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86화 (86/253)

86화

##086

다행히 이벨 왕국의 해군이 움직여 줬다.

아마 똥 밟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벨 왕국은 신센롬 제국과 마찬가지로 하브스 가문이 통치했다.

그리고 두 국가는 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했고.

‘생각보다 더 소극적이네.’

스토리상 이전 시대의 해양 패권 국가는 이벨 왕국이었다.

그런데, 잉글슨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세력이 많이 줄어든 것.

별 이득도 없고 함선의 손실만 있는 오스 제국과의 전투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흐흐.’

그들은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천천히 압박하듯 움직였다.

오스 제국의 해군이 물러나길 기대하는 듯 보였다.

그럴 것이 이벨 왕국의 함대는 포격 위주였기에 거리 유지가 중요했다.

“뭐야. 왜 저쪽으로 가는 거지?!”

마음을 졸이며 함대를 전진시키던 이벨 왕국의 국왕 펠리 하브스는 고잉미샤호의 방향을 보며 기겁을 했다.

그럴 것이 적진 중심으로 나아가던 고잉미샤호가 적의 후측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퍼버버벙! 펑!! 펑!! 펑!! 펑!!

깔짝깔짝 포격을 하기 시작했다.

국왕의 입장에선 환장하고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미친. 저자는 정녕 미친 것인가?! 저런 자가 어찌 살아남아서 명예 성기사가 된 것이지? 저건 용맹이 아니라 만용이다.”

배에 걸린 깃발은 틀림없는 진품이었다.

마나, 오러, 신성력을 다루는 자들이 눈에 힘을 집중하면 풍기는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깃발에는 태양신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저것은 일 년에 한 번 유지 보수를 위해 주교급 사제가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기운이 진하다. 교황청에서 직접 발급한 거야.’

그 말은 깃발을 지급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설마!! 함정인가?”

펠리 국왕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명예 성기사의 깃발을 구해 온 것은 아닌가 하고.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세 척이나 희생되었습니다. 저들은 해적이라 저런 무모한 짓을 했다가 이탈자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하긴. 저놈들은 말이 해군이지. 속은 해적이니까.”

정확히는 해군과 해적 사이쯤이 될 것이다.

“전하. 그보다 편대라도 때어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모하다. 소수로 떨어뜨려 놓으면 돌파당할 것이다.”

분명 이벨 왕국의 전력이 더 강하긴 했다.

단, 여기에는 필수 조건이 붙는데, 바로 진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뭉쳐야 한다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는 순간 속력이 빠른 갤리선들이다.

승무원의 숫자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아차 하는 순간에 백병전이 벌어질 것이고. 포격을 못 하는 순간 백병전이 모든 함대로 퍼질 것이다.

* * *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당장에 꼬라박을 것 같이 행동하더니…….

고잉미샤호는 얄미운 하이에나처럼 오스 제국의 함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저놈들 뭐 하는 거야?!”

오스 제국의 제독인 누나헬은 분통을 터뜨렸다.

“당장!! 저놈들을……!”

“제독. 참으십시오. 역동작에 걸립니다!”

이벨 왕국의 진형에 맞춰 천천히 후진하는 오스 제국이었다.

정면으로 돌파했다가는 일제 사격에 다수의 함선이 파괴될 것이다.

기회를 봐서 돌파를 한 뒤 백병전을 걸어야 하는 것이 오스 제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고잉미샤호가 그걸 옆에서 계속 깔짝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열불이 날 수밖에.

펑! 펑! 펑!

간헐적이고 지속적이게 계속 사격을 가해 왔다.

딱 갤버포 사거리.

“더 이상 못 참겠다. 몇 척이라도 보내!”

“제독. 아시다시피 여기서 몇 척이라도 움직이면 측면이 느려져서 진형이 무너집니다.”

옆으로 나란히 여러 명이 회전하듯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자.

거기서 안쪽은 조금만 움직이면 되지만, 바깥쪽에 위치한 사람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오스 제국은 뒤로 물러나고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본다면 회전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고잉미샤호가 깝쭉거리고 있는 곳은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었고. 그곳에서 병력을 빼기 위해 덜어내면 역동작이 걸려서 잠깐 정체 현상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삐걱댈 것이고. 이벨 왕국을 향해 최적으로 돌격할 수 있는 진형도 무너진다.

