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17화 (117/253)
  • 117화

    ##117

    일단 인장을 찾아야 하니 루데악 백작을 찾아야 했다.

    인장은 오랜시간 땅의 가호를 받아 완성되는 물건.

    회수하지 못하면 새로운 인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자체로만 막대한 비용이 깨진다.

    “아직 안 죽었나 모르겠네.”

    리안은 곧장 궁전을 나와 인공 호수로 향했다.

    “이 호수가 인공 호수라고?”

    부선장이 화들짝 놀랐다.

    그럴 것이 호수의 크기가 제법 컸기 때문.

    만드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었겠지만, 궁전의 바로 옆이라 알토란 같은 땅이었다.

    이곳에 건물을 지었다면 어땠을까.

    “그보다… 웬 시체들이야?”

    호숫가에 말라비틀어진 시체들.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지 마구잡이로 버려져 있었다.

    “여기에 사는 괴물 때문이죠.”

    “설마… 괴물이 저걸 말하는 건가?”

    부선장이 손가락으로 호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네.”

    “이런 곳에 인어라니…….”

    부선장은 바닷사람답게 상체만 보고도 인어를 대번에 알아봤다.

    그럴 것이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로 헤엄을 치고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나체로 축 처진 남자를 껴안고 있었는데…….

    “이미 죽었네.”

    그 인물은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샤아아아~

    인어는 물가에 다닿았다.

    “내 뒤로.”

    부선장이 급히 갑옷을 걸치며 리안의 앞을 막아섰다.

    인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극도로 위험했다.

    “경계하지 않아도 되요. 저는 착한 인어거든요.”

    “난 단 한 번도 착한 인어를 본 적이 없거든.”

    부선장이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최초로 보고 있는 거랍니다.”

    “지금 네 품에 있는 것을 치우고 말하는 게 어때?”

    “어머나. 너무하셔라. 저는 그저 새로운 지배자께 인장을 전해 주러 온 거라구요.”

    그녀는 조개를 닮은 인장을 슬그머니 땅위로 올려 놓았다.

    “그리고 저도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게 아니어요. 팔려 온 거라구요. 이 발정난 놈을 해치운 건 복수고요.”

    “그런 것 치고는 물가에 시체가 많군.”

    “에이~ 저도 살아야지요. 저도 처음엔 거부했는데 미모를 유지하지 못하면 가혹하게…….”

    인어는 죽지 않는다.

    단, 인간의 정기를 흡수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죽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섭취해서는 미모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최소한 마나 유저는 되어야 하는데 그런 고급 인력은 저 발정 난 개 이외엔 오지 않는걸요.”

    모든 것을 죽은 루데악 백작의 탓으로 돌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흥!”

    부선장이 콧방귀를 끼며 인장을 주우려 하자 인어는 잽싸게 다시 주워 멀어졌다.

    “뭐 하는 짓이지?”

    “약속해 줘요. 저를 바다로 돌려보내 준다고.”

    “너를 죽여서 빼앗는 방법도 있다.”

    부선장이 으르렁거렸다.

    “술래잡기는 오래 걸릴 텐데요. 전 싸울 생각이 없거든요.”

    아무리 부선장이 중견급 수 속성 대전사라 하더라도 후수에서 작정하고 도주하는 인어를 잡기란 쉽지 않을 거다.

    “호수의 물을 다 빼 버리는 수도 있지.”

    결국엔 리안이 나섰다.

    “어머나. 당신이 이 땅의 새 주인이시군요. 장래가 기대되는 미소년이네요. 제 마음이 동요하는 걸 봐선…….”

    “닥쳐라! 괴물. 이 꼬맹이의 근처라도 오는 날엔 네 몸통이 반으로 갈릴 것이야.”

    부선장이 치를 떨며 보호하듯 리안의 어깨를 감쌌다.

    “에이~ 상상도 못 하나.”

    “그만 해요. 둘 다.”

    리안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인어는 보기보다 위험하다. 꼬맹이 너도 괴물이라고 말했잖아.”

    “위험하죠. 그러니 동료로 삼아야죠.”

    “음?!”

    리안의 말에 부선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인어를 동료로 삼아서 어쩌려고.

    선원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안전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어머! 어려도 남자는 남자란 건가요? 저를 소유하시려고요?”

    “소유가 아니라 동료라 했어요.”

    “그게 그것 아닌가요? 관계는 곧 속박이 되죠.”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일방적인 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흐르는 관계를 보고 동료라 부르죠.”

