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107
잊을 뻔했지만, 간신히 기억해 냈다.
레온 백작령에서 스타팅 플레이할 경우 운이 좋다면 재야의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
기간에 맞춰 탐색 버튼을 누르면 100% 확률로 찾을 수 있고. 등용 또한 어렵지 않다.
이유는 집사장의 동생이기 때문.
S급 전술 교관.
전략이 아닌 것이 조금 아쉽지만, 지휘관이 아닌 병사를 훈련시키기엔 이보다 좋은 캐릭터가 없다.
병사에게 전략을 가르쳐봐야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전략은 누군가 가르친다 해서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전략이 다르기 때문.
“제 동생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도련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가출을 해서 이제 돌아왔는 데…….”
“이야기로는 들었습니다.”
“휴우~ 반쯤 폐인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집구석에 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성공해서 돌아오리라 말하고 떠난 그는 금의환향은커녕 오른 다리와 왼팔을 어딘가 두고선 돌아왔다.
의족과 의수를 한 채 고향까지 돌아온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
‘그 몸으로 다시 떠나 버리겠지.’
얼마 뒤 누군가 찾아오게 된다.
옛 전쟁의 동료였는데, 알고 보니 귀족이었다. 이런 설정이랄까.
그의 재능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보내 스카웃을 하게 된다.
“누군가 찾아오진 않았죠?”
“네. 그런 하자가 있는 놈을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뭘 했냐고 물어봐도. 후…….”
집사장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라 부모와 같은 마음이랄까.
그의 주름 사이에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
“아참! 제 인장 인수식은 언제로 잡혔죠?”
“내일입니다. 재상의 말을 들어보니 최대한 빨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 보관된 영주의 상징.
그것을 받아야 비로소 온전히 이 땅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당연히 전쟁이 임박했으니 빨리 인장을 넘겨받는 것이 좋으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생분도 참석하겠죠? 집사장의 동생이라면 주요 인물이니.”
“집은커녕 방 밖으로도 도통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 인장 인수식인데 불참하는 것은 대대로 백작가의 집사장을 맡아 온 ‘재’ 가문의 일원으로서 기만 행위입니다.”
집사장은 재무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돈을 담당하는 수장이기에 웬만해서 한 가문이 대대로 대물림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저희 가문이 집사장을 맡은 것은 제가 처음인데…….”
집사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랬나?’
레온 백작령에서 플레이한 것은 한 번이 전부라 헛갈렸다.
공략 게시판에 ‘신컨의 재’를 등용하는 방법이 있어 레온 백작령에 대해 몇 번 찾아본 것이 전부.
“앞으로 쭉 해야죠. 하하하.”
“그… 그렇습니까? 저희 재 가문을 그렇게나 높게 평가해 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니 동생분을 참석시키세요. 이것은 영주로서 명령입니다.”
리안이 강조하여 말하자 집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컨의 재.
그는 요즘 실의에 빠졌다.
눈만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흐어어억! 하…….”
매일 같이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젠장.”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볕이 낮임을 알려 주었다.
똑똑.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이다. 자느냐?”
“방금 일어났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지금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땀범벅에 공포에 질린 얼굴을 형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겠다. 그보다 영주님께서 널 보고 싶어 하시더구나. 인장 인수식에 꼭 참석해 달라더구나.”
“저 같은 병신을 영주님이 왜 보자고 한 것입니까?”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구나.”
“알겠습니다. 형님.”
마음 같아선 결코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꼴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아니. 부끄럽고 쪽팔렸다.
“고맙다. 내 주방장에게 특별히 신경 써 달라 했으니 끼니는 거르지 말거라.”
“크… 알게… 습니다. 형님.”
신컨의는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았다.
이렇게 자상한 형님인데, 그동안 뭐에 홀렸는지 편지 한 통 없이 전장을 찾아다녔다.
-살아서 돌아와 줘서 고맙다. 동생아.
고향으로 돌아올까 말까 고민을 하다 갈 곳이 없었다.
욕을 먹지 않을까 했지만, 형은 자신을 보자마자 울면서 껴안아 줬다.
“그럼. 갈 테니. 쉬거라.”
“살펴 가십시오. 형님.”
