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002
대륙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 국가 스랑 제국.
해군력 1위.
그러나 문제는 땅이 너무 넓다 보니 세 개의 바다를 접하고 있었다.
북해, 서해, 중해.
분산된 해군력은 각 세력에게 밀렸다.
북해는 섬나라 잉글슨 왕국에게.
서해는 식민지 부자 이벨 왕국에게.
중해는 해양 도시 국가들에 영향력이 막강한 베넷 조합에게.
점점 바다의 중요성은 더 높아지고 있었기에 저마다 해군력에 군비를 높이기
시작했다.
스랑 제국도 뒤질세라 연구와 투자를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4급 쾌속 전함
고잉미샤호다.
전장 50미터에 목재가 아닌 철갑으로 감싸고 있으며, 포문은 총 30문에 3층
구조.
가장 중요한 것은 부양력을 조절하면, 수륙 양용이 가능하다.
-명중! 적함 침묵! 선실에 맞은 듯합니다.
파수대의 보고에도 함장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쯧. 이런 배를 가지고 첫 상대가 겨우 저런 놈들이라니.”
올몬 해적단.
겨우 한 척의 배로 잉글슨 왕국과 스랑 제국의 해협을 활개 치고 다니던 악명
높은 해적이었다.
그래봐야 목조 부유함이지만.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리겠어요. 저기 탄 꼬맹이의 핏줄은 스랑 제국에 그리
도움이 되질 않아요. 망해 버린 아일리 왕국의 천한 핏줄이 흐르지요.”
상당한 미모의 귀부인 하나가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말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선장.
“확실히 백작 부인의 말이 맞긴 하오. 저기 탄 아이의 어미가 지금은 잉글슨
왕국에 흡수당한 아일리 왕국의 귀족이니.”
스랑 제국의 북서쪽 끝자락의 반도 브루타뉴 공국.
그 끝자락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땅이 레온 백작령이었다.
그 작은 땅이 뭐라고.
개판으로 꼬인 작위 승계에 제국의 해군이 개입했다.
“선장님! 항복 권고를 합니까?”
“아니. 계속 포격. 침몰시킨다.”
해적들과 함께 레온의 후계자 중 하나를 수장시킬 계획이었다.
***
“너··· 너! 뭐 하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꼬마는 어느새 조종석에 앉았다.
그 꼬마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샤아아아~
천장과 벽이 사라지고 하늘과 넓은 바다가 보인다.
조종석에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게임에서 보던 그대로다.
수동으로 조종해야 하는 미션이 가끔 있어서 조작법은 충분히 안다.
현질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스킵이란 좋은 기능으로 더럽게 어려운 수동 조종
을 경험할 필요는 없지만.
아쉽게도 꼬맹이는 거의 무과금러였다.
잊을 만하면 헬급 난이도의 조타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넘어져서 아야 하기 싫으면, 앉으시든가 아니면 뭐라도 잡으세요. 아저씨들.”
꼬마는 뒤를 돌아보며 깜찍하게 윙크를 날렸다.
그걸 본 부선장과 항법사는 급히 꼬마를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부우우웅~!
바다에 잠겨 있던 선저가 살짝 들려 올라가며 배가 뒤로 기울어졌다.
손을 뻗으며 다가오던 부함장과 항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뒤쪽으로 잔걸음
을 치며 점점~ 멀어진다.
그 상태에서 이번엔 배가 좌로 휘청거린다.
“으아악!! 바다에 처박힌다아아!”
일반적인 배가 아니라 부유함이다.
배의 옆면이 정말 수면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할 정도로 기울어졌다.
멀리서 본다면 배가 아니라 경주용 오토바이가 코너를 돌고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다.
“주거어어어.”
“빌. 어. 먹. 을. 꼬. 맹. 이!!”
부선장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뭘. 이 정도로.”
꼬마는 애써 태연한척했지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하마터면 시작부터 바닥에 처박힐 뻔했다.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 액정으로 조작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예상보다 훨씬 더 예민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 즉시 다시 반대쪽 좌현으로 배를 꺾었다.
아슬아슬하게 적이 쏜 포탄이 배를 빗겨 나갔다.
펑!! 쏴아아아~
물보라가 일어났다.
실력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꼬마의 얼굴은 태연해 보였다.
아니. 즐거워서 흥분했는지 살짝 홍조를 띤다.
“화포장 아저씨?!”
“빌어먹을 꼬맹이가!”
화포장은 포병들의 장.
다행히 선교가 피격되었을 때 죽지 않았다.
원래라면 포실에 있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선교에 있었다.
“욕만 뱉다가 물귀신 될 거 아니면 몇 방 때려 줘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
도 있어야지 않겠어요?”
“뭐-어?!”
“가만히 서서 쏘는 걸 보니 저것들이 우릴 아주 호구로 보네요.”
화포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적함은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느긋하게 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명중률이 올라갈 수밖에.
거리가 제법 되는데도 몇 발이 맞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젠장!”
