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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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거울을 보고 있었다.
거울 속 소녀는 눈물을 도르르 흘리고 있었는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른이 되면 예뻐질 거라고 아바마마가 말했어!”
긴 오이처럼 생긴 얼굴이 언젠간 예쁜 사과가 될 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궁전의 일정 지역 이상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괴… 괴물!!!
몰래 궁전을 빠져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맞닥뜨린 한 소년이 그녀를 보고 놀라 소란을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소문이 크게 퍼지는 것은 막았지만, 호사가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언젠가는 백마 탄 왕자님이……!”
사실 그녀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벨 왕국의 국왕이었고. 가문은 율 대륙 최고라 불리는 하브스.
지금 이 순간에도 율 대륙 곳곳의 유력한 귀족 가문에서의 매파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공주님.”
“보련. 아바마마의 말이 사실일까? 정말 어른이 되면 나도 예뻐질 수 있을까?”
사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인 펠리 국왕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야 하나요?”
그녀의 전속 시녀인 보련은 고개를 숙여 공주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하브스 가문의 유전병은 어른이 될수록 더 심해져요. 공주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당장 국왕 폐하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신센롬 제국의 테레지아 고모님은 아름다우신걸.”
“그분은 어렸을 때도 아름다우셨답니다. 자, 여기 보세요.”
시녀는 품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여 줬다.
“신센롬 제국의 여제님이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이에요. 화가가 그린 왜곡된 그림이 아니라. 웬만한 서점에 가면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럴 리가…….”
“넘겨 보세요. 한 장, 한 장.”
공주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첩을 넘겨 보았다.
놀랍게도 마지막 장에는 그녀도 잘 아는 신센롬 제국의 여제의 사진이 있었다.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그녀의 사진임을 증명해 줬다.
“아아… 흑흑. 아바마마가. 아바마마가 날 속였어.”
“공주님이 상심하면 안 되니까요. 공주님의 가치는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랍니다.”
“흑흑… 보련… 날 위로해 주는 거야?”
“네. 당연하죠. 공주님은 소중한 분이에요. 지금도 공주님과 결혼하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어요.”
그 말에 공주가 눈물을 흘리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정말?”
“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해요. 물론 그 남자들은 공주님을 사랑하지 않겠지만요. 평생 공주님과 결혼한 것을 원망하고 저주할 거예요.”
“그럴 거면 왜 나와 결혼을 하려는 거지?!”
“그건 그들의 의사가 아니에요. 그들의 가문. 그들의 부모가 바라는 것이지요.”
그 말에 공주는 적지 않게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말을 내뱉지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총명했고 시녀가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그럴 리 없어!!”
“공주님은 다 알고 계셨잖아요. 이제 꿈에서 깨어나셔야 해요.”
그렇다.
공주도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얼굴은 점점 더 오이, 아니 가지처럼 길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아… 혼자 있고 싶어. 보련.”
“부디 마음을 다잡으세요. 공주님.”
시녀는 조용히 문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얼굴은 뒤틀린 채 웃고 있었다.
“감히. 내! 내 사랑을 방해한 탓이야!”
사실 그녀는 예전에 혼약자가 있었지만, 파토가 났다.
바로 공주가 태어나면서였다.
자신과 혼약을 약속한 남자의 가문은 공주와의 결혼으로 노선을 바꿨다.
“다 네 잘못이야. 못생긴 게.”
복수를 위해 궁전으로 들어와 시녀가 되었다.
백작가의 딸이라 시녀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국왕이 직접 해협의 사태를 진정시키러 친정을 하게 되었다.
기회였다.
끼리릭!
방 안에서 끈이 나무에 매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주가 목이라도 매어 자살을 해 줬으면 좋을 텐데… 란 생각을 했다.
“나만 없어지면 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공주였기에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으로 인해 미래의 남편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없어지기를 마음먹었다.
그녀는 침대보로 밧줄을 만들고 그동안 모아온 용돈을 품에 넣고 가출을 결심했다.
‘신대륙으로 갈 거야. 거기서 홀로 조용히 살면 돼.’
짧은 편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바마마. 불효자를 찾지 마세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떠나요.
사실 이 편지를 남긴 것도 나름 그녀의 지혜가 담긴 것이었다.
혹시라도 잡히면 결혼을 자신의 의사대로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가출까지 했으니 나중에 협박은 충분히 먹힐 것이다.
