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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7화 (17/253)
  • 17화

    ##017

    군함만 제외하고는 어떤 배든 환영하는 항구.

    스랑 제국의 군함이었던 고잉미샤호는 이제 당당히 해적 섬 소이작에 입항할

    수 있었다.

    “오오.”

    리안은 감탄을 내뱉었다.

    게임에서 대충 그려진 일러스트로 한 장으로 보다가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하나.

    가파른 섬이었기에 계단처럼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해적 섬이었기에 건물들이 칙칙했지만, 의외로 고즈넉한 것이 전체적으로 분

    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철컹!

    배가 항구에 닿자 칙칙하고 고요해 보이던 항구는 사람도 많고 제법 활기찼다.

    사람들의 대화 절반이 욕이었지만.

    “이봐. 쟈키! 우리 배 물건 좀 채워 줘.”

    보급을 담당하는 세바스가 부두 관리인에게 외쳤다.

    욕설이 난무하는 주변 사운드와 대비되게 점잖은 목소리였다.

    “오우! 올몬드 해적단, 새로 배를 뽑은 거야? 때깔이 장난 아니네.”

    “뭐. 선장도 완전 새 걸로 뽑았지만.”

    “반란이라도 일으킨 거야? 너네 같은 지역 출신 아니었어?”

    “반란은 아니고.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 여기 적힌 대로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고객님.”

    이리저리 서류가 오갔고 얼마 가지 않아 하선이 허락되었다.

    와아아아아!!!

    선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배에 남은 선원들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뽑기를 잘못했을 터다.

    배를 그냥 둘 수 없었기에 절반의 인원이 남겨졌다.

    일부도 아니고 절반이나 남는 이유.

    허술하게 관리했다가 배를 털어 가거나 배 자체를 훔쳐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란다.

    해적왕이 이 섬을 관리하지만, 그렇다고 경찰은 아니다.

    물의를 일으킨 녀석들을 응징하기도 하지만, 어설프게 배를 잃은 얼간이들에

    겐 조소만 지을 뿐.

    “바로 아지트로 갈 거냐?”

    “당연하죠.”

    리안도 스랑 제국과 잉글슨 왕국의 해전에 참전하기로 했다.

    해적왕과 교섭을 조건으로 20골든 외에 섬의 아지트를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해적왕은 해적섬의 건물들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땅도 좁은 데 유동 인구는 많았다.

    다시 말해 돈이 된다.

    그러니 상업용이 아니라 개인 용지인 아지트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발요!! 살려 주세요. 말 잘 들을게요.”

    아지트로 가는 지저분한 길.

    소녀인지 소년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 반반한데. 아깝게 시리.”

    “그만큼 수질에 자신 있다는 소리겠지.”

    “출항하기 전에 한 번 들를까?! 흐흐.”

    가뜩이나 지저분한 거리에 어두침침하기까지 한 입구.

    살짝 보이는 좁고 좁은 골목 안은 형형색색의 램프들이 은은하게 어둠 속에서

    넘실거렸다.

    매춘 골목이었다.

    “기분 나쁜 곳이네요.”

    샤로트가 리안의 옷깃을 잡았다.

    ‘원래 대로 스토리가 진행되었다면, 너와 관련이 깊은 곳이니까. 잠깐 구경이

    나 하고 갈까?’

    살짝 호기심이 일기는 했다.

    물론 2차 성장이 일어나지 않은 어린 몸이라 매춘을 할 일은 없다.

    억지로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딱히 내키지 않았다.

    사제가 있는 세계지만, 성병에라도 걸리면 오랫동안 고생한다.

    자칫 저주라도 걸리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제발. 누가 절 사 주세요. 이렇게 죽기 싫어. 흐으으.”

    골목 입구로 끌려나 온 아이는 울면서 애원했다.

    아마도 본보기로 사창가 골목 입구에서 체벌을 받고 있는 듯싶었다.

    누군가 구매해 주는 이가 없다면, 장대에 걸려서 서서히 죽어 갈 것이다.

    끼리릭. 끼리릭.

    아이의 미래는 바로 옆에 있었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여인의 시체.

    마치 미라와 같았다.

    죽고 나면 피와 내장을 빼 버리고 방부 처리를 한다나.

    목에 걸린 팻말에는 가게의 이름과 문양이 적혀 있었고 손으로 골목 안을 가

    리키고 있었다.

    참으로 자극적인 마케팅이다.

    “어···?! 레오폴트?”

    순간 리안의 눈이 커졌다.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장대에 걸리고 있는 아이의 목에 있는 얼룩 때문이었다.

    “꼬맹이. 관심 있어? 딱 네 또래군.”

    부선장이 리안의 어깨를 잡았다.

    사실 시녀 샤로트나 사제 세이나는 리안보다 연상으로 보였다.

    “너무 앞으로는 가지는 마.”

    배에서 내린 이후부터 부선장은 리안의 뒤를 벗어나지 않았다.

    마치 북적거리는 곳에 놀러 간 부모를 보는 것 같았다.

    누가 리안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경이 바짝 서 있었다.

    “그동안 여자에게 관심을 안 가지셨는데··· 정말이에요? 도련님?”

