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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58화 (58/253)
  • <58화>

    끼걱! 끼걱!

    고잉미샤호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곧장 재포격을 위해서였다.

    "아직 적 포대가 멀쩡해요. 얼른! 무브! 무브! 무브!!!"

    리안이 통신관을 통해 화포실에 재촉했다.

    -애들아. 우리 귀여운 선장이 바란다!! 서둘러라!!

    통신관으로 화포장의 이빨 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리안의 만족도를 위해.

    퍼버버버벙!!!

    다시 요새를 향해 마포가 불을 뿜었다.

    부유선도 지나다닐 정도로 커다란 성문이 박살 나며.

    콰아아앙!!

    광음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제… 젠장! 피해애애……."

    그 뒤쪽에 있던 병사들은 피하지 못했고.

    "끄아아아악!"

    그 뒤에 있던 요새의 병사들은 비명만 남긴 채 깔렸다.

    "미친!! 정통으로 맞았어."

    "톰 괜찮아?!!"

    "빌어먹을. 귀가 다 얼얼하네."

    성문의 크기가 큰 만큼 넘어갈 때 충격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충격을 받았다.

    반쯤 패닉에 빠져 어찌할 줄 몰랐다.

    퍼버버벙!!!

    그렇다고 성벽은 멀쩡한가?

    고잉미샤호는 빠르게 관문 요새에 배치된 마포들을 타격했고.

    기습적인 타격에 성벽의 마포들은 반격도 못 해 보고 속절없이 터졌다.

    퍼어어엉!!

    마나 유폭까지 일으켰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인원이 제대로 배치가 되지 않았다는 점.

    다만, 그것만으로도 요새의 병력들은 완전히 사기가 꺾였다.

    성벽의 일부는 무너져 내렸고 또 일부는 화염탄에 맞아 매캐한 연기를 뿜고 있었다.

    요새와 요새가 맞붙은 결과였다.

    "가좌아아아아!!"

    리안은 통신구에 대고 외치며 수정구를 조작했다.

    탈칵! 탈칵! 탈칵!!

    고잉미샤호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요새 안으로 강행 돌파했다.

    그러나 아무도 막는 이가 없었다.

    원래라면 부유선으로 이런 요새를 점령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요새는 지형적으로도 고지였고. 대개 부유선이 목재인 것과 달리 요새는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잉미샤호가 철갑선이라 해도 지금과 같이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근거리에서 기습적으로 타격해서다.

    "꼬맹이. 이런 막무가내 식으로 일을 저질러도 돼?"

    부선장이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후훗. 속은 놈이 바보죠. 우리가 딱히 신센롬 제국의 국기를 내리는 짓 같은 비열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 지금 신센롬 제국과 로이센 왕국은.

    "그것도 전시 중인데 말이죠. 이건 기습도 뭐도 아니고 신사적으로 공격한 거라구요. 해적답지 않게 말이죠."

    아직 휴전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겨울이 다가와 잠시 전쟁을 멈췄을 뿐.

    여전히 국제 사회는 슐 지역을 분쟁 지역 혹은 신센롬 제국의 땅으로 봤다.

    "그리고 우리는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님에게 고용된, 아니 동맹이죠."

    "그렇다면……."

    "약탈의 시간입니다. 부선장몬 아저씨. 가랏!"

    "으하하하!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잘되었어."

    부선장은 통신구의 설정을 가져와 해병 대기실에 외쳤다.

    "가~자아아!!!"

    우오오오오오!!!

    해병 대기실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쉬긴 꽤 많이 쉬었다.

    얼마 전 뒤를 밟은 네르데르의 요원 기사 5기를 제압한 것 말고는 말이다.

    콰과과광!!

    고잉미샤호가 이번에는 사방으로 마포를 뿜었다.

    적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위시용이었다.

    부르르르!!!

    다섯 기의 오토호스가 고잉미샤호에서 내린 널판자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그 뒤로 재빠른 움직임의 해적들이 약탈을 하듯 쏟아져 나온다.

    "사령관님!! 정신 차리십시오!!"

    부관이 여전히 넋을 놓고 있는 요새의 사령관을 깨웠다.

    적들은 이미 관문을 넘어 요새 안으로 진입한 상태다.

    "뭐냐. 이건 꿈이 아니었단 말이던가?"

    "빨리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니까……."

    요새 사령관은 여전히 사고가 틱틱 끊겼다.

    "빨리요! 사령관님. 지금……."

    타다다다당!!!

    마총 소리가 콩 볶듯 이어졌다.

    간헐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펑! 펑! 펑!!!

    고잉미샤호는 아군이 없는 먼 곳으로 마포를 뿜어 대며 적을 위협했다.

    "도… 도망. 아니, 퇴각한다."

    "아직 병력이 있습니다. 겨우 부유함 한 척 입니다. 우리 로이센 왕국의… 컥!!"

    탕!!!

    마총 소리와 함께 부관이 쓰러졌다.

    벌써 여기까지 적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여기!! 적 사령관이다."

    해적 하나가 소리쳤다.

    전투 중이지 않은 적 몇몇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히이이익!!!"

