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061
제1 대대장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패주하는 아군들은 이미 지나갔다.
적들은 자신들이 매복한 건물들을 앞에서 멈춰섰다.
‘미친.’
그 대신 천천히 전진하며 마포를 앞세웠다.
끼걱! 끼걱!
마포는 아무런 방해 없이 조금씩 대각선으로 이동했다.
어느 각도에서 때려야 건물 속의 병사를 많이 죽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전을 하는데도 여유로웠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조준하여 쐈다!
퍼버버벙!!!
몇 개의 마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쿠우우웅!
건물이 흔들릴 지경이다.
매복은 실패다.
그들은 1대대 병력이 숨은 건물을 대상으로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으아아악!!!”
한 번 쏠 때마다 비명 소리가 터졌다.
그리 많은 수가 죽지는 않았지만,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공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니. 그전에 건물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마포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대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부하들의 동요가 피부로 느껴진다.
“젠장!!!”
이것은 상식 밖이었다.
저런 군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대대장은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로이센의 군대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다.
콰과과광!!!
다시 한 번 더 튼튼한 석회로 만든 벽들이 터져 나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의 마포들이 소형이라는 것.
“대대장님!!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
“젠장!!! 알고 있어……!”
연대장이 내린 명령은 패퇴한 병력의 안전한 퇴각.
뒤쫓는 적에게 매복 공격을 해서 잠시 발목을 붙잡아 두는 것.
매복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주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니 퇴각을 한다 해도 책임을 묻지는 않을 거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부대가 안전한 퇴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은 퇴각을 할 때 가장 큰 사상자를 낸다.
그렇지만 적들은 신중하다.
또 대부분의 병력이 마포병이라 추격이 용이하지 않을 거다.
“앞쪽 건물부터 순차적으로 퇴각한다. 동쪽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달린다. 그곳에는 연대장님께서 예비대를 자청하고 계시니. 그곳까지만 간다면 어찌 될 거야.”
이대로 퇴각한다 해서 큰 피해는 없을 거다.
적들은 딱히 추격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건물들을 순차적으로 비운다면, 적들은 아까처럼 신중하게 척후를 보내며 전진하겠지.
“알겠습니다.”
* * *
리안은 동쪽 성문 부근으로 가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소리를 들어 보니 잘 되고 있나 보네."
마포 소리가 꾸준하게 들리는 것으로 봐선 부선장이 지시를 잘 이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매일 투덜거려도 리안의 말 만큼은 맹신하는 모습.
그 덕에 적들의 패잔병이 수습되고 있었다.
리안이 원하는 그림이다.
저 멀리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다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시를 벗어난다. 질서 정련하게 퇴각한다!! 민간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아직 민간인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안한 모양.
이런 식으로 마포를 이용해 공격을 당할지는 몰랐을 거다.
당연히 이곳 시민들의 협조가 있었을 거란 의심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었다.
오늘 이전에 은밀히 도시에 숨겨져 들어왔을 테니.
“캬~ 역시. 로이센 군대네.”
리안은 감탄을 했다.
아직 전쟁 초기인데, 저 정도라니.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군대치고는 결집이 잘 되었다.
다른 나라의 군대였다면, 우왕좌왕하며 개판이 되어 탈영했을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당하는 거겠지만.’
두 차례나 대대를 격파했지만, 여전히 상대의 숫자가 더 많았다.
이미 앞서 깨진 대대의 패잔병들도 합류한 상태.
그렇게 당하고 다시 뭉치는 걸 봐서는 마포의 공격은 더 없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샤롯! 맞출 수 있겠어?”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길이 제법 넓은 대로지만, 적을 흔들기만 해도 된다.
“맞추면 다른 것도 맞춰 주시나욧?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요. 도련님!”
이전부터 장난이 심하던 샤로트였다.
다만, 진심인지 장난인지 구분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지만.
어쩌면 반반 섞인 것일지도…….
당연히 절대 사양.
여전히 그녀가 무서운 리안이었다.
“그냥 닥치고 쏴!!”
“히잉~!”
퇴각하는 로이센의 군대 앞.
골목에 숨어 있던 샤로트가 짜잔 하고는 정면에 나타났다.
진짜로 짜잔까지는 아니었고. 마포를 끌고 가느라 평소보단 느렸다.
“젠장!!!”
그걸 본 양이 미일 대령이 급히 앞으로 나선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짜잔이 맞을지도.
그의 대응은 빨랐다.
‘미친! 마포를 혼자 끌고 다닌다고?’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말이다.
양이 미일 남작.
