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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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라니.
어떤 곳에서도 저런 외팔 외다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지 않는다.
중견급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집사장의 동생은 마나 유저에 불과했다.
마나 유저는 운이 좋아야 어디 가서 겨우 기사가 될 수 있다.
평민이라면 유저 정도로는 꿈도 꾸지 못한다.
각성하지 못한다면 평생 마총병으로 머물러야 한다.
물론 평민에게 마총병이란 선망받는 직업이지만.
“배… 백작 각하! 외람되오나. 어찌 저에게…….”
신컨의 재는 신례를 무릅쓰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
“내 듣기로 그대는 전장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팔과 다리 한 짝을 대가로 주고 왔다는 것도.”
“그걸 어찌…….”
신컨의 재는 자신의 형에게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장을 동경했지만, 그 결과가 이 모양이니.
“나는 다 아느니라!”
리안은 고개를 치켜들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진 못했다.
리안의 뒤에서 풍겨 오는 사골 국물보다 찐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
태양 신과 전쟁 신의 가호를 방금 받았기에.
‘정말… 그런가……??’
로 생각이 바뀌어 갔다.
앞서 리안이 자신을 소개하길 신센롬과 이벨 왕국에서 작위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두 곳 모두 무려 백작.
그렇다면 혹시라도 알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기사가 되어 주겠는가?”
“이런 몸으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네! 몸이 부서질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자신의 형과 기회를 준 리안에게 실망감을 줄 수 없었다.
“말했지 않은가. 나는 그대의 군사 지식을 가지겠노라고. 그리고 외팔, 외다리가 뭔 대순가. 뭐. 정 불편하면 나중에 새로 하나씩 달아 주지. 강력한 놈으로.”
“……?!”
그런 게 가능한가?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어떤 마법사들은 키메라로, 어떤 마법사들은 기계로 그런 걸 만든다고 했다.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중견급 기사에게나 그런 기회가 겨우 주어질까.
“조만간 유능한 마도학자들이 이 땅에 정착할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 두지. 그대에게 새로운 팔과 다리를 주라고.”
“저는 아직 각성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키메라의 신체라도.
아무리 튼튼한 기계 신체도.
최소 각성자가 아니면 버틸 수가 없다.
“안다. 각성도 시켜 주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각성을 위해 영약 따위의 여러 가지를 지원해 줄지도 모른다.
이런 자리에서 거짓을 말할 리는 없을 테니까.
다만, 자신이 그 정도로 쓸모가 있는 인간인 걸까?
“그러니 그대는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것이나 잘하도록.”
“제가 무엇을.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주군!”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거절하기엔 너무도 달콤한 제안.
“내 지휘관들과 내 병사들을 가르쳐라. 너는 내가 다스리는 모든 병력의 훈련 교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전투가 아닌 전술이지 않은가.
-저길 공격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우린 무너진다고.
-이런 진형은 구닥다리야.
전장에서 불평불만이 많다며 동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솔직히 자신도 그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걱정 마라.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그대는 그대의 소신대로 가르쳐라.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설령 이 몸이 부서지고 산산조각이나 목만 남더라도. 제 혀와 머리는 영원히 주군의 것입니다.”
그 말에 리안은 뜨끔했다.
‘뭐야. 잔인하게. 으으…….’
그러나 역시 근엄한 표정을 풀지 않고서 뒤를 돌아 백성들을 둘러 보았다.
“보라! 나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기용할 것이다. 그것이 노예라 할지라도. 그러니 재능이 있는 자, 또 글을 아는 자는 궁전으로 찾아와라.”
와아아아아~!!
리안은 환호하는 백성들을 뒤로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궁으로 바로 돌아가도 되지만, 일단 태양신 사제와 면담을 좀 해야겠다.
“백작 각하! 인상 깊은 연설이었습니다.”
태양 신 주교가 손바닥을 살살 문질렀다.
솔직히 명연설 따위는 없었다.
다른 고위급 귀족들이 들었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방금 리안이 약속한 것은 터무니가 없는 것이니.
중앙 집권화와 관료제에 겨우 발을 걸친 나라는 스랑 제국과 로이센 왕국이 거의 유일했으니.
시도 자체로만 막대한 손실만 입고 실패하리라.
