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068
리안이 승낙하자 이번엔 샤로트의 차례였다.
호위대장인 앤시드가 기진맥진한 리안에게 재차 물었다.
“백작 각하께선 대단했습니다만… 저 아이는 여자이고…….”
“여자가 오토호스를 잘 타지 못할 거란 편견은 버리세요.”
“나이도…….”
“저보다 키는 큽니다. 그리고 대전사입니다.”
리안의 말에 앤시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나이에 각성이라니.
각성하는 순간 여자, 남자, 아이, 어른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앤시드의 최종 허락도 떨어졌다.
그러자 샤로트는 기뻐하며 단번에 오토호스에 올라탔다.
“음하하하!! 오토호스~ 오토호스~”
“내… 애마인데… 사… 살살.”
그 모습을 본 앤시드는 기겁을 했지만, 샤로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동을 시켰다.
츠츠츠츠!!
오토호스는 리안이 탔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칠게 날뛰었다.
“우에에에엑!!!”
샤로트의 비명 소리.
아주 지랄발광하는 오토호스는 빠르게 달림과 동시에 사방으로 튀었다.
“재~~~미~~~~써~~~~어어어~~!!!”
마치 성난 황소에 올라탄 투우사 같았다.
워낙 미쳐 날뛰다 보니 기병들도 샤로트를 어찌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위험한 것 같아서 개입하려 하면 또 안정적인 것 같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너무 날뛰었다.
푸아아아아아앙!!!!
오토호스의 엔진이 광음을 내며 평야를 뛰어다녔다.
“내… 애마아아아… 가…….”
그걸 지켜보는 앤시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병에게 오토호스는 생명과도 같은 것.
아마 수도에 도착하면 정비사부터 찾지 싶다.
격한 전장에서도 저런 식으로 오토호스를 몰지는 않을 테니.
투투투투투투~!
샤로트의 광란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도려어어언니이임~!”
오토호스 위에서 묘기까지 부리다가 결국에는.
콰아앙!
구릉 위를 대각선으로 뛰어올랐다가 공중에서 한 바퀴 날았다.
퍼더더덕!!
결국에는 바닥에 처박혔고. 떨어져 나온 샤로트는 땅바닥에 열 바퀴는 넘게 구른 듯 보였다.
아마도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했겠지만, 샤로트는.
화르르르~
이미 전신에 화염 속성의 갑옷이 입혀진 상태였다.
“후아아앙!! 도련니이임.”
그것으로 모자라 벌떡 일어나 리안에게로 달려왔다.
그래도 어디 한 군데는 부러졌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멀쩡해 보였다.
스르르.
그녀는 리안 근처에 와서는 갑옷을 해제시켰다.
여기저기 긁히고 쓸린 상처가 보이는데…….
“호~ 해 주세욧.”
그게 전부였다.
이게 SSR+급의 내구도인가 싶었다.
“군종 사제님께나 가 봐.”
“히이잉~! 세이나 언니이이이~”
리안에게 뺀찌를 먹은 샤로트는 세이나에게 달려가 응석을 부렸다.
평소 무표정한 세이나는 싱긋하며 웃어 보이고는 양호 선생님처럼 자상하게 치료를 해 줬다.
“조심하셔야죠. 우리 배의 보배이신데.”
“제가 보배인가요? 헤헷? 헷?”
리안은 그걸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보다 저쪽이 걱정이었다.
“세리야~~!! 흑흑.”
앤시드는 전우를 잃은 것처럼 땅에 처박혀 있는 오토호스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탈탈탈탈~
아직 온전하게 시동이 꺼지지 않았는지 미세한 진동을 내고 있었다.
리안은 괜히 자신이 미안해졌다.
아마도 따로 위로금을 내어 줘야 할 것 같다.
“배… 백작님. 저는요?”
그때 소심하게 다가와 묻는 흐리아 민.
그녀는 상황이 이리되자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음… 그게…….”
리안이 고개를 주변으로 돌리자 호위대들은 모두 시선을 피했다.
방금 그 꼴을 보고 누가 자신의 애마를 빌려주려 하겠는가.
일단은 앤시드에게 섭섭한 위로를.
“죄송합니다. 앤시드 경. 워낙 칠칠맞은 녀석이라 말렸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그보다 그 어린 대기사는 다치지 않았습니까?”
처박혀 덜덜 떨리는 오토호스와는 달리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어쩔 수 없죠. 괜찮다면 제 오토호스를 배에 태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당 그리해 드려야죠. 그런데… 혹시 한 번 더…….”
“네?! 아… 조수도 타 보고 싶다고 했죠.”
기사는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그들의 약속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약소하지만…….”
리안은 남들이 보지 않게 돈주머니를 꺼냈다.
-아니. 선장님! 아무리 많이 버셨다 해도 여기서 그런 지출은.
