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빌럼아 오린녜 통령은 씩씩거리며 개인 서재로 들어왔다.
잠시 후 비서와 집사는 물론 총리까지 들어왔다.
국가 비상사태다.
"왜 그러십니까? 통령 각하."
"후… 건방진 제국의 이 황자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마차에서 단 한 마디도 입을 떼지 않던 제국의 이 황자였다.
그 음흉한 미소를 가진 꼬마가 말하는 대로 그냥 뒀다.
아직도 이가 갈릴 지경.
당연히 부하들은 마차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그보다 통령 각하의 개인 저택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외부 시선상 좋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칫 우리 공화국과 신센롬 제국과의 관계를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네르데르 공화국은 작은 나라이다.
주변 나라들에게 신센롬 제국과의 적이라는 이미지로 비호를 받는 처지.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특히나 바로 옆에는 최근 호전적으로 급부상한 로이센 왕국이 있지 않는가.
"최대한 달래서 보내는 수밖에."
"혹시 제국의 황자 측에서 원하는 것을 내비치지 않았습니까? 굳이 통령 각하의 개인 저택으로 온 것은 뭔가 원하는 게 있기에 그런 것이……."
통령은 이걸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식사를 할 땐 수준급 연주자가 있으면 좋겠다더군."
"……."
"……."
신하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더 발런 거리에서 한동안 유흥을 즐기고 싶다더군."
저들이 절대 네르다르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답답했던 총리와 집사가 입을 열었다.
"일단 만찬에서 달래 보죠. 급한 것은 연주인데……."
"제국의 황자쯤 되면, 웬만한 연주자로는 만족을 못 할 텐데……."
이런 걸로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수소문하려면 최소한 하루는 걸립니다. 지금 이름 있는 음악가들이 전부 로이센에 가 있습니다."
젊고 예쁜 여자 연주자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벽에 막혔다.
"갑자기 그곳에는 왜?!"
"거기 예술 대학이 다시 문을 연 터라. 초청받거나 교수로……."
지금의 로이센 왕의 조부가 문을 열고. 아버지가 폐쇄한 그 예술 대학을 손자가 다시 문을 연 것이다.
"로이센 왕가는 참으로 골 때리는 집안이군."
"지금 왕은 조부의 예술성과 아버지의 야심을 모두 물려받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이……."
그렇다.
하필이면 지금 네르데르의 수도에 수준급 음악가가 남아 있질 않다는 것.
"아! 그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음???"
있다.
생각해 보니까 있긴 있었다.
"그… 통령 각하께서 재능이 아깝다고 납치… 아니 후원하겠다며 데려온……"
전쟁을 위해 행군하던 길이었다.
보급을 위해 한 작은 도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고. 후원을 명목으로 데려온 상태다.
"그 아이는 아직… 어리네. 황자가 있는 만찬 자리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딱 부합하는 조건이다.
젊고 예쁜 여자 연주자.
"검증된 연주자라고는 그 아이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의 스승도 확실하고."
한 번씩 측근들을 집에 불러 그 아이의 노래와 연주 실력을 자랑하던 오린녜 통령이었다.
그 아이를 본 사람들은 다들 크면 미녀가 될 것이라며 양녀로 들이라 조언했다.
물론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후… 어쩔 수 없군."
연주가가 뭐라고.
이런 작은 요청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이 황자가 본국으로 돌아가서 소문을 낼지 모른다.
빌럼아 오린녜 통령은 속이 좁아 귀빈 대우를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 * *
한 소녀가 탁자에 쓰러질 듯 엎드려 있다.
우울한 표정.
"집에 돌아가고 싶다……."
소녀는 고향이 그리웠다.
다만,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며 계속 붙잡아 놓는 통령.
국민들은 모두가 그를 칭송하지만, 그녀만큼은 아니었다.
철컥!
그때 문을 급히 열고 들어오는 하녀.
"민 아가씨. 연주할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뭐? 오늘은 각하께서 집에 오지 않는 날 아니야?"
"그게… 민 아가씨께서 씻는 동안 귀빈이 방문했어요."
그냥 귀빈도 아니라.
"놀라지 마세요. 무려 제국의 이 황자께서 오셨어요."
