달리고 달리니 공국의 수도에 닿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동안 딱히 별일은 없었지만, 수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사들이 리안을 마중 나와 있었다.
츠츠츠츠!
고잉미샤호가 속도를 낮추며 옆으로 널빤지를 내리자 오토호스 한 기가 올라왔다.
“전쟁 영웅이신 레온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근위 기사단 소속 미토투칸입니다. 공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연히 전하를 뵈어야지. 곧장 궁전으로 가겠노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각하!”
기사는 군례를 올리고 다시 고잉미샤호에서 내렸다.
느린 속도지만 여전히 고잉미샤호는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인다.
“근위 기사임에도 뻗댈 만한데, 제법 공손하구나.”
“그러게요. 훗.”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안이 처음 궁에 방문했을 땐 리안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눈빛이었다.
사실 리안이 공왕의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긴 했지만.
투트트트!
그런데, 근위 기사들이 나와 고잉미샤호 앞을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이제 브루타뉴 공국에서 리안에게 뻗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공왕이라 하더라도.
“어서 오게! 레온 백작!!!”
공왕은 버선발로 궁전 밖에까지 나와 있었다.
예전부터 눈엣가시 같던 마맨 백작을 단번에 치워 버린 인물.
“이렇게 환영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하.”
다만, 리안의 고개는 뻣뻣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대가 원한다면 이번 전쟁의 상으로 후작위를 내려 줄 수도 있다네.”
리안의 백작령급 영지가 4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하나의 땅이라면 스스로도 공작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모두 흩어진 땅이라 불가능했다.
“마맨 백작령은 동생에게 주어 독립했습니다. 그러니 후작은 과합니다.”
“하긴. 자네가 후작이 되어 동생을 아래로 둔다면, 스랑 제국에서도 반기지 않겠지.”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스랑 제국과 잉글슨에서 소유권을 인정해 준 것은 독립해서였다.
하브스 가문과 연관된 리안이 직접 그 땅을 가진다면,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아. 옆에 계신 분은 혹시.”
“네. 제 외조부 되십니다.”
뒤늦게 리안의 옆에 있는 아트로네 백작을 발견한 공왕.
“반갑습니다. 나라가 어수선하여 대접을 잘 해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아트로네 백작.”
“소문으로 듣던 명군이신 공왕님을 뵌 것만 해도 제게 큰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적당히 인사를 섞었다.
외국의 백작임에도 공왕은 아트로네 백작에게 상당히 깍듯했다.
공왕조차도 이제 리안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 * *
승전 파티는 3일을 잡았으나 리안은 하루만 머무르다 다시 떠났다.
공왕은 아쉬워했지만, 잉글슨 국왕이 기다린다 하니 바로 보내 줬다.
“그런데… 이 방향이 아닌 것 같다만… 분명 저 땅이 아일리 섬이라고…….”
항해를 하던 도중 아트로네 백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지만, 동서남북 정도는 알았다.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요.”
점점 어느 섬에 가까워지자 아트로네 백작은 질색을 했다.
그럴 것이.
“해… 해적 섬……!”
아무리 뛰어난 기사인 그라고 해도 해적들이 우글거리는 해적 섬에 들어간다는 것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해적이 아니라면 일국의 국왕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기에.
“우오오오오오!!”
배가 닿기 한참 전에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이 들썩였다.
이들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
“내 살다 살다… 해적 섬에 올 줄이야. 그보다 여긴 왜 왔느냐.”
“재정비를 해야죠. 그동안 임시로 수리를 해서 제대로 정비를 맡길 필요가 있거든요. 그리고 용병도 조금 고용할 필요도 있고요.”
리안이 용병 이야기를 꺼내자 아트로네 백작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잉글슨 국왕을 만나러 가는데 갑자기 웬 용병이란 말인가.
“용병은 어디에 쓰려고?”
“요즘 아일리 섬의 정세가 영 불안하다 하더라고요.”
“음?!”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드러나는 아트로네 백작.
아일리 섬의 일이라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불안할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제 부하가 아일리 섬의 귀족이거든요.”
“누가 말이더냐. 아. 세바스 남작 말이더냐?”
“아뇨.”
리안이 부선장석에 앉은 산적 같은 남자에게 시선을 주자.
“서… 설마 이자가……?”
“거참.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건 선장이나 선장 외할아버지나 같구만.”
