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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96화 (96/253)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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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왕은 뿌듯함을 감추느라 겨우 참았다.

이 문서들을 찾아낸 비서들의 노고에 박수를.

그녀들을 뽑은 자신에겐 더 큰 박수를.

“안타깝게도 레온 백작령에 쌓인 부채라네.”

부채라면 부채가 맞다.

시대가 지날수록 복잡해진 봉신 계약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영주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토롤 요새가 완공되었음에도 거기에 대한 세금은 3대째 받지 못하고 있다네. 그리고.”

해당 요새는 그 당시 공왕이 지시해서 지어진 것으로 면세 대상.

물론 그 당시 백작도 그곳에 요새를 건설하려고 계획 중이었고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사이가 좋았던지라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

당연히 관례로 계속해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

물론 갑작스럽게 승계가 일어나는 바람에 거기에 대한 기록은 공왕만이 준비할 수 있었다.

“포투판 화전민 마을이 레온 백작령에 세금을 내고 있다더군. 가옥이 30채가 넘으니 당연히 정식 마을로…….”

상세한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작정하고 영지민을 숨기는 방법도 있고.

그렇다면 쉽게 조사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집의 숫자를 세는 것이다.

다만, 영주 측이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30가구가 되어도 막상 몇 명 살지 않을 수도 있고. 폐가인 경우도 있기 때문.

철거하는 것도 다 일이니 적당히 조사관에게 말하면 관례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레온 백작령 수도에 다리가 3개로 보고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다섯 개더군. 전대 레온 백작이 두 개를 더 건설한 것으로…….”

작위가 같다고 모든 영주에게 똑같은 세금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백작은 공작만큼이나 부유하고 또 어떤 백작은 남작만큼이나 가난할 수도 있기 때문.

그렇기에 해당 영지의 공공시설의 질과 개수로 세금을 매겼다.

“바레크 산을 관통하는 오솔길도 생겼던데… 신고를 한 기록이 없더군.”

같은 맥락으로 도로세도 있었는데, 도로가 생기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니 지속적으로 세금을 낼 필요 없이 한 번만 내면 되었다.

물론 오솔길과 같은 작은 길은 관례상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큰 길도 필요에 따라선 면세다.

“군대 숫자도 신고된 것보다 많더군.”

여기서 군대 숫자는 실제 군대 숫자가 아니었다.

군대 숫자를 유추하는 것은 성과 요새의 숫자와 같은 군사 시설의 숫자로 계산된다.

그 규모에 대비해 기사를 서임할 수 있는 수도 정해지기에 영주 측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군사 시설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웃긴 것은 그 규모의 반의반도 상비군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상비군은 유지비만 깨지고 전쟁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대부분의 영주들은 용병을 고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전전대에서 병사를 30명이나 더 적게 보냈더군.”

봉신의 기본 의무 중 세금 상납 외에 군사적인 부분도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영주들은 신고된 병사의 일부를 중앙으로 보내야 했다.

당연히 지휘권은 중앙이 가진다.

문제는 앞의 문제처럼 영주들이 상비군보다 용병을 선호하기에 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30명에 대한 비용은 아직 내지 않고 있네. 그 외에도…….”

공왕은 그동안 레온 백작령이 책무를 다하지 않은 점들을 끝도 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그걸 가만히 듣던 리안은 공왕이 말을 마치는 순간.

“…해서 앞으로는 잘 부탁하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혹시 서류를 제 작은어머니께 보여 드려도 되겠습니까?”

“명색이 지금 레온 백작가에서 가장 큰 어른이니 당연히 그래도 되네.”

그때 뒤늦게 백작 부인이 도착했다.

샤로트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녀를 불러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왕 전하.”

“안 보던 사이에 더 예뻐지셨소. 백작 부인.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봅니다.”

“호호호. 요즘 좋은 것들을 많이 먹다 보니 그리되었네요.”

“혼자 먹지 말고 좀 나눠 먹읍시다. 허허허.”

“여자한테만 좋은 거라. 아쉽네요.”

백작 부인은 살살 웃음을 짓더니 리안을 바라봤다.

“작은 것 하나 빠짐없이 최대 비용으로 정리해 주세요.”

“그 말은…….”

그녀는 리안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보았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를 챈 것이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관례가 어쩌고저쩌고. 해당 시설의 규모가 어쩌고저쩌고. 그런 협상 따위는 필요 없으니 계산이 단순해졌다.

그저 해당 사항의 최대치만 뽑아내면 되니.