"뭐어?! 지금 나에게 황자님의 앞에서 연주를 하라는 거야?!!"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수백 명의 관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이미 명령이 떨어졌어요. 자상한 통령 각하시지만, 한번 정하신 일은 번복하시는 일이 없으시니……."
"설마 나를… 제국에 팔아넘기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이러려고 나를……."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신의 역할은 고급 창녀였던가?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답답한데, 제국의 황궁으로 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저 부유한 평민 집안의 말괄량이 딸일 뿐이었다.
* * *
실종된 제국의 이 황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먼저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가장 놀란 것은 신센롬 제국에서 파견된 공사다.
-이 황자님은 지금 만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환형 연회에서 뵙겠다 하십니다.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실종되었던 이 황자가 나타난 것도 놀랄운데, 그 장소가 네르데르라니.
그것도 모자라 열강들의 이름으로 호송되는 중이었다.
'난 들은 것이 없다고!'
본국에서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 잉글슨 왕국에서 스랑 제국에 알리긴 했지만, 북해를 거쳐서 갈 줄은 아무도 상상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급조한 자리에 다들 이렇게 참석해 주시다니. 참으로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황자는 손님들을 향해 정중하고 품격 있게 인사를 했다.
그걸 본 빌럼아 통령은 경악했다.
'나에게는 저런 격식을 차리지 않았잖아.'
더 나아가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우리의 형제인 네르데르 공화국의 통령 빌럼아 오린녜 공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 입니다. 마차에서의 대화는 유익했습니다."
그 말에 오리녜 통령은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말이던가.
그동안 네르데르 공화국은 노선을 확실히 정해왔다.
이 황자의 오늘 저 발언으로 시선을 달리할 나라들이 꽤 있었다.
제국이 이 황자를 보내 밀월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애당초 마차에서는 황자와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그 빌어먹을 꼬마와 하등 쓸모없는…….
"마지막으로 저를 호위 중이신 리안 백작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레온 백작은 저를 호송하느라 몸이 상해 요양중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웃기게도 리안이 없는 자리에서 리안의 공식적인 데뷔다.
그것도 율 대륙 서쪽 구석에 있는 변방의 백작이 머나먼 북동쪽 국가에서 말이다.
-레온? 그게 어디에 붙은 곳이야?
-그런 곳도 있었나?
-어디 변방의 시골 백작이겠지.
-듣기로는 어린아이라던데… 거참.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호송하다니..
여기 사람들은 레온 백작령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머나먼 이곳에서는 백작인지 백작 주장자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백작이라 말하니 그냥 백작이겠거니 받아들이는 거다.
-그보다 저 뒤의 귀부인은 누구지?
-아름답군. 기품이 넘쳐.
-결혼을 했겠지?
-어떻게 오늘 안 되나? 조금 있다가 한번 말이나 걸어 봐야겠군.
사람들의 관심사는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일개 부유한 상인의 딸이 백작가의 정식 후첩이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
'백작 부인이 있어서 다행인가? 확실히 저리 꾸며 놓으니 인물이 살긴 사네.'
리안이 환영 연회에 백작 부인 케네이나를 데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지금 이 황자의 행색을 한 것은 이 황자가 아니라 리안이었다.
'흐흐흐. 달의 가면을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다니.'
신물급 마도구였기에 소드마스터가 와도 만져 보기 전엔 모른다.
조금의 이질감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만.
진짜 걱정은 파티였다.
인사 때 예법은 반복 연습해서 어찌어찌한다 해도 말이다.
-어머니. 최대한 이 황자께 사람들이 접근하는 걸 막아 주세요.
-어려울 텐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망생 거지 게임돌이 사회 부적격자였던 리안은 이런 파티 자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퇴직금으로 연명하던 삶이라 얼마 안 하던 게임 아이템에도 덜덜 손을 떨어야 했던.
역시 방패가 필요했다.
케이아나는 사교계 레벨이 높은 편이니까.
"호호호. 반가워요. 스랑 제국의 대사님이시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기품이……."
"시리다 왕국 공사님의 위명은……."
"나폴리부……."
그녀는 파티 내내 레오폴트와 리안에게 쏠리는 관심을 온 몸을 던져 육탄 방어했다.
어그로 하나는 타고났다.
가슴이 시맣게 파인 옷을 입은 것도 그 이유로 보였다.
