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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97화 (97/253)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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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미샤호는 <브루타뉴 공국 – 스랑 제국> 간 부유선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제기럴 더럽게 좁네.”

다른 지역의 부유선 도로에 비해 협소해서 바다에선 중소형 취급을 받는 고잉미샤호가 겨우 지나갈 정도다.

애초에 지상을 다니는 부유선이 바다에선 소형 취급을 받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 선장님. 전방에 뭔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레이더병 똘똘이가 급히 보고했다.

신호가 작고 미약한 걸 봐서는 부유선으로 보인다.

“아나… 하필이면.”

일반 목제 부유선도 두 대가 서로 지나기 힘든 곳이었다.

서로 마주치면 한 척이 조금이라도 넓은 곳까지 후진해서 비켜 줘야만 했다.

“비킬 곳도 없는데…….”

여기가 공국이 아니었다면 길을 확장시켰을 테지만, 스랑 제국이 반대했다.

완충지 역할을 해 줘야 하기 때문.

투두두두…….

앞에 나타난 배도 적지 않게 당황한 눈치다.

평상시에는 이곳으로 다니는 부유선이 잘 다니지 않는 까닭일 터.

잠시 멈춰서 아무것도 안 하다가 통신이 들어왔다.

[저희 쪽은 2시간은 가야 합니다. 그러니…….]

말끝을 흐린 이유는 비켜 달라는 말로 보인다.

상대와 달리 고잉미샤호가 왔던 길은 대충 30분 정도 후진하면 넓은 길이 나온다.

저들은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는 부유선이니 당연히 길을 잘 아는 것이다.

“후… 대충 각이 나오긴 하네… 그냥 가만히 있어요. 지나가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협곡에 지나갈 곳이 어디에 있다고…….]

“기다려 봐요.”

리안은 조종구 위에 올린 손가락을 부드럽게 좌우로 왕복하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

배가 진동을 하며 좌우로 기울어졌다.

그 폭이 점점 커지더니.

드르르르~ 드르르르~

U 협곡을 따라 좌우로 움직이더니 결국 벽까지 타고 올랐다.

마치 동계올림픽의 스노우보드 종목인 하프파이브를 보는 것 같았다.

그걸 지켜보는 상대 부유선에선…….

“뭐야… 저게?”

“스랑 제국에서 만들고 있다는 그 신형 전함이 아닐까요?”

오랜 세월 부유선에서 살아온 그들에게도 저런 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아무리 신형이라도 저게 된다고……?”

“그보다 저런 함선이 여기까진 왜 온 걸까요? 이 길을 따라가면 스랑 제국이 나오니…….”

“아차!! 인맥을 쌓을 이런 좋은… 기회… 를…….”

“이미 놓쳐 버렸네요.”

이미 고잉미샤호는 저 멀리 떠난 뒤…….

위이이이잉~!

였는 줄 알았는데, 다시 후진을 해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통신으로.

[아아. 깜빡할 뻔했네요. 백수킹 상단이죠? 스랑과 브루타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알아봐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자가 되자는 뜻에서… 아… 별 쓰잘데기없는 말을. 어쨌든 열심히 활동한 보람이 있네요. 그런데… 존함이…….”

상단주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 방금 너무 놀라운 것을 봐 버렸고. 그런 놀라운 기행을 한 높은 존재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기 때문.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

상단주의 머리는 잠시 버퍼링으로 가득 찼다.

스랑 제국의 웬만한 귀족가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레온 백작령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그… 이곳 브루타뉴 공국 레온 백작령의……?”

[맞아요. 이 몸이 레온 백작입니다.]

리안의 확답에도 상단주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처음 보는 신형 전함이라 스랑 제국의 높으신 분이라 생각했던 것.

[조만간 대량으로 물건을 좀 구매할까 하는데. 정기 상행이 끝나면 들러 주시겠어요? 이왕 마주친 김에 의뢰를 드리는 거랍니다.]

브루타뉴 공국에 백수킹 상단보다 큰 상단은 있었지만, 따로 연락을 하기 귀찮은 리안이었다.

스케줄이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고.

때마침 부유선을 가진 상단이 나타났고. 하필이면 또 아는 상단이었다. 물론 리안만.

“그게… 그쪽은 부유선이… 다닐 수… 아닙니다. 마차를 동원해서라도 꼭 가겠습니다.”

백수킹은 나름 브루타뉴에선 큰 상단이라 개인적으로 백작가와 따로 거래를 하지 않았다.

제국에 가면 촌놈 소리를 듣지만, 이곳 브루타뉴에서는 그래도 좀 알아 주는 상단이었다.

육지 부유선을 가졌기에 국가 간 무역을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길을 터놓을 테니 부유선을 타고 와도 됩니다.]

