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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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남쪽으로.
고잉미샤호는 부유선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라 쭈욱 이동했다.
“애송이 어쩌자고 이리 가는 거더냐.”
항법사는 안절부절못했다.
거의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서 육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슐-트리아(신센롬 제국 수도)를 이어 주는 길의 중간에 있는 악명 요새에 대해서는 들어 봤다.
n9932-dana135이란 괴랄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대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요새였다.
“순진하셔라. 거기 요새 아니에요. 흐흐흐.”
“아니. 무슨 말이냐. 율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요새 중 하나인데.”
지형도 험한 협곡을 막고 있는 형태라 압도적으로 병력 차가 나지 않는 한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로이센 왕국도 슐 지역을 점령하고 n9932-dana135 요새를 점령하는 데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전면전이 끝나고 20배가 넘는 병력으로 밀어냈고. 항복을 받아 냈다고 한다.
“거참 아니라니까요.”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조종구를 꺾었다.
고잉미샤호의 방향이 틀어졌다.
덜컹!
이번에도 길이 아닌 곳으로 벗어났다.
이제는 모두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야간에, 그것도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
그 대신 리안과 항법사의 눈밑은 날이 갈수록 다크서클이 심해졌다.
“모두 연장 챙기라고 하세요.”
길을 벗어나 거친 땅을 얼마나 달렸을까?
“응?! 웬…….”
참고로 리안은 슐 지역의 수도 도시에서 대규모로 연장을 보급받았다.
고잉미샤호에 타고 있는 전원이 넉넉하게 들어도 될 만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항법사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나.
선원들의 반응은 언제나 열렬했다.
우오오오!!!
그들은 리안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저마다 연장을 몇 개씩이나 들고선 배에서 뛰어 내렸다.
그들의 안광은 번뜩였고. 입꼬리는 미친 사람처럼 쭉 찢어져 있었다.
부자가 되었는데 뭔들 기쁘지 아니하랴.
“다들 지금부터 여기를 팝니다!!”
리안의 말에.
우오오오오!!!
보물이 든 것도 아닌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무슨 약에라도 취한 듯 보인다.
깡! 깡!!! 깡!!!!
겨울이라 딱딱한 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누가 보면 보물이라도 묻어 놓았는지 알 것이다.
-하루 종일도 팔 수 있어.
-난 부자다. 부자야!!
-율루룰루룰~ 룰루룰~
상태들이 좋지 않다.
간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3개의 도시를 털며 왔기에 배당될 금액이 상상을 초월했다.
“비켜!! 비켜!!! 이놈들아!!!”
그중 가장 열정적인 인물은 기관장 헤르미 디토스.
그녀는 거대한 드릴을 들고 와서는 미친 듯이 땅을 두들겼다.
누가 본다면 해적이 아니라 건설 인부로 착각이 들 정도.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기에?”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항법사였다.
그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작업을 지켜봤다.
저것이 자신이 알던 해적단 단원들이 맞는가? 하며.
“n9932-dana135 요새는 요새가 아니에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요새지 요새가 아니라니.”
“댐! 물을 가두는 댐이에요. 고대어로 다나와는 끝없이 샘솟는 물이고. 다나와를 담는 그릇이란 뜻이죠.”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어떤 할 짓 없는 고인물이 밝혀낸 것이다.
한동안 살수대첩이란 제목으로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무슨 그런 개떡 같은 명사가…….”
“고대어가 다 그렇죠. 뭐…….”
다나소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라.
끝없이 샘솟는 용암이란 뜻이니.
“선자아아아앙님!”
선원 하나가 리안을 향해 크게 불렀다.
뭔가 발견했다 싶으니 흥분한 듯 보인다.
리안은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구조물이 완전히 보일 때까지 주변을 파세요.”
우오오오!!!
그들은 각자의 연장을 공중으로 흔들며 환호했다.
이건 흡사 광신도 같았다.
* * *
잘리톨 리치가 이끄는 수천의 오토호스 기병대가 n9932-dana135 요새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은 뭔가에 홀린 듯 보였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부유선이 다닐 수 있는 큰길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
당연히 이 황자가 탄 부유선의 꽁무니를 잡아야 하는 것이 정상.
