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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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평야에 수만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보통은 장관이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위용이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징집병이라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아서이다.
오히려.
-무슨 부유선이 저렇게 생겼데야?
-억쑤로 크네.
-아따 갑판때기가 철판때기 아닌감.
곳곳에서 고잉미샤호를 보며 감탄하는 방언이 들렸다.
워낙 큰 나라다 보니 억양이 조금씩 틀렸다.
그래도 과거 롬 제국의 영향 때문인지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철컹!!
평야로 들어선 고잉미샤호는 천천히 속도를 줄었다.
그들의 앞에는 1만에 가까운 기병들이 서 있었다.
다른 병력과 달리 그들은 율 대륙 최강의 기병 중 하나라는 후사르.
털모자에 손에는 기병용 곡도인 세이버가 들려 있었고. 등에 날개를 단 자들이 종종 보였다.
날개(장식용)를 단 자들은 대기사로 대부분 바람 속성으로 보였다.
윙드 후사르라 불리는 중기병이다.
대부분의 대전사에게 바람 속성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에 비해. 헝그 왕국의 기병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속성이었다.
저들은 오토호스에 AI인 말의 에고를 집어넣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효율 측면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거칠지만, 더 빠르고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율 대륙에서 기병 훈련이 가장 힘든 곳이기도 했다.
찰캉. 찰캉.
고잉미샤호의 갑판으로 한 소년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신센롬 제국이여! 영원하라. 이 땅을 지배하는 혈통. 이 황자님 만세!”
기병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외치자.
충! 충! 충!
평야 가득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소리의 특성상 일치되지 않고 울리는 느낌이었는데, 한 편의 장엄한 노래와도 같았다.
그들의 한편에는 없던 충성심도 샘솟고 있었다.
황자에게.
아니. 황자로 변장한 리안에게 마법사 포트가 마법 통신 수정구를 가져다줬다.
당연히 그 수정구는 고잉미샤호와 연결되어 있었고.
스윽!!
리안이 허공으로 팔을 뻗었다.
추웅~ 충~ 추우웅~
그러자 평야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황자로 변장한 리안에게 집중했다.
리안이 입을 연다.
고잉미샤호의 외부 스피커가 일제히 울렸다.
“이렇게 고향에 온 것을 용맹한 그대들이 반겨 주니 기쁨에 눈물이 납니다.”
리안은 모두가 볼 수 있게 과장되게 행동했다.
사실 신센롬 제국 내에 이 황자가 유약하다는 소문은 이미 나 있는 상태였다.
강한 척을 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헝그 왕국을 최대 우군으로 끌어들일 때 권위가 아닌 여자와 어머니란 키워드를 사용했으니.
“이렇게 늠름한 군대의 모습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제스처.
“그러나 거악이 우리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슐 지역을 강제로 점거 중이며, 들어 보니 보헴 왕국까지 군대를 밀고 들어와 신센롬 제국의 수도까지 넘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이센 군대가 진격할 수 있는 곳까지가 딱 보헴 왕국까지다.
당연히 보헴 왕국 점령도 하지 못하며, 보헴의 수비 병력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한 상태.
대부분의 병력은 요새나 도시에서 농성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급로가 안정되지 않아서이다.
로이센 왕국에서 보헴 왕국으로 이동하기 위한 작센 왕국 또한 비슷한 상황.
“여기 있는 형제들은 걱정일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 신센롬 제국의 아들이 슐 지역을 관통해서 이곳에 도착했으니.”
그 말이 끝나자 군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거대한(융지의 부유선이 작은 편이기에) 부유함이 아무리 대단해 보인다 해도 슐 지역을 관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n9932-dana135(북) 요새는 초토화가 되었으며 더 이상 그대들의 앞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슐 지역 최대 공업 도시에서 그대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도대체 이 황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군인들은 머리가 혼란했다.
그런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로이센 왕국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군략에 무지한 병사들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아 가십시오!! 형제들이어. 그대들이 갈 길을 닦아 놓고 왔으니.”
이 황자의 연설이 끝나자.
“와아아아아!!!!”
평야 가득 군인들의 함성 소리로 퍼졌다.
다만, 저들은 모른다.