신컨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자신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얼굴이라도 내비칠걸 하는 생각에 뒤늦게 후회로 다가왔다.
‘그보다 영주님은 왜…….’
백작가에 녹을 먹는 형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참석을 해야 했다.
자신을 콕 집어서 데려오라 했으니.
‘그냥 예의상 한 말일까?’
당연히 집사장의 가족이라면 참석할 자격이 되었다.
‘혹시 내가 방랑 기사였단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심장이 미약하게 뛰었다.
‘옆 영지와 전쟁이 일어났다고 들었어.’
하인들이 하는 말을 어쩌다 보니 듣게 되었다.
‘징집병이 모이면… 하급 지휘관이 모자랄지도…….’
몸은 이렇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전쟁터로 가고 싶었다.
마포에 맞아 팔다리를 잃은 날이 여전히 생생하지만, 평생 도망만 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기회가 난다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쟁터에 찾아갈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트라우마를 영원히 지고 살아야 할 테니.
* * *
리안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도련님!! 성 안내를 해 주세욧! 네에~ 계속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고향에 오셨는데!!”
“음. 이제 겨우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고!”
솔직히 리안도 이 성의 구조를 알지 못했다.
“히잉~!”
“갑갑하면 혼자 구경하고 와. 사고만 치지 말고.”
“정말 그래도 되나용?”
“넌 내 호위기사이자 전속 시녀이니까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집사장과 재상에게 미리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다른 고용인들과 근위병들에게도 주의를 줘 놓았고.
샤로트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 말이다.
“고마워욧!!! 으헤헤.”
샤로트는 해맑게 웃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꼬맹이. 저거 혼자 보내도 되겠어?”
“알아서 조심할 거예요.”
부선장이 심히 걱정된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보다 여기서 전쟁을 하면… 아일리 섬은…….”
“걱정 마세요. 발이 오래 묶일 일은 없으니.”
고잉미샤호의 전력으로만 싸웠다면 시간이 꽤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레온 백작령의 전력을 피해 없이 그대로 흡수했다.
계승 전쟁에 참석했던 용병들의 컨디션도 좋았다.
“101위의 저력을 얕보지 마시라고요.”
“도대체 네 위에 100명은 어디에 있는 거냐?”
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있었으면 다 발라 줬을 텐데. 아쉽네요.”
리안은 자신의 실력을 101위가 아닌 101-100위라 생각했다.
사실 과금을 하지 않아도 즐길 콘텐츠(과금을 하지 않을 시 난이도가 극악으로 상승)가 많아서 과금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회사를 그만둔 것도 과금을 쉽게 하지 못한 이유였다.
‘무과금으로 붙으면…….’
사실 모두가 무과금이라면… 리안의 순위는 더 낮았을지도 모른다.
다들 과금을 안 하고 못 버텼기에 무과금을 통해서만 강해질 방법들을 익히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너 같은 놈이 100명이나 더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지는군.”
“이 세상에 천재는 많답니다.”
솔직히 SR급 전략가나 지휘관과 비슷한 전력으로 정면으로 싸운다면 어찌 될지 모른다.
샤로트만 해도 육성이 끝나는 순간 리안보다 강할지도 모르고.
‘놈들과 붙기 전에 확실하게 다져 놔야지.’
그런 괴물 놈들과 공정하게 싸우겠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글러 먹은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전쟁은 변수가 많다.
“그거 큰일이군. 네 위에 천재가 100명이나 되다니.”
부선장은 리안의 말이 헛소리가 생각했지만, 그냥 적당히 어울려 주는 것이다.
리안 같은 정신 나간 사람이 100명이나 더 있다니.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래도 천재도 어찌 못하는 불변의 진리가 존재하는 법이죠.”
“음?! 그런 게 있다고?”
“물량과 훈련.”
그 말에 부선장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천재도 저건 어찌 못 한답니다.”
부선장의 어이없는 웃음에 해맑은 웃음으로 답해 줬다.
* * *
샤로트는 궁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국가가 달라서인지 리안의 외가인 아트로네와 양식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런 소소한 것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음?!”
그러다 리안을 따라온 용병대가 궁전 너머에 있는 공터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방어를 목적으로 궁전 주변에는 민가가 없었기에 공터가 존재했다.