    부관이 쓰러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걸까?

    사령관은 그대로 요새의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철썩!!

    거대한 몸과는 달리 제법 날렵한 몸놀림으로 착지한다.

    그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렁인다.

    "도… 도망. 아니, 황제께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

    그는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속도에 아무도 그 뒤를 쫓지 못했다.

    "젠장!! 사령관이 도망간다!!!"

    지휘관과 부관이 사라지자 병사들의 사기는 완전히 꺾였다.

    리안은 뒤늦게 고잉미샤호 밖으로 나와서는 갑판 위에서 마총을 들어 마구 쐈다.

    "휴우. 애송이. 그래 가지고 맞냐?"

    항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권총은 살상 사거리가 짧고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냥 기분이라구요."

    이미 주변은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딱히 리안과 친위대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후~~!"

    리안은 마권총의 아지랑이를 입김으로 불었다.

    그걸 본 항법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 * *

    "하나앗. 둘. 셋… 넷!"

    전투가 끝나고 인원 파악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배 위에서 출발한 뒤에나 하는 행사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땅 위에서 했다.

    "일 조. 이상 무!"

    "이 조. 다 왔쑤다!"

    "삼 조……."

    너무 일방적인 공격이라 사상자가 전혀 없었다.

    다친 사람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래 봐야 경상.

    가장 심한 부상자는 적을 쫓다가 잘못 디뎌 계단에서 구른 사람일 정도.

    "으하하하! 이것이 바로 위대한 전략가!"

    "애송이. 겨우 요새 하나 박살 냈는데, 무슨 전략가야."

    "흐흐흐. 이건 위대한 대전략을 위한 복선이죠. 이미 작은 공은 쏴졌어요!!"

    흥분한 리안이 주먹을 불끈 쥐며 가볍게 앞으로 내밀었을때… 이미 항법사는 지도를 주섬주섬 챙겨서 말없이 고잉미샤호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의 품에는 요새에서 발견된 슐 지역의 더 상세한 지도들이 안겨 있었다.

    "에잇. 본좌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었는뎃."

    "그래서 꼬맹이. 저놈들은?"

    부선장이 한쪽에 포박되어 있는 포로들을 가리켰다.

    "걍. 내버려 둬요."

    "아까운데……."

    해적의 눈에 건장한 사내는 훌륭한 노예로 보일 거다.

    그것도 돈이 짭짤한.

    "물건 실을 자리도 없는데, 데려가서 뭐 하게요. 트리아에 데려가서 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일반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다.

    거의 모든 율 대륙에서.

    범죄나. 돈을 갚지 못하거나. 전쟁 중 상대국과의 협상에도 몸값을 지불받지 못하거나. 율 대륙에서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는 민족이라면. 예외지만.

    당연히 이것은 잘 지켜질 리가 없었다.

    노예를 가장 많이 양산하는 것이 바로 해적들이고.

    "아서요. 저것들 군적에 올라가 있어서 꼬리가 밟혀요."

    다른 국가와 달리 로이센 왕국은 상비군이 대부분이다.

    그때그때 용병을 고용하고 징병을 하는 다른 국가와 다르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로이센 왕국의 추노병들이 괜히 악명 높은 게 아니에요."

    상비군이라지만 대우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심한 경우는 술집에서 술을 먹다 술값이 없어 곤란할 때 술값을 대신 내는 조건으로 입영서에 사인을 해버리고는 했다.

    -먹여 준다.

    -재워 준다.

    -입혀 준다. 군복 봐라 엄청 멋있지? 이걸 입고 다니면 처녀들이…….

    징병관의 이런저런 꼬임에 넘어간 순진한 청년들이다.

    막상 와 보니.

    -이건 너무 힘들잖아!

    -봉급은 왜 이렇게…….

    -동네 처녀들이 꼬인다며!!

    너무나도 다른 현실. 그러니 탈영이 없을 수는 없다.

    당연히 대부분이 잡혀 온다.

    "흠… 그건 조금 곤란하군."

    "대놓고 노예질 하다가 걸리면 악명만 높아져요."

    대부분 아니 모든 해적이 노예장사를 한다.

    다만,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걸리면 현상금이 걸린다. 꽤 세게.

    보통은 교회 측에 현상금을 걸었기에 잡으면 명예도 드높일수 있었다.

    그러니 현상금은 안 걸리는 것이 최고다.

    "자자. 빨리 물건들 챙기고. 동무들 날래날래 뜹시다요~"

    리안은 싱글벙글하며 고잉미샤호로 탑승했다.

    "들었지? 서둘러 옮겨!!"

    부선장이 명령하자 단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삐걱삐걱.

    배 측면에 붙은 도르래가 열심히 물건들을 올렸다.

    물론 가벼운 것들은 밧줄로 걸어 인력으로 끌어 올렸다.

    다른 건 몰라도 물건을 나르는 능력은 최강인 직업군이었다.

    "가자아아!!"

    고잉미샤호의 전체 스피커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오오오!!!

    해적들은 만족스러운 함성을 내질렀지만.