* * *
고잉미샤호는 이벨 왕국의 수도이자 거대 항구 뉴마더리드에 도착했다.
완만하게 경사로에는 건물들이 길게 지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보였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리안아. 정말 후회할 수도 있다니까.”
웬일로 리안의 새어머니는 잔소리를 시전했다.
노예 각인 때문인지 진심으로 리안을 걱정하는 눈치.
“걱정 안 해도 되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공주와 결혼하면 첩은 생각도 할 수 없어.”
“흠…….”
남자로서 합법적으로… 하렘을…….
그러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평범한 귀족이라면 그렇겠지.’
백작부터는 일부다처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사실 이것에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대에는 균등 분할 상속제란 법이 있었는데, 유산을 형제들이 균등하게 갈라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거대한 세력을 가진 가문도 여러 개로 쪼개지며 세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지만, 일부다처제는 남아 있었다.
“평범한 백작으로 남는다면 왕실의 권위로 그러겠죠.”
“아…….”
리안의 의지를 엿본 백작 부인은 자신이 괜한 조언을 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평범한 백작 그게 아니더라도 해당 국가의 공작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다른 국가의 공작이나 그 이상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어쨌든 조언 감사해요. 여기를 떠나면 제 영지로 갈 것이니 준비해 두세요.”
“그래서 말인데… 리안아.”
“걱정 마세요. 명분을 포기하면 해칠 생각이 없으니. 오히려 인력난이 심하니 개똥도 없어서 못 쓰는 중이에요.”
정복하는 땅들이 서로 붙어 있다면 형제 따위가 왜 필요할까.
물론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허수아비 형제가 필요하겠지만, 지금 리안의 경우는 달랐다.
율 대륙 북서쪽 구석에 있는 리안의 본 영지인 레온 백작령.
이벨 국왕에게 받은 신대륙의 땅.
새롭게 얻어야 할 잉글슨 왕국의 식민지인 아일리 섬의 일부 땅들.
“그… 그렇지? 내가 잘 교육시키마. 절대로 너에게 대들지 못하게.”
“그래 주시면 감사하고요.”
리안은 그리 말하고는 고잉미샤호에서 내렸다.
그 즉시 부선장과 샤로트가 리안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들의 눈은 이글거렸는데, 리안의 안전 때문이었다.
“그보다 꼬맹이. 정말 신대륙에 땅을 받은 거야?!”
“에헴. 이제 어디 가서 진짜 백작이라고 불러도 돼요. 흐흐.”
“거참. 내 살다 살다 신대륙으로 가게 될 줄이야.”
투다다다닷!
그때 어떤 귀족가의 소녀가 리안에게 부딪힐 정도로 달려왔다.
당연히 부선장의 손에 뒷덜미가 잡혔다.
“이… 이거 놔요!!”
소녀는 공중에서 발악을 하며 온몸을 흔들었고 이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이 떨어졌다.
들어난 얼굴은 사람 몸통에 가지 하나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피부는 오이를 닮았다.
“내려 주세요. 부선장님.”
“뭐. 선장의 명령이라면.”
정중해진 리안의 말투에 정중하게 받아치는 부선장.
눈치가 빨랐던 것이다.
리안이 저리 행동했을 때는 사기꾼으로 빙의할 때였으니.
“레이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지요. 제 부하가 무례하게 군 것을 사과드립니다.”
리안의 말에 부선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과해도 너무 과했다.
더군다나 상대 소녀는 추녀 중의 추녀.
“괘… 괜찮아요.”
소녀가 얼굴을 붉혔다.
그럴 것이 리안은 동화책에 나올 법한 어린 왕자님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침대 머리맡에서 말씀해 주시던 그런 백마 탄 왕자님 말이다.
거기다 험상궂은 부하를 다루는 배의 선장이란다.
“저저… 저기. 부탁이 있어요.”
“아리따운 레이디의 부탁이라면 들어 볼 가치가 있겠네요.”
“커헙! 아… 아리따운…….”
소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그래서 무슨 부탁이죠? 레이디?”
“그… 그게… 신대륙. 신대륙에 가고 싶어요. 이야기 들었어요. 신대륙으로 가신다고…….”
부선장의 목청이 커서 그걸 들었나 보다.
물론 리안은 속으로.
