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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95화 (95/253)

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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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바라보던 공왕의 포동포동한 볼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럴 것이 오는 데 최대한 지연을 시켜 놓으라 지시했는데, 이게 웬걸. 떡하니 궁전 안의 정원까지 들어와 있었다.

-공왕님. 차라리 알현을 며칠 미루시는 게…….

-첫 대면부터 쪼잔하게 그리해선 안 되지.

말은 그리했지만, 두려웠던 것이다.

소문이 생각했던 것보다 몇 퍼센트만 더 정확할 경우 갑을 관계가 모호해진다.

무려 신센롬 제국의 후광을 받고 있는 자이며, 이벨 왕국 함대의 호위까지 받고 이곳에 온 자다.

-이벨 왕국 체면도 생각해 줘야 되지 않더냐.

-하긴. 이벨 왕국은 좀 무섭죠.

이벨 왕국으로 가려면 스랑 제국의 해역을 지나쳐야 하지만… 그들이 작정하고 브루타뉴 공작령을 괴롭히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냥 원해로 돌아오면 그만이고. 스랑 제국이 반응하기 전에 한 번에 밀고 들어와 쓸어 버리고 빠져도 그만이다.

“주군~~! 어디에 계십니까?!!”

밖에선 리안이 계속 낭랑하게 짖어 댔다.

아무리 그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가 데리고 온 부하들의 면면이 흉흉했다.

“저 미친 꼬마 놈이…….”

라고 말했지만 무섭다.

수도에 주둔 중인 공왕의 친위 병력은 대략 천여 명이다.

겨우?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전쟁이 나면 용병들을 끌어 쓰기 때문에 유지비가 비싼 정규군을 많이 두지 않는 것이다.

거기다 징집병보단 역시 용병들이 더 잘 싸웠다.

“공왕님. 위험합니다. 병력을 소집…….”

“후… 기사들만 불러라.”

병사들을 소집해 봐야 윗전으로서 체면만 상한다.

말이 근위대지 훈련상태가 엉망이었다.

사실 이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스랑 제국에 병사를 바치지 않기 위해서다.

일이 있을 때마다 스랑 제국으로 몇 번 질 낮은 병력을 보내 주니 이제는 보내 준다 해도 격렬하게 거절했다.

물론 초반에야.

-장난하는가?! 이딴 걸 나사 빠진 놈들을 병력이라고 보냈나?!

라고 따진 적이 있지만, 스랑 제국도 바보가 아니었다.

보내온 병력의 절반이 근위병인 걸 보고서야 브루타뉴 공국의 전력이 엉망임을 인정했다.

첩보도 충분히 돌려 이중으로 검사했는데도 그랬다.

-음. 관리하게 편하겠군.

약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상국인 스랑 제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랄까.

물론 혹자는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스랑 제국으로 진입하는 교두보 역할의 군사 요충지인 브루타뉴 공국이 형편없으면 위험한 거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상륙하기 좋단 말은 방어하기 힘들단 말이고. 작정하고 방어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차라리 그럴 바에 방치해 놓고 덫을 쳐 놓는 게 훨씬 났다.

물론 그 덫에 허우적대는 동안 감당해야 하는 것은 브루타뉴 공국이고.

“네. 기사들만 모아도 감히 공왕님의 권위에 고개를 숙일 거예요.”

“그럴 것 같으면 저리 당당하게 나오지 않았겠지.”

이미 상대는 작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떤 봉신이 주군의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며 만나러 오겠는가.

* * *

리안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큰 목소리로 열심히 공왕을 불러 댔다.

누가 이곳의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착각이 될 지경.

“꼬맹이 이래도 되는 거냐?”

부선장은 얼떨떨해했다.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공왕은 감히 올려도 못 보는 그런 존재였다.

아니 백작은커녕 남작만 해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공왕의 앞마당이 궁전의 정원을 이리 쑥대밭으로 만들 줄이야.

“그러게 꼼수를 부리면 안 되죠. 훗!”

무례함은 증거로 잘 남지 않는다.

모략이 판치는 귀족 사회에서는 단편적인 사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기에.

-뭔가 지시하고 그걸 봉신에게 뒤집어씌운 거겠지.

-애초에 봉신이 그리 날뛰는 것 자체가 주군이 무능하다는 증거지.

저 둘 중 하나로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군이 괜히 봉신의 힘이 약해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힘의 차이가 줄어들면 고개가 빳빳해진 봉신을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대가 리안 레온 백작인가?!”

깽판을 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왕이 정원으로 나왔다.

