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078
딴딴딴~! 딴따라~ 딴딴따라라~!
잔잔한 에메랄드 바다에 노랫소리가 퍼졌다.
그 노랫소리는 잔잔한 물에 비치는 굴곡을 타고 사방으로 요란하게 퍼져 나갔다.
[아아 평화로운~ 광란이시여~ 이 바다에 축북을~]
흐리아 민의 요상한 노랫소리는 멀리멀리 퍼졌다.
고요한 바다라서 그럴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노래란 생각이 든다.
서늘하면서도 중독되는 듯한.
“이교도의 땅이라서 그런가? 환청이 들리는군.”
추기경은 찻잔을 들고 선수로 걸어갔다.
이미 며칠째 바다 위에서 머무르는 줄 모르겠다.
그는 딱히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고잉미샤호는 튀니스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기경!! 바다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형제들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측근이 달려와 소리쳤다.
그 순간 추기경은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환청 마법인가? 대응은?”
최대한 은밀히 이곳에 머물렀는데, 이교도들이 어쩌면 자신들을 눈치챈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나와 있는 환청 마법은 대응책들이 있었다.
만약 효과가 좋은 환청 마법이 있었다면, 그 마법을 개발한 국가가 대륙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천상의 목소리라며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형제들의 신앙심에 변화가 있던가?”
“아닙니다. 이교도가 아닌 쥬 님의 노랫소리로 착각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추기경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안심했다.
“하긴. 이미 환청 마법은 사장된 지가 오래이니까. 파훼가 안 되는 대신 작은 동요 정도만 일으키겠지. 우리 부대는 정신 무장이 잘된 정예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그 기전부터가 모두 파훼되었다.
환청 마법과 파훼법은 병과 약처럼 서로 물고 얽혀 최근까지 이어졌고 환상 마법은 대부분 몰락했다.
이제는 연극이나 서커스에서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항마 기도를 올리도록.”
“알겠습니다. 추기경님.”
부관이 물러나고 추기경은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뭔가 속에서 끓어 오르게 하는 것이 완전히 무해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그보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가사들이 낯이 익었다.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다가…….
“설마! 전쟁의 신?!”
* * *
고잉미샤호에서는 연주가 계속되었다.
흐리아 민이 쉴 동안에는 미리 녹음이 된 음악을 틀었다.
“흐리아 민은 훌륭한 신도예요! 정말 훌륭합니다.”
“전쟁의 신 탱글 님의 말씀은 제 영감과 일치하는걸요.”
전쟁의 신 주교 세이나와 흐리아 민의 대화였다.
흐리아 민은 배에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의 신에 매료되었다.
샤아아아!
고잉미샤호는 음악 소리와 함께 교황청의 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파수대에선 정체불명의 소규모 함대가 발견되었음을 알려왔다.
“흐리아 민.”
“네. 백작 각하!”
“가장 신나는 걸로 한 곡 뽑아 줘.”
“알겠어요!”
그녀는 마법진이 한가득 세겨져 있는 하프를 들었다.
그것은 선교의 통신구와 연결이 된 상태였다.
[스스로 물러나 의지에 짓눌려~! 태양 빛은 그림자를 장식하지!]
그녀는 빠르고 거칠게 하프를 뜯었다.
그러다가 하프의 옆부분을 긁으니 드럼과 비슷한 소리도 났다.
혼자서 밴드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퉁~ 퉁~
그녀의 장엄한 연주에 동요한 걸까?
정체불명의 함대는 빠르게 고잉미샤호를 향해 접근했다.
“이제 반대로~”
리안은 거리를 유지한 채 동쪽으로 향했다.
아주 조금씩 따라잡혀 주고 있었는데, 사실 고잉미샤호는 철갑선이지만 쾌속함이다.
언제든 원한다면 저들을 떨쳐 낼 수 있었다.
Trrrr~
파수대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동쪽에서 대규모 함대가 목격된 것이다.
[이교도들의 배입니다. 선장! 엄청난 숫자예요!]
잔뜩 기가 죽은 파수병의 목소리.
리안은 웃으며 이번에는 북쪽으로 키를 잡았다.
-잡아라! 목걸이를 되찾아야 한다.
-전쟁 신의 마지막 주교가 타고 있다. 쫓아라!
다만, 고잉미샤호를 쫓는 두 무리는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황 함대 – 고잉미샤호 – 오스 제국 해군.