게임에선 페밀리 네임이 뒤에 오니.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밀양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다.
생긴 것과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속성은 땅.
B급 지휘관이지만.
‘신대륙 식민지 총독으로는 딱인 인물인데. 원주민들의 저항도 적절히 누를 수 있고… 알짜 능력도 있는데…….’
문제는 회유하기 힘들다.
특히나 로이센의 영관급 장교이니 더더욱.
로이센을 복속시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로이센으로 시작했으면, 식민지 총독으로 유용하게 써먹지만.
펑!!!
샤로트가 바주카포처럼 쏜 마포가 날아갔다.
이번은 조금 특이한 것이, 쏜 다음 그녀는 뒤로 튕겨나지 않고 비스듬히 나자빠졌다.
좀 볼썽사나웠지만, 더 큰 문제는.
우두두두둑!!
양이 미일 대령의 앞에 흙더미가 솟아올랐다.
샤로트의 노력이 헛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게임 초창기에 임명되는 연대 지휘관들이 무능한 것에 비해 저 정도면 상당히 준수하다.
밀양이 연대장만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적으로 로이센의 장교들의 수준이 높은 편.
괜히 율 대륙의 깡패 국가가 아니다.
‘역시나 막히나.’
리안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미친!’
포탄이 조금 이상하다…….
텅~ 텅~!
마탄이 연대장이 만든 흙벽에 부딪히기 직전 땅에 먼저 닿더니.
스핀?
무슨 볼링도 아니고 곡선을 그리며 흙기둥을 우회해서 날아갔다.
이후 흙기둥 뒤에서 비명 소리가 난다.
“으아아아악!!”
그걸 신호로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해적들이 적들을 습격했다.
아무리 로이센의 군대가 훈련이 잘 되어 있다지만, 백병전에선 해적을 따라갈 수 없었다.
진짜 싸움을 생업으로 하는 놈들이다.
타다다당!!
챙챙!! 챙!!!
로이센의 군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적들은 해적의 규모를 몰랐고.
사방에서 공격해오니 공포에 질렸다.
“젠장!! 뒤로…….”
당연히 뒤에는 부선장이 화포병들을 데리고 추격하고 있었다.
화포병들의 대부분은 부 무기로 마총을 썼다.
타다다당!!
로이센군이 쓰는 마총과는 차원이 다르다.
관통력, 사거리, 연사 속도에서.
마총의 종류는 총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유저들이 자신의 마나를 이용해 마법적 술식을 발동시키는 형태.
유저들은 편의를 위해 직(접)마총이라 불렀다.
두 번째는 마석을 끼워 넣어 일반인도 쏠 수 있지만, 사거리, 관통력, 연사 속도에서 당연히 떨어진다.
이는 간(접)마총이라 불렀고.
세 번째는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해서 쓰는 형태로 마총의 최강 형태다.
다만, 길이가 길고 무거워 거치대가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하(이브리드)마총이라 불렀다.
유저들이 임시로 붙인 거라 정식 명칭은 아니었다.
어쨌든 하마총의 경우는 게임 초기에 보기 힘들었다.
각설하고 지금 로이센이 쓰는 마총은 대부분 간마총인데 반해 해적들의 마총병들은 모두가 직마총을 썼다.
대규모가 아니라 소규모로 싸울 때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나중에는 직마총의 비율이 3,000명 남짓 연대로 만든 테르시오 진형의 화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젠장… 앞은…….”
연대장 양이 미일은 유일한 퇴각로인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몇 안 되는 해적과 샤로트가 화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실 샤로트는 이제 싸울 힘이 거의 남지 않았을 거다.
마포의 원리는 하마총과 같이 쏘는 이의 마나 또는 오러도 잡아먹는다.
샤로트가 다른 포병들과 합을 맞추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각성했음으로 마나가 아닌 오러를 쓰니.
척척척!!
샤로트의 뒤로 마총병 10명 남짓이 앉아 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근접 무기를 가진 해적도 15명 정도.
“항복한다……!!”
결국 로이센의 연대장은 싸움을 포기했다.
정면이 그나마 숫자가 적어 만만해 보였지만,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자신이 몰렸으니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철퍼덕. 철퍽. 타다닥.
로이센의 군대는 무기를 버렸고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이미 그전부터 저항할 의지를 잃어버린 듯 보였다.
연대장 양이 미일은 천천히 리안에게로 걸어와 모자를 벗었다.
그런 뒤 자신의 검을 풀어 해적 한 명에게 건넸다.
“귀관의 전략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그는 바삐 눈을 돌리다가 세바스를 향해 말했다.
