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009
배 두 척이 나란히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군함이 해적선을 나포해서 끌고 가는 걸로 보
일 거다.
최소한 스랑 제국의 기함에서는 그렇게 봤다.
“제독! 고잉미샤호가 복귀하고 있습니다.”
“저 작은 배가 뭐라고 함대가 움직여야 하는지.”
“우리 스랑 제국에서 극비로 개발한 함선이니 노출되면 곤란해서지 않겠습니
까?!”
작전이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입구가 한 곳뿐인 곳에서 진행된 것도 그 이유였다.
“함장. 이 배의 함포가 몇 개지?”
“90문으로 2급 전열함입니다.”
간만에 바다로 불려 온 서해 제독은 짜증이 가득이었다.
평소엔 함선들이 단독으로 운영되는지라 딱히 제독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러면 저기 오고 있는 녀석은? ”
“30문으로 4급 쾌속함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뭐? 30문인데 4급?”
“철갑을 두른 함선들은 포문과 관계없이 4급부터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제
작비는 오히려 3급 전열함(70문 이상)만큼 든다고 합니다.”
서해 제독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차피 한 번의 해전으로 거의 모든 것이 결판나는 시대이다.
화력에 조금이라도 더 투자하자는 주의였다.
“쯧. 제대로 돈지랄이군. 저딴 배는 일제 사격 한 번이면 고철이 될 텐데. 라
인 배틀(다수의 배가 서로 일렬로 줄을 서서 싸움)의 시대에 포문도 적은 저
딴 걸 왜 만드는지. 그보다······.”
그는 불평을 늘어놓는 도중 고개를 옆으로 까딱인다.
“저놈들 왜 속도를 줄이지 않는 거지?”
“신형 전함이라 가감속의 성능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그건 조금 흥미롭군.”
함선의 속도가 워낙 빨라 흘수선 아래의 붉은색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촤아아아~!
배에 부딪힌 파도가 보석처럼 반짝이며 튀어 오른다.
“제··· 제독님?!”
“왜 부르나?”
“그게··· 그러니까. 아무리 신형이라 해도··· 지금쯤은 감속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때 파수대에서 통신이 왔다.
“해··· 해적입니다. 고잉미샤호에서 해적기가 올라왔습니다.”
“뭐어어어?!!!”
***
“깃발을 올려라아아아!!!”
두 개의 수정구에 각각 한 손을 올리고 외치는 소년.
아주 신나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할 수가.’
수동으로 조작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육체가 편했다.
그뿐만 아니라 훨씬 섬세한 감각.
혹시 자신이 SSR+급을 타고난 조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수동 조종과는 극도로 차이가 났다.
역시 조타수에겐 마나 로드가 필수다.
“마법사 삼촌. 준비는 다 되었나요?”
“새···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몰라. 그냥 질러 버려!”
라고 외치며 리안은 함선의 속도를 줄이며 옆으로 살짝 비틀었다.
투둑!
그러자 쇠사슬에 묶여서 따라오던 해적선의 쇠사슬이 끊어지며 관성에 의해
추월해서 앞질러가기 시작한다.
“오오!! 계획대로 되고 있어.”
***
“뭐··· 뭐냐!!”
서해 제독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럴 것이 목조로 된 해적선 한 척이 전열함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
기 때문이다.
“쏴!!! 멍청하게 보고 있지만 말고 쏘란 말이다아!!”
“어떤 포로······.”
“그냥 있는 대로 쏴!!”
제독의 명령에.
퍼어어엉!! 펑펑펑!!!
전열함이 기울어진다.
무려 45문의 마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거리 따위를 제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쏜 덕분에 대부분의 크게 벗어났다.
사실 대포의 숫자가 해전에 중요하게 된 것은 워낙 명중률이 형편없는 까닭도
있었다.
“이런!! 밥버러지 같은 놈들이라고!! 저걸 못 맞춰?!!”
사실 이것은 명백히 제독의 잘못이었다.