    “그럼 우리 새로운 주인님은 내게 자유를 대신해 뭘 해 줄 수 있죠?”

    “주인이 아니라니깐.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인어 여왕의 해방.”

    리안이 말을 뱉자 인어의 눈에 살기가 들었다.

    “감히 우리의 여왕을 입에 담다니!”

    “워워. 진정하시고. 나는 신대륙에 영지를 가지고 있어요. 코파나라는 곳인데.”

    리안의 말에 인어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코파나?”

    “뭐. 우리 인간들이 붙인 이름이죠. 그대들의 이름으론 파나마라고 하면 알려나.”

    “아…….”

    인어들의 고향은 어디인가? 당연히 바다다.

    물론 모든 바다가 고향은 아니다.

    그들은 발현지는 신대륙 근해로 본다.

    “강의 부족들이 그대들의 여왕을 억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죠.”

    “어떻게 그 사실을. 율 대륙에 사는 인간들은 모를 텐데…….”

    먼 옛날 강의 신을 믿는 부족은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의 이름을 즈텍이라 지었다.

    그들은 농사를 위해 기후를 독점하길 바랐고. 바다의 신을 모시는 인어 여왕을 납치했다.

    참고로 인어 여왕은 바다의 신 메살교의 교황과도 같은 인물.

    여왕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인어는 신비를 잃었다.

    결국 인어는 생존을 위해 인간의 정기를 빨기 시작했다.

    “신대륙의 내 땅과 즈텍 왕국은 내 바로 옆에 있죠.”

    “그들은… 강해요.”

    리안의 원래 세계에선 서방이 신대륙을 손쉽게 개척했지만, 이 세계는 아니었다.

    제법 선전하는 위치도 있지만, 몇몇 왕국은 여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벨 왕국이 리안에게 그 땅을 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달까.

    즈텍 왕국을 정복하길 포기한 것이다.

    “나는 더 강합니다. 일 년만 나를 지켜보세요. 그래도 내 능력이 의심스러우면 떠나도 좋아요. 그때는 붙잡지 않겠다고 그대가 믿는 메살 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인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맹세를 어긴다면 후회를 하게 될 거예요. 메살 님의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아요. 이 세계는 땅보다 바다가 더 넓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녀는 슬그머니 뭍으로 올라왔다.

    놀랍게도 가늘고 얇은 다리가 생겨났다.

    부선장이 경계를 했지만, 리안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스윽.

    조개 모양의 인장이 리안의 손에 쥐어진다.

    “내 동료가 되신 걸 환영해요. 인어 아가씨.”

    리안은 인어에게 코트를 벗어 주었다.

    태초의 상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

    “감사해요. 주인님. 그럼 일 년 동안 잘 부탁할게요.”

    “주인이 아니라니까.”

    “우리 인어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모든 형태를 속박으로 여긴답니다.”

    참고로 인어는 여왕과 노예밖에 없다.

    여왕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여긴다.

    “저는 자유, 평등, 박애주의자입니다.”

    “주인님도 메살 님을 믿나 보네요.”

    리안은 머쓱하게 웃어줬다.

    사실 무신론자에 가깝기 때문.

    “뭐. 저도 일단 바닷사람이니까.”

    물론 자신에게 이득을 준다면 어떤 신도 믿을 의향이 있었다.

    아마도 바다의 신은 리안에게 좋은 신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땅은 역시 힘드네요. 일 년뿐이라지만, 앞으로 주인님을 따라다니는 일이 고된 일이 될 것 같네요.”

    인어는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힘들어했다.

    급속도로 안색이 나빠졌다.

    원래 인어는 땅에서도 잘 뛰어다니지만, 바다와 먼 땅에선 영 맥을 못 쓴다.

    “걱정 말아요. 내가 좋은 걸 구해 줄 테니.”

    리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배로 향했다.

    웅성웅성.

    그곳에는 레온 백작군이 몰려 있었다.

    궁전에 깃발이 걸리는 순간 전투는 끝이 났다.

    한쪽에는 항복한 적들이 보인다.

    와아아아아!!

    리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군인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정말 리안의 말대로 성문이 열렸고. 기가 질린 상대는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다.

    손쉬운 승리.

    더군다나 고잉미샤호의 굉장한 모습을 봐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 리안은 거의 신으로 보였다.

    [아아~ 마이꾸 테스트!]

    와아아아아!!!

    별 의미 없는 말에도 군사들은 더 열렬히 환호했다.

    뭔가 어렵고 뜻깊은 말이겠거니 알아서 생각해 버린 것.