물론 슐 지역의 수도 도시가 봉기를 하는 바람에 빙빙 둘러와야 했지만, 충분한 수색이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그 부유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합니까? 기병대장님!”
“젠장. 일단 오늘은 여기 n9932-dana135 요새에서 휴식을 하고 날이 밝는 대로 수색으로 하며 거슬러 올라간다.”
잘리톨 리치 장군은 찜찜한 기분에 요새의 성벽으로 올라갔다.
두껍고 높은 성벽은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의 커다란 문은 부유선 두 척이 지나다닐 정도로 컸다.
“이곳으로 지나갈 거라 생각한 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이었나?”
상대가 지리를 모른다면 그럴수도 있다.
그저 요새의 위치는 모르고 부유선이 다니는 길만 그려져 있는 지도를 가졌다면 말이다.
다만 그들이 그렇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만약 그랬다면, 슐 지역에 촘촌하게 엮여 있는 요새와 군사 주둔지에 걸렸어야 하는데…….
가장 큰 세 개의 도시만 털어먹고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보다 지리를 잘 아는 놈들이야……!”
자신이 가진 지도가 가장 정확한 지도라 생각했던 잘리톨 리치 장군이었다.
그럴 것이 슐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세작들을 통해 세세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가장 현대적인 공법으로 말이다.
“후… 국왕 폐하를 어찌 봐야 할지…….”
그는 한숨을 쉬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좀 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해 뒀어야 했다.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가 슐 지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야 하거늘.”
물론 그때까지도 그는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 * *
그 시각 리안과 그의 선원들은 땅과 사투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얼어붙은 겨울의 땅은 만만치 않은 적이었다.
깡!!! 까아앙~! 깡!
선원들은 지치지도 않은지 하루종일 땅을 파고 있었다.
그들의 열정은 그들이 흘리고 있는 땀만큼이나 쉽게 식지 않았다.
“선장님!!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때 선원 하나가 리안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그 역시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얼굴에 묻은 땟국물이 좔좔 흐르고 있었지만, 보람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도 아는 것이다.
부자가 된 것은 맞으나 이곳은 적지.
빠져나가야 그 돈을 맘것 쓸 수 있다.
“고생했어요. 헤헤.”
리안은 코트를 걸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선원들이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있었다.
얼굴들을 보니 하얗게 불태운 모습.
“어엇!! 선장이다!!”
누군가 리안을 보고 소리쳤고.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척!!
그들은 경례를 했다.
해적들 주재에 말이다.
척!!
리안은 대충대충 손을 들며 말했다.
“워워. 쉬어요. 다들.”
그리 말하고는 거대한 조형물에 다가갔다.
“흉측하게 생겼네.”
따라온 항법사가 조형물의 기괴한 모양에 인상을 찌푸렸다.
생긴 것이 사람의 머리를 길게 늘려놓은 것 같다. 물론.
“딱 모아이의 석상이네.”
리안에게는 나름 익숙한 생김새다.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사진으로는 많이 봤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크기가 훨씬 더 크다는 것.
입을 벌리고 있다는 점.
그 입에는 문이 달려 있다는 점.
“모두 배에 가서 타세요. 그리고 부선장 아저씨 불러 주시구요.”
잠시 후 리안의 호출로 부선장이 불려왔다.
그의 손에도 흙이 묻은 것을 봐선 작업을 열심히 한 모양.
“난 왜 불렀지?”
“물 속성 대전사가 필요해서요.”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저곳에 손을 대세요.”
“알겠다.”
부선장이 문에 손을 대자.
그그극!
두꺼운 돌로 된 모아의 석상의 입이 열렸다.
안은 어둡지 않고 은은하게 빛이 났는데.
각종 마법진으로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어어...”
부선장은 기괴한 형상들로 머리가 어지러운 모양.
이런건 통신마법사 포트가 보면 좋아하겠지만, 그도 고대 마법학에 대해선 잘 몰랐다.
“뭘 멍때리고 있어요. 저기 중앙의 수정구에 손이나 올리고 계세요. 그럼 직감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될 거니까.”
“뭐… 일단 알겠다.”