    남아 있는 요새의 병사들은 우울했다.

    휘이이잉~!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그들은 입고 있던 옷까지 털려 방치되었다.

    속옷을 입고 있으면 다행.

    상황을 보기 위해 요새 아래에 있는 마을 주민이 찾아오면 이것만큼 좋은 구경이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빨리 누군가 포박을 풀어 주러 왔으면 했다.

    따뜻한 날이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 * *

    로이센 프리들 국왕이 이 소식을 접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이나 눈을 끔뻑였다.

    "그러니까. 도우 주티인 남작. 내가 들은 게 맞다면 그대는 요새와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어떻게 해서든 국왕 전하께 이 소식을 빨리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판단되어……."

    그 와중에도 이곳으로 오며 어느 영주에게 오토호스까지 빌린 것처럼 보였다.

    또 그 와중에도 옷차림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대접도 잘 받으며 온 것이 아닐까?

    북부 게르 왕국 연합 지역의 영주들은 그를 귀빈 대접했을 거다.

    명목상으로는 적이지만, 이 근방 최대의 공업 지역인 슐 지역을 지키는 수문장이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냉랭한 말투.

    프리들 국왕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대한 감정을 눌러담았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다.

    전쟁에 나선 왕이 감정에 무너지면, 부하들이 동요한다.

    왕은 기뻐도 슬퍼도 감정을 쉽게 표출해선 안 된다.

    그게 그의 철학이었다.

    그때.

    "국왕 전하!! 전보입니다. 슐 지역에 무장 부유선이 나타나 군사 요충지를 습격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세계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통신 마법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빨랐다.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행군하는 군대의 경우에는 중간중간 오토호스를 탄 전령이 움직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모든 거리를 사람이 주파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후… 들었나. 남작! 그대가 도주할 곳은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슐 지역에 군사 요충지였어! 꼭 도주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말이야."

    "그… 그것은……."

    도우 주티인 남작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이곳에 도착했을 때 국왕은 조금 더 빨리 고잉미샤호의 등장을 전해 들었던 거다.

    지금은 그가 모르는 아주 다른 소식이 빠르게 업데이트 중이다.

    "그대는 군법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저… 전하!!"

    "아마도 판결은 사형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아마도 그리 되게끔 프리들 국왕이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나마 다른 나라의 왕이었다면 즉결 참수를 시켰을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아주 이성적인 왕이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끌고 나가."

    "사…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전하!! 전하아아."

    그는 막사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프리들 대왕은 한숨을 쉬었다.

    "무능하고 또 무능해."

    "우리 로이센 왕국에 몇 없는 귀족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무능하다는 거지. 사관 학교도 나오지 않은 놈을 귀족이란 이유로 요새 지휘관으로 앉혔으니 이 사달이 날 수밖에."

    임명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중앙 집권에 성공했다 해도 그들의 입김을 무시하긴 어려우니.

    "나중에 손을 봐야겠어."

    로이센 왕국은 과거 율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던 롬의 법이 남아 있어 자녀 균등 상속이 이루어졌고.

    장자 상속과 달리 대를 이어 가며 재산이 쪼개졌기에 일정 이상의 대농장을 가진 지주가 잘 없었다.

    전체적으로 고만고만 하다고 해야 하나.

    이들을 융커라 불렀는데, 덕분에 지금의 로이센은 중앙 집권을 빠르고 강력하게 할 수 있었다.

    최초의 사관 학교를 만든 것도 이런 융커 계급을 활용한 로이센 왕국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보다 슐 지역에 병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겨우 한 척의 부유선에 당할 수 있는 거지?"

    부유선은 만능이 아니다.

    다닐 수 있는 길은 한정이 되어 있고. 매복에 매우 취약하다.

    길을 막아 버리면 멈춰 설 수밖에 없고. 속도가 빠르면 처박혀 전복해 버리기도 했다.

    안정적으로 멈춰 서면 그때는 숨겨 둔 마포로 때리거나, 다수의 병력으로 함락시켜도 된다.

    "그게……."

    * * *

    리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는야 홍길동."

    고잉미샤호는 슐 지역에 입성한 뒤 또다시 길을 이탈해 엉뚱한 곳으로 갔다.

    역시나 밤을 틈타 움직였는데.

    노을이 깔린 산 아래로 보이는 것은 커달나 강이 흐르는 대도시.

    슐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곳이었다.

    "설마… 저기를 가려는 것은 아니지?"

    항법사가 한숨을 쉬었다.

    도시의 외곽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부유선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장애물들로 막혀 있었고. 도시와 제법 먼 곳에 부유선 선착장이 있었다.

    도시에서 생산된 물건들은 말이 끄는 수레에 실려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듯 보였다.

    부유함이 들어갈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리안은 자신만만했다.

    "흐흐흐… 먼 과거 이곳은 해적들에게 털린 적이 있는 곳이죠."

    "응? 저 강을 말하는 거야? 아무리 넓어 보여도 부유함이 지나가기엔 턱도 없어."

    더군다나 강 입구에는 아치형으로 된 다리 겸 성벽이 있었다.

    < 5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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