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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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이 밖으로 나서자 방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 타다다다탕!!! 퉁탕캉탕!!
누가 들으면 치열하게 싸움이라도 난 줄 알 정도.
다만…….
철컹!!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문이 열리고는.
도리도리.
인어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나왔다.
“설마… 다른 사람이 필요한 건가요?”
리안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중견급 대전사 한 명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아니요. 충족은 되었어요. 주인님.”
“그럼…….”
“맛없고 느끼한 고열량 음식을 먹은 것 같아요. 우엑!”
일단 부선장이 중견급이긴 중견급인가보다.
다만… 에너지는 충족되었지만, 다른 것이 충족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일단 주술은 성공했나 보네요.”
“네. 주인님. 일단 필요한 것은 에너지였으니까요. 휴우~”
인어 아가씨는 인상을 풀지 않고 있었다.
저 기분은 리안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마요네즈 한 통을 한 번에 먹어 본 기억이 있다.
그 외에 설탕 폭탄으로 투여한 듯한 디저트를 먹었을 때도.
-먹어 봐. 맛있다니까.
직장 상사가 강제로 먹인 디저트를 먹고 뒤져타.
나름 인기 있는 가계라고 들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아찔한 기분까지.
“그럼 다행이네요.”
리안은 확인차 보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훗! 꼬맹이 봤느냐!”
부선장이 옷을 대충 걸쳐 입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
아마도 순간적으로 몸에서 많은 것이 빠져나갔기에 엄청난 해방감이 들었을 거다.
상대에게 엄청난 걸 쏟아 넣었으니 본인은 당연히 잘했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됐으니. 비켜 봐요.”
리안이 옆으로 슬쩍 밀치자.
“으쯔쯔쯔~~”
부선장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옆으로 자빠졌다.
“에휴~ 하체가 이리 부실해서야.”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다음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역시나.
“유레카~!”
번쩍이는 황금들이 있었다.
뒤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위에 있던 전리품과 여기 것을 합치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 전쟁은 아닌 듯합니다.”
싱글벙글 웃는 세바스였다.
“그보다 부선장은 왜 저러고 있답니까? 아주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던데.”
“자칭 카사노바인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거참. 선장님은 그걸 믿으십니까?”
평소 일관된 표정의 매너남이자 꽃중년 세바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글쎄요.”
리안이 슬쩍 웃어 보이자.
“부선장은 여자와 하루를 못 가요. 본인의 말로는 한 번 만난 여자와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땐 여자들이 만나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본인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같고.
“제가 아무리 선장이지만, 부선장 개인사에 간섭할 순 없죠.”
“선장님 말씀이라면 알아먹을 텐데 아쉽네요.”
리안은 씨익 웃어 보였다.
“안 고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훗!”
인어를 요괴 내지 괴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많다.
많은 뱃사람들이 인어에게 목숨을 잃은 사례가 한둘이 아니니.
다만.
모든 인어는 바다의 신 사제다.
어떤 신이든 상관없이 신을 믿는 모든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신성 마법의 일종인 치유 마법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부선장을 잘만 활용하면 강력한 보조 배터리가 된다.
“전기차처럼 충전하는 데 오래 걸리길 바라지 않거든요.”
“전기차는 또 무엇입니까? 선장님.”
“번개의 힘으로 가는 오토마차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그런 게 있다니. 참으로 세상이 넓습니다. 그보다 참 번거롭겠습니다. 오토마차를 움직이려면 번개가 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유일하게 리안의 말을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 주는 사람이 세바스였다.
“그러게요. 선원들에게 여기 있는 것들도 옮기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세바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 버튼을 눌러 볼까나.”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자폭 버튼이라 리안이 말했으니.
스윽!
방의 중심부에는 투명한 막으로 보호되어 있는 나뭇잎이 있었다.
그걸 집어 들자.
투쿠구구궁!!
땅밑이 살짝 움직였다.
고대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가 발동된 것이다.
인어 아가씨가 살던 밖의 작은 호수와 비교도 되지 않는.
“무… 무슨 일이야?!”