아주 작정을 하고 '오늘 밤 어때?'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게 또 웃긴 것이 경박하지 않고 품격 있었다.
"아아… 제 남편은 안타깝게도… 먼저… 떠나보내……."
미망인 행세를 하며 미인계를 풀풀 풍기며.
몇몇 공사들과는 눈빛으로 교감을 쌓기도 하는 중이었다.
'설마 오늘 내 형제가 탄생하지는 않겠지?'
딱히 상관은 없다.
형제로 인정되지는 않으니까.
백작 부인은 친어머니가 아니고 계승권은 부계 혈통에 있으니.
"레온 백작령이요? 그곳은 브루타뉴 공국의……."
그 외에도 리안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 아들이 대리전을 치르고 있지만… 리안 백작이 돌아간다면 마땅히 모든 권리를……."
깔끔하게 지지 선언도 해 줬다.
웃기는 것은 아마도 지금쯤이면 후계 전쟁에서 승기를 보이고 있을 거다.
전쟁은 금력이고 그녀의 집안은 상인이기에.
이미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다만, 나이가 어려서 외삼촌이 대리 청정을 할 텐데…….
자기 누이가 리안을 지지한다는 이 뜬금없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리안이 아무리 다른 땅을 먹어도 기반은 레온 백작령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귀족으로서의 정통성 때문이다.
고향 땅이 무슨 성지도 아니고. 그곳을 가지지 않으면 백성들의 지지율에 마이너스 보정을 받았다.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게임이다.
실제로 그것이 현실에 적용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작 부인도 그랬다.
최근 은연 중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작은어머니. 혹시 노예 낙인이 없는 상태에서 레온으로 돌아가면 어쩔 생각이었어요?
-호호호. 어쩌긴 뭘 어째. 할 수 있는 최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야지. 네게 겁탈당했다며 자살 소동 정도는 해 줬어야지. 네가 가족에게만 이성을 느끼는 이상 성애자라고 말이야. 호호호.
백작 부인은 그런 여자였다.
아무리 예법에 능하고 기품이 있다 해도 이익을 위해선 명예따위는 개나 줘 버리는 상인의 딸.
아니. 이익이 없어도 복수를 위해서면 뭐든 하는 악독한 성격이랄까.
아무리 어르고 달래서 데려간다 해도 결국에는 저런 식으로 나왔을 거다.
그렇다고 계속 감금을 해 놓을 수 없고. 결국 공식 석상에서 사고를 쳤겠지.
그렇다고 그냥 죽여 버리면 평생을 '친족 살해자' 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을 거고.
그것은 <캐릭터 계승>으로 유능한 부하를 가지고 시작한 2회차, 3회차에서조차도 게임을 반쯤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대략 50회차 정도는 되어야 저런 패널티를 즐길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없는 리안에게는 최악의 패널티다.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노예 낙인을 통한 세뇌밖에 답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써먹을 때가 참 많았다.
노예가 되었지만, 본인도 진심(?)으로 만족하는 모양이고.
띠리링~ 띵~ 띵~ 띵~~!
조금 숨을 돌리니 노랫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관심을 백작 부인이 막아 주니 리안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저 애네. 흐리아 민.'
리안이 탐을 내는 아이다.
오린녜 통령이 가두고 키우는 노래하는 새.
'괜히 인기 여캐 5인방이 아니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리안이 네르데르를 거쳐서 가는 가장 큰 이유다.
생머리 금발을 차분히 묶은 청순한 느낌과는 달리 <타락한 음악가>라는 이명을 가지게 될 SR급 네임드다.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나는 사랑에 빠졌다네.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
그녀는 하프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맑고 고운 목소리가 연회장을 뒤덮었다.
이야기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시끄럽던 연회장에 고요가 찾아왔다.
목소리에는 호소력과 애달픔이 녹아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내 사랑은 영원하리.]
실제로 그녀의 소꿉친구는 암테르담으로 그녀를 찾아오는 길에 객사한다.
어린 나이에 별 준비도 없이 여행을 감행한 대가다.
이 세계는 어린아이가 여행을 낭만으로 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그때 이후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따각따각!
사람들이 그녀에게 홀려 있을 때.
그 틈을 타서 신센롬 제국의 공사관이 조용히 접근했다.
"황자님…! 저 기억하십니까?!"
어떻게 알겠냐만.