한쪽에선 겨우 고잉미샤호가 보일 정도이니.
그 너머에 있는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 세 그룹은 ‘^’ 모양새가 되었고.
양쪽 날개에 위치한 교황청 함대와 오스 제국의 함대가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다고. 흐흐.”
리안은 전방에 레이더로 잡히는 또 다른 거대 함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밀라노정에게 부탁한 베넷 조합의 함대였기 때문.
“포트 삼촌. 통신 연결 부탁해요.”
“음?! 알았어.”
곧장 베넷 조합 쪽을 향해 통신 마법을 쐈고. 상대는 그것에 응해 줬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훈련을 요청한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특이한 모양의 함선은 미리 들었던 것과 비슷하군요. 백작 각하.]
“그보다 정체불명의 해적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음?! 여기는 저희가 관리하는 깨끗한 바다입니다.]
“그 깨끗한 바다에 불순물이 조금 섞였으니 걸러 주시죠.”
[우리 베넷 조합의 명예를 걸고 그리해 드리겠습니다. 백작 각하!]
베넷 조합은 상인 연합이기에 전투를 즐기지 않는다.
싸워 봐야 비용만 발생하니 그럴 수밖에.
다만, 그들도 해적에 관해서는 냉정했는데.
바다가 안정이 되어야 상인인 그들이 활개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 * *
교황청 함대 쪽은 갑자기 난리가 났다.
동쪽에서는 이교도들의 대규모 함대가 나타났기 때문.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배교다. 명백한 배교 행위야! 그놈들이 불러들인 거야!”
“어떻게 합니까?! 추기경님.”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북쪽에도 새로운 함대가 등장했다.
“저건?!”
“베넷 조합입니다. 신께서 도우셨습니다.”
사실 베넷 조합은 오스 제국과 친밀한 편이다.
서로에게 이익을 주니 전투를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곳은 명백한 율 대륙의 영역.
베넷 조합의 경우 상인 집단이지만, 이곳에서는 해적과 이교도들과 싸워야 했다.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었고. 율 대륙의 국가와 교황청에서도 그 대가로 무역 허가 및 이교도들과의 상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이교도들을 모른 체한다면?
그들은 율 대륙의 국가들에게 이단으로 찍혀 축출당할 것이다.
“교황청의 깃발을 올려라!”
“알겠습니다.”
정체불명의 함대인 교황청이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자 이번에는 오스 제국의 함대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저놈들이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오스제국이 볼때 이곳은 온전히 율 대륙의 영향권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베넷 조합의 군함들만 간간이 보이는 지역이다.
마치 DMZ와 같은 완충지라고 할까.
물론 자신들도 대규모 함대를 끌고 이곳까지 온 것은 선을 넘은 거지만, 상대도 10척이나 되는 함선을 끌고 이곳에 와 있었다.
“젠장! 전투 준비. 그나마 적들의 숫자가 적어서 다행이지.”
“제독! 북쪽에 베넷 조합의 배들이 다수 보입니다.”
“뭐?!”
“어떻게 합니까?”
원래라면 베넷 조합은 우호적이지만, 이곳 바다가 애매한 위치다.
평소라면 사과를 하고 배를 돌리면 되겠지만, 서쪽에서 교황청의 함대가 등장했다.
여기서 등을 돌린다면, 도망친 꼴이 되어 국가의 위신을 해쳤다는 이유로 경질될지도 모른다.
그때.
펑!! 펑!!!
북쪽에서 마포가 발사되었다.
도주하던 고잉미샤호였다.
물론 포탄은 절반도 오지 못하고 바다에 빠졌지만, 이것은 명백한 위협 사격.
돌아가지 않으면 전투가 있을 거라는 뜻이겠지만, 오히려 더더욱 물러나지 못하게 되었다.
“젠장! 싸운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전투가 벌어져도 베넷 조합과의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제독!”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개의 함대가 충돌했다.
퍼버버버벙!! 펑!!
리안은 유유히 그들을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그… 그냥 가도 되는 거야?”
마법사 포트가 물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싸워요. 우린 그냥 선량한 외교선이랍니다.”
언제부터 해적이 선량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리안은 조종구를 잡았다.
“꼬맹이. 정말 전투를 하지 않는 거야?”
“다들 술에 절어 있는데 전투를 어떻게 해요.”
“우리는 술을 먹고도 잘 싸운다.”
먹고 자고 싸움질밖에 하지 않는 자들이니 당연할 것이다.