“안녕하세욧! 아저씨들.”
샤로트는 호기심에 용병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나름 진형을 짜서 훈련 중이었다.
“너는… 백작 각하의 하녀… 가 맞나?”
“네! 시녀랍니다.”
시녀복을 입고 있었기에 기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토호스를 탈 줄 아는 능력 있는 하녀쯤?
“실례했습니다. 귀족이셨군요.”
하녀와 달리 시녀는 귀족가의 출신이다.
기사들이나 타는 오토호스를 몬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고용인은 아니란 말이었다.
“그보다 지금 훈련 중인 건가요?”
“곧 일어날 전쟁에 대비한 것입니다. 계승 전쟁과 달리 영지전은 규모가 더 커질 터이니.”
규모의 전쟁일수록 훈련이 중요했다.
“저도! 저도 끼워 주세욧!”
“음…….”
용병대장이 자신의 부관을 슬쩍 봤다.
-백작 각하의 최측근이지 않습니까. 적당히 어울려 주는 것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오토호스까지 타는 여자인데, 어지간해선 안 다칠 겁니다.
-그래.
두 사람은 잠시 의논을 한 뒤 샤로트를 끼워 주기로 했다.
백작의 측근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
* * *
리안은 해가 졌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샤로트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 또 어디 가서 사고를 친 건 아니겠지?”
“그러게 그 맹랑한 것을 혼자 보내면 어떻게 해.”
부선장도 걱정했다.
샤로트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샤로트가 사고를 쳐서 피해를 입을 사람을 걱정한 것이다.
“사람을 풀어서 찾아야 하나…….”
그때.
똑똑~!
귀신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샤로트가 돌아왔다.
문제는 옷이 먼지투성이였고… 얼굴에…….
“너 누구랑 싸웠냐?”
멍이 들어 있었다. 코피 자국도 보이고…….
“얘가 이 정도로 다칠 정도면… 설마 죽이지 않았지?!!”
부선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 거야 뭔 대수겠냐만은 이곳은 리안이 통치하는 곳이다.
첫날부터 측근이 살인을 저지르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흐잉~ 분해요.”
샤로트가 울상을 짓자.
“휴우~”
리안과 부선장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샤로트가 당한 모양.
“그보다 네가 당할 정도면 상대가 상당한 실력자였을 텐데. 이 영지에 샤로트를 상대할 만한 사람이 있나…….”
다른 영지에 비해 기사의 숫자만 많았지 강한 자는 없었다.
유일한 중견급 대기사였던 부기사단장이 부선장에게 배가 뚫려 버렸으니.
“용병이요.”
그녀의 말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용병은 더더욱 샤로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다.
설마 자신이 모르는 재야의 인재라도 있는 걸까?
샤로트를 이길 정도면 월척인데…….
“자세히 말해 봐.”
“그게… 테르시오 진형을 뚫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읭?!!”
“설마… 진형을 상대로 혼자 싸웠다고?”
부선장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정면으로는 진형을 짠 상대를 뚫지 못한다.
더군다나 상대는 용병이다.
용병들은 일반 징집병들보다 전쟁에 진심인 자들이었고.
그들은 같은 술식이 걸린 목걸이를 착용한다.
한 명, 한 명은 약할지 모르지만, 다수의 목걸이가 모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기사라 할지라도 빈틈을 찾지 못하면 뚫지 못한다.
“으이구!! 이런 무식한 것!”
부선장이 샤로트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에이~ 부선장 아저씨가 안 가르친 것도 있잖아요!”
“음… 그야 해적질하는데 진형을 뚫는 건 알 필요가 없잖아.”
참고로 해전에선 진형 술식이 먹히지 않는다.
당연히 파도에 움직이는 배에서 간격을 맞춰서 술식을 발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지상에선 더더욱 쓸모가 없다.
진형을 맞춘 정규군이 몰려오면 왜 싸우나. 도망가야지.
“힝~ 그럼. 진형은 못 뚫는 건가욧?!”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 어떻게 하냐면…….”
리안이 가르쳐 주려고 하니 턱 하니 말문이 막혀 버렸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잘 모르지 않는가.
‘막연히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게임 캐릭터는 자신이 아니었다.
“내일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그런 쪽으로는 전문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