“다른 포는 쏴도 안 맞으니까 아껴두고 갤버포 종류로 부탁드려요. 잘생긴 화
포장 아저씨~”
앞니가 빠져 있어 결코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포를 쏘지 못하면 다 죽
을 판.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 못생긴 얼굴도 잘생겨 보였다.
화포장이 얼굴이 뻘겋게 변하더니 포실들과 연결된 관을 모두 개방했다.
“이런 개복치 아가미에 붙은 기생충 같은 머저리들을 봤나!! 뭘 멍청하게 두
들겨 맞고 있어!!!”
그는 랩퍼처럼 속사포로 쏘아붙이고 있었다.
“4번, 7번, 9번 바로 반격해! 나머지는 얼 타지 말고 갤버포에 달라붙어서 장
전을 도와!”
언급한 번호가 사거리가 긴 갤버포로 보였다.
펑!! 펑! 펑!!!
명령이 전달되자 즉시 포가 발사되었다.
세 발 중 한 발이 적함의 모퉁이를 스쳐 지나갔다.
“머저리 같은 놈들!!”
화포장이 분기했지만, 충분한 위협이 됐으리라.
오히려 이 거리에서 맞힐 뻔한 것이 놀라울 따름.
일단 저쪽이 멈춰 있으면, 이쪽도 명중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이제 저쪽도 느긋하게 가만히 써서 사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병은 누가 관리하죠?”
꼬마가 좌현으로 느긋하게 키를 돌리며 말했다.
“으읏!! 미친 꼬맹이 놈! 나다!”
부선장이 겨우 자신의 자리로 기어오르며 말했다.
“저쪽은 정식 해군 같은데. 백병전을 밥벌이로 삼는 해적인 우리가 당연히 쪽
수가 많겠죠?”
“꼬맹이 주제에 많이 알고 있군.”
해적에 대해 아는 정도가 아니라 배를 수동 모드로 조종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조타수는 어딜 가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시뮬레이션이 없어 연습이 실전일 수밖에 없는 세계이니 말이다.
사실 배를 조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지금 같이 급격하게 침로를 바꿔야 하는 전투 시에 문제가 된다.
부유석은 생각보다 예민한 마법 도구다.
리듬 감각이 없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자전거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감각이 없다면, 연습용 보트를 수백 번이나 바닷속에 처박을 거다.
만약 그러고도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조타수로서 몸값이 수직 상승하게
된다.
“그럼 준비 부탁드려요. 못생긴 부선장님~”
“미친. 내가 앞니도 없는 저놈보다 못생겼다고?!”
“금니는 제 취향이 아니라. 죄송~ 그보다 백병전을 하면 이길 수는 있고요?”
“흥! 꼬맹이, 배를 저놈들에게 가져다 붙일 수만 있다면, 이 배의 선장 자리
를 망할 꼬맹이 너에게 주지.”
지금 저쪽 전함이 움직이는 꼴을 보니 중거리를 계속 유지할 생각으로 보인다.
부함장도 경력을 똥으로 먹진 않았는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화포장 아저씨. 역장탄은 좀 가지고 있나 모르겠네.”
역장탄은 배의 마나 회로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다.
이 세계의 EMP라고 해야 하나.
“헛똑똑이네. 역장탄이 있으면 뭐 해?! 저놈들 배는 작아 보여도 최신형이라
고. 소문으로 듣기에는······.”
최신형이란 말뜻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속도는 물론이고 마나 역장탄에 대한 저항력과 회복 속도가 높다는 뜻.
역장탄을 맞혀도 회복해서 다시 거리를 벌릴 수 있단 말이었다.
펑!! 펑!!!
그 와중에도 대포들이 날아와 선체 바로 옆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아슬아슬하게 적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꼬맹이가 대단해 보였다.
그래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선원들은 암울한 미래를 한탄했다.
“이거 너무 불리한데. 저쪽은 갤버포가 5문인 것 같은데······.”
“군함이니까 당연하지!”
“빨리 도망가야······.”
“멍청한 놈아. 저건 스랑 제국의 최신형이라고. 떨쳐 낼 수 있을 리가······.”
“씨발. 여기서 다 뒈지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황금 돌고래 주점 케시나에게
고백이나 해 볼걸.”
“그러지 그랬냐.”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래. 걷어차이고 충격으로 자살을 했을 테니. 그러면 최소한 죽는 순간에는
망둥이 같은 네 얼굴을 안 봐도 되고.”
꼬마는 고개를 돌려 부선장을 바라봤다.
“부선장 아저씨. 전사는 좀 데리고 있나요?”
혹시나 기대했다.
전사는 어디 영지에 가서도 기사를 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자들.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일이 조금 쉬워질지도.
전사 혹은 기사.
흔히 알고 있는 풀 플레이트를 입고 말을 탄 채 긴 마상창을 든 그런 게 아니다.
이 세계의 기사는······.
“나를 포함해 다섯. 그냥 전사가 아니라 대전사다. 전부 정령 갑옷이 있다.”
“네에~?!”
이놈들 해적이 맞나?
보통 백작들이 4~5명. 정말 많으면 10명을 데리고 있다.
기사의 기량 차이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라지기도 했다.
