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고잉미샤호는 바다로 나와 즉시 남쪽으로 이동했다.
쏴아아아!
해협!
좌측에는 잉글슨 본섬이고. 우측은 아일리 섬이었다.
워낙 두 섬이 가깝다 보니 마치 거대한 강을 타고 이동하는 느낌이다.
"꼬마. 이제 남동쪽으로 이동할 건가? 아직 스랑과 잉글슨이 전쟁 중이니 이벨 왕국 쪽 원해로 해서 크게 돌아가야겠군."
해협을 지나 큰 바다로 나오자 항법사가 물었다.
"훗! 동쪽으로 갈 건데요."
여기서 동쪽이면 북해다.
신세롬 제국은 두 개의 바다를 끼고 있었는데, 북해와 남쪽의 중해였다.
"뭐?! 설마 모르는 게냐?"
"뭘요?"
"신센롬 제국의 북쪽에 자리 잡은 로이센 왕국 말이다."
로이센 왕국은 원래 신센롬 제국의 연방국 중 하나로서 공국에 불과했다.
그런 나라가 조금씩 땅을 넓히며 힘을 길러 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내 30년 전쟁 때 신센롬 제국의 뒤통수를 때렸다.
바로 내전 중이던 틈을 타서 신센롬 최대 공업지역인 슐지역을 강제로 편입해 버린 것.
그러고는 신센롬 제국의 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지금 신센롬 제국의 주적이 바로 로이센 왕국이다.
"아~ 그래서 가는 건데요?"
게르 왕국연합도 신센롬 제국의 연방이다.
게르민족들이 세운 크고 작은 국가들을 싸잡아 부르는 집단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30년 전쟁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인구의 1/3이 날아가 골골대고 있는 중.
"그래서라니! 위험하다. 이 배에는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님이 타고 있지 않더냐."
다시 말해서 신센롬 제국의 적국인 로이센 왕국이 작정하고 달려드면, 게르 왕국 연합이 막아내질 못한다.
그냥 프리 패스랄까.
"로이센 녀석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다."
게르 왕국연합은 딱히 막아 줄 의지도 없을 거다.
30년 전쟁으로 인해서 신센롬 제국의 지배력이 대부분 상실한 상태.
그냥 신센롬 제국이란 이름에 발만 걸치고 있는 상태다.
"거참. 그러니까 가는 거라니까요. 흐흐."
항법사는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북해로 진입해서 신센롬 제국의 수도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로이센 왕국의 옆을 스쳐 지나가야 하기 때문.
"아니. 왜. 안전한 길을 놔두고……."
빙빙 둘러가지만 안전한 길이 있었다.
바로 서해를 지나서 ->
중해로 간 다음 ->
깊게 들어가면 ->
신센롬 제국의 남쪽 바다가 나온다.
"너무 멀어요. 일정 맞추기도 빡빡하고."
"그러게 아일리 섬에서 그렇게 일을 저지른다냐."
"인생은 바쁘게 살아야죠. 허비해선 곤란합니다. 흐흐."
리안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항법사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아직 살날이 훨씬 많이 남은 어린 녀석이 무슨 그런 말을… 그보다 게르 왕국 연합 그 녀석들도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최악은 로이센에 붙을 수도 있어."
신센롬 제국은 말이 제국이지 중앙 집권 국가가 아니다.
그냥 적당히 이득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집단에 불과하다.
아파트 부녀회장보다 조금 나은 수준.
"그들의 충성도를 시험해 보기에 딱이겠네요. 흐흐."
"에휴~ 도대체 꼬마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든 것인지. 선장은 너이니 마음대로 해라."
항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꼬마 놈! 또 뭘 꾸미는 거냐:? 아일리 섬에서 그 난리를 쳐 놓고선……!"
다만 부선장은 질색한 얼굴을 했다.
이미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온 상태다.
아마 다시 아일리 섬으로 들어갈 때쯤이면…….
"뭘 꾸며요. 누굴 사탄으로 아나."
"사탄도 네게 왔다가는 울고 가겠지."
"저는 그냥 부지런히 움직일 뿐이라구요. 우리 해적 단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두 번만 부지런했다간 율 대륙 전체가 전쟁통이 되겠네."
정답이다.
리안이 원하는 것이 바로 저것.
정신 놓은 어린아이 행세에 과몰입을 하는 이유였다.
절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선 안 된다.
억지로라도 머리에 나사를 풀어야 한다.
'평범하게 행동했다간 미션 임파서블이지.'
