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007
해적들은 포로들을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배 뒷부분에 매달았다.
마법적 장치도 설치했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단번에 바다에 빠뜨려야 했으니.
“으아아아~! 더럽게 꼬였네.”
리안은 작업 상황을 일일이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스랑 제국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 치욕을 잊지 않을 거다.
잠시 후.
“선장님.”
점잖게 생긴 꽃중년이 다가왔다.
살짝 풀어 해쳐진 셔츠 속으로 보이는 가슴팍에 복잡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나무, 덩굴, 뿌리, 바위 등등.
정령 갑옷과 계약된 대전사였다.
이 선박의 다섯 전사 중 한 명.
문신 모양으로 추측하건대 속성은 대지.
“아저씨는 누구?”
“임시로 보급품을 담당고 있는 세바스라고 합니다. 분배는 어떻게 하면 되겠
습니까? 선장님.”
찰가락. 철컹!
갑판 중앙에는 계속해 물건이 쌓이기 시작했다.
해적선에 있던 것들이다.
값비싸 보이는 물건부터 각종 보급품들.
“관습대로 분배하세요. 중요한 전투 전에 사기를 깎을 만큼 멍청하지 않으니까.”
해적들은 해적단의 숫자만큼 운영 방식이 다양했다.
“아. 그리고 이거.”
그가 내민 것은 새끼손톱 크기의 보석 두 개.
은은한 빛이 풍기는 것이 예사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큐브네요.”
큐브는 정령 갑옷을 담고 있는 보석이다.
계약하면 큐브가 사라지며 그 속성에 따라 세바스처럼 가슴팍에 특유의 문신
이 생긴다.
“하나는 원래 보관 중이던 큐브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새로 얻은 전리품입
니다만······.”
“으··· 뭔지 알겠네요.”
그 빌어먹을 레온 백작령의 무관장 케르시안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전리품으로 보기 조금 애매한 것입니다. 애초에 이해 당사자인 선장
님의 부하에게서 나온 것이니.”
어떻게 보면 레온 백작령의 무관장은 리안의 부하로 봐도 무관했다.
물론 반기를 들긴 했으나 리안이 계승 서열 1위이니 명목상 그게 맞았다.
의외로 이런 쪽에선 공정한 해적들이었다.
“둘 중 어떤 것이죠?”
“외림되지만 하얀색. 바람 속성입니다.”
바람 계열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정령이다.
화력이 최약체이기 때문.
“흐··· 그래서 이 흰색 큐브는 온전히 제 것이라는 말이죠?”
“네. 선장님.”
바람 속성의 정령 갑옷을 입게 되면 하늘을 날 수 있다.
오랜 시간 비행은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말이다.
게임의 시간이 흐를수록 중앙 집권의 성향이 강해지고 점점 전쟁의 규모가 커
짐에 따라 시선이 바뀌게 된다.
하늘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 마도구가 발달하게 된다.
바로 공군의 탄생이다.
“흐흐흐.”
계약은 안 했지만, 개인 전투기 한 대가 손에 들어온 기분이다.
세바스의 시선이 조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대표적인 4대 정령 중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바람 속성일 것이다.
“원래라면 전리품으로 얻은 큐브는 어떻게 처리하는 거죠?”
아무리 고인물이라 할지라도 해적에 관해서는 그다지 자세히 못 했다.
해적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운영 방법이 다양하니.
“선원 중 한 명에게 하사할 수 있습니다. 정령 갑옷은 전략적 무기이기 때문
에 공동 분배 대상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리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의 권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좋군요.”
“이해하신 겁니까? 선장님?”
큐브는 온전히 선장의 권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마나 로드를 개척한 자들을 유저라 부른다.
이후 단전을 만들면 전사.
서클을 만들면 마법사가 된다.
이를 각성이라 부른다.
각성된 자들. 그러니까 전사나 마법사는 정령 갑옷과 계약할 수 있다.
계약한 자들을 대전사 혹은 대기사라 부른다.
마법사는 기사작위와 상관없이 대법사로 불린다.
당연히 정령 갑옷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다.
만약 정령 갑옷을 미끼로 한다면, 충성으로 기사나 마법사를 부하로 부릴 수
가 있다.
그것이 해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네. 이해했어요.”
세바스는 눈이 순간 얇아졌다가 돌아왔다.
눈앞의 어린아이는 과연 진짜로 이해한 것일까?
배를 조종하는 실력은 놀라웠다.
다만, 배를 조종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다.
특히나 경제의 문제는 더더욱.
소유와 분배는 어떤 식이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한 인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이유.
이념이니 종교니 아무리 포장을 잘 해 봐야 따지고 보면 소유와 분배의 최종
수단이니.
‘뭐. 상관없나.’
이미 눈앞의 꼬마에게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다.
분배 따위보다 일단 지금 당장 생존 자체가 더 중요하다.
‘부선장이 들떠 있던데······.’
전열함이 뭔지나 알고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꼬마는 기관장에게
이것저것 지시까지 했다.