작전은 제독이 명령하지만, 배의 제어권은 함장에게 있다.
어설픈 명령에 포병들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것.
파사삭! 퍼어어엉!!
개중에는 그래도 맞은 게 있긴 했다.
문제는 흘수선 아래를 때리지 않으면 속도를 줄이거나 침몰시킬 수 없으리라.
사실 침몰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해적선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으니.
***
“가 버려어엇!!!”
리안이 외치자 마법사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미리 설치해 놓은 무선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도구와의 조합으로 해적선의 조타기에 설치된 일회용 마법이었다.
드르르르르!!!
원격 마법이 발동하며, 해적선의 키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츠촤츠츠~촤아아!!
해적선은 중심을 잃고 물 위를 미끄러지며 처박혔다.
***
첨벙!
결국 충격과 함께 해적선은 배를 까발리며 뒤집히는 최후를 맞이했다.
덕분에 스랑 제국의 전열함은 정신이 없었다.
“좌측 17문 전투 불능.”
퍼버벙!!
“방금 두 문이 추가로 전투 불능 되었습니다.”
마나 유폭으로 두 개의 마포가 터져나갔다.
충돌 직전에도 무리하게 공격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제독님!! 고잉미샤호가 접근을··· 아니··· 그러니까 날아갑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
“난다요?!”
정신이 없는 것은 고잉미샤호도 마찬가지.
배가 날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계획대로였다.
먼저 보낸 해적선은 원격으로 전열함 앞에서 뒤집혔고.
뒤집힌 배의 완만한 곡선은 도약대로 쓰기에 충분했다.
고잉미샤호는 사정없이 해적선을 타고 올라가 전열함을 뛰어넘었다.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리안은 신나게 외쳤다.
작전이 들어맞았다.
아무리 전략 시뮬레이션이지만 무과금 고인물이니 별짓을 다 해 봤다.
이게 그 결과물이다.
“무슨 개소리를!! 그런 소리를 함부로······.”
부함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해적왕은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이었기에.
이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가면 정말 곤란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떨어진다아아!!”
리안은 기분 좋게 외쳤다.
“으이크!!”
부함장은 일어나다 말고 급히 자리에 앉았다.
부유함이긴 하지만, 일정 이상 공중으로 뜨지 못하는 배의 한계.
첨벙! 촤아아아!!
고잉미샤호가 바다에 착지하며 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전열함은 4층 구조로 상당히 높았다.
그런 배를 뛰어넘었으니 충격이 상당했다.
“마법사 아저씨. 적함으로 통신!!”
“아··· 알겠다. 선장.”
마법사가 급히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채널은 따로 맞출 필요가 없었는데, 배가 원래 군함이다 보니 미리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너희가 적으로 돌린 것은 세계 최강 대 스랑
제국······.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에 리안은 헤실헤실 웃으며.
“이쪽 안위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헤헷!”
-목소리가 왜 이래? 설마 꼬맹이······?
“꼬맹이가 아니라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은 명예로우니까 인도적인 차원에서
포로들을 풀어 드릴게요. 주변에 상어가 좀 많은 것 같으니까 빨리 구해 주길
바라요.”
-무슨··· 개······.
삑!!
리안이 손짓하자 통신구의 연결이 끊어졌다.
“포로들을 투척하세요!!”
명령과 동시에 바다로 갑판에 묶여 있던 포로들이 바다로 풍덩 빠졌다.
“다음에 또 만나요~!!”
구리 관을 이용하는 구닥다리 해적선과 달리 곳곳에 설치된 마법 스피커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빌어먹을 꼬마~~ 놈이!!!”
고잉미샤호의 원래 함장이 바다로 빠지며 소리쳤다.
그러나 고잉미샤호는 속력을 내며 점점 멀어졌다.
***
“도대체 무슨!!”
그걸 지켜보던 스랑의 제독은 넋이 살짝 빠져 있었다. 뒤늦게.