겨울임에도 꽃으로 가득하던 정원은 고라니 100마리가 뛰어논 것처럼 엉망이 되어 버렸다.

“주군을 뵙습니다. 찾으신다고 들었기에 서둘러 왔습니다.”

리안은 뻔뻔하게 외쳤다.

너를 만나러 서둘러 왔으니 꽃밭 따위 뭔 대수냐. 라는 뉘앙스였다.

“그래 잘 왔노라. 다만 아직 그대는 내 봉신이 아니니 주군이라 부를 자격이 되질 않는다.”

“음… 죄송합니다. 공왕 전하. 그렇다면 제게 주어진 권리를 찾고 서둘러서 오겠습니다.”

미소를 살짝 띠던 리안의 표정이 천천히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지을 수 없는 형태의 분위기.

이질적인 느낌에 공왕은 등골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잠깐! 서두른다고?!’

얼굴 좀 보자 했더니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권리를 찾고 오겠다는 것은 병력을 끌고 오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거기다가 항구에 세워진 배는 수륙양용이라 들었다.

‘으… 젠장!’

부유선이 여기저기 부수며 바삐 가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걸 문제 삼으면 서두르다 보니 그리되었다고 변명할 것이다.

힘을 써서 막자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미 항구 안으로 들어온 이상 신형 부유선을 막을 만한 수단이 거의 없었다.

‘어설프게 막았다간 내 명성에만 금이 가겠지.’

공왕은 짧은 시간 대략적인 견적을 마쳤다.

괜히 분쟁이 생겼다가 어떤 식으로 외부 세력이 개입할지 모른다.

그리되면 사실상 내전이 된다.

나름 봉신들을 단속한다고 단속했지만, 불만이 있는 봉신들도 많았다.

“아니 되었다. 어차피 그대가 그대에게 주어진 온당한 권리를 찾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 애초에 정통성도 자네에게 있었다. 레온 백작.”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공왕은 리안이 만만치 않은 꼬마 아니 인물임을 깨달았다.

어려서 생각이 없어 실수한 것이라고 하기엔 두 번이나 당했다.

“후… 안으로 들어가지. 그대가 갑자기 방문했기에 주군으로서 위엄을 보이기 힘드니 양해를 부탁하네.”

차린 게 별로 없다는 말이었다.

미리 언질을 받았다면 그에 맞게 격식을 차렸을 것이니 투정 부리지 말란 말이었다.

“군림하는 자는 따로 위엄을 챙길 필요가 없습니다. 주군. 그저. 명하십시오. 그럼. 따르겠습니다.”

리안의 말에 뒤에 도열해 있는 기사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대전사의 숫자만 해도 열 명 남짓.

일반 기사들은 50명이 넘었다.

-무례한!

-어린놈이 건방이구나.

-다들 조용!

기사들이 분노한 이유는 리안의 말이 역설적이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으니 부하에게 빌빌대는 거 아니냐.

힘을 좀 가져라. 그럼 내가 반찬 투정은커녕 풀때기만 먹여 줘도 감사히 여기겠다. 이런 뜻이었다.

휘이이잉~

공왕이 기사들의 분위기를 읽어서였는지 잠시 멈췄다.

“길을 터거라!”

공왕의 명령에 기사들이 뒤늦게 리안이 들어갈 수 있게 좌우로 비켜 줬다.

‘충돌이 생겨 봐야 좋을 것이 없다.’

리안이 데려온 병력은 50명 남짓.

공왕은 기사만 100명 남짓.

문제는 저쪽도 기세를 보아하니 대부분 마나 유저였다.

대전사의 숫자도 다섯이나 된다.

싸우게 되면 압도적으로 제압이 되지 않는다.

‘자칫하다간 외부 세력이 개입할 수도 있다.’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스랑 제국은 본토가 위협될 만한 적이 아니라면 방관할 가능성이 컸다.

크게 보면 스랑 제국이 주군이고 브루타뉴 공국이 봉신이니.

뒤늦게 개입해서 이득만 챙기려 들겠지.

“두 분을 제외하고 남으시길 바랍니다.”

근위대장이 리안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무장인원을 한 번에 궁전 내부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비무장을 해도 마찬가지다.

마나 유저부터는 존재 자체가 무기이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었다.

근위대장은 밀고 들어오는 리안을 급히 피했다.

‘미친 꼬마!!’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뭘 믿고 저리 까부는지 모르겠다.

“지나갈게요~”

“고생이 많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지나치는 순간 리안이 보통인물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경지가 못해도 2차 각성을 한 중견급 정도로 보였으니.