    샤로트가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외모 그 자체에 대한 질투였다.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병약해 보이는 어린 소녀는······.

    “남자애야. 남자한테는 관심이 없어.”

    아니. 남자였다.

    레오폴트가 맞다면.

    “네에?!”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저 아이. 하브스가의 사람이라서 그래.”

    “하브스라구요?!!”

    스랑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신센롬 제국의 여황제인 테레지아 하브스.

    원래라면 여자는 황제가 될 수 없었지만, 어찌어찌 선제후들을 구워삶아서 여

    제에 올랐다.

    명목상 그의 남편이 황제이긴 했는데, 남편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데릴사위.

    의외로 상재가 있어서 취미로 번 (막대한)돈을 매번 그녀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손이 귀한 집안이지.”

    하브스는 근친혼으로 유전병이 심한 집안이었다.

    그녀가 여자임에도 가문의 수장이 된 이유도 그 때문.

    “저 아이. 차남이야.”

    정신이 부서진 황제. 그게 그의 이명이다.

    “아니··· 그게 무슨··· 황자라는 소리잖아요. 황자가 왜 이런 곳에······.”

    “하브스 집안사람들이 침대에서 편하게 죽는 경우는 드물어.”

    그들이 근친혼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영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들은 열심히 전쟁을 하며 세력을 키울 때 하브스 가문은 근친혼으로 가문을

    키웠다.

    시골 남작가에서 어느새 백작이 되고 또 왕이 되었다가 이제는 황제까지 올랐다.

    “네?!”

    “표적이 너무 많다는 거야. 대륙의 곳곳에 이권이 너무 걸려 있어.”

    워낙 씨를 많이 뿌려 놓은 터라 관련이 없는 귀족 가문이 드물었다.

    하브스 가문의 사람은 몸도 병약한데, 항상 암살에 시달렸고 의문사가 너무도

    많았다.

    수많은 가문들이 작정하고 하브스를 노렸다.

    “그럼. 저 아이도··· 그런데, 왜 죽이지 않고 이런 곳까지 팔려 온 거죠?”

    “하브스가는 황제를 여럿 배출한(서제후 방식-신센롬 제국은 투표로 황제를

    뽑는다.) 대륙 최고의 명문이야. 그런 가문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아. 그러

    니까.”

    워낙 위험에 시달리다 보니 특별한 마법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최후의 기억.

    죽기 전 기억 일부를 지정된 보주 안에 저장시킨다.

    대상자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보주와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지 상관없이.

    한 손이 열손을 못 막는다고. 어떻게 해도 암살을 막기 힘들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복이라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아마도 의뢰받은 납치범들은 저 아이가 뒤늦게야 하브스 가문의 사람인 줄

    알게 되었을 거야.”

    “아! 그래서.”

    “맞아. 죽기 직전의 일부 기억만 저장이 되니 늦게 죽으면 납치범들은 안전해

    지겠다 생각한 거지.”

    사주한 의뢰인들도 납치범들에게 일정 기간 뒤에 죽여 달라고 했을 거다.

    보주에 담기는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니까.

    납치범들도 뒤늦게 깨닫고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했고.

    그 결과 엉뚱하게도 이곳 해적 섬의 사창 골목에 있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어쩌긴 뭘 어째. 구해 줘야지.”

    스랑 제국과 신센롬 제국이 가까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얼마 가지 않아 신센롬의 황태자가 유전병으로 죽어 버린다.

    둘째 황자는 저기 장대에 걸리기 일보 직전(실종 상태)이고.

    뭐. 죽지는 않지만······.

    그걸 모르는 테레지아 여제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그녀의 막내딸을 스랑 제국

    에 시집을 보내게 될 것이다.

    혼사가 성립되기 전에 구해서 집에 보내 줘야 한다.

    두 제국이 손을 잡는다면 리안의 가상 적국인 스랑 제국이 너무 막강해진다.

    겸사겸사 차기 황제가 될 녀석과 친분을 다져 놓으면 좋은 거고.

    “부선장 아저씨. 구매하세요.”

    “정말. 저 계집애 같은 놈이 신센롬 제국의 둘째 황자라고?!”

    “저 목에 있는 반점을 보니 틀림없어요.”

    “흐음··· 그냥 땟국물 같은데······.”

    “결정적으로 귀 모양도 그렇고. 귀 끝이 뾰족하지 않으면 하브스 사람이 아니

    란 말도 있으니까.”

    귀 모양이니 목의 반점이니 뭐라 해도 믿지 않았다. 워낙 평소에 헛소리를 많

    이 하니.

    다만 리안이 귀족 출신이니까 얼굴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부선장은 그냥 질러 버렸다.

    “이봐. 얼마면 되지?”

    “올몬드 해적단의 부선장님 아닙니까?!”

    포주가 손바닥을 비비며 아는 척을 했다.

    역시 이 바닥은 좁은 건가.

    “우리 선장 뒈졌어. 그러니까 지금은 리안 해적단이지.”

    “그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되신 선장님께서 저희 집 단골이었는

    데······.”

    “됐고. 얼마면 되지?”