이 정도 패널티는 줘야 로이센의 군대와 싸울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의 훈련도가 엉망이란 사실을.
리안이 굳이 슐 지역을 관통하며 길을 뚫어 준 것도 그 이유에서다.
‘뭐. 이제 좀 할 만해졌으려나.’
리안이 원하는 건 신센롬 제국의 승리가 아니다.
오래오래 전쟁을 벌여서 율 대륙의 다른 국가들이 개입하길 바라는 것이니.
이미 30년 전쟁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상태다.
그런데, 끝 뒤에 끝이 있다고 했나?
이번이야말로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찰캉찰캉!
리안은 환호를 뒤로하고 갑판의 중신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진짜 이 황자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함성 소리에 기가 살짝 눌린 것 같다.
스윽.
리안은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이 황자가 아닌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해적들도 신기한지 눈을 비볐다.
-진짜 우리 선장은 별걸 다 한다니까.
-그러니까. 젠장. 깜빡 속았네.
-하긴. 이 많은 병력 앞에서 이 황자가 연설할 리가 없지.
덜컹.
연설이 끝나고서야 고잉미샤호의 갑판에서 나무 판때기를 땅에 걸쳤다.
그곳으로 두 명의 장군이 선두로 한 무리가 걸어 올라왔다.
바로 이 황자에게 삼촌이 되는 슈우퍼 카를 대공과.
이전 30년 전쟁의 명사령관 제자인 러드 다운 백작.
그 둘도 어안이 벙벙하긴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이 부유선이 어떻게 해서 슐 지역을 관통해 이곳에 도착했는지.
요새가 정말 파괴되었는지.
슐 지역 남부에 있는 대도시가 정말 민병을 일으켰는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황자 전하.”
슈우퍼 카를 대공은 의문을 뒤로 한 채 인사를 먼저 했다.
“수… 숙부님!!”
이 황자는 카를 대공을 보자마자 울먹이며 달려갔다.
그동안에 불안에 떨며 버텨 왔던 것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그럴 만도 했다.
황가의 사람 중에 가장 군재가 뛰어난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런 친인척을 만났으니 마음이 놓일 만할 것이다.
“하하하. 여전히 우리 조카님은 응석받이이십니다.”
카를 대공은 환한 미소로 이 황자를 안아 줬다.
흐느끼는 이 황자의 등도 살짝 두들겨 주고.
사실 황가의 체면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이 황자의 성격은 온 세상에 다 퍼져 있으니.
찰캉. 찰캉.
금속으로 된 바닥에 작은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리안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대는?”
“대공 전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리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율 대륙에서 가장 빠른 슈우퍼 카를 대공을 이렇게 볼 줄이야.’
SSR급 내정 능력치를 가진 테레지아 여제의 시동생.
그녀가 발탁한 인물이었다.
제국은 중앙집권이 덜 된 연방국이고 군대는 각국에서 모여든다.
그걸 황가가 통제하기 위해서는 황가의 사람을 총지휘관으로 삼아야 했다.
분명 군에 관련된 재능이 있긴 했지만.
그는 A급 지휘관이다.
A급? 그럼 충분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사실 A급과 SR급이 비슷한 병력으로 붙으면 누가 이길지 예측하지 못한다.
변수가 통제되어도 4:6 정도 승률?
문제는 슈우퍼 카를 대공의 특성이다.
그의 대부분 능력은 전투가 아닌 이동과 보급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행군 속도는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런 그의 상대는 SSR급 프리들 대왕.
체급도 상성도 맞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
리안이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이유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뭐다?
“그대는 나를 아는 눈빛이군.”
“위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신속한 행군이 특기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빠른 행군이 뭐 대단하냐고 말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군대는 행군으로 시작해 행군으로 끝난다.
장군의 기본 통솔력이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면 행군은 지옥행이 될 것이다.
“흠? 그런가… 그보다 방금 황자님의 연설은 무슨 뜻인가?”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이 황자에게 묻느니 눈앞의 백작이라 주장하는 꼬마에게 묻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변의 인물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눈앞의 리안이라는 꼬마가 진짜 우두머리가 맞는 듯 보였다.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네르데르 왕국을 시작으로 슐 지역을 관통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 개의 대도시를 타격했으며 그중 과거 슐 지역의 수도인 지역에 봉기가 일어나게 도왔습니다.”