부선장은 리안의 말대로 수정구에 손을 올렸고.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에 있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 있었다.
딱히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고.
손톱보다 조금 큼 오리 모양의 장식이었다.
한쪽에 유리로 밖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부선장은 뒤를 힐끗 보며.
“그건 또 뭐냐.”
“우리. 보트가 없잖아요.”
“음… 오리 모양이라 물에는 잘 뜰 것 같다만…….”
고개를 휙 하고 돌려 버리는 부선장.
“칫. 나중에 태워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목욕탕에서나 쓸 법한 장난감을 닮은 오리 마법 아이템의 이름은 afasgiah이다.
그 외에 ‘이 수수께끼를 푼다면 보상이 있을지니.’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수많은 유저들이 저 이름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 노력했지만, 리안이 이 세계에 떨어질 때까지 푼 사람은 없었다.
“그… 그보다 꼬맹이. 이거… 감당할 수 있는 거냐?”
부선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그럴 것이 발아래에서부터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감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고대의 힘이죠. 가뭄이 들 것을 대비해서 만든 시설치고는 과하다고 할까나.”
몇 년간 힘을 축적하며, 충전이 완료되면 지하에 있는 물을 지상으로 끌어 올리게 된다.
n9932-dana135 요새가 지어진 이유도 이 많은 물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수문 역할을 하며, 협곡을 따라 물을 내보낸다.
“젠장!! 모르겠다.”
부선장은 스위치를 열어 버린 것 같다. 그 순간.
* * *
쿠우우웅!!!
협곡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고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n9932-dana135 요새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오오. 신이시여.”
“당황하지 마라!! 단순한 지진일 뿐이다.”
요새의 지휘관은 한밤중에 난리를 피우다 부상자가 생기지 않을까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나름 정예인 로이센 왕국의 병사답게 빠르게 안정되고 있었다.
잔잔한 진동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무시할 만한 정도.
요새가 무너진다거나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다만…….
쏴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환청이 아니라면 말이다.
* * *
“으하하하하!!!”
리안은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해적이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나름 해적이라고 간만에 물을 보니 반갑다고 해야 하나.
“뭐 해요. 부선장 아저씨. 이거나 불어요.”
“응?! 뭐 하냐?”
리안은 뜬금없이 오리배 afasgiah에 바람을 불고 있었다.
“좀 커진 것 같지 않아요?”
“잘 모르겠는데… 에??엥?”
입김을 불수록 점점 그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줘… 줘 봐라!”
신기했는지 부선장은 afasgiah를 잡고 열심히 불었다.
성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대전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배의 크기는 삽시간에 커졌다.
“됐어요. 두 명이 타기에는 적절하네.”
어느새 afasgiah의 크기는 성인 두 명이 타도 충분할 정도로 커졌다.
재질은 고무와 비슷했고 속은 공기로 차 있어 깃털처럼 가벼웠다.
“거참 신기하군.”
“얼른 타요. 배로 돌아가게.”
어느새 주변은 물바다가 되었고. 오리배는 물에 둥둥 떴다.
“응? 그냥 걸어가도 될 텐데.”
“5파까지 있으니까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에요.”
쿠우웅~!
다시 한번 옅은 충격음.
“자자! 얼른 가요오오!!”
어느 순간 물이 성인 남성 허리 정도만큼 차올랐다.
리안은 당황하지 않고 오리배의 머리를 틀었다.
첨벙첨벙.
놀랍게도 오리의 밑바닥에 있는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긴 것과 달리.
첨! 벙! 첨! 벙! 첨!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잉미샤호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미친!”
부선장이 놀라며 탐나는 눈빛을 보인다.
“욕심내지 마세요. 제 전용이니까. 뿌우~”
리안은 그리 말하고는 갑판에 올라서자마자 오리배를 작게 축소시켰다.
그리고는 곧장 선교로 들어갔다.
끼릭! 끼릭~
물살로 인해 고잉미샤호가 물 위에 뜨며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그걸 조종구를 움직여 버텼다.
“3파가 쏟아지기 전에는 아직이죠.”
아주 제대로 터져 오를 거다.
최소 몇백 년은 묵었으니까.
사리라도 안 나오면 다행이지.
아…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