사실 이 세계는 그러니까 게임으로 치자면, 1차 클리어 미션을 한 세대 만에 깨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대륙 하나를 통일하는 데만 최소 몇 세대가 걸린다.
리안의 목표는 다른 대륙도 아니고 군사력이 가장 강한 율 대륙을 통일하는 것이고.
'어리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시도도 안 했다.'
그랬다면 적당한 곳을 먹고 눌러앉아 왕 노릇이나 하며 즐겼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늙어 죽기에는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이 너무 아까웠다.
망생 겜돌이 인생은 한 번으로 족했다.
그렇기에 1차 보상의 기준인 율 대륙을 먹어 보기로 결심한 것.
'개판이 되어야 한 세대 만에 뭘 하든지 하지!'
역시나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왕 율 대륙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라도 더 해 놓고 와야지.
* * *
한편 잉글슨의 수도 런더르의 통신부는 바빠졌다.
당연히 그럴 것이.
-신센롬 제국 이 황자를 태운 고잉미샤호 신센롬 제국으로 출발.
도착하자마자 곧장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놈들은 왜?! 뭐가 급해서."
잉글슨 왕국의 통신부는 그걸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수도의 통신 마도구는 스랑 제국과의 전쟁 상황을 받아보는 것도 벅찬 상황.
"어떻게 합니까? 장관님. 신센롬 제국의 수도까지 장거리 통신 마법을 연결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장관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해. 하루에 조금씩 모아서 보내면 되지. 어차피 우리가 예상했던 일정보다 며칠 빨리 출발했을 뿐이야."
"하긴. 서해를 거쳐 중해로 들어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테니 며칠 오차라 해 봐야 별일 아니군요."
그들은 몰랐다.
고잉미샤호가 중해가 아닌 북해를 통해 신센롬 제국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사실을…….
며칠의 오차 따위가 아니었다.
* * *
타다다닥! 탁탁!
샤토르 베리가 망원경 아티팩트를 조작했다.
"항구다아아아~! 항구예요오오~~!!"
오늘도 파수대에서 놀고 있던 그녀.
오늘도 탐탁지 않아 하는 파수병.
"이제 여기 근무는 끝났잖아!"
파수병은 히스테릭을 부렸다.
이는 교대근무를 하는 다른 파수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녀석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음아~ 여기가 가장 재미난걸요."
눈앞 붉은 머리의 소녀 때문이었다.
파수병은 어떻게서든 평화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재미난 걸 알려 주지."
"이곳보다 더 재미난 곳이 있다구요?"
"다른 단원들 말을 들어 보면, 화포를 쏘는 게 그리 재밌다더군. 빵빵 터지는 쾌감에. 휘리릭! 탁! 하고 목표에 맞는 그 짜릿함!!!"
"호오~~"
샤토르 베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아. 그전에 보고를 먼저 해야지."
-Trrrr
곧장 선교로 보고를 했다.
[여기는 파수대. 목표인 암테르담 항구가 보인다.]
고잉미샤호는 게르 왕국 연합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네르데르 공화국의 수도인 암테르담으로 향했다.
항법사는 오히려 더 불안해했지만.
"도대체 여기는 왜?!"
"연극도 예고편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왔다는 걸 알려야 상대도 움직일 거 아니에요! 우리 총질을 안 한 지 꽤 된것 같은데…흐흐."
멍한 표정을 짓는 항법사.
"꼬마!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네르다르에서 며칠 대접을 좀 받다가 슐 지역으로 가서 총질을 좀 하고 갈 거예요. 그럼 로이센도 우리가 온 걸 알겠죠?"
항법사는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소식이 전해지기 전 빠르게 이동하지는 못할 망정…….
"미친……!"
항법사는 바다가 아닌 육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더군다나 율 대륙의 동쪽 방면은 자주 활동하는 지역도 아니다.
다만.
"지금 슐 지역은 로이센이 점거하고 있다고!! 그 말은 적국의 한가운데로……."
"그러니까 그쪽으로 가야죠!! 우리 이 황자님의 미래를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요."
이것 또한 테리지아 여제를 위한 선물이다.
그것도 아주 큰.
그녀는 지금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중이다.
꿈에서도 뒤통수를 때린 로이센 왕국의 꿈을 꾼단다.
날이 풀리고 병력이 준비되면 곧장 슐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리고 80% 확률로 확전된다.
'80%는 섭하지.'
리안은 무조건 싸움을 붙일 생각이다.