“보자……!”

그녀는 여러 개에 흩어진 정보들을 하나의 종이에 빠르게 옮겨 적으며 계산했다.

상인의 딸답게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타고났다.

그걸 지켜보던 비서들이 더 놀랄 지경.

“여기.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그이는 왜 이런 걸 제때 안 냈나 모르겠네. 호호호.”

여기서 그이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리안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만, 몇 대째 쌓여 있는 액수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372,567페니.

소규모 백작가의 이 년 치 수입과 맞먹었다.

정말 가난한 백작가는 일 년에 10만 페니도 안 되는 곳도 허다하다.

당연히 이곳은 공국이며 일반 왕국이나 제국의 백작들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아직 정식으로 취임도 안 했는데 너무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싶군.”

공왕은 너스레를 떨었다.

절대로 저 돈을 갚지 못할 거라는 확신.

물론 백작가의 사재를 이용하면 어찌어찌 되겠지만, 그러고 나면 오랫동안 가난에 허덕여야 할 것이다.

백작가를 운영하는 것은 숨만 쉬어도 돈 나갈 곳투성이.

물론 공왕은 백작 부인이 마지막에 했던 ‘얼마 안 되네.’란 말을 흘려들었다.

“작은어머니. 세바스 아저씨에게 가서 해당 비용을 받아 오세요. 넉넉하게 40만 페니면 될 것 같네요.”

“그럴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왕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공왕은 저 둘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서… 설마…! 그 돈을 다 갚겠다고?”

그 비용은 공왕에게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목돈이 들어온다 생각하니 어벙벙한 기분이었다.

비서들에게 성과급이라도 줘야 할 판.

자그락. 자그락.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가득 든 상자가 도착했다.

“전대의 실수를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공왕 전하. 소소한 성의를 포함해서 40만 페니를 준비했습니다.”

“진짜로 그 돈을 낸단 말인가? 진짜?!!”

보통 영지들도 이만한 채무를 관례적으로 쌓아 놓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터.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봐주는 것이다.

“대신 여기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리안은 아까 전 백작 부인이 작성한 종이를 공왕에게 들이밀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대가 성의로 주는 것이니 거절하지 않겠네.”

“아무렴요. 전대의 과오들을 다시 사죄드립니다. 전하.”

리안은 다시 정중히 사과를 했고. 공왕은 기분 좋게 사인을 했다.

‘이걸 그냥 받아주네. 생각보다 더 똥멍충이네.’

리안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름 국정 운영이 나쁘지 않은 공왕이었지만, 사치, 식탐, 여색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 그리고 부유선 통행권을 발급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네. 그대는 엄연히 우리 공국의 일원이지 않은가.”

“관대한 결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영지 일이 바빠서 이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전하.”

“그래그래.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아 놓을 순 없지. 살펴 가게나. 레온 백작.”

그렇게 리안은 달랑 종이 한 장을 챙겨서 나가 버렸다.

당연히 공왕은 돈에 한 눈이 팔려 있었다.

오롯이 사치를 부리는 데 써도 되는 공돈.

무엇을 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전하.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비서 1이 질문을 했다.

“뭐가. 말이더냐. 아아. 설마 돌려달라고 나중에 때라도 쓸까 봐 그러더냐? 이미 늦었지. 어린 치기로 이런 쓸데없는 빚을 갚다니.”

솔직히 안 갚아도 되는 돈.

대부분의 주군과 봉신 관계에서 이 정도의 빚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내 공부를 단단히 시켜 줬으니. 이 정도 과외비는 받아야지.”

백작도 본인의 영지로 가면 주군이고 봉신들을 다스린다.

“그게 아니오라. 옆에 전 백작 부인도 있었는데 이렇게 순순히 돈을 주는 게 이상해서예요.”

“응? 생각해 보니 상인의 딸이라 들었는데… 흥. 상인 나부랭이가 딸에게 제왕학을 가르쳤을 리가 만무하지.”

그때 비서 1이 뭔가 떠오른 듯.

“그거에요!!!”

“깜짝이야. 뭘 말이더냐. 그보다 가지고 싶은 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애초에 우리가 저 문서들을 내민 이유가 중요한 거예요!!”

그제야 뭔가 싸함을 느끼는 공왕이었다.

* * *

고잉미샤호로 돌아온 리안은 즉시 출항 준비를 했다.

“흐리아 민. 배는?”

“비싼 물품을 기함 고잉미샤호로 옮겼어요. 항구 관리인에게 정박 비용도 지불했어요.”