털썩!
리안은 교회의 의자 아무 곳에 걸터앉았다.
“재상.”
“네! 각하!”
“궁전 연회는 준비가 되었겠지?”
“그러합니다.”
“귀빈들을 궁으로 인솔하라. 나는 주교와 이야기를 좀 하다 갈 것이다. 시민들에게도 술과 음식을 풀어라. 비용은 내가 댈 터이니.”
“아… 알겠습니다. 각하!”
재상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교회 근처에 있던 자들은 모두 궁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제 좀 조용하군. 그래. 내 계승식 기념으로 조촐한 축제를 할 것인데, 주교는 뭐 없나?”
“저… 저희 교회도 시민들을 위해 나눔을 할 것입니다!!”
주교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아까 전 신컨의 재와의 대화에서.
-나는 뭐든 알고 있느니라.
라는 말을 뱉는 걸 보고 두려웠다.
솔직히 착복을 좀 많이 했다.
백성들의 치료를 위해 백작가에서 내려 준 지원금의 대부분이 자신의 주머니로 갔으니.
“그보다 혈색이 많이 좋지 않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재산을 아무리 축적하면 뭐 하는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을.
“사제님!!”
태양신 주교는 세이나에게 애원했다.
심혈관 질환은 신성력으로 치유하기 힘들다.
곰곰이 신성력으로 몸속을 관조해 보니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았다.
평소 혈관까지 살펴볼 생각을 못 했던 것.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태양 신보다 치유 기술이 떨어지는 전쟁 신 사제들이지만, 대신 그들은 그걸 보완하기 위해 의학적 지식을 중요시한다고 들은 바 있었다.
세이나도 고위급 사제 같아 보이니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 스승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전쟁의 신 사제들도 돈을 밝히던 시절이 있었다.
영주들이 돈을 바리바리 싸 들고 전쟁의 신 사제들을 찾았으니.
“예전 우리 교도 심혈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청빈함을 숭상하고. 탁발승이 되세요. 주기적으로 아픈 백성들을 찾아 치료를 해 주고 그 기간에는 그들이 주는 음식으로 생활하세요. 탁발승을 할 땐 꼭 걸어 다녀야 합니다.”
“저… 정말 그걸로…….”
“심혈관계 질환은 게으르고 욕심만은 자에게 내리는 신벌이니까요.”
태양신 주교는 영 믿음이 가질 않았다.
겨우 저런 걸로 치유가 된다고?
솔직히 심혈관계 질환은 대부분 귀족이나 고위 사제들 같이 부유한 자들이 잘 걸리는 병이긴 했다.
평소 신성력 케어를 받으니 기운이 넘치는 것이 화근.
기운이 넘치는 만큼 식성도 좋았고 운동은 하지 않는다.
거기다 건강에 적신호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활력이 넘치니까.
“아! 그리고 백작 각하의 휘하에 실력 있는 치유사가 있습니다.”
베아티에 형제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정확히는 약초꾼으로 분류되지만, 이 세계에선 딱히 분류를 하지 않았다.
신성력을 쓰지 않고 치료에 관련된 지식이 있는 자들은 모두 의사나 치유사라 불렀다.
“배… 백작 각하!!”
다급해진 태양신 주교는 리안을 불렀다.
“방금 듣지 않았는가. 욕심 많고 게으른 자들에 대한 신벌이라고. 참고로 아까 전 말했듯 난 모르는 것이 없다네.”
리안은 싱글생글 웃었다.
다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지을 수 없는 표정.
태양신 주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제 개인 재산 모두를 백성들을 위해 내어놓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청빈한 사제가 될 것입니다.”
자칫하면 봉역 사제가 갈아 치워질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치료는커녕 교황청에서도 경질당할 것이다.
“약속할 수 있나?”
“쥬 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거짓일진 몰라도 최소 지원금을 착복한 것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딱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리안은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그가 데리고 있는 자들은 보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신 부유선에 중견급 기사만 두 명을 보았다.
그중 하나는 어린 여자아이.
“좋아.”
리안이 손짓하자 세 명의 꼬마들이 달려왔다.
“……?!”
태양신 주교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동인가?’
치유사를 데리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려는…….