“그쪽 방면으로 길이 생겼다고요?”

[아. 완벽한 길은 아니고. 천천히 올 수 있게 좀 닦아 놓겠습니다. 좌표는…….]

리안은 공왕과 협상을 할 때 언급되었던 오솔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게임을 할 때에는 내륙에서 플레이한 적이 많기에 초반에는 부유선 따위는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런 오솔길도 유용하게 쓰이고. 머릿속에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었다.

“네! 받아 적었습니다. 수도에서 빠르게 하역을 하고 곧장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오오. 그래 주시면 감사하고요. 그럼~]

통신은 그리 끊기고.

드르르르륵~!

빠르게 사라지는 신형 철갑선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백수킹 상단의 단원들은 뭔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정말 레온 백작일까요? 목소리도 어려 보이던데…….”

“그러게… 아직 계승 전쟁 중이라 들었는데…….”

그래도 브루타뉴에 적을 둔 상단이기에 나라가 돌아가는 소식이 어둡진 않았다.

“방계가 아닐까요? 저런 전함을 타고 있는 걸 봐선 스랑 제국에서 개입한 것이 아닐지…….”

“그렇군. 일개 백작이 저런 전함을 타고 다니는 게 이상하지. 서두르자. 빨리 수도에 짐을 하역하고 레온 백작령으로 가자고. 레온 백작과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이건. 우리 상단에 기회야.”

백수킹 상단주는 크나큰 기대를 품고 떠났다.

번번이 제국에서 인맥으로 밀렸는데, 잘하면 다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저 배가 리안의 것일 리는 없고. 스랑 제국의 높으신 분이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진짜 인맥은 리안 그 자체임을 모르는 상단주였다.

* * *

부유선 길을 따라 이동하던 고잉미샤호가 멈췄다.

“항법사 아저씨. 찾았어요?!”

“그게 쉽지 않아.”

리안도 대충이나마 아는 길이긴 하다.

브루타뉴 공국은 바다를 통해 스랑 제국으로 넘어가기 만만한 곳이라 자주 애용하던 곳이기 때문.

다만, 공중에서 지도를 보며 플레이하는 것과 땅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기군. 육지 길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아.”

리안이 공왕과 협상하는 동안 항법사는 궁전에 이 근방의 지도를 요청했다.

아쉽게도 고잉미샤호에 비치된 지도 책자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원래 지도는 군사 기밀이라 유출이 되지 않지만, 리안이 이 근방의 지배자이기에 당연히 반출이 되었다.

애초 궁전에 지도를 상납하는 것이 지방 영주들이었기에.

“우리 배에서 아저씨만큼 지도를 잘 보는 사람은 없으니 우는소리 하지 마세요.”

국가에서 돈을 써서 작정하고 만든 지도가 아니라면 오차가 심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지금 보고 있는 지도 또한 후자였고.

이럴 땐 직관력이 중요했다.

항법사가 아무리 해도를 전문으로 한다지만, 지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다.

판과 판이 만나는 곳은 산맥이 되고 그 산맥은 땅에 봉제선을 기우듯 이어진다.

이런 맥락을 배우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해도. 오랫동안 지도를 파고 산 사람들은 공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곳은 항법사가 활동했던 서해에 삐죽하니 튀어나온 반도이지 않은가.

“정말이지 이 지도는 심하다고. 누가 이딴 식으로 만들었는지 엉망진창이야.”

“아무래도 제 조상님 중 한 분이 아닐까 싶네요. 아니면 옆 영지려나. 백작가에 가면 더 정확한 지도가 있을 거예요.”

리안은 싱긋 웃으며 고잉미샤호를 움직였다.

일단 최단 거리를 계산해서 거칠게 이동해야 했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 흔적을 보고 따라오는 백수킹 상단의 부유선도 헤매게 될 것이다.

드르르륵.

단독으로 이동하고 말 것이라면 적당히 움직이면 되었지만, 문제는 일반 부유선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쩌어어억! 쿠우웅! 드르륵!

고잉미샤호는 부유력을 최대한 낮춰서 땅에 기다시피 이동했다.

그 여파로 나무가 꺾이고 바위들이 파쇄되거나 뽑혔다.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마!! 아기 상어님~ 하부 도포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기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마도 가장 아래에서 위치했기에 소리가 더 심할 것이다.

“에이, 이참에 따개비도 긁어낼 겸 좋잖아요. 대충 새로 칠할 때가 다 된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이건 너무 무식한 방법이라고! 밑창이 다 헐겠네.]

바다에서 운항하는 부유선들의 배 아래쪽은 붉은색이었는데, 바다 생물이 달라붙지 않게 하는 화학 도료의 색상이 붉어서였다.