흐리아 민이 몰고 온 배는 지상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일정 시간 동안 정박해 놓아야 했다.

“좋아! 그럼 서둘러 가자.”

“음? 꼬맹이 왜 이리 서두르는 거야?”

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공왕이 돈 돌려준다고 오면 곤란하니까요. 흐흐흐.”

“응?! 그 돈을 왜.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린데 말이야. 도대체 그 돈을 왜 준 거야? 전대 백작들도 안 낸 걸 굳이 지금 와서?”

해적인 부선장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유.”

“갑자기 무슨 말이야?”

“공왕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말이 주군과 봉신이지 세월이 오래 지나면 정통성은 해당 영지의 가문이 가지게 되죠.”

원래라면 땅을 하사하고 그 대가로 봉신은 의무를 다한다.

당연히 초창기에는 땅을 하사했다는 은혜가 크게 작용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계약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시 말해.

“전대 공왕들이 명분을 쌓기 위해 그런 식으로 빚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라요.”

“아……!”

부선장도 이제 이해한 모양이다.

이제 공왕이 리안에게 뭔가를 시키려면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해야 한다.

그저 세금과 동원령이 발발하면, 군사 시설의 규모에 따른 병사(돈으로 가능)를 상납하면 그만.

“공국은 직접 참전을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흐흐흐.”

전시에도 대전사 용병의 비용만 지불하면 직접 참전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이 빈번하던 고대에는 영주가 곧 강력한 기사여야 했지만, 시대가 흐르며 군주의 덕목이 무에서 통치로 변하는 추세.

공국은 별 볼 일 없는 영주들보다 돈으로 받는 걸 더 좋아했기에 오래전 직접 참전의 의무가 사라졌다.

“그것도 대전사가 아니라. 기사로 되어 있으니…….”

“그냥 돈만 내면 독립국이나 다름없단 말이네. 백작령이니 백국이라 하면 되나.”

“그딴 이름은 없어요. 크흐흐. 자! 출항합니다요~”

시간이 지나면 돈을 돌려주려 해도 명분이 없어진다.

예전에 받아 놓고 왜 지금 와서 이러는가? 라고 하면 늦는다.

츠츠츠츠!!!

고잉미샤호는 서둘러 부두를 벗어났다.

당연히 이를 뒤늦게 눈치챈 공왕이 급히 기사들을 시켜 고잉미샤호의 출항을 늦추라 일렀지만.

샤아아아~!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가즈아아아~”

고잉미샤호는 유유히 항구 저편에 마련된 부유함 육로를 따라 쌩하니 가 버렸다.

* * *

레온 백작령은 그야말로 난장판.

계승 전쟁으로 이미 유력한 계승 후보자들이 죽어 버렸고 10살 남짓한 어린 형제들에게로 바통이 터치되었다.

“사령관님. 상대측에서 5일 뒤 회전을 신청했습니다. 시간을 끌면 백작령이 더 피폐해지니 빨리 싸움을 끝나자고 합니다.”

“흥! 잘되었어. 그동안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싸움을 피하더니.”

“그보다 갑자기 저리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관의 말에 사령관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 봤자지. 우리 전력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하긴. 스랑 제국에 적을 둔 도련님의 외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셨으니.”

제국에서 상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웬만한 왕국의 영주들보다 돈이 많다는 말이다.

영주들의 전쟁은 어느 순간부터 징집이 아닌 용병으로 치루어지고 있으니 어찌 보면 상인은 어떤 영주보다 든든한 우군이었다.

“그보다 누님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정말 기사단장과 바람이라도 나서 야반도주라도 한 걸까?”

원래 내정되어 있던 후계자인 리안 레온이 올 것을 예상하고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치워 버려야 할까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는데.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맡겨 놓거라.

그렇게 유일하게 남은 백작 부인이 사라졌다.

문제는 그녀가 데리고 간 기사단장 케리시안 남작 그도 함께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리안 도련님이 오지 않는 걸 봐선 그건 아닌 것 같고. 일이 길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젠장. 케리시안 단장만 돌아왔어도! 일이 이렇게는 흘러가지 않았을 건데.”

어쩌면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사단장의 입김은 생각보다 강하니.

“그냥 회전을 피하고 조금 더 기다려 보심이…….”

“됐어. 이참에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앞으로 영지를 운영하기에는 나쁘지 않아. 우리의 힘을 보여 줄 필요도 있지. 가서 전해라. 조르전 평원에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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