“그들이 n9932-dana135(북) 요새를 격파하는 데 도움을 준 건가?”
n9932-dana135 요새는 악명 높은 천혜의 요새.
부유선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절대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고정포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부유선을 박살 날 테지.
“고대의 비밀로 수장시켰습니다.”
“음……?!”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시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긴. 뭐야. 스피드지.
기껏 슈우퍼 카를 대공의 장기를 살릴 수 있는 판을 깔아 뒀으니.
* * *
황궁에서 이 소식을 들은 여왕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자신의 아들 이 황자가 슐 지역과 국경인 레지안 지역에 도착했다니.
그것도 슐 지역을 관통해서 말이다.
기껏해야 폴란 왕국을 경유해 헝그 왕국 쪽으로 올 줄 알았다.
네르데르 왕국에서 가장 안전하게 오는 방법일 테니.
오래 걸릴 줄 알았다.
어쩌면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야 도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곳을 보충병 징집 장소로 택하려고 했는데…….’
전쟁이 길어진다면 병력을 추가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이미 그것에 관한 서류들을 작성하는 중이었고.
“정말 내 아들 레오폴트가 레지안에 왔다고? 그것도 그 험한 산맥을 뚫고?”
슐 지역과 레지안의 사이에는 험한 산맥이 있었다.
그 산맥을 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n9932-dana135 요새를 뚫고. 아니 함락하고 왔다 합니다.”
“음?!”
산맥을 넘어왔다는 말보다 훨씬 황당한 이야기다.
당연할 것이 악명 높은 요새로 인해.
“도대체… 이럴 것이 아니다. 내 직접 갈 것이야.”
“이 황자께서는 이미 황궁을 향해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
“그렇사옵니다. 카를 대공께서 출전명을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머리가 따라가지 않아 살짝 아찔해졌다.
그러고 보니 슐 지역과 레지안은 지척이다. 그 요새와 산맥만 아니라면.
그중 하나가 해결되었다면.
“후후후. 내 아들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복을 물고 왔구나.”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로이센 왕국의 그 이중인격 국왕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헴 왕국까지 군사를 몰고 온 것은 실수한 것이다. 프리들.’
* * *
고잉미샤호는 기병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신센롬 제국의 황도로 향했다.
리안은 고잉미샤호를 앞서 나가는 기병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탐나는 말이야.”
말의 에고가 탑재되지 않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절대 탈 수 없는 오토호스.
당연히 그런 단점에도 장점이 많았다.
다른 것을 다 제쳐 두고.
“맞아요. 백작님. 너무 멋있어요!!”
조수석에 앉은 흐리아 민의 눈도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럴 거다.
헝그 왕국에서 만든 오토 호스는 명품 중의 명품이니.
그 외관만 해도 일반 오토호스와 달랐다.
말의 에고가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마법 부품의 개수와 복잡도가 달라지니.
당연히 내구도와 외형에도 영향을 준다.
일반 오토호스에 비해 제약이 없는 헝그산 오토호스는 누가 봐도 강력하게 생겨 먹었다.
“한번 타 볼까?”
“네에?!! 저… 정말 타 볼 수 있나요?”
이제 곧 휴식 시간이다.
“가서 황자님께 부탁해 봐. 흐흐.”
이미 저들은 이 황자의 뽕에 살짝 취해 있었다.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전공을 올리며 금의환향한 이 황자.
어쩌면 레오폴트의 인생 최대 업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아쉬워요.”
“뭐가?”
“모두 이 황자님만 칭송할 거잖아요. 백작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다들 모르겠죠?”
“뭘. 그런 걸로. 흐흐.”
지금 당장 알려지지 않을 뿐.
어차피 리안의 이름이 퍼질수록 지금의 일도 재조명될 것이다.
그러니 딱히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이 황자를 호송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혼자 슐 지역을 약탈하고 다녔다면. 도적 or 해적으로밖에 취급이 되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도움을 받은 거다.
"그보다 오토호스나 타 보러 가자고."
어느 한적한 평야.
달리던 고잉미샤호가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