‘아오. 이 철부지 아가씨 가출한 모양이네. 그 신대륙의 땅은 네 아버지에게 받은 거란다.’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웃는 얼굴을 보였다.
“하하하. 뱃삯은 있으신지요?”
“흠… 흠… 그게…….”
당황하는 소녀.
아마도 돈이 없는 모양이다.
분명 궁전을 나올 때까지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고급 옷을 입고선 호위도 없이 나왔으니 소매치기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어… 어떻게 해요. 흑흑…….”
결국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고 울었다.
“바닥이 더럽답니다. 레이디. 어서 일어나세요.”
리안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줬다.
소녀는 울먹이면서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볼까요?”
리안은 그녀를 위해 다시 고잉미샤호에 올랐다.
물론 귓속말로 부선장에게 말했다.
-국왕 폐하께는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전해 주세요.
배에 올라탄 그녀는 신기한지 두리번거렸다.
이보다 훨씬 큰 1급 전열함에도 타 보았지만, 철갑선은 처음인 것이었다.
“신기해요. 이런 배는… 철로 된 것인데 바다에 뜨나요?”
“지금도 바다 위에 있는걸요.”
리안이 웃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 줬다.
친절한 행동에 소녀는 잠시나마 행복해 보였다.
“선장님. 준비를 명하신 디저트입니다.”
“고마워요. 요리장님.”
리안은 곧장 조리실에 연락해 디저트를 준비시켰다.
겉은 탄 것처럼 검지만, 먹어보면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고 달달한 음식이었다.
“왜 안 드세요?”
“그게… 좀…….”
손이 안 가는 것은 당연했다.
비주얼이 워낙 괴팍해서였다.
“어렵게 요리장님이 준비한 것인데… 버려야겠네요.”
리안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아… 아니에요!! 먹을게요.”
공주는 궁전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허기가 진 상태였다.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배가 고픈 것도 사실.
바삭!
그녀는 이내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물었고.
“와아!! 엄청 맛있어요!”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궁전에서는 외형 관리를 위해 식단을 관리받았을 테니.
저런 설탕 폭탄이 투여된 듯한 불량식품 같은 디저트는 먹어보지 못했을 거다.
“그럼 제 것도 드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어릴 때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미각 세포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리안은 어린 몸에 빙의했지만, 어른일 때의 기억 때문인지 너무 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고 해야 할까.
속이 느글거린다.
나중에 조리장에게 국밥이나 한 그릇 말아 달라 해야 하나라고 생각 중이었다.
“네. 얼마든지요.”
리안은 국밥처럼 따뜻하게 그녀를 대해 줬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아아. 고마워요.”
“그런데 왜 신대륙으로 가려는 건가요? 혹시 친인척이라도 그곳에 계신 걸까요?”
“아니에요… 사실은…….”
소녀는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만 빼놓고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리안은 그녀의 말에 인상을 살짝 쓰며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시녀가 흑막이네…….”
“네에?!”
“시녀가 너무했다고요. 그런 못된 여자의 말을 너무 귀담아듣지 마세요.”
“아니에요. 저도 제가 못생긴 걸 아는걸요.”
리안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떤 존재든 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속의 알맹이랍니다. 방금 먹은 디저트처럼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그리고 레이디는 크면 예뻐질 상이네요. 지금도 예쁘세요. 레이디.”
리안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눈, 코, 입을 떼어 놓고 보면 확실히 미인형이다.
문제는 저 이질적인 얼굴형이지만.
“정말… 정말 그리 생각하세요?”
“네. 제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랍니다.”
리안의 말에 눈물이 맺히려는 소녀.
그때.
찰캉찰캉!!
누군가 다급히 고잉미샤호에 올라왔다.
“레온 백작님 계십니까?!!”
“무슨 일이오.”
부선장이 나서서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궁에 일이 생겨 승전파티가 조금 미뤄질 것 같습니다.”
“거참. 우리 백작님이 좀 바쁜 몸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요.”
“그게… 말씀을 드리기… 엇?!! 공주마마!!!”
리안을 찾아온 황실 근위기사가 공주를 알아본 것이었다.
공주는 몸을 축 늘어뜨리더니 리안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닌데…….”
“공주님을 뵙습니다. 다시 소개를 드립니다.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사정은 이미 들었으니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니 심려치 마십시오. 공주님.”
리안이 정중하게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백작님.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바마마께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기꺼이요. 신대륙보다는 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