부선장과 인어아가씨가 놀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땅에 여신님의 힘으로 억제해 놓은 것을 봉인 해제시켰죠. 이제 루데악 영지의 수도를 둘러싼 분지는 물로 가득 차게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이건 인어 아가씨에게 주는 선물.”
“아이가 님의 힘이 느껴지네요.”
아이가는 땅의 여신의 이름.
바다의 여신 메살과 대비 되는 신이지만, 딱히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바다를 믿는 인어답게 바다 다음으로 위대한 신을 자신에 신과 대척되는 땅의 여신으로 믿고 있으니.
“이제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제약이 덜할 겁니다. 그것은 바다의 주민에게 주는 증표 같은 거예요.”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녀는 정중하게 리안에게 다가와 입을…….
“오오~! 놉놉. 저는 아직 미성년자라.”
“이건 바다식 인사인데……?!”
“육지에선 아니랍니다.”
리안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부선장과 방금 전까지… 상상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주인님.”
거절을 당했음에도 인어 아가씨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생기발랄한 나뭇잎에 계속 시선이 가는 걸 봐선 선물이 흡족한 모양.
그럴 것이 그녀도 사제다.
아무리 다른 신의 것이랄지라도 신물 자체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낄 것이다.
“자. 그럼 가죠. 이곳도 얼마 가지 않아 물이 찰 테니.”
선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곧 물에 잠길 것이라 말해 주니 빨리 보물을 챙겨야 했기 때문.
샤아아아~!!
궁 밖 곳곳에서도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 땅이 조금씩 젖고 있었다.
주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관장!!”
리안은 급히 무관장이자 기사단장을 찾았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는 잽싸게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과하게 예를 차리지 않았지만, 리안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 충성스러운…….”
리안도 그게 보였지만, 일단 영지를 비워야 하니 적당히 잘 지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
“충성스러운…….”
그런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기사여!”
“명을 기다립니다. 주군!!!”
“그… 그래. 병력을 동원해서 내 백성이 된 자들의 피난을 돕도록 하게. 다치지 않게 주의하고.”
“주군의 백성은 안전할 것입니다.”
기사단장이자 무관장인…? 이름 모를 그는 멋있게 일어나 망토를 펄럭이며 멀어져 갔다.
어깨에 힘이 가득 차 보였는데, 아마도 일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이름이 뭐였더나…….”
뭐. 딱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모두 승선하라! 영지로 돌아간다.”
우오오오오!!
* * *
브루타뉴 공국의 궁전.
공왕의 비서들이 바삐 뛰어다녔다.
리안 때처럼 높은 구두를 벗고선 맨발로…….
“아얏!!!”
비서 중 하나가 공왕의 집무실로 들어오다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 조심하지 않고!”
집무실은 개판이었고 맨발로 뛰어다니던 비서가 물건을 밟은 것이었다.
“죄… 죄송해요. 공왕님.”
“그래. 예쁘구나. 신입인가?”
“네넵!! 공왕님.”
“그래. 오늘 밤 당직을 서도록.”
“제… 제가 말입니까……?”
“왜.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신입 비서가 얼굴을 붉히는 사이.
공왕은 그녀가 떨어뜨린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음? 굳이 전서구를?”
전서구의 이마에는 마도구가 박혀 있기에 전서구는 절대로 싼 방식이 아니다.
오고 가다가 맹금류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아까운 것이 없기에 웬만해선 전서구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무슨 급박한 내용이기에…….”
발신자는 참관인단의 대표 자티푸스 백작.
그는 공왕이 신임하는 인사였다.
“뭐?! 하루 만에???”
전서구에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보름도 힘들 거라 생각했던 공성전을 단 하루 만에… 그것도.
“성벽을 뛰어넘었다고?! 무슨…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공왕은 황당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공왕님!!”
옆에서 지켜보던 비서 1도 놀란 표정.
“어. 그래…….”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를…….”
능력이 있는 봉신일수록 여러 가지로 속박을 해 놔야 한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은혜를 내리는 것이고.
문제는 이제 리안에게 걸 수 있는 아주 티끌만 한 명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상위령이란 이름일 뿐.