그 까칠하고 깐깐한 기관장이 수긍하는 걸 봐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하는 것.
마치 종말을 앞둔 상황에 사과나무를 심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반 선원들의 불안을 줄여 줄 것이다.
간부인 자신이 먼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질 테니.
그런데.
“저기. 또 궁금한 게 있는 데··· 약탈한 개인 무기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이 꼬마 선장은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에 대해 더 이상 고민도 하지 않는 것처
럼 보였다.
사과나무를 뛰어넘어 열린 사과로 파이나 해먹을까? 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리고 어쩌다가 모시게 된 선장이지만 저 당당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
게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희망을 받는 것은 세바스 자신이었던가?
“무기도 비슷합니다. 선장님의 재량입니다.”
“만약 무기를 받은 자가 해적선에서 내린다면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면, 무기값을 치르거나 반납하고 내려야
합니다.”
“호오~”
리안의 감탄사에 세바스 또한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질문의 맥락에서 분배의 개념을 단편적으로라도 이해를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아이를 보고 영재 혹은 천재라 부르는 것일까?
만약. 마나의 재능까지 있다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 과한 기대일지는 모르지만.
“음··· 커틀러스는 선장님께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무겁긴 하네요. 무식하게 생기기도 했고. 위대한 이 몸에게는 어울
리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헤헷!”
리안은 해적들이 쓰는 표준 검인 커틀러스를 힘겹게 들었다 놨다 했다.
우락부락한 몸을 가졌던 죽어 버린 이전 선장의 물건이다.
당연히 어린 몸뚱어리는 제대로 들기도 힘들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세바스는 쌓여 있는 물건 하나를 집어 왔다.
해적선의 무기고에 있던 물건.
“음?! 그건 너무 애들 장난감 같은데. 위대한 이 몸이 쓰기엔 좀······.”
과도로나 쓸 법한 짧고 얇은 칼날.
가뜩이나 몸도 어린데, 저런 걸 들고 다니면 얕보이지 않을까?
“이래 보여도 마법검입니다.”
갑자기 슉! 하고 칼날이 길어졌다.
어느새 정상적인 레이피어가 된 것이다.
“오옷!”
당연히 리안이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다.
고인물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마법검이라 해도 게임에선 달랑 일러스트 한
장과 효과만 적혀있었기 때문.
거기다가 전략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게임이기에 개인 전투 장면 따위는 제대
로 볼 수 없었다.
가끔 구경 가능한 개인 전투는 SD 캐릭터에 이팩트를 떡칠한 단순한 움직임뿐.
“마음에 드십니까?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라더라도 소량의 마나만 있으면 됩니
다. 마나 로드를 가지고 계신지요?”
세바스는 검을 다시 갈무리 한 뒤 조심스럽게 리엔에게 넘겼다.
그리고 관찰했다.
“음······.”
리안은 일단 검을 받긴 했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귀족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연공법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자신도 교육을 받았
는지 의문이다.
거기다 마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 귀족이라 해서 교육받는다고 해서 무조
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꿈틀.
그때. 뭔가가 검 손잡이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눈앞의 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나를 단련한 적이 있단 말.
일종의 감각과도 같은 것이라 사용법은 의외로 직관적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려나?!”
그 꿈틀대는 기운을 움직이자.
슈우우우욱!
칼날이 순식간에 길어졌다.
잘만 활용하면 방심하고 있는 적을 한 방에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짝!짝!짝!!
“훌륭합니다. 선장님.”
세바스는 박수까지 쳐가며 칭찬했다.
마치 가정 교사와 같은 친절함.
“그렇다면 정령 갑옷도······?!”
“단전이나 서클을 만드는 각성 이후에는 가능합니다. 손목을 잠시 짚어 봐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리안은 기대를 품고 팔을 내밀었다.
운이 좋다면 이미 단전이나 서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쉽지만 각성은 하지 않으셨군요.”
“뭐. 각성이야 차차 하면 되죠. 흐흐흐.”
당장 정령 갑옷과 계약하지 못하는 다는 것은 조금 슬펐지만 마나 로드가 개
통이 되어 있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씰룩씨룩.
입꼬리가 계속 춤을 춘다.
뭐. 정령 갑옷은 어찌 되어도 좋다.
위험하게 시리 직접 싸울 일은 없을 테니.
“흐흐흐흐흐.”
그래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마도구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조타도 수동 모드가 아니라 마도구 모드로 운전이 가능해졌다.
훨씬 더 섬세한 컨트룰을 할 수 있다.
손이 벌겋게 변하면서 키를 돌리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꾸하하하하!!”
리안의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세바스도 흐뭇하게 바라봤다.
동시에 세바스의 눈이 살짝 얇아졌다.
분명 외가가 아일리 섬의 귀족이라 들었다.
부선장이 멍청해 보여도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꼬맹이에게 선장 자리를 양보
한 것이 아닐 거다.
“우악!! 도련님!!!”
그때 앙코 해적선에서부터 고잉미샤호로 끌려가던 소녀가 리안을 향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