“풉! 역시 우리 할아버지~”
리안은 입을 가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올몬드 백작령의 주장자예요.”
“음?! 이자가 올몬드 백작가의 핏줄이라고?! 산적같이 생긴 것이… 그 집안 피를 이은 것 같긴 한데…….”
열심히 부선장의 얼굴을 뜯어보는 아트로네 백작.
“올몬드의 후손은 아니고 트라몰 남작가의 피를 이었어요.”
“그걸로는 주장자라 하기엔…….”
“올몬드 백작가 마지막 후손의 유지를 받았어요. 전쟁의 신 사제가 증명해 줄 거랍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리안 해적단은 원래 올몬드 해적단이었다.
“뭐…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우마.”
전쟁의 신 사제가 증명한다는데, 뭘 더 말하겠는가.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신다니 든든하네요.”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영지로 돌아가면 뒷목부터 잡을지 모르겠지만…….
철커덩!
고잉미샤호가 부두에 닿았다.
해적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고잉미샤호를 바라봤다.
-리안 해적단이다!
-이제야 돌아온 것인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들이었다.
이제 리안은 거물이 되어도 너무 거물이었다.
철컥!
판자가 부두로 내려오고 리안이 부하들을 대동하고 내렸다.
항구 관리인이 달려와 고개를 숙인다.
“해적왕께서 기다리십니다.”
고잉미샤호가 바다에 나타났을 때 이미 해적왕에게 보고가 되었을 것이다.
항구에 닿을 때까지 아무런 재지가 없어 원래 그런가 싶겠지만, 군함이었다면 해안포에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해적 섬은 항시 바다를 주시했다.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영광입니다. 선장님!”
항구 관리인도 해적이었지만, 리안에게 깍듯했다.
우르르르!
리안 일행이 움직이자 홍해가 갈라지듯 해적들이 길을 터 줬다.
이전 해전으로 올린 명성 덕도 있겠지만, 그 전쟁으로 쟁쟁한 해적들이 많이 사라졌다.
자연히 살아남은 리안의 위치가 올라갈 수밖에.
“거참. 해적들이라 해서 거칠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
“뭐. 저도 해적 물을 좀 먹었으니까요. 헤헤.”
외할아버지와 손자의 말에 부선장은 기가 찼다.
여기서 리안보다 해적 물을 덜 먹은 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끼리리릭!
항구 관리인이 안내한 곳에 도착하니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물은 아니었고 거대한 바위 동굴의 입구였다.
“이러니 해적 섬이 여태 함락당한 적이 없구나.”
아트로네 백작은 신기한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동굴은 넓고 여러 개의 통로로 되어 있었고. 마치 요새처럼 중간중간 밖이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곳곳에 해안포도 배치되어 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리안은 조금 의아해했다.
해적왕의 성격이라면 부두까지 나왔을 것 같은데…….
끼리릭.
마지막 문이 열렸다.
안은 꽤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그곳 중심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하하하. 왔구나. 내 어린 은인이여.”
“어어? 해적왕 할아버지. 괜찮나요?”
해적왕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리안이 떠나고도 한참이나 해전이 계속되었다.
서로 전력이 비슷했기에 꽤 치열했다고 들었다.
“아. 이거?”
해적왕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붕대를 이리저리 뜯어 버렸다.
그러자 노인의 몸에서 탄력 있는 근육들이 튀어나왔다.
“잉글슨 대제독이 하도 귀찮게 굴어서 대충 다친 척하고 발을 뺐어.”
부두로 나오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인가 보다.
돈 몇 푼에 정보를 팔아넘길 자들이 넘칠 테니.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다친 척을 했단 말이지. 좀이 쑤셔.”
리안도 저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유행병 때문에 자가 격리를 해 봤기 때문.
특히나 해적왕의 경우 상당히 활달한 성격이라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꼬마. 너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대제독이 너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아마. 안 될 거예요.”
리안이 여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해적왕은 아직 리안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다.
아무리 잉글슨 해군이 급해도 신센롬 제국의 사위를 입대시키진 못할 것이다.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그래. 해적 섬엔 웬일이지?”
“해적이 해적 섬에 못 올 이유라도 있나요?”
“그건 그렇지.”
“사실 용건이 좀 있긴 해요.”
“그래? 하하하. 용건이 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도와주지. 내 생명의 은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