“내 치유사들이지.”
것이 아니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을 모시는 자가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게. 이들은 가문 대대로 약초에 대한 것을 연구해왔으니.”
“저… 정말입니까?!”
솔직히 믿음이 안 가긴 했다.
코흘리개 꼬마아이까지 끼어 있으니.
“맥을 짚어 볼게요.”
그 코흘리개가 주교의 손목을 대뜸 잡았다.
“기름진 음식과 술을 많이 드시나 보네요. 혹시 마초도 하시나요?”
“그… 그걸…….”
“술과 마초는 끊으시고. 힘드셔도 최대한 끊으세요. 그리고 쇠고기와 기름진 음식은 정말 위험합니다.”
꼬마의 말이 제법 그럴싸했다.
“운동 부족도 겹쳤네요. 이대로 가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게 없어요.”
“저… 정말이더냐.”
“이건 기본 상식이라구요!”
이런 분야에선 사제들보다 오히려 치유사들이 훨씬 잘 알았다.
솔직히 사제들은 그저 신성력만으로 대부분의 병들을 치유하니.
“베지미르 형!”
“응?!”
“여기 적힌 약초들 좀 챙겨 줘.”
“알았어.”
“그리고 베아티에 누나는 그걸로 약을 만들어 줘.”
“맡겨만 줘.”
이들은 그동안 리안을 따라다니며 꽤 많은 지식들을 축적했다.
신센롬 제국. 이벨 왕국에서 궁전 치유사들을 만나고 다닌 것이다.
그들과 교류하며 의학 서적도 꽤 많이 얻었다.
그 밖에 율 대륙 각지에서 나는 약초들도 구해서 모았다.
“주교. 믿어도 좋네. 저 녀석들 실력은 진짜이니까. 이벨 왕국의 궁전 치유사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이니.”
물론 진짜로 대등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웬만한 돌팔이 의사들보다 나았다.
스승을 붙여 줘야겠단 생각을 막연히 했지만, 녀석들은 알아서 배우고 습득했다.
재능이 넘쳐서 그런지 습득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일단 태양 신 주교는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쥬신께 부끄럽구나. 앞으로 청빈한 사제가 되자.’
아무도 몰랐다.
사제들의 탁발이 이곳 브루타뉴 공국의 작은 백작가에서부터 유행하게 될 줄은.
* * *
레온 백작가의 작은 궁전은 떠들썩했다.
고용인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수도에 사는 유력 인사들은 모두 파티에 참석했다.
“나탈리아, 이 옷을 입으렴.”
“흐잉. 불편해요. 어머뉘.”
전 레온 백작의 일곱 번째 자식이자 유일한 딸.
이번 계승 전쟁에서 재상의 편에 섰던 여섯째(남은 자식으로는 둘째)와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아이.
“어떻게 해서든 오라버니의 측근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게 살아남을 길이다.
어떤 영문인지 눈엣가시 같은 전 백작 부인인 케네이나가 리안의 곁을 지켰다.
지금이야 이렇게 무사히 궁으로 들어왔지만, 앞으로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가치를 증명해야 해!’
계승 전쟁에서 완전히 무릎을 꿇었고.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귀족 핏줄.
리안의 참모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에 들어야만 했다.
고위 귀족에게 정략결혼은 꼭 필요한 것이니.
“백작 부인. 곧 파티가 시작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녀가 그녀에게 전했다.
“말조심해라. 이제 백작 부인이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꼬투리가 잡힐 짓은 하면 안 된다.
백작 부인은 단 한 명만이 존재해야 하니.
“그럼 가지.”
마스쥬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양팔로 감싼 채 파티장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파티장은 북적였다.
워낙 궁전이 작다 보니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홀도 작을 수밖에.
전 백작의 두 번째 부인과 그의 자식들이 홀에 나타나니 더욱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보다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는 어떻게 되는 거야?
-결말은 뻔하지.
-불쌍하기도 해라.
계승 전쟁을 하지 않고 얌전히 인정했다면, 귀족으로서 삶을 풍족히 누렸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핏줄의 가치는 정략결혼으로 쓸모가 있으니.
“우리들의 영주이신 리안 레온 백작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때 리안이 주교와의 면담을 끝나고 파티장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