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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15화 (115/253)

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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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미샤호는 요새 옆의 산을 넘었다. 그리고는 수도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그 뒤로는 군사들이 행군한다.

“끄아아암~!”

리안은 선장석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조타를 맡은 것은 흐리아 민. 간만에 선장질을 하는 중이랄까.

“선… 자… 백자… 각??? 하?”

“그냥 배에선 선장이라 불러. 황제가 와도 배는 선장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원칙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니 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선장이다.

“알겠습니다. 서언장님! 그리고… 전방에 대규모 반응입니다.”

“수도에 다 왔나 보군.”

요새에서 수도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병들의 느긋한 행군 속도에 맞춰 이틀 만이다.

전날 정오가 넘어서 출발했으니 정예라면 하루 만에 주파가 가능할 것이다.

“대충 이쯤에 베이스를 차리면 되겠네.”

가다 보니 적당한 장소가 나왔다.

완만한 둔덕이었는데, 주변보다 높아 시야가 좋고 방어하기도 수월해 보였다.

어차피 레온 백작군의 총사령관인 리안은 부유선을 타고 있어 상관은 없었지만.

“바로 공격하지 않고?”

“쉬엄쉬엄 가요. 공왕님의 반응도 살펴야 하니.”

* * *

공왕이 보낸 참관인단은 전쟁이 시작한 뒤에나 도착했다.

리안의 선전 포고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영지전 준비는 오래 걸릴 법도 한데,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개전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루데악 백작령의 수도에 도착해 보니 악명 높은 마노 요새는 이미 함락된 뒤였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루데악 백작.”

“오오. 자티푸스 백작님. 혹시 오시는 길에 제 전령을 마주치지는 않았습니까?”

“엇갈린 모양입니다.”

루데악 영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렇다고 마노 요새가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소규모 인원이 다닐 만한 길은 여럿 있었다.

“공왕 전하께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후. 이거 곤란하군요. 지금 공왕 전하는 여기 영지전을 신경 쓸 여력이 없으십니다.”

공국의 수도에서 도착한 참관인단의 대표인 자티푸스 백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르망디 공작령의 마맨 백작이 사고를 쳤습니다.”

“그놈은 허구한 날!!”

“이번엔 좀 심각합니다. 푸제흐 백작령에 공식적으로 영지전을 걸었습니다. 이미 스랑 제국에 정식으로 서류가 접수된 상태라…….”

평소에는 그저 자질하게 도발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분이 제대로 선 모양.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아니. 오히려 중재를 하기 더 좋네요. 외세가 침입했으니.”

“그것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공왕께서 개입하시면 일이 커집니다.”

노르망디 대공은 잉글슨의 국왕이니.

“스랑 제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영지전을 승인해 준 것이 스랑 제국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중간에 누군가 돈을 받아먹었겠죠. 아니면 잉글슨과 뒷거래가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해전을 육지로 끌어들이려는…….”

그 말을 들은 루데악 백작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스랑 제국의 입장에선 해전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지경.

이참에 스랑 제국의 땅에서 잉글슨 세력을 걷어 낼 생갈일지도 모른다.

브루타뉴 공국을 제물 삼아서.

“하…….”

“그래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공왕께서도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레온 백작의 외가가 아일리 섬이지 않습니까.”

아일리 섬은 잉글슨 왕국의 식민지고.

“그렇죠. 그런 놈이 이곳을 집어삼키면 나중에 공국을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섬나라 피가 반이나 섞인 놈입니다.”

두 백작이 한참을 대화하던 중.

파다다닥!

하늘에서 비둘기 세 마리가 궁으로 날아들어 왔다.

이마에 보석이 박힌 녀석들이었는데, 정신 마법에 지배받는 것으로 보인다.

“자티푸스 백작님!! 공왕님께서 전서구를 보내셨습니다.”

“이리로 줘 보게.”

생각보다 공왕의 답신이 빠르게 도착한 것이다.

* * *

다음 날이 되자 리안은 병력을 이끌고 수도의 코앞까지 진격했다.

루데악 백작령의 수도를 감싼 성벽은 낮았고. 제대로 된 마포도 거의 없었다.

요새만 믿고 방심한 나머지 수도에 대한 대비가 허술했다.