참고로 레온 영지는 봉신이라기보다 복속된 봉신이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레온 영지는 레온 가문이 일으킨 땅이란 말.
“후… 이미 지나간 일이다.”
공왕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푸제흐 백작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사사건건 도발을 해 오던 마맨 백작이 결국엔 선을 넘고야 말았다.
“어쩌면 좋습니까?!! 백작님.”
“후… 싸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고.”
상대는 정식으로 선전 포고를 해 왔고. 허술하게 대응을 했다간 단순히 영지전이 아닌 확전이 될 것이다.
상대의 뒤에는 잉글슨 왕국의 국왕이 있었다.
“공왕께선 아직도 답이 없는가?”
“조만간 사절이 올 거라고 합니다. 다만, 답이 오기 전에 함부로 움직여선 곤란합니다.”
당연했다.
자칫 혼자 판단하고 움직였다간 버림받을 수도 있다.
공국 측에선 그냥 백작령 하나를 잉글슨 국왕에게 던져주고 치우는 것이 값싸게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스랑 제국이 개입을 해서 중재를 해 줄지도 모르고.
물론 그때는 푸제흐 백작은 영지를 잃은 한참 뒤일 것이고.
“각하!! 왔습니다. 공왕님의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재상께서 직접 방문했습니다.”
“그래?!”
푸제흐 백작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중하러 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재상님!”
“참으로 마음고생이 심하십니다. 푸제흐 백작.”
“그래도 공왕께서 이렇게 재상님을 보내 주셨으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재상은 어떻게 보면 공국의 2인자였다.
내무부와 외교부가 합쳐진 곳의 우두머리나 마찬가지이니.
“그래서… 우리 영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재상님.”
“병력을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 공왕 전하의 뜻입니다.”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푸제흐 백작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병력을 지원해 주는 즉시 이것은 백작령 대 백작령의 단순한 영지전으로 끝날 일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공왕께서 제안을 하셨습니다.”
“어떤 제안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개 같은 제안이라도 잡아야 한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영지 자체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니.
“레온 백작령과 혼인 동맹을 맺으시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곳은 아직 내전이 한창일 텐데…….”
“그게. 끝났습니다.”
“네…?! 하긴 그럴 때도 되긴 했는데… 승자는 누구랍니까?”
지금 당장의 일이 급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계승 전쟁을 벌인 형제 둘 다 고만고만했으니까.
그 형제들은 아무것도 분간 못 하는 어린아이였으니.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 리안이라면…….”
“원래 합당한 계승자이죠. 뒤늦게 나타나 동생들을 정리했습니다. 푸제흐 백작께선 그 동생 둘 중 한 명과 혼인 동맹을 하면 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참고로 리안 레온 백작은 신센롬 제국의 부마입니다.”
“네에…?!!! 그게 무슨……!!”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가 가신 몇 명만 데리고 이 전쟁에 참전할 것입니다.”
“허…….”
푸제흐 백작은 입을 헤벌쭉 벌렸다.
하마터면 침을 흘릴 뻔했다.
“그와 혼인 동맹을 맺고. 이 전쟁에 참전하는 순간 외부 세력이 더 이상 간섭하지 못할 겁니다.”
“그랬다간 신센롬 제국도…….”
“신센롬 제국은 전쟁 중이니 이벨 왕국이 우군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겠죠.”
“이… 이벨 왕국이요? 하긴… 이벨 왕국은 신센롬 제국과 같은 가문…….”
“이벨 왕국의 공주와도 혼인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푸제흐 백작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도대체 리안이. 아니 레온 백작에게 뭐가 있다고. 무슨 고대 롬 제국의 고귀한 혈통이라도 된답니까?”
그렇다 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정통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뭐가 아쉬워서 강대국인 두 나라에서 겨우 변두리 시골 백작에게 딸을 내어 주겠는가.
아무리 하브스 가문이 혈통을 중시한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직 우리도 그것까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어쨌든 조만간 레온 백작이 올 텐데. 절대로 파토를 내서는 안 됩니다. 그와 혼인 동맹을 맺는 것이 우리 공왕의 두뇌들이 내놓은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