-저 꼴을 봐요. 세바스 아저씨. 땅에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아직도 못 꺼내고 있어요.
다른 오토호스에 밧줄을 걸어 조심스럽게 빼내고 있었다.
-보상이 필요해 보이긴 하네요.
-훈련비 명목으로 오케이?
-어쩔 수 없죠.
세바스를 설득해 운영비에서 제법 많은 돈을 빼내 왔다.
“이렇게 따로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아?!!”
그는 돈주머니를 슬쩍 열어 보고는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신형 오토호스를 두 대는 뽑아도 될 정도의 비용.
“사실 제 조수는 이제 막 유저에 올랐고 완전히 초짜라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흐리아 민은 부선장에게 특훈을 받았다.
도시를 약탈(?)하는 와중 영약도 얻은 것이 있어 아낌없이 때려 부었다.
-네에? 제가 먹은 것이 그렇게나 비싸다구요?!
흐리아 민도 마나에 그다지 축복받은 인간은 아니었다.
리안에 비해서 나았지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후… 알겠습니다. 수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저희가 책임지고 교육하겠습니다.”
그렇다.
이 비용에는 흐리아 민에게 대한 과외비가 포함된 것이다.
리안은 부유선인 고잉미샤호를 매일 타고 다녔고. 샤로트는 대전사 그것도 2차 각성까지 마친 괴물이라 훈련 없이 탔지만 그녀는 다르다.
“네에? 바로 타는 것 아니었나요?”
“조수로 데려온 거지. 시체를 만들려고 데려온 것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흐리아 민은 유저가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마나를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위험에 대한 대처가 느릴지도 몰랐다.
“너무 실망하지마. 수도에 도착할 때쯤에는 탈 수 있을 테니까.”
그녀의 재능이라면 충분할 거다.
장인이 연장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재능은 진짜다.
SSR급은 아니지만 SR급도 괴물 같은 재능이니.
리안의 기억에는 아마도 샤로트의 조타 재능이 A급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런 그녀도 처음 오토호스를 접하는데, 저 정도를 보였다면 흐리아 민은 훨씬 수월할 거다.
잠깐. 이미 재능 있는 조타수가 있었잖아???!!
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샤로트는 A급 재능이니.
문제는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그녀의 성격이…….
방금 전에도 보지 않았던가…….
재능이 있다고 맡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 오해해서. 죄송해요. 백작님.”
그녀는 수긍하고 사과를 했다.
사실 흐리아 민도 그다지 믿을 만한 성격은 아니지만, 샤로트와 달리 그녀는 탈것을 존중하는 여자였다.
사람은 함부로 다뤄도 탈것은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그녀의 철칙.
어릴 때부터 오토호스에 대한 동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여기서 너무 지체했군. 슬슬 가 봐야겠어. 모두 승선한다!”
여제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 * *
제국의 수도이자 트리아 왕국의 수도인 빈.
그곳은 이 황자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떠들썩해졌다.
이미 슐 지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퍼진 상태다.
여제 테레지아가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것이다.
쿠궁~ 쿵!
고잉미샤호가 수도의 장벽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원래라면 부유선 선착장에 하선해서 마차를 타고 수도로 들어와야 하지만, 여제의 특별한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와아아아아!!!
수도의 시민들이 성벽 위에 올라 환호성을 질렀다.
성벽도 전면 개방했기에 일반 시민들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탈칵! 탈칵!!
기록 수정구가 든 사진기들이 터졌다.
기자들은 비싼 수정구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트르르르~!
고잉미샤호의 앞에는 호위 기마 50 아니 49기가 앞장서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기병이 아닌 이질적인 사람도 한 명 끼어 있었는데…….
‘괴물!’
리안은 선교에서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왜 SR급이 SR급인지 알게 해줬다.
교육이고 뭐고 최단기간에 자연스럽게 오토호스를 몰게 되었다.
-이거요? 이렇게요?
부드러운 출발.
-왜요? 다들 왜 그러세요?
10년은 탄 것 같이 가속도 자연스러웠고.
-이건 이렇게요? 또 왜들 그러세요?
오기가 생긴 기병 하나가 기교를 가르쳐 주자.
-표정들이 왜… 제가 뭘 잘못했나요?
과외비를 너무 많이 쓴 게 아닌가 싶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모두 흡수해 버렸다.
-정말 쉽네요.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은 리안의 기우였다.
“역시 백작 각하의 조수입니다.”
오히려 조수석에는 앤시드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저런 재능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이 내렸어요.”
“그렇죠…….”
당연하다. 무려 SR급이니까.
“백작 각하의 조수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우리 기병대에 스카웃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건 조금 곤란하죠.”
그녀의 밑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유저로 각성하는 데 들어간 영약의 비용을 알면 앤시드는 기겁할 것이다.