“포트 삼촌. 방송.”

“으… 응!”

리안의 휴대용 마이크 마도구가 외부 채널로 맞춰졌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잘 되는군.]

수비를 위해 성벽에 올라온 징집병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냥 수성도 무서운데, 거대한 철갑선이 우렁차게 방송까지 해 대니 당연했다.

[나는 이 땅의 정당한 주인. 내 선조가 이 땅에서 흘린 피가 곧 증거이며. 전쟁의 신 탱글께서 증명해 주실 것이다.]

리안은 갑판으로 나왔고. 따라 나온 세이나가 다시 의식을 치러 줬다.

번쩍!!

다만, 광범위한 시전은 하지 못했다.

제법 만은 신성력이 필요했기 때문.

-지… 진짜다. 진짜 전쟁의 신 사제야!

-그럼. 싸우다 죽게 되면…….

-영혼이 신들의 전쟁에 끌려가겠지.

범위가 크지 않아도 효과는 확실했다.

진짜로 증명만 하면 되었으니 굳이 인장 계승식 때처럼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맞서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 반나절을…….]

그때. 성벽 쪽에서도 방송이 나왔다.

[레온 백작! 나는 공왕께서 보낸 참관인단의 인솔자인 자티푸스 백작이오.]

[아아.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뵙네요. 자티푸스 백작님.]

리안은 멀리서나마 귀족식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자티푸스 백작도 받아 주었다.

[그보다 공왕 전하의 전언을 가지고 왔소. 예를 갖춰 주시오.]

그 말에 리안은 한숨을 작게 쉬더니 고잉미샤호에서 내려왔다.

사라락~!

바닥에 적당한 천을 깔고 기다렸다.

자티푸스 백작은 성문을 나와 리안에게로 왔다.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 레온 백작은 들으라.”

“경청하겠나이다.”

리안은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예전 군대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무릎 앉아 자세였나.

그나마 조선 시대처럼 절을 하고 난리 부르스를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랄까.

“지금 동쪽의 푸제흐 백작령이 곤경에 처해 있다. 외세에 맞서 단결을 해야 할 때다.”

아무래도 스랑 vs 잉글슨 해전에 리안이 끼어든 나비 효과인 듯싶다.

자칫 해전에서 육전으로 일이 커지는 건 아닌가 싶다.

‘일단 계획은 성공하긴 했는데… 젠장.’

하필이면 자신에게도 영향이 올 줄은 몰랐다.

‘이곳 백성들에게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고래고래 떠들고 다녔는데…….’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그냥 확 잉글슨의 편에 서 버릴까 생각도 들었다.

잉글슨의 제독이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으니…….

피식!

리안과 반대로 루데악 백작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마치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다만. 그 뒤의 이야기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레온 백작도 억울한 면이 있을 테니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도대체 무슨 선택지란 것일까?

“지금 당장 루데악 백작령에서 철수를 하거나.”

여기까지는 예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는?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영지전을 끝내길 바란다. 단, 후자의 경우 승패와 상관없이 10명의 부하만 거느린 채 푸제흐 백작령의 영지 전에 동맹으로 참가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리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루데악 백작도 딱히 나빠 보이진 않았다.

도시 외곽의 성벽을 끼고 싸우다가 최후에는 궁전에서 농성을 하면 일주일을 못 버틸까.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나중에 복구하면 될 일.

다만. 리안은.

“측근만 데리고 푸제흐로 가란 말씀은 혼인 동맹을 맺으란 말입니까?”

“그대들에겐 동생들이 있지 않은가.”

리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공왕께서 중매를 선 것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그 말은 영지전을 지속하겠단 말인가? 그대에게 아무리 저 괴물 같은 철갑선이 있다 해도 일주을일은 솔직히…….”

“훗! 일주일씩이라 주시다니 공왕께선 참으로 관대하십니다.”

리안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공국의 수도가 있는 방향으로 예를 올렸다.

공왕이 아주 기특했다.

‘내 몸값을 올려 주려고 환장을 했네.’

그보다 이걸로 공왕은 리안에게 빚을 진 셈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리안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명령은커녕 부탁을 해야 한다.

“부디 참관인단 여러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시길. 참고로 성벽은 위험하니 도시 밖을 추천드립니다.”