“젠장! 전방에서 빼서 보내!”

“그러면 열 척을 넘게 보내야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

후방에 외각으로 병력을 보내야 하는데, 그 근처가 아닌 전방의 병력을 빼서 빙빙 둘러 보내야 했다.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 * *

리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느긋하게 조타구를 돌려 댔다.

솔직히 리안에게 오스 제국의 진형은 소꿉놀이처럼 보였다.

그들의 배가 가지는 전술적 한계 때문이다.

퍼버버벙!!! 펑!!

전방 쪽에서 교전 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전방에서 병력을 빼다가 이벨 왕국 군함에게 두들겨 맞은 모양이에요. 흐흐흐.”

이벨 왕국과 오스 제국 양측은 절묘하게 거리를 맞추며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두 해군 모두 속으로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황.

만약 리안이 아니었다면, 이 짓거리를 좀 하다가 서로 물러났겠지만…….

[선장님! 전방 쪽에서 여덟 척의 적함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태를 봐선… 교전한 흔적이 있습니다.]

“교전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거야. 보낸 숫자는 대충 열 척이었나 보네.”

전방의 갤리선들이 움직이는 걸 본 이벨 왕국은 놀라서 포격을 했을 거다.

당연히 이벨 측도 이번 포격으로 진형이 조금 흐트러졌을 거다.

포격을 하려면 배의 방향을 측면으로 틀어야 하니까.

“맞네.”

오스 제국의 진형도 갈팡질팡 미묘하게 찌그러졌다.

이벨 왕국의 진형 변화에 연쇄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흐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건데.”

“꼬맹이. 열 척은 좀 많은 거 아니야?”

“네. 많죠. 헤헤.”

그리 말하고는 냅다 고잉미샤호의 방향을 틀었다.

[선장님. 적함 쫓아옵니다.]

“보고 있어.”

레이더에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는 적선들이 보였다.

파수병의 목소리가 다급해 보였지만, 리안은 전혀 초조해하지 않았다.

“젠장! 좁혀지고 있어. 따라잡히는 거 아니야?”

“호들갑 떨 필요 없어요. 하이브리드가 좋아 보여도 무조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니까.”

“하이브리드?”

“잡종이란 뜻이죠.”

갤리선도 주 동력원은 부유석이다.

당연히 부유석에 몰빵을 한 일반 함선들보다 출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저 노는 누가 저을까요?”

“아!!”

기계와 달리 사람은 지친다.

저들이 항상 노를 젓지 않는 이유다.

“따라 잡힐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고잉미샤호와 여덟 척의 편대는 오스 제국의 함대를 중심으로 술래잡기를 했다.

리안의 예측대로 거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따라잡혔다가 다시 처졌다.

샤아아아~!!

결국에는 거의 반 바퀴를 돌 때까지 거리는 유지되었다.

아니. 아주 미묘하게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포병실은 한 발만 쏴 줘요.”

[우리 귀염둥이 선장. 여기선 안 맞아.]

“축포로 쏴 줘요. 연기 나는 걸로. 이왕이면 핑크색이 좋겠네요.”

[으하하하!! 이런 애교쟁이 같으니라고!]

마포장은 리안이 무슨 의도로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펑!!

포가 쏘여진 방향은 오스 제국의 대장선이 있는 방향이었다.

파박!

포탄은 날아가다 말고 연기를 뿜으며 터졌는데, 그 연기의 색상은 리안의 요청대로 분홍색이었다.

* * *

그걸 본 오스 제국의 제독 누나헬은 길이길이 화를 냈다.

잔뜩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저, 저… 감히! 나를……!”

“고정하십시오. 제독. 여기서 넘어가면 큰일 납니다. 백 척이 넘는 함대의 생사가 걸린 일입니다!”

누나헬은 말단 해적 단원부터 선장 그리고 제독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당연히 용맹함은 밑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후… 알겠다.”

또 당연히 참을성 또한 탑재했다.

저런 도발에 쉽게 넘어가는 인물이었다면, 이 자리에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이를 지켜보던 이벨 왕국의 국왕은.

“하하하! 속이 다 시원해지는구나. 영웅이야. 영웅이다. 역시 아무나 명예 성기사가 되는 건 아니구나.”

박수까지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다만, 의구심이 드는 것이.

“그런데, 저런 대단한 선장이 있단 소리는 듣지 못 했는데…….”