스토리상으로는 네르데르에서 유저가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오린녜 통령이 그 비용을 지출했으리라.
“서… 선장님! 황궁에서의 통신입니다.”
“연결해요. 마법사 삼촌.”
리안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앤시드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부하들과의 호칭이라든가 서로 대하는 것이 특이했다.
당연히 해적 깃발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만.
-리안 레온 백작. 신센롬 제국의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도의 북문에 부유선을 세우시오.
“알겠습니다.”
수도 안은 건물들이 빽빽했기에 안까지 부유선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접근을 해 준 것만 해도 매우 파격적인 것이다.
물론 제국의 입장에서는 홍보용으로 쓰기 위해서겠지만.
쿵~
고잉미샤호가 멈추고 나무 판때기가 땅에 닿았다.
이후 레오폴트, 리안 그리고 앤시드가 고잉미샤호에서 내렸다.
와아아아아!!!
성벽에서 구경 중이던 시민들의 환호성이 다시 터졌다.
이미 레오폴트가 활약한 것에 대한 기사가 도배되었을 거다.
전쟁을 하기도 전에 승전보를 울린 것.
당연 저 환호가 이해되었다.
황자의 귀환이 영웅의 귀환으로 변한 것이다.
‘그보다 마차는 왜 안 보이지?’
리안은 의문스러웠다.
제국의 수도답게 빈은 더럽게 넓기 때문이다.
걸어서 황궁까지 오라는 걸까?
하루 종일 시민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해?
“백작 각하. 아무래도 여제께서 직접 오셨나 봅니다.”
그 의문은 옆에 있던 앤시드에 의해 곧장 풀렸다.
성문과 이어진 레드 카펫.
비싼 벨벳으로 짠 것이었는데, 설마 하자니 이걸 황궁까지 깔아 놓지는 않았을 거란 추측.
그 말은 저 레드 카펫이 끝나는 지점에.
“어머니!!”
레오폴트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황자님을 보호하라!!”
갑자기 급발진하는 레오폴트.
급히 주변으로 따라붙는 호위대들.
투다다닷!!
괜히 마나 유저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뛰었다.
갑판 위에서 샤로트와 한 번씩 술래잡기를 한 것이 저기서 발휘되다니.
-황자님! 그래서 안 놀아 주신다구욧?!!
-아니. 그게 아니라… 위험하지 않을까?
-흐이잉. 너무해요. 황자님.
꿩 대신 닭이라고.
심심할 땐 또래인 리안 대신 황자를 괴롭히던 샤로트.
훈련을 빙자한 구타와 술래잡기를 빙자한 극한의 유격 훈련.
그걸 본 리안은 조용히 선교로 숨은 적이 많았다.
와아아아아!!!
시민들의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럴 것이 황궁의 찌라시에는 영웅으로 포장되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 황자는 유약하지 않은가.
그런 그가 육상 선수처럼 빠르게 달렸다.
더군다나 일 황자가 아프다는 소문은 쉬쉬하고 있지만 퍼진 상태.
이 황자가 건강하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기쁨이었다.
“황자님!! 멋있어요.”
“황자님 만세!!”
“만수무강하소서. 이 황자 전하!”
“조심하세요. 넘어지지 마세요!”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말을 던졌지만, 모두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황실에서 주체한 이번 이벤트는 대박이 난 듯싶다.
“어머니이이!!”
레오폴트는 이내 여제의 앞에서 멈춰 섰고 눈물을 흘렸다.
“이리 오렴. 여기까지 달려와 놓고 뭘 더 눈치는 보는 게냐.”
“흐어어엉!”
레오폴트는 여제 테레지아의 품에 달려가 안겼다.
그녀로서도 나쁠 것은 없다.
정치적으로 백성들의 어머니란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으니.
황자의 응석이 오히려 백성들의 감성을 자극시킬 것이다.
‘별로 훼방 놓고 싶지는 않다만.’
뒤늦게 도착한 리안은 대신의 안내를 받아 여왕의 앞으로 불려 갔다.
여전히 레오폴트는 여제의 품에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리안은 정중하게 폼을 잡았다.
백작 부인이 틈틈히 교육을 시켜 줬지만, 눈앞의 사람이 웬만한 사람이 아닌지라 조금 떨렸다.
“신센롬 제국의 여제! 트리아의 여왕이시자 헝그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솔로베니아 왕국, 보헴 왕국의 국왕이시며…….”
리안은 속으로 욕을 했다.
무슨 작위를 저리 많이 가지고 있는지.
중요한 것만 읊는다 했는데도 여전히 많았다.
“그만. 예는 그만 갖춰도 됩니다. 내 아들의 은인이시여. 환영합니다. 리안 레온 백작!”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안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