“참고하겠네.”

리안이 자신 있게 나오자 자티푸스 백작이 오히려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리안의 권유를 무시하기도 힘들었는데.

‘무슨 자신감인 거지. 뭔가 있긴 있을 것 같긴 한데…….’

도시의 성벽을 뚫어도 시가지로 들어가면 위험하다.

건물들이 부유선의 진로를 막을 것이고. 그걸 넘기 위해선 부유선을 높게 띄워야 한다.

참고로 부유선이 높게 뜰수록 느려지고. 건물에 숨은 적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도시에 마포의 숫자가 적다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리안은 인사를 하고선 부유선으로 돌아갔다.

그걸 지켜보던 참관인단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도시의 외각 성벽을 뚫는데도 며칠은 걸릴 텐데…….”

성벽이 아무리 낮다 해도 부유선이 타고 넘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에는 가장 약한 성문을 허물어뜨리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곳은 저항이 거셀 것이 분명했다.

스으으응~!

고잉미샤호가 천천히 이륙하며 주변에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방송이 나왔다.

[항복은 없는 것으로 알고 30분 뒤 공격하겠습니다. 참관인단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방송을 들은 참관인단들은 후다닥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때마침 언덕에 좋은 위치가 있었고. 리안이 병사들을 보내 천막을 쳐 주었다.

천막 안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간단한 다과까지 금방 준비가 되었다.

“이거 일주일간 노숙을 하게 생겼군요.”

“그냥 성벽에서 구경을 하면 좋을 텐데…….”

참관인단들이 불평을 하자 자티푸스 백작이 한마디 했다.

“저 배에 있는 마포들이 보이지 않소. 유탄에 잘못 맞기라도 하면 즉사요. 생각들 하고 말들 하시길.”

그제야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 백작보다 작위는 낮았지만, 그렇다고 백작의 부하는 아니었다.

* * *

리안은 병력이 준비되길 느긋하게 기다렸다.

고잉미샤호의 꽁무니에서 목발을 짚고 선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최종적으로 병력을 정비했다.

“성문을 향해 믿고 달려라!! 성문이 열릴 것이다.”

그의 말에 병사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성문이 왜 절로 열린단 말인가.

-이번에는 분명 배에 타시는 걸 보았는데…….

-다른 별동대라도 보내신 건가…….

이미 한번 겪어 보긴 했다.

그 악명 높은 마노 요새에서.

“믿어라! 이미 기적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솔직히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신컨의 재도 머릿속이 혼란했다.

리안에게 미리 언질을 받긴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것은 최측근인 부선장도 그랬다.

다만, 오늘 하루 만에 성문을 연다는 것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꼬맹이 진짜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거야? 궁전 안에서 농성을 하면 어쩌려고.”

한쪽에 15문씩 총 30문이나 되는 마포를 가진 고잉미샤호다.

포격 지원이 있다면 궁전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징집병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백병전이 벌어지면 쌍방 간에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날 것이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리안은 도시의 성벽을 스윽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겠지. 그런데, 공왕은 무슨 생각으로 국경 분쟁 지역에 널 보낸다는 거야?”

“제 뒤에 신센롬 제국과 이벨 왕국이 있다는 걸 알아서죠. 아마 상대측에게도 은근히 소문을 낼 겁니다.”

“확전할 생각 말고 백작령 대 백작령으로 싸우라는 경고겠군.”

그래서 병력이 아닌 측근만 데리고 전하라는 것이었다.

병력을 이끌면 백작령 vs 백작령이 아닌 국가전이 되어 버리니.

“그보다 괜찮은 거야?! 네 외가가 잉글슨이잖아.”

부선장은 이미 여기 영지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리안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니까 당연한 반응이랄까.

“괜찮아요. 귀족 사회는 생각보다 복잡하답니다.”

리안이 해맑게 웃어 보였다.

오히려 거기서 활약을 한다면 몸값만 오를 뿐.

이런 경우도 많았다.

A 국가와 B 국가가 전쟁을 벌이는데.

A 국가의 귀족인 a가 B 국가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벌이는.

마치 축구 국가대표의 외국인 감독처럼.

“거참. 귀족들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부선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일단 눈앞의 전쟁부터 끝내야죠.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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