다만, 리안은.
“계속 술이나 먹으며 즐기라고 해요. 술 마시기 참 좋은 날이네.”
그리 말하며 한쪽 선반에 붙어있는 컵의 덮개를 열었다.
하얀 액체가 출렁거렸다.
“캬~ 이 맛이지.”
출항 직전에 짠 신선한 우유였다.
리안은 고잉미샤호에서 가장 키가 작은 만큼 우유를 섭취할 수 있을 때 주기적으로 섭취했다.
“그보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긴 어디에요. 교황청에 들러서 뇌물을 좀 바치고 오려구요.”
“뭐? 제정신이야?”
부선장은 머리가 어질했다.
그럴 것이 고잉미샤호에는 전쟁 신 주교 세이나가 타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함대가 따라붙은 것도 교황청이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지극히 정상이네요. 캬~ 취한다.”
리안은 우유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설마… 녀석들에게 술을 먹인 이유가…….”
“빙고. 맨정신에 교황청에 들어가긴 좀 그렇죠?”
리안이 싱글벙글 웃었다.
며칠 동안 놀고 마시게 하며 선원들의 정신을 완전히 빼놓을 예정이다.
특히나 해병대들에게는 질 좋은 안주들까지 계속 만들어 바치는 중이다.
“맙소사!!”
해적들이라고 막무가내는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미신을 믿으며, 신들을 두려워했다.
항상 죽음과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 것이다.
거기다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곳.
자연스럽게 미신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청과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없어요. 탑에 갇힌 세이나 주교의 동생만 구출할 생각이니.”
“후… 미치겠군.”
“강제로 명령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참여하지 않으면 배에서 내리게 할 생각이에요.”
리안은 강하게 말했다.
“선원들에게 선택하라고 하세요. 나를 따를 것인지 신을 따를 것인지.”
“젠장. 이 배에선 꼬맹이 네가 신이군.”
아마 술기운에 고민도 하지 않고 리안을 따를 확률이 110%다.
* * *
한편 교황청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7척의 이교도 함선을 타고 도주한 난민들.
당연히 중간에 그들을 막는 소수의 함선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이교도들에게 탈출한 사람들이란 걸 알고는 교황청까지 에스코트까지 해 줬다.
지금 교황청의 앞에 흐르는 ‘Y’ 자 모양의 강에는 20척이 넘는 함선들이 정박하고 있었고 항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다 쪽으로 두 갈래로 나뉘어 흘렀는데, 가운데 벌어지는 부분에 항구가 있었다.
“성하. 지금 항구에선 성하와 레온 백작을 연호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라고 합니다.”
“그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던가?”
“레온 백작이 성하의 이름으로 튀니스를 함락했다고 합니다. 그곳에 있던 노예들이 배를 타고 탈출을…….”
“아니. 우리 함대는 뭘 하고?”
“모르겠습니다. 아직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골치가 아팠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 겉으로는 교황청의 신실한 종으로서 공을 세운것이다.
이제 적대하기도 곤란했다.
리안을 쳐내려고 하면 사람들의 입에선 토사구팽이 나올 것이다.
“명예 성기사라는 작위라도 내리셔야…….”
“곤란하군. 곤란해…….”
그러던 중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누군가 들어왔다.
“성하. 지금 베넷 조합과 이교도들 사이에 대규모 해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원래 뒤로는 친한 사이지 않은가.”
“그것이 그 사이에 우리 교황청 함대가…….”
교황은 머리가 어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아… 쥬 님이시여…….”
베넷 조합이 이교도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그러나 많은 수익을 교황청에 바치고 있었다.
만약 베넷 조합이 손해를 입으면 교황청의 수칙도 타격을 받는다.
“당장 중재를…….”
성하!!!
그때 또 다른 사람이 집무실로 난입했다.
“또 무슨 일인가?”
“오스 제국에서 성물을 돌려달라는 연락이…….”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교황청은 성전을 벌이길 바랐으나 이런 식은 아니다.
시비를 교황청이 먼저 건 것을 알면, 율 대륙의 국가들은 모두 한 발을 뺄지도 모른다.
참여하는 국가가 있더라도 예전처럼 열성적이지는 않을 거다.
그리되면 교황청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게 될 수밖에.
“성하!!!”
“아니. 또 무슨…….”
또다른 사람이 급히 집무실로 들어왔다.
교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레온 백작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