‘백작이 중견급을 둘씩이나?!’

근위대장은 상급 경지이긴 했지만, 두 사람과 결이 달랐다.

솔직히 근위대장은 온실 속에서 키워진 대전사였지만, 방금 두 사람이 지나간 공기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옷. 공왕님이라 그런지 비서 숫자가 많네요”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시녀복을 챙겨입은 샤로트였다.

공왕을 만나러 간다니 시녀 한 명쯤은 있어야 면이 선다며 저리 갈아입은 것이다.

“대부분 시녀야. 비서직을 수행할 만큼 유능한 사람은 얼마 없지.”

그저 공왕의 인형 놀이에 불과했다.

물론 넘버링이 있는 30명까지는 그나마 쓸 만한 정도.

그 외에는 귀족 출신이라 읽고 쓰는 게 가능하지만, 단순한 서류 업무나 볼 정도였다.

당연한 것이 비서들의 나이대가 너무 어렸기 때문.

“…….”

샤로트가 멍청한 표정으로 비서들을 봤다.

아무래도 옷에 꽂힌 듯 보였는데, 그나마 시녀복을 입고 있어서 얌전한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침을 질질 흘리며 이쁘다고 난리를 쳤을 수도 있다.

“나중에 돌아갈 때 하나 얻을 수 있을지 물어볼게.”

“정… 말이요?!”

한참 호기심이 많을 나이다.

아니. 이 아이는 특별히 더 그랬다.

저 왕성한 호기심이 재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SSR+급의 만능캐가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성적인 것만 배우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작은어머니에게 회계도 알려 달라 할게.”

“감사해요! 도련님.”

슬슬 포병실도 질리는 모양이다.

요즘 들어 전용 소형 마나포를 닦는 일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따각. 따각.

리안과 일행은 27이라 적힌 명찰을 단 시녀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향했다.

공왕은 다시 잠깐 몸단장을 다시 하고 뒤늦게 들어오는 것이 예의였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작님.”

비서가 예의 바르게 안내를 마쳤다.

샤로트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시녀들과는 인사법이 조금 달라 보였다.

‘하여튼 별의별 걸 다 짬뽕시켜 가지고는.’

리안은 이 게임을 하던 초반에 혼란함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후반부도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사람의 생각과 취향은 다양하구나. 정도로 적당히 타협을 봤다.

끼리릭.

적당히 긴 탁자의 의자 하나를 빼서 기다리고 있으니 카트 하나가 들어왔다.

음식을 운반할 떼는 용도로 보였다.

“의외네.”

공왕의 성격상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줄 알았더니 진짜로 식사를 먼저 할 줄이야.

덮개가 있는 접시들이 탁자 위에 하나둘 놓였다.

‘음식 냄새는 안 나는데…….’

조금 이상했긴 했지만 생 고함을 많이 쳤더니 슬슬 시장하려는 참이었다.

노래 몇 곡을 열창한 느낌이었다.

“공왕 전하 입장하십니다.”

접시가 다 올려질 때쯤 공왕이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들어왔다.

드르륵.

리안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공왕이 바로 만류를 하며 앉으라 지시했다.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상석이 아닌 리안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래. 방금 전에 백작위를 가지겠다고 선언했었지?”

“처음부터 제게 주어진 권리였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도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을 뿐이지만요.”

빠르게 정리를 하고 아일리 섬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 그래. 그럼 이것들을 봐 주겠는가?”

짝!

공왕이 손뼉을 치자 비서들이 일제히 접시의 덮개를 치웠다.

거의 한 동작처럼 이루어진 걸 보니 이런 일이 의외로 자주 있는 모양이다.

“음?”

그런데, 리안은 접시에 담긴 내용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것이 음식이 담겨 있지 않아서였다.

뭐. 염소라면 진수성찬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가지각색의 서류들이 접시마다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으니.

“이걸 보고 있으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가?”

“이게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군.”

리안이 살짝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걸 본 공왕은 의기양양해했다.

‘이건 예상 못 했나 보네. 영악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하하.’

역시 10년 동안 공왕으로 군림한 짬이 어디 가지 않는 모양.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보상을 이제야 받는 모양이다.

“체납된 세금 내역일세. 백작위를 계승했으니 검토를 해 줬으면 한다네.”

사실 주군입네. 봉신입네. 충성이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둘의 관계는 단순히 계약이었다.

다만, 처음에는 단순했던 계약이 몇 대를 계승하며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멍청한 자식. 흐흐흐.’

물론 리안은 공왕이 이리 나올 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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