    [고맙다. 나의 병사들이여. 그대들 덕분에 손쉽게 이 땅을 되찾았다.]

    보병들이 한 일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 상대 병력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궁을 쉽게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이 정예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지친다.

    무한정으로 마나나 오러를 뽑아 쓸 수 없으니.

    [다만, 이곳 주민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겠다.]

    리안이 말을 꺼내자 항복한 병사들과 도시민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데악 백작이 자결을 하며 자폭 버튼을 눌러 버렸다.]

    자폭 버튼?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 땅을 내어 줄 바에는 수장시켜 버리겠노라 외쳤고. 고대에 존재하는 시설을 활성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 그런…….”

    [수도 인근은 일주일이 지나면 완전히 물에 잠길 것이다. 그러니 피신을 하기 바란다. 참고로 레온 영지로 온다면 살 땅과 일자리를 주겠다.]

    모두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농노로 강등되지 않을까 하고.

    [그대들은 이 땅에 살 때보다 더 자유롭고 부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이주하는 땅에 거대한 오토호스 공단이 생길 것이다. 새집을 지어 줄 것이고. 10년에 걸쳐 갚아도 된다.]

    와아아아아!!!

    리안의 말에 모두 환호하기 시작했다.

    물론 죽상인 자들도 여럿 있었다.

    바로 땅이나 건물주들.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산이 증발하게 생긴 것이다.

    물론 그것까지 리안이 챙겨 줄 생각은 없었다.

    ‘귀족들은 몰락하는 편이 낫지.’

    가진 게 많으면 뻗댈 확률이 높다.

    그러니 힘을 빼 놓고 행정가들로 채용하면 된다.

    [서두르기 바란다. 수도는 생각보다 더 빨리 물에 잠길 테니.]

    리안은 그리 말하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뭐야. 꼬맹이. 그놈이 그런 장치를 가동했다고? 언제?”

    부선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리안의 뒤를 따랐다.

    “이제부터요. 흐흐.”

    뭔가 또 꾸미는 얼굴이다.

    “설마…….”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죠.”

    리안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인어를 데리고 궁전의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의 방들을 뒤져 보니 커다란 자물쇠가 걸린 방이 나왔다.

    “이건… 못 열겠는데?”

    문과 함께 마법이 걸린 자물쇠다.

    마포를 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거다.

    “여기 열쇠가 있잖아요.”

    리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품에서 조개 인장을 꺼냈다.

    탈칵!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자물쇠는 쉽게 열렸다.

    “설마… 루데악 영지의 보물 창고인가? 어디에 있나 싶었네!”

    실제로 안에는 제법 많은 재화가 들어 있었다.

    항복 이후 해병대원들이 성을 뒤졌는데, 얼마 건지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옮겨요~”

    리안이 명령하자 해병대원들이 만개한 표정으로 보물들을 옮겼다.

    자신들에게도 떨어질 것이 있을 테니.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냐.”

    부하들을 시키면 될 일인데, 리안은 보물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해병대원들이 얼마나 날랜지 안에 있던 물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중.

    “보세요.”

    부선장은 리안의 말에 방을 다시 관찰했다.

    그러자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럴 것이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과 문자들이 온 벽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방금 전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 드리죠.”

    “내가 뭘 물어봤는데?”

    “루데악 영지의 보물 창고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죠. 이곳은 다른 보물 창고의 입구이기도 하죠.”

    리안이 인어를 바라봤다.

    “이… 건…….”

    “멍청한 루데악 백작이 인어를 데려와 놓고선 쓰질 않았네. 흐흐.”

    인어는 천천히 방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제게 이걸 보여 준 이유는 당연하겠죠?”

    “인어 아가씨의 선물도 있으니 피를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인어의 피에는 신비가 담겨 있어요.”

    물론 그냥 흘린다 해서 힘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과 같이 마법적인 행위를 한다면 인어는 많은 힘을 잃어버릴 걸 각오해야 했다.

    “그 신비는 우리 듬직한 부선장님이 다시 채워 줄 겁니다.”

    “가… 갑자기 뭐냐!!! 누… 누가 허락을…….”

    “그 정도 힘을 채워 줄 사람이 우리 배에 누가 있어요.”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런 괴물과…….”

    부선장은 살짝 부정적인 모습이다.

    아마도 아까 전 티격태격한 탓이 아닐까 싶다.

    리안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설마…!! 에이~ 아니죠~??”

    “어… 어딜 보는 거냐!! 내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 줄 수도 없고!!! 이래 봬도 내가……!!”

    “에이~ 말로만?”

    “진짜라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