"오오. 공사 오랜만이네요."
"응? 네에…. 이 황자님. 안 본 사이에 뭔가… 분위기가 좀 활기차지셨네요."
당연히 레오폴트가 아니라 리안이니까.
뾰족한 귀는 가발을 써서 가렸다.
어린 귀족은 잘 쓰지 않지만… 무려 제국의 황자가 쓰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체격도 조금……."
"인사는 차차 하고. 일단 귀 좀."
리안이 손가락을 살랑살랑 까딱였다.
아주 무례한 행동인데, 딱히 자각이 없었다.
아니. 신경을 안 쓰는 게 맞을 거다.
레오폴트의 훗날 이미지 따위야 알 바 아니니.
"가… 갑자기 왜……."
그러면서도 가까이 붙는 공사관.
리안은 나지막이 그에게 전달했다.
"어머니께 곧 가겠다고 전달해 주세요. 선물을 가지고."
"네?! 그게 무슨……."
"슐 지역 아래에 있는 레지안 지역으로 말이죠."
"……?"
공사는 리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사님. 저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어요. 매일. 매일 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나라가 약해서 내가 납치를 당한 것이 아닌가. 흐으으윽."
리안은 공사관이 안 보는 사이 침을 잽싸게 눈가에 묻혔다.
귓속말을 하는 중이라 사각지대가 많았다.
"가… 갑자기. 여기서 이러시면……."
"대규모 군대의 사열을 받고 싶어요."
"하필이면 왜 그곳에서… 차라리 수도에서 사열을……."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서는… 그러니 그곳이 아니면 안돼요. 꼭! 꼭! 그곳에서 대규모 군대의 사열을 받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심해져……"
공사관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여린 마음을 가진 이 황자를 보아 왔다.
'얼마나 고초를 겪으셨으면……'
지금 신센롬 제국의 일 황자가 몸이 좋지 않다.
어쩌면 이 황자가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이 황자가 마음의 병을 얻으면 그것만큼 곤란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그리고 꼭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훈련받은 우리 요원이 지금 즉시 움직일 겁니다."
리안의 강한 어조에 공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이곳은 가상의 적국이다.
황가의 사적인 일을 타국에 알릴 수 없다.
그 사적인 일에 군대가 동원되는 것이 알려지는 것도 우스운일이고.
"지금 당장 전하세요. 저는 군대를 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전하!!"
공사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어서 알려아겠다.'
제국의 공사는 빠르게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었네. 영영~ 볼 수 없었네…….]
노래가 끝났다.
짝짝짝짝!!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열혈한 박수로 보답했다.
리안도 적당히 박수를 치다가 조금은 껄렁하게 우유 잔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레이디 민!"
그리고 그녀를 불렀다.
"잠시 시간을 조금 내어 주시죠."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마침 이 황자와 또래.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그녀에게 사랑이 빠지는 것은 이상할일이 아니었다.
'젠장!!'
요린녜 통령은 그걸 보며 속으로 욕을 했다.
그렇다고 막을 명분은 없다.
어린 두 남녀가 이야기를 좀 나누겠다는데, 그걸 막아서는 것이 더 이상했다.
끼리리~ 철컹!
리안은 그녀를 데리고 발코니로 나왔다.
밖에서는 어린 두 선남선녀의 만남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물론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을 거다.
"화… 황자님을 뵙습니다……."
그녀는 중압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다른 손으로 겨우 붙잡고 있었다.
"흐리아 민."
"네. 황자님……."
이대로 황자에게 끌려가면 어떻게 하나 끔찍한 생각도 했다.
황자의 장난감으로 놀려지다가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그런 비사쯤은 널리고 널렸다.
"캬~ 달빛이 죽이는 밤이네."
리안은 발코니의 난가넹 팔을 삐딱하게 기댔다. 그리고 술을 마시듯 우유 한 잔을 마셨다.
"……?!!"
흐리아 민은 리안의 이상한 행동에 눈만 꿈뻑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리안의 폭탄선언.
"내 배에 타지 않겠어? 대우는 최상급으로 맞춰 드릴게."
"화… 황자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리안은 깜빡했다는 듯이 그녀의 가까이에 가서 가면을 벗었다.
"허어어업!!"
놀란 그녀가 헛숨을 들이켰다.
<5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