한 번만 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칠해 줘야 한다.

“영지에 도착하면 넉넉하게 시간을 드릴게요.”

그리 말하고는 룰루랄라 숲길을 뚫으며 갔다.

고잉미샤호가 지나간 자리는 일반 목제 부유선도 지나다닐 수 있는 임시 길이 생겼다.

“서언장님!! 레이더에 뭔가 잡힙니다.”

마법적인 현상을 잡아내는 레이더.

“이딴 숲속에 부유선은 아닐 테고.”

“네. 점의 크기나 선명도를 봐선 작은 마을인 것 같습니다.”

레이더병 똘똘이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네르데르 공국에서 신센롬 제국으로 이동할 때 레이더에 잡힌 마을들을 봐서다.

학습 효과로 인해 이제는 어엿한 레이더병이 되어 가는 모양.

“음… 마침 적당한 위치네.”

상단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드르르르르~~!

고잉미샤호는 즉시 방향을 살짝 틀어 마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무 순식간에 접근한 터라.

-으어어어~!! 괴물이다!!

-산신께서 노하셨다.

-저건 괴물 따위가 아니라 부유선이다.

-촌장님. 금속으로 만든 부유선이 있단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규모는 작았고 사람들은 순박했다.

원래는 화전민 마을이었지만, 레온 백작령에 편입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드드득!

고잉미샤호는 마을의 입구 앞에서 떡하니 멈췄다.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다 결국에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저런 배를 탄 사람의 권력이라면 자신의 영지민이 아니라도 파리목숨처럼 취할 수 있었다.

끼기기긱!

고잉미샤호에서 판자가 땅에 닿았다.

그곳으로 꼬마 하나가 거만하게 내려왔다.

“환영합니다. 고귀하신 분이시여. 이런 척박한 마을에는 어쩐 일로 오셨나이까.”

촌장 또한 마을 입구에서 바닥에 엎드려 큰소리로 외쳤다.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센 노인이었는데, 몸이 불편해 보인다.

“그만 일어나세요. 땅이 아직 차갑습니다.”

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생각해보니 브루타뉴 공국의 궁전 전부를 꽃밭으로 채우려면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리안은 궁핍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과 그곳의 사치스러움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더 밟아 주고 올걸.’

참고로 그 꽃들은 약은커녕 먹거나 열매로 쓰지도 못하는 관상용이었다.

“감사합니다. 고귀하신 분이시여. 혹. 존함을 여쭈어도 되옵니까?”

“나는 리안 레온 백작이다. 그대들의 영주이지.”

“……?”

자리에서 일어나던 촌장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있던 촌민들도 동시에 고개가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여… 영주님을 뵙습니다!!”

사실 이들은 전 영주는커녕 영주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촌장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까지 화전민이었던 촌장이 어찌 영주의 얼굴을 알겠는가.

‘어느 쪽이지?’

다만 촌장이 난감한 것은 형이냐. 동생이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산지에 처박혀 있는 마을이라도 영지가 계승 전쟁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게 마을 주민의 전부인가? 집의 숫자에 비해 사람의 숫자가 적군.”

저게 모두 세금이었다.

이곳은 공왕과의 협상테이블에 올라갔던 그 화전민 마을이었다.

“송구하오나 그러하옵니다. 영주님. 화전민에서 일반 마을로 승격하였기에…….”

어차피 세금을 내야 하면, 화전민 마을에서 사는 이득이 사라진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자들은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돈을 벌러 갔다.

“혹 연락이 닿거든 돌아오라고 전하게.”

“영주님의 명이시라면 응당 그리하겠습니다. 함부로 이주한 몹쓸 놈들이지만 부디… 자비를…….”

원래라면 영주의 허가 없이 이주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애초에 이곳에 화전을 일군 것도 불법이었지만, 이전 백작이 나름 자비를 베푼 것이다.

물론 세금을 받기 위한 속셈도 있었지만.

“알겠다. 그보다 생활은 어떠한가?”

“영주님의 보삼핌 덕에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라.”

다른 곳에서는 평민에게도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던 리안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조금 고압적으로 행동했다.

백성들이 순박하고 착하다는 것은 모두 헛소리.

실제로 백성이 순박하다 하더라도. 어디에나 빌런은 있는 법이다.

마음이 여리다는 소문을 들으면 율 대륙 각지에서 별의별 사기꾼이 다 모여들 것이다.

“그것이… 마을의 인력이 계속 빠져나가서… 농사를 짓기에도 빠듯합니다.”

“그래? 그럼 농사는 접어라. 이딴 산지에서 농사는 무슨.”

촌장은 영주가 무슨 일을 시킬지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되지도 않는 것을 시킨다 해도 약자는 따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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