“포격을··· 마포를 쏴라!!”
“아군의 병사들이 위험합니다!! 제독.”
“빌어먹을!!”
마음 같아서는 무능한 것들을 함께 갈아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전역하는
순간까지 악명이 따라다닐 거다. 아군 학살자라는.
어차피 쏘기에도 늦었다.
적이 도망친 반대쪽은 마나포가 장전되어 있지 않았기에.
“포로들을 구한다. 모든 함선들을 불러 모아라. 그리고 저놈들에게 쾌속함을
붙여라. 추격한다.”
***
“선장. 적선이 출몰.”
포로들을 바다로 버리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완전히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스랑 제국은 전열함뿐이 아니라 여러 척의 함대로 움직였던 것.
“조금 있다가 상대해 줘야겠네.”
적은 바다 곳곳에 함선들을 뿌려 놓았었다.
쾌속선으로 보이는 두 척이 좌우에서 각도를 좁혀 왔다.
속도는 이쪽이 빠르지만, 연안을 벗어날수록 속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적들은 좌우에서 끝까지 몰아간다면, 연안을 벗어나 결국 대해로 나가야 한다.
변수가 많은 바다에서 그건 곤란하다.
“두 척을 상대로 싸우는 건 위험한 거 아니야?”
“전열함을 봐서 그런지 다들 부랄이 쪼그라들어 잊었나 본데, 본 함은 최신형
이라고요. 므헤헤.”
리안은 음흉하게 웃었다.
“거기다가 이대로는 대해로 나가기는 해야 하는데, 조류를 잘못 타면 따라잡
혀요.”
조류가 앞뒤로 흐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좌우 특히 대각선으로 흐르게 되면
추격하는 배에게 포위될 수도 있다.
차라리.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는 연안에서 빠르게 해치우는 게 났죠. 자자. 슬슬 준
비들 하시고!”
거의 연안을 벗어날 때쯤 리안이 발동이 걸렸다.
“백병전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 다들 다치지 않게 꽉 붙잡으시길~”
덕분에 포격과 관련 없는 해적들은 양옆의 창문으로 붙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포격에 맞으면 위험하다만, 그런 걸 무서워한다면 해적이 되지 않았으리.
위이이이잉~!!
배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며 바다 위를 미끄러졌다. 동시에 우아하게 옆으로
방향 전환.
과연 에이스라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쏘세요!!”
명령이 떨어지자.
퍼버버벙!!
***
이번에 처음으로 해적선에 탄 말단 해적 라이언.
그에게 오늘 하루는 정말 길었다.
-운 좋은 줄 알라고 신입. 귀족 꼬맹이를 팔아넘기면 짭짤할 거야.
그리 말한 선배의 말을 듣고 기분이 꽤 좋았었다.
아무리 말단 해적이라도 수익이 발생하면 분배를 받으니.
선배의 말대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첫 출항에 큰 수익을 얻게 생겼으니.
그런데.
조언을 했던 선배가 적 포격에 몸이 너덜너덜해지며 남긴 말.
-줴엔좌아앙~!
적함은 소문에서나 듣던 최신 철갑선이었다.
포로 몸값은커녕 다짜고짜 공격했고. 선장도 죽어 버렸다.
지지리 운 좋은 놈에서 지지리 운 나쁜 놈이 되었다.
첫 출항에 죽게 생겼으니.
“뭐 해? 신입. 너도 와서 구경해.”
“꼭··· 구경해야합니까?”
신입은 무서웠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바로 옆에서 사람이 터져 나가는 걸 봤다.
“해적이라고 무식하게 칼질만 하면 삼류다. 스마트한 해적 생활을 위해선 해
상 전투에 대한 안목도 길러놔야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또 다른 고참 해적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포탄에 터져 죽었던 선임도 저리 자신만만했었는데······.
끼리리릭!
그 와중에 배가 기울어졌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잔걸음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
녔다.
달인과 같은 움직임.