물론 병사 숫자가 너무 차이 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럼 이따위로 당할 필요가 없잖아!!! 빌어먹을 못생긴 아저씨야!”
“꼬맹이 죽고 싶냐?! 빌어먹을 대전사가 다섯이면 뭐 해. 근처에라도 가야 뭐
라도 하지.”
도대체 이 해적들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물 속성은 몇 명이죠?”
“나를 포함해 셋. 내가 부함장인 이유기도 하지.”
“가서 준비나 하세요. 소원대로 백병전을 하게 해 줄 테니까.”
그 말에 부선장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꼬맹이 주제에 어디서 조종술 따위를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하면 해군
이 이 배에 오르기 전에 네 멱을 따 줄 테다.”
해군이 이 배에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거다.
저들은 나포가 아니라 철저히 침몰을 원한다. 어차피 실패하면 모두가 수장
되는 거다.
“꼬맹이들 소꿉장난보다 쉬운 임무를 아저씨가 성공한다면요.”
물의 가호를 받는 전사가 다섯 명 중 셋이다.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다.
비싼 정령 갑옷을 걸친 그 세 명의 전사가 기준치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얼간
이들이 아니라면.
펑~! 펑!!
적의 포탄이 계속해서 배 주변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걸 피하기 위해 배가 이리저리 기울었다.
꽁무니에서 바라보면 트랙을 돌고 있는 오토바이처럼 보일 거다.
“쯧. 내 살다 살다 꼬맹이 명령을 들을 줄이야.”
그 와중에 부선장은 금니를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처럼 휘청거리며 꼴사나운 몸짓을 보이진 않았다.
지금 그의 몸에는 수증기가 이글거렸다.
휘이이잉~!
순식간에 전신이 갑옷으로 꼼꼼히 덥혔다.
SF 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펑펑!! 끼리리릭~
배가 미친 듯이 이리저리 기울었음에도 마치 평지를 걷듯이 선실을 빠져나간다.
***
스랑 제국의 전함.
“함장님!! 배를 더 가까이 붙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적선의 선실이 피격된 것 같은데, 살상력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한 대 제대로 두들겨 맞더니 녀석들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제법 괜찮은 조타수를 뒀군. 그보다 우리 배의 훈련도가 너무 좋지 않아. 명
중률이 형편없어.”
“죄송합니다. 함장님.”
“아니야. 화포장이 미안할 것까지야. 배치받은 지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
으니.”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제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신 전함이다.
문제는.
배도 최신인데, 선원들도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최신이란 점.
거기에 인맥이 많이 적용되었다는 점.
성능이 좋아서 과도하게 자신감들이 넘친다는 점 외에는 별로 없었다.
“선장님! 아무래도 카논으로 승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갤버포로는 전투가
언제까지 길어질지 모릅니다. 다양한 데이터를 위해서라도.”
“우리 고잉미샤호는 제국에서 심혈을 기울인 신형 쾌속 전함 1호다. 다양한
데이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첫 전투에서 저런 해적선 따위에게 한 발
이라도 맞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야.”
해적선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제국의 최신 전함 고잉미샤호의 함장은 변수 없는 완벽한 승리를 원하고 있었다.
***
꼬마는 선실에 남은 사람들을 격려했다.
“자! 다들 정신 차리고. 한번 해 봅시다.”
이제부터 고도의 집중력을 요 했다.
게임에서와 달리 중심 감각도 필요하다.
“화포장 아저씨. 이제부터 아껴요. 지금부터 포탄 한 발, 한 발 완벽하게 통
제할 테니.”
“뭐?!”
그걸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이제부터 해적 전사들이 정령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정령갑옷을 입는 순간부터 마나가 소진된다.
그들이 최적의 상황에서 싸우게 하려면 일분일초라도 빨리 백병전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통신 담당 아저씨.”
“왜··· 왜··· 에!?”
마법사로 추정되는 자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코에 대충 걸친. 작은 안경알만큼이나 담이 작아 보였다.
“모든 통신관을 이쪽으로 다 돌려요. 지금부터 내가 지휘합니다.”
그 말에 마법사가 항법사의 눈치를 봤다.
부선장이 자리를 비운 이상 항법사가 선실의 일인자이니.
“아씨! 몰라. 시키는 대로 해! 빌어먹을.”
신경질을 내는 항법사.
그는 지금 지도를 펼쳐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지금 전투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끼익! 끼익!
통신 마법사는 해적임에도 점잖은 옷차림을 했다.
옷차림과 대비되게 이곳저곳에 달린 작은 손잡이들을 번잡하게 돌려 댔다.
“됐다! 함선 전체에 네 목소리가 들릴 거다.”
이 전함은 그리 비싼 게 아니다.
초반부에나 사용되는 구닥다리 목선.
마법으로 된 통신망도 제대로 안 깔려서 대부분은 구리 관으로 소리를 전달했다.
“다들 살고 싶으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뭐라도 붙들고 있으세요!! 지금부
터 똥꼬가 짜릿짜릿해질 테니까!”
뒤따라오는 제국의 군함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까지 꽁무니만 쫓아올 수 있나 보자고.