세바스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빠졌다.
“별말씀을요. 헤헤.”
그걸 본 연대장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무례임을 알고.
“귀관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님을 모시고 있는 상태죠.”
그 말에 연대장의 턱이 서서히 벌어졌다.
갑자기 이 황자가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 말은.
‘황족이 친정에 나섰다는 건가? 그렇다면 저들은 친위대이고?’
큰일이다.
그 말은 이미 신센롬 제국의 군대가 이곳 슐 지역 깊숙이 침투했단 말이 된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자신은 포로로 붙잡혔으니…….
“귀관의 이름도 듣고 싶군요.”
“저는 양이 미일 남작입니다. 계급은 대령으로 이곳 3 공업 도시의 연대장으로 있습니다.”
로이센 왕국의 몇 안 되는 진짜 귀족이었다.
다만, 첫 번째 관문 요새를 지키던 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그 뛰어남 때문에 피해는 더 커졌겠지만.
뭉치지 않았다면 마포의 기습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진 않았을 거다.
“미일 남작. 당신의 대처는 훌륭했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당황할 만큼.”
일단 리안은 상대를 띄워 줬다.
실제로 초창기인 지금 B급 지휘관이면 훌륭한 것이 맞고.
성장 요소가 반영되는 게임에서 이미 성장이 거의 완료된 상태이라 더더욱.
“과찬이십니다. 백작.”
“명예로운 전투였습니다. 무기를 두고 간다면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미일 대령.”
“……?!”
리안의 말에 그는 잠시 말문을 잃어버렸다.
너무 뜻밖이라서 그렇다.
거기다가.
‘저 아이가 진짜 통솔자라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주도적인 모습과 결단.
저 어린 나이에 자신이 모시는 프리들 대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걸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말이 없으십니까? 미일 대령. 혹시 그냥 풀려나는 것이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레온 백작님. 패장에게 예의를 갖춰 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훗날 이 은혜를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연대장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지금 로이센 왕국은 풍전등화였다.
당연히 리안은 그렇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로이센과 신센롬 제국의 전쟁은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랬다.
백성들이 고통받을지도 모른다고?
당연히 그딴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이 게임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으며.
여기 율 대륙이 평화로울수록 다른 대륙의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린다.
어느 쪽을 택하든 고통받는 총량은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해국들 사이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부상자들은 걱정 마세요. 그럼. 아디오스!”
리안이 이벨 왕국의 예법으로 인사를 했다.
그것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연대장은 멀쩡한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
당연히 모든 무장을 내려놓고선.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부선장이 리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꼬맹이. 저놈들을 그냥 보내도 돼? 뛰어난 자다. 부하들도 나름 괜찮고. 나중에 방해가 될지도 몰라.”
“그래서 풀어 주는 거예요. 밸런스는 맞춰야죠.”
제국과 왕국의 싸움에서 누가 더 우세하냐?
웃기게도 왕국이 더 우세하다.
몇 배나 되는 병력 따위는 씹어 먹어 버린다.
“응? 그럼 너무 몰아붙인 거 아니야? 저렇게 돌려보내면 저 지휘관은 의심을 살 건데…….”
처음에야 그렇겠지.
“그러니 우리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흐.”
“뭐야?! 더 남은 거야? 곧장 신센롬으로 넘어가지 않고?”
“겨우 여기서 깨작거릴 거면 오지도 않았죠. 이왕 이 황자란 슈퍼스타도 있는데, 순회공연쯤은 해야 되지 않을까요?”
리안이 눈이 음흉하게 웃자 부선장은 닭살이 돋았는지 자신의 팔뚝을 비볐다.
“너 같은 꼬맹이의 부하인 게 천만다행이다. 후~”
신센롬 제국과 로이센 왕국의 전쟁은 평균적으로 7년이 간다.
그사이 패권국들이 모두 참여하고.
세계 대전이라 불러도 될 정도.
다만, 운이 나쁘면 낮은 확률로 1~2년 안에 끝날 수도 있다.
리안이 이곳 슐 지역에 들어와서 분탕을 치는 것은 조기 종전이 되지 않게 기름칠을 하는 행위였다.
비등비등해야 다른 국가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아지지.
“공연이 끝났으니 쏠쏠하게 공연비를 걷을 시간이네요.”
“뭐? 약탈을 해도 괜찮은 거야?”
기대하는 부선장의 눈빛.
“에이. 그래도 이 황자를 데리고 있는데. 그러면 곤란하죠. 가서 시장이나 잡아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