고참 병사는 팔짱을 그 와중에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이 정도야. 으하하하.”
육지가 아닌 배 위에서 싸우기 위해선 필수적인 역량이다.
“아··· 알겠습니다··· 우에에엑!!”
방금 전까지는 마치 연습이었다는 듯이 배가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으아악!! 침몰한다아!!”
“하늘도 날았는데, 이까짓 걸로 침몰할 것 같아?!”
배가 바다에 닿을 듯 기울어지며 방향을 틀었다.
퍼버버버벙!!
순식간에 배가 적의 꽁무니를 보게 되었고 곧장 포격을 가했다.
“무슨······.”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았다.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다니.
“새로운 꼬맹이 선장. 에이스로 길러졌던 게 아닐까?”
해적단 평선원들도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귀족이라면 연습용 배도 쉽게 구할 거고.”
살아 있는 조타수의 몸값은 하늘을 찌른다.
시뮬레이션이 없는 세계이니 당연히 연습 자체가 실전.
해군 사관 학교에서의 조타학부의 졸업생은 입학생의 겨우 30% 내외였다.
재능이 없거나. 죽거나. 다치거나.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거나.
그것도 졸업 후 5년 뒤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렇게 살아남은 조타수 중 상위 0.01%만이 에이스라 불린다.
퍼버버벙!!!
고잉미샤호는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꽁무니를 쫓아가 다시 후미를 쳤다.
원래라면 아무리 기동력 차이가 있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11’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0’자로 움직이는 것이 포격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휘리리리리릭!
그런데, 상대가 ‘11’자든 ‘0’자든 싸움을 걸려고 해도 기가 막히게 반대로 방
향을 꺾으니 순간적으로 후면이나 정면이 노출된다.
그 순간 또 기가 막히게 포격을 한 뒤 사거리 밖으로 벗어나 버리니 상대측은
기가 막힐 노릇.
펑!! 펑!!
코앞에서 일어나는 물보라에 신입이 놀라 엉덩방아를 찌었다.
“으아앗!!”
다만, 숙련된 해적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우!! 꼬마 선장 실력이 지랄 같네.”
“조종만 잘하는 게 아니야. 이 대 일인데도 전혀 밀리지가 않아.”
그러다가.
부우우웅!!
갑자기 전속력으로 한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깔끔한 도주였다.
***
“우오오오!! 귀여운 선장 같으니라고!!”
부선장이 달려와 껴안았다.
언제 수염을 깎았는지 까끌까끌했다.
“아씨!! 이거 놓으라구요!! 징그럽게.”
“최고야. 정말 최고라고!!!”
싸우는 도중 얻어맞기만 해서 답답했는지 적함들의 움직임이 꼬이기 시작했고
기회를 포착하자 냅다 도망친 것이다.
굳이 싸워 줄 이유가 없었다.
“으아아!! 못생긴 아저씨 때문에 조종을 할 수 없어!! 침몰한다. 침몰해에에~”
“미안. 미안. 하하하.”
리안의 협박에 부함장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어디로 갈 생각이지?”
“어디긴 어디예요. 당연히 해적들의 고향 헤브리디스 제도지.”
해적들을 받아주는 항구는 의외로 많다.
이제부터 스랑 제국의 항구는 제외되겠지만.
“오~ 꼬맹이 주제에 별걸 다 아는군. 하긴. 인원 충원이 좀 필요하긴 하지.”
“갑판장, 조타수, 의무관, 관제사, 회계사까지. 에휴. 지긋지긋한 인력난.”
“그거 다 필요한 거냐?”
“의무관은 꼭 필요하다구요. 사제면 더 좋고.”
마법사가 있다면, 의무관을 따로 두지 않는 해적들도 많았다.
의사든 사제든 해적들과는 인연이 없다시피 한 전문직들이었다.
“아. 그리고 거기에서 챙길 아이템도 있고.”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
필수품이기에 더럽게 비싼 그 물건을 해적이기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