“짚이는 인물이 있기는 합니다.”

“음?”

국왕의 보좌관이 국왕에게 고했다.

“리안 레온 백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최근에 사촌 누님의 사위가 되었다는 그?”

“해적 깃발과 신센롬 제국의 깃발을 동시에 사용하는 걸 봐선 그렇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가 타는 배 역시 철갑선이니…….”

“그렇군. 합리적인 생각이다. 다만, 그가 명예 성기사라고 들은 적은 없는데…….”

이번 작전으로 바다에서 오래 있다 보니 소식을 접하지 못한 국왕이었다.

“그리고 성전에 참여해야 명예 성기사에 서임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레온 백작의 나이가……?”

“조금 많이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저 배는 여러모로 수상쩍었다.

“통신을 연결해 봐.”

“아까부터 시도를 했는데, 거절되고 있습니다. 어딘가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 *

고잉미샤호는 이벨 왕국에 합류하지 않고 두 함대 사이를 지나갔다.

그렇다고 얌전히 지나가나?

“아껴 가며 야무지게 쏘세요~!”

[맡겨 달라고. 우리도 이제 요령이 생겼어!]

일방적으로 두들기기만 하니 포병장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사격 연습을 야무지게 하는 중이다.

펑! 펑! 펑!!!

이번에도 역시나 갤버포의 사거리 내에서만 움직였다.

열이 받은 상대측도 세네 척이 응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팅팅~!

고잉미샤호의 외판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사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목재선에서 철갑선으로 트랜드가 바뀔 것이고. 철판을 뚫기 위해 작은 포 여러 개 대신 커다란 포를 갑판에 배치하는 드레드노트식으로 양상이 바뀐다.

그러다 종국에는 거함 거포의 시대로 도래한다.

“자. 언제까지 참나 볼까나.”

리안은 이점을 활용해 악랄하게도 방금 전 했던 짓을 다시 반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연히 이걸 눈치챈 오스 제국 측은 리안이 정면을 지나갈 때 몇 척을 떼어 내어 붙였다.

퍼버버벙!

물론 이벨 측도 그걸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붙는 오스 제국의 함선들을 향해 엄호 사격을 해 줬고.

“굳잡!!”

리안은 그걸 보며 따봉을 날려 줬다.

물론 이벨 왕국 측에선 그걸 보진 못하겠지만.

“꼬맹이. 이번은 가까워!”

“괜찮아요. 페이크니까.”

양쪽 함대가 마주 보는 그 중간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S 자로 꺾어 버리는 고잉미샤호.

“잘가시고~!”

선회는 당연히 노가 달린 갤리선이 더 높지만, 다시 쫓을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은 이벨 왕국의 포화를 견디며 쫓아온 상태였기 때문.

“반대로 갑니다요~”

리안은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 외각에서 다시 깔짝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그쪽 방면은 아까 전 쫓아오던 여덟 척이 있어야 했지만, 이미 후방으로 이동한 후였다.

오스 제국 측은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점점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미 진형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 * *

누나헬 제독은 드디어 폭발하고야 말았다.

“세바리양. 지휘를 맡아라! 저것들을 가만히 둬서는 안 되겠다.”

“직접 가시면 위험합니다.”

“흥! 내가 누구더냐.”

“대 오스 제국 1함대의 제독…….”

“아니! 내가 누구더냐. 다시 말해 보거라.”

그 말에 누나헬의 최측근 세바리양은 몸을 곧게 세우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중해의 패자이신 해적 여왕 누나헬이십니다.”

“그래. 저놈들에게도 똑똑히 가르쳐 주고 오마!”

그 와중에도 간헐적으로 마포 소리가 들렸다.

펑~ 펑~ 펑~

이제는 아주 대놓고 제자리에서 마포를 쏘아 대고 있었다.

“다녀오십시오. 여왕이시여.”

그녀는 그대로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

백 척이 넘는 배들이 좁은 간격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상황.

휘이이익!!

그녀는 순식간에 배와 배를 밟으며 고잉미샤호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배와 배가 아무리 가까이에 있다지만, 웬만한 대전사도 연속해서 넘나들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

다만, 그녀는 웬만한 대전사가 아니라 소드 마스터였다.

화르르르~!

이내 가장 끝에 있는 함선에 다다르자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드를 바다로 던졌다.

“감히 나를 농락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