그래야 율 대륙 전체가 또 달려들지.
"바로 상징성! 이름하여 '왕의 로드'. 아니구나. 좀 이상해도 '황자의 로드' 정도가 적당하려나. 아님 '황자의 귀환 길'? 음……."
이상한 걸로 고민하는 리안을 보며 항법사는 그냥 정신을 놔버렸다.
"그냥 '황자 길' 이라 하면 될 것 같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저러는지 도무지 그의 머리로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냥 생각하는 걸 포기하는 것이 심장에 좋을 것 같다.
"오오! 단순해서 좋네요. 항법사 아저씨. 땡큐!"
항법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바다 항로가 아닌 육지의 길이다.
다행히 고잉미샤호는 스랑 제국의 군함이었고 지도도 제법 많았다.
스랑 제국도 30년 전쟁에 참여했기에 책으로 묶은 지도에 신센롬 제국 편도 있었다.
"그보다 우리 황자님은 뭐 하려나. 마법사 삼촌. 불러 주세요."
"알겠어."
Trrrrr~
마법사 포트의 호출에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폴트가 선교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긴장 풀어. 요. 황자님."
"고향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잠이 안 와서요."
로이센 왕국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오히려 다른 것이 걱정인 모양.
"네르다르 공화국은 30년 전쟁 때 적국이었다고 들었는데… 저를 반겨 줄지 모르겠어요."
"걱정이 심하네. 전혀 문제없어. 요. 오히려 극진히 대접할걸.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마 그리될 것이다.
"그보다. 통령이 대접하려고 하면, 궁이 아니라 개인 저택에서 밥이나 먹자 해. 요."
"네? 그걸 허락하겠어요? 완전히 사적인 공간일 텐데."
"저들은 거절하지 못하지. 요."
무슨 배짱으로 거절하겠는가.
이미 전쟁은 끝났고 더 이상 적국이 아니다.
물로 가상 적국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런데… 그건 왜……."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사람이 거기에 있거든. 요."
"선장님께 중요한 사람이요?"
"네. 워라벨을 위해 꼭 사람이죠. 그러니 그 사람을 얻는 데 도와주시길."
리안의 말에 레오폴트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폴트는 여전히 리안에게 감히 거절할 생각을 못 했다.
"하… 설마. 얻어야 하는 사람 때문에 이쪽으로 온 건가… 애송이. 진짜 들어갈 거야?"
항법사가 지도를 보다 말고 고개를 슬쩍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샛길로 적당히 지나가는 방법도 있다.
아무리 봐도 나 여기 있소 하며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당연하죠. 그리고 꼭 사람 때문은 아니라고요. 얻고 싶은 물건도 있어요."
항법사를 제외한 다른 해적들은 아직 잘 모른다.
국제 관계 따위에 관심이 없거니와 이곳은 북해다. 완전히 다른 활동 무대.
그러니 지금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샤아아아~!
고잉미샤호는 그대로 네르데르 공화국의 수도인 암테르담 항구로 입항했다.
항구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신센롬 제국의 국기가?! 저 나라의 군함이 여긴 왜……."
참고로 네르데르 공화국과 신센롬 제국의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이가 나쁘다.
바로 종교와 정치 체계의 문제 때문이다.
표면상 30년 전쟁은 종교 문제였다.
딱히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같은 쥬(태양 신)를 믿지만 받아들이는 교리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젠장! 설마 이벨 왕국에서 보낸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놈들이 왜!"
갑자기 저 멀리 율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인 이벨 왕국이 왜 나오냐고?
그것은 바로 이벨 왕국의 최대 우방국이 신센롬 제국이기 때문이었다.
이벨 왕국의 국왕과 신센롬 제국의 황제 모두 하브스 가문의 사람이니 당연하달까.
30년 전쟁 때도 둘은 동맹이었고.
이벨 왕국은 율 대륙 중심에 영향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공공연하게 네르데르 공화국을 식민지로 삼길 원했다.
네르다르 입장에선 어쩌겠는가. 아주 대놓고 자신들을 노리는데.
당연히 신센롬 제국을 가상 적국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저건 또 무슨 깃발이지?"
고잉미샤호의 깃대에는 신센롬 제국의 국기 외에도 리안의 외가인 아트로네 깃발이 함께 계양 되어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항구로 들어올 모양인가 봐!"
"젠장. 알려야 해."
바다를 관찰하는 등대에서 긴급을 알리는 종이 경박하게 울렸다.
땡! 땡! 땡! 땡!
<5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