    “3,240페니는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뭐?! 지금 나와 장난하나?!”

    부선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를 냈다..

    12페니가 1실버. 120페니가 1골드. 1,200페니가 1골든(골드바)이었다.

    (상위 화폐로 바꿀 때는 20%의 수수료가 들었다.)

    참고로 대륙에서 용병의 평균 일당이 2페니인 걸 감안하면 3,240페니는 용병

    이 4년 동안 쓰지 않고 꼬박 벌어야 나오는 돈이다.

    “이 아이가 일 년 동안 벌 수 있는 돈이죠. 이 녀석이 일하면 하루에 9페니는

    벌어들이거든요.”

    해적들은 씀씀이가 헤프다.

    바다를 떠돌다가 항구로 들어오면 당연히 눈알이 뒤집혀 보이는 것이 없다.

    “어차피 죽을 놈 아닌가?”

    “오히려 싸게 드리는 겁니다. 이 녀석이 여기서 조롱을 받으며 죽어 가는 걸

    보면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손님들도 이런 상등품을 이렇게

    체벌을 위해 내어놓는 우리 가게에 신뢰할 거고. 하하하.”

    그냥 하자가 있는 물건으로 생색을 낼 뿐이다.

    운이 좋다면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사 갈 때도 있고.

    아니. 저 아이는 누군가가 사 간다.

    훗날 신센롬 제국으로 돌아가 황제가 되니.

    그땐 정신 어딘가가 맛탱이가 가서 폭군이 되지만.

    “2,000페니.”

    그때 리안이 나섰다.

    “응?! 웬 꼬맹이냐. 혹시 부선장님께서 숨겨 놓은 아들입니까? 반반한 것이

    전혀 안 닮았는데. 엄마 쪽이 어지간히 미인인가 봅니다. 하하.”

    “우리 배 선장이다.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이쿠. 실례했습니다. 선장님.”

    표정은 실례한 표정이 아니었지만.

    상품으로 보는 불쾌한 눈.

    “실례했으면 2,000페니.”

    “그건 좀··· 실례는 실례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니까요.”

    “저런 꼬맹이가 하루에 9페니를 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하루에 아홉

    명은 고사하고 하나라도 받으면 다행이지.”

    리안의 말에 포주는 식은땀을 흘렸다.

    상품으로 보던 눈빛은 어느새 사라졌다.

    “리안 선장님. 이 아이는 상등품이라 화대가 비쌉니다.”

    “비싸면 뭐 해. 손님 받고 나면 며칠을 골골거리겠지. 설마 성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야? 안색이 영 파리한 것이······.”

    하브스 가문의 사람들은 어릴 때 체력이 정말 좋지 않다.

    아마도 곧 죽을 거라 생각하고 저렇게 장대에 매달 생각을 하는 것일 테고.

    구경꾼들이 동요한다.

    “그럼 그렇지.”

    “저런 상등품을 장대에 걸 이유가 없긴 하지.”

    “비싼 값에 샀다가 하루 만에 뒈져 버리는 것 아니야?!”

    “매독 초기일지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군.”

    몇몇 관심을 보이던 선장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제의 기적이 있기에 매독은 불치병이 아니지만, 완치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또 치료비가 더럽게 비쌌다.

    “알겠습니다. 리안 선장님. 2,000페니에 넘기도록······.”

    “1,500페니.”

    “네?! 아무리 그래도··· 그것도 갑자기 500페니나······.”

    “1,000페니. 아까 부두에서 플랑크 선장을 본 것 같은데, 조만간 이쪽으로 올

    것 같더군.”

    플랑크는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아주 흉악한 놈이다.

    아마 레오폴트를 사 간 장본인이겠지.

    그러다 샤로트 베리에게 죽으며 레오폴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거고.

    “아··· 알겠습니다. 1,000페니에 팔겠습니다.”

    “운 좋은 줄 알아. 그쪽 목숨을 구해 준 거야.”

    부선장이 돈주머니를 던졌다.

    철거덕.

    거래가 성립되었다.

    썩은 표정의 포주였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뭐야?!! 그 녀석 내가 사지!”

    산적 같은 수염의 남자가 뒤늦게 나타나 외쳤다.

    지저분하게 생긴 것이 부선장과 거의 동급이다.

    다만, 근육으로 뒤덮인 부선장과 달리 등장한 남자는 통통하니 저렴해 보였다.

    “오오. 플랑크 선장님 아니십니까?! 죄송합니다만. 이미 팔렸습니다.”

    포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해적왕의 최측근이자 해적 섬의 실세.

    1,000페니는 고사하고 500페니나 받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빨리 죽어 버린다면, 그 화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뭐?! 저 아이는 내가 관심을 보이던 놈이야! 그런데, 어떤 놈이 감히 샀단

    말이야?!”

    게임에서 레오폴드가 정신병이 망가진 걸 봐선 플랑크 저놈은 엄청난 학대를

    하는 놈일 거다.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플랑크 선장님.”

    리안은 플랑크에게 인사를 했다.

    플랑크의 정체는 아까 전 해적왕의 